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222화 (222/226)

< 76. 레벨 업 하는 프로게이머 (1) >

스위스의 한 호텔 안.

이곳은 평소 조용하던 호텔이었지만, 최근 프로게이머들의 방문을 맞아 꽤나 떠들썩했다.

“오케, 다 잡았어. 달려, 달려!”

“이거 서렌각 아닙니까 형님들!”

각종 태클로 인하여 말이 많았던 정명의 팀은 결국 월챔에 진출하지 못 했다.

때문에 월챔의 한국 대표는 팀 프레이의 다음 순위였던 TAQ가 뽑히게 되었다.

TAQ는 정명의 팀 구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최초의 인물, 유일환이 있던 바로 그 팀이었다.

“이거 MAO까지 털어버리고. 요즘 우리 팀 분위기 너무 좋다. 이대로만 가자.”

“그러게요. 이러다 우리 월챔 우승도 해버리는 거 아니에요?”

“야야, 아무리 그래도 김칫국은 자제 하자. 킥킥.”

최근 연습 경기 성적이 무척이나 좋았기에, 팀 분위기는 상당히 좋은 상태였다.

TAQ는 중국 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멋지게 승리했고, 승리에 고무된 팀원들이 서로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유일환이라는 팀의 에이스가 있었다.

“일환이 너 진짜 실력 빨리 오른다. 아까 레인보우 터는 거 보니까 내가 다 지리겠더라.”

“레인보우 정도야 당연히 이기지. 최근에 레벨 업 많이 했으니까.”

일환의 말에, 같은 팀원인 이민석은 뭔 소리냐는 듯 물었다.

“너 가끔 레벨 업 레벨 업 하는데,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네가 좋아 하는 게임 얘기야?”

“어, 뭐 비슷해. 게임에서는 몬스터를 잡으면 레벨업 하면서 능력치가 오르잖아. 알지?”

“알지.”

“나도 비슷해. 다른 팀을 잡으면 실력이 오르는 기분이랄까?”

“그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냐?”

“아니, 진짜라니까? 난 다른 팀을 잡으면 실력이 오르는 것 같다고. 나 원래 실력되게 별로였는데 레벨 업 해서 이 정도까지 올라온 거야.”

그 이야기를 듣는 민석은 당연히 개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일환의 말은 반쯤 진심이었다.

처음에는 별 두각을 드러내지 못 헀지만, 연습생으로 생활하면서 실력이 일취월장 했다.

그리고 그 후, 계약금을 두둑하게 받은 덕분에 좁디 좁던 원룸에서 벗어났고 스위스에 와서 고급 시계도 샀다.

이번 월챔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면 외제차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레벨업을 해야만 했다.

‘내가 얼마나 레벨업을 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면 좀 더 좋았을 텐데. 이건 뭐 레벨업 했겠거니 할 뿐이니까...’

자신의 재능에 약간 아쉬운 점이 있긴 했지만, 여기서 뭘 더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다.

일환은 그렇게 생각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슬슬 경기장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으니까.

..........

“와, 죄다 서양 사람들이네...”

“촌놈처럼 두리번거리지 마. 바보 같으니까.”

경기장에 도착한 TAQ 선수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기장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경기장을 구경하듯, 현지의 관객들 또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저거 한국 팀 아냐?

-어디? 누구?

-저기, 왼쪽에. 아마 TAQ 같은데...

선수들이 도착하자 관객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한다.

구경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용기 있는 몇몇 팬들은 직접 다가와 선수들에게 말을걸기도 했다.

“저, 당신 유클리드 맞죠?”

“네, 맞아요. 반갑습니다!”

처음 밟아본 땅에 자신의 팬이 있다니!

영어가 안 되기에 짧은 대화밖에는 할 수 없었지만, 일환은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팀원들 또한 그런 일환을 부럽다는 듯 쳐다봤다.

“오, 일환이 너 외국에서도 인기 좀 있나 본데?”

“그런가? 흠.”

“그렇다니까? 와, 사람들이 전부 이곳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잘 하면 돌아갈 땐 애인 한명 생길 지도 모르겠어. 킥킥...”

“지랄. 말도 안 통하는데 무슨.”

실제로는 무지하게 기대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그런 생각 없는 척 말하는 일환이었다.

그러나 그런 행복한 기분은 얼마 가지 않았다. 성난 몇몇 팬들이 TAQ 선수들에게다가와 고함을 질러댔기 때문이다.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 실력으로 안 되니까 추접한 수나 쓰냐? 넌 여기 있을 자격이 없어. 네 집으로 썩 꺼져!

-맞아! 세체미 불러와!

-우우우우우!

응원이라고 하기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하지만 팀의 사람들은 스위스 말은커녕 영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기에, 선수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옆에 있던 통역에게로 향했다.

“저 사람들 뭐라고 하는 거예요?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

“음, 그게 말입니다....”

평소에는 동시통역도 자연스럽게 하던 통역사의 말문이 막혔다.

솔직하게 말하자니 선수들의 경기에 영향을 끼칠까 우려될 정도로 심한 말이었으니까.

결국 통역사는 착한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TAQ는 곧 GLG에게 개발릴 것이다...뭐 그런 식으로 얘기하고 있네요. 아마 상대팀인 GLG의 팬인가 봅니다.”

“아, 그렇군요. 여기에도 저런 사람들이 있네요.”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무대로 올랐다.

상대편 팀의 팬들이 욕설을 하는 것은 가끔 겪는 일이었으므로, 멘탈 회복은 빨랐다.

그리고 그 후, 부스로 들어간 일환은 잡생각을 지우며 경기에 집중했다.

‘GLG라. 북미 팀 정도면 공짜 경험치 아냐? 이번에도 쉽겠네.’

#######

TAQ 선수들이 경기를 준비하던 그 시각.

정명과 메리 또한 경기장 안에 도착했다.

비록 선수로 오지는 못 했지만, 그저 월챔을 관람하기 위해 스위스에 온 것이다.

그런데 잠깐 수근 거리는 반응으로 끝이던 TAQ와는 달리, 정명이 등장하자 관객석이 무척이나 시끄러워졌다.

“저기, 사진 좀 부탁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와, 아자토스! 저 당신의 진짜 팬이에요! 사랑해요!”

“네, 감사합니다. 저도 사랑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정명은 거리낌 없이 사랑한다고 답하고 있었다.

물론 죄책감 따위는 전혀 들지 않았다.

‘미안해 에리.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알지? 이건 그냥 팬서비스일 뿐이야.’

역시나 세체미라는 명성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닌지 외국에서까지 난리들이다.

하지만 경기 관람을 하러 왔지 팬 사인회를 온 것은 아니었기에 정명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겨우겨우 인파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헉헉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관객석 맨 앞에서 혼자 도도하게 앉아 있는 메리를 볼 수 있었다.

“뭐야, 여기 있었어요? 나 혼자 고생하는 동안?”

“자리 맡아놨습니다.”

“아, 예.”

약간 억울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정명은 경기가 시작되자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경기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나 TAQ의 새로운 에이스, 유일환이었다.

[게이머 유클리드가 5초 영웅을 사용했습니다.]

‘와, 저것 봐라? 저것까지 쓰고 있어?’

인정하기는 싫지만, 유일환이라는 녀석은 정말로 미친 재능의 게이머였다.

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명이 쓰던 5초 영웅 스킬을 사용하며 상대방을 압살하고 있었다.

-이야, 유클리드 선수의 피싱맨은 역시나 뭔가 다르네요!

-네, 괜히 차기 세체미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정명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 이 녀석은 마치 레벨업이라도 하는 것 같군. 예전의 나처럼.’

오늘의 경기는 꽤나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5분 전과는 달리 GLG가 이기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고, 지루해진 정명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스위스까지 날아와서 할 말이 아닌 것 같긴 한데, 월챔은 TV로 봐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래도 보십시오. 직접 보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쟤네들 이기는 꼴 보기 싫어서 그렇다니까요. 그러니까 이쯤 보고 나가죠. 제가 밥 살게요. 네?”

TAQ가 져야 재밌는데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경기도 거의 끝났기 때문인지 메리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시지요.”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식당 계산대에 선 정명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계산을 끝냈다.

‘한국에 비해서 딱 스무 배 쯤 비싼 것 같은데.’

정명은 그동안 많은 나라를 돌아다녀봤지만, 스위스는 그런 나라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가가 비쌌다.

계산을 마치고 나온 정명은 혼자 도도하게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메리에게로 다가갔다.

“저기. 물가가 생각보다 비싼데요. 다음부터는 뿜빠이, 아니, 더치페이 좀....”

조금 모양 빠지긴 하지만 스위스 물가는 비싸도 너무 비싸다.

하지만 메리는 별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거 아시나요? 사실 인생에 있어서 돈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음....그럼 명예가 중요한가요?”

“후후, 아니요.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 얼마나 행복하게 사느냐. 그게 중요한 것이죠. 돈은 그 다음 문제랍니다.”

어디 종교 관련 사람이 할 법한 말을 하고 있었다.

다른 때라면 깊게 감명 받았을 지도 모를 말이었지만, 계산을 끝내고 나온 정명은속으로 툴툴댔다.

‘야, 돈이나 내고 그런 말을 해라.’

정명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자, 그 시선을 의식한 듯 메리는 편지봉투 하나를 꺼냈다.

“응? 뭐에요?”

“당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아.....”

정명은 스위스에 오기 전, 메리가 선물을 주겠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며 봉투를 열었다.

봉투를 열어 보니 지폐 크기의 네모난 종이 하나가 나왔다.

[소원권]

*소원 하나를 이뤄드립니다.

*유통기한 8년

*메리은행 발행

소원권을 받자마자 든 생각은 딱 두 가지였다.

이거 볼펜으로 썼네, 그리고 쿠론에게 받은 안마권이 어디 있더라? 였다.

살짝 어이가 없어진 정명은 소원권을 흔들며 따졌다.

“아 진짜. 뭐에요 이건!”

“선물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하셨으니 보상으로 드리는 겁니다.”

“소원권이라니. 막 이상한 거 시켜버릴 거예요? 안 봐줄 거라고요.”

“원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농담을 해도 전혀 웃는 기색이 없다.

정명은 무척이나 머쓱해하며 소원권을 지갑에 넣었고, 그 모습을 보며 메리가 당부했다.

“기억해두십시오. 당신에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는 것을.”

...........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여행을 마친 정명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정이 없는 동안 정명을 포함한 팀원들은 푹 휴식을 취했지만, 그 휴식기간은 첫휴가 나온 이등병의 휴가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는 다음 리그를 위해 연습을 시작해야만 했다.

‘어후, 하기 싫어.’

정명은 월요일에 출근한 월급쟁이처럼 흐느적거리며 연습실 문을 벌컥 열었고, 연습실에 들어오자마자 하니가 강아지처럼 달려와서 정명을 맞아주었다.

“우와, 오빠오빠오빠오빠!”

“왜왜왜왜.”

“소식 들었어? 유일환이 중국 간대!”

“아, 오는 길에 들었어. 돈 되게 많이 받았다더라.”

떠돌아다니는 소문으로는 50억을 받았다, 아니다 [email protected]을 받았다 라는 소문이 들리긴 했지만 자세한 건 알 수 없었다.

정명은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하여 커뮤니티의 기사를 살피기 시작했다.

-팀의 에이스 중국으로 떠나다.

-계약금은 역대 최대로 추정

-SKS에 패한 중국, 전력 상승에 대한 기대감 드러내

‘이적한 곳은......AP게이밍인가. 지난번에 SKS를 잡았던 강팀이었지. 올해는 별로였지만.’

유일환 본인의 인터뷰로는 돈, 명예, 실력 있는 팀원들.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방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국을 이미 가본 정명의 생각으로는 한 마리 토끼라도 잡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음. 중국이 저렇게 돈 많이 주는 건 맞아? 허세 아니야?”

“다른 건 몰라도 돈은 된다. 물론 계약 잘못 하면 큰일 날 수도 있긴 하지만...”

일환은 돈과 명성을 쫓아 중국으로 향했다.

북미로 떠날 것이란 몇 사람의 추측과는 달리 정명은 계속해서 한국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월드챔피언십은 나갈 수 없었지만 실력을 키우는 데는 한국이 최고의 환경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 후, 3년의 시간이 흘렀다.

ⓒ 추어탕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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