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선택 받은 게이머 (1) >
팀이 만들어진 후, 몇 달이 지났다.
아직 학생인 팀원들이 있기에 시간적 제약이 많았지만 쿠론과 하니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연습할 시간을 내려 애썼고 그 결과, 팀은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그럭저럭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연습한 성과를 내 보일 때가 되었다.
2부 리그 진출을 위한 PC방 예선 참가.
새로운 팀의 첫 공식 데뷔전이었다.
“괜찮겠지? 응? 괜찮겠지?”
“괜찮다니까. 넌 그냥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있어. 여기에선 경력자들이 알아서캐리 할 테니까.”
“그치만, 혹시나 실수라도 하면...으아, 걱정 돼!”
겨우 PC방 리그이건만 하니는 차로 이동하는 동안 다리를 달달 떨며 손톱만 깨물고 있었다. 방송 경험도 제일 많은 녀석이 떨기는 제일 많이 떨고 있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명은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리며 가장 먼저 차에서 내렸다.
“다 왔어 내려.”
팀원이 도착한 곳은 관중들의 환호가 울리는 경기장이 아닌, 한 대형 PC방 앞이었다.
정명은 고개를 들어 PC방 간판을 올려다봤다.
[나이스PC방]
이 PC방은 예전에 정명이 예선을 치르러 왔을 때 왔던 곳이자 NPG의 코치와 대판 싸운 역사적인 PC방이었다.
그 때의 일이 생각난 정명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나 참. 그 때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대판 싸웠는지. 일이 잘 안 됐다면 게이머를 때려 쳐야 할 수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무척이나 억울한 일이었으면서 열 받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추억이다.
정명이 옛날 생각을 하며 혼자 실실 웃고 있자, 두 꼬마는 이상하다는 듯 정명을 쳐다봤다.
“아저씨 이상해. 혼자 웃고 있어...”
“분명 야한 생각 하고 있을 거야. 내가 알아!”
“그냥 옛날 생각나서 그런 거거든? 예전엔 여기 자주 왔었다고.”
정명은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는 하니의 입을 틀어막으며 PC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PC방에서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
-백작 치지 말자니까. 아오, 망했다 이거.
-아, 졌네.
PC방에서는 프로가 되고 싶은 아마추어들이 예선을 뚫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바둥대고 있었고, 기존에 데뷔했던 몇몇 선수들 또한 예선을 치르고 있었다.
혹은 그냥 재미로 예선을 치르는 사람들도 꽤 많아보였는데, 그야말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정명은 한 남자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너희들 여기서도 떨어지면 진짜 끝이야 끝. 알았어?
-예.....
-다음 경기는 잘 해. 쉬운 상대니까. 내가 아까 가서 보고 오니까, 그냥 애들이야 애들.
‘하, 저 모습까지도 똑같을 필요는 없는데.’
PC방의 한쪽 구석에서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다섯 명의 남자를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NPG의 코치로군. 저 녀석과 대판 싸운 후, 미국으로 떴지. 이름은 까먹었고.’
정명이 만감이 교차한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에리가 정명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아는 사람이면 인사하고 오지 그래? 아직 시간 남는데.”
“됐어. 개새끼니까 인사 안 해도 돼.”
“개새끼라고?”
“그래, 개새끼야.”
NPG 일행 중에는 얼굴이 꽤나 익숙한 사람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이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뭐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지만.’
“저, 혹시...유정명 선수 아니신지요?”
“네, 맞습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명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정명을 부른 사람은 꽤나 익숙한 사람이었다.
“어, 이동호 해설!”
“해설이라뇨, 아직 해설 준비 중인데요. 하하, 제가 해설 준비하고 있다는 게 거기까지 소문이 났나요?”
이동호의 말에 뜨끔한 정명은 관심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고 대충 둘러댔고, 그 말에 이동호는 쑥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얼굴이 풀어졌다.
그리고 정명의 이름이 들린 순간, PC방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뭐? 유정명? ATX에 있던 걔?
-다른 팀이랑 계약 안 한다고 하더니, 여긴 왜 온 거지?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하면 민폐려나.
‘이런...귀찮게 됐네.’
선수들의 뒤에서 경기를 구경하던 사람은 물론이고, 당장 경기를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조차 이곳으로 흘끔흘끔 시선을 보내며 정신을 팔고 있다.
그 시선에 하니는 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썼지만, 외국인들은 별 상관없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있었다.
그리고 그때, 한 남자가 정명에게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정명에게 달려온 사람은 이번에도 꽤나 익숙한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유정명선수! 팀을 만드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NPG의 코치 맞으시죠?”
“예, 예. 반갑습니다...”
정명이라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정명에게 달려온 사람은 NPG의 코치였다.
코치는 정명보다 7살은 많은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정명에게 노골적으로 굽신거리고 있었다.
‘이 아저씨는 또 왜 이러는 건데. 불편하게.’
예전에는 자신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코치와 연습생의 관계였다면, 이제는 별 볼일 없는 팀의 코치와 게이머계의 레전드라는 입장으로 만났다.
때문에 둘은 같은 팀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만, 코치로써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때요, NPG라면 PC방 예선정도야 금방 통과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하, 요즘 NPG가 대단하다는 소문이 거기까지 들렸나요? 솔직히 아마추어가 상대인데 여기서 지면 죽어야죠. 당연히 이길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애들 다 듣고 있는데 저런 소릴 하나. 부담 엄청 되겠네.’
정명은 불편한 감정을 숨기며 적당히 대화를 나눴고, 코치는 나름 인맥을 쌓았다고 생각했는지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경기가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죠.”
“예. 수고하세요.”
과거의 망령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인사까지 나눈 후로는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정명은 할 수 없이 자신의 경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NPG가 치르는 경기를 구경하기로 했다.
‘상대는...뭐야. 아마추어 학생 팀인가? 퍼펙트게임 나오지나 않으면 다행이겠군.’
NPG가 아무리 실력 구린 팀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합숙훈련으로 호흡을 맞췄던 사람들이다.
고작해야 동네에서, 학교에서나 이름 날리던 학생 팀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고, 게임은 정명의 예상대로 양민학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킥킥킥, 진짜 개 웃기네 이거. AP소드마스터 이라니, 너 진짜 또라이다.”
“푸하하. 살인전차 나가신다!”
NPG의 탑에는 포탑을 설치하며 싸우는 대갈박사가 라인전을 찍어 누르고 있었고, 미드에는 원딜러 캐릭터인 대포 사수가 AP 아이템을 두른 채 앞점프를 하고 있다.
솔로 랭크에서 꺼내면 완전 욕먹는 트롤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들은 그 트롤픽을 잡기는커녕 1킬 내기도 어려워보였다. 그만큼 실력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야 뭐야, 너 아마한테 킬줬냐? 진짜 ㅂ신도 아니고 이건.”
“지랄. 운이 안 좋았거든?
그 모습을 보며 NPG 선수들은 낄낄대기 바빴지만, 상대 아마추어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맞지만, 아마추어들도 이 날을 위하여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분통이 터지는 것이다.
하지만 딱 한 명. 정상적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너희들 솔로랭크 하냐? 똑바로 좀 해라. 진짜 답답하네.”
그렇게 말하는 녀석은 유일환이라는 미드라이너였다.
그는 아마추어와의 경기임에도 최선을 다 했고, 경기력도 상당히 좋아보였다.
‘NPG에도 정신이 제대로 박힌 녀석이 하나는 있었군.’
정명은 그렇게 생각하며 습관적으로 유일환의 스탯을 살펴봤다.
[유일환]
피지컬 (76/99)
정신력 (57/99)
오더 (68/99)
판단력 (75/99)
*악마적인 재능
-이 게이머는 게이머로써 가질 수 있는 재능 중 최고의 재능을 타고났습니다!
-이런 선수가 시장에 나온다면, 각 구단의 구단주들은 이 선수를 갖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라, 이 녀석 보게?’
현재 능력치는 둘째 치고, 잠재 능력치가 엄청나다.
모든 잠재 스탯이 99로 되어 있는 사람을 처음 목격한 것이기 때문에, 꽤나 놀란 정명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GG요.”
“수고.”
게임은 별다른 변수 없이 NPG의 승리로 끝났고, 코치는 호탕하게 웃으며 팀원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다 잘했어. 앞으로도 이렇게만 가자! 애초에 애들은 학교에서 공부나 해야지. 안 그래?”
제 딴엔 조용히 말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모두 들릴 정도의 목소리였고, 학교에서 공부나 해야 하는 사람이 된 하니는 코치의 뒤에서 몰래 중지손가락을 들며 욕을 했다.
“기분 나빠. 뭐 저런 녀석들이 다 있어? 완전 저질이야.”
“신경 쓰지 말고 게임이나 준비 해. 이제 우리 차례니까.”
“뭐, 뭐? 벌써?”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팀 프레이의 데뷔전이 시작되었다.
처음 겪는 공식전에 벌벌 떨던 하니는 제일 많이 시간투자를 했던 비장의 조합을 꺼내자고 우겼지만, 그녀의 의견은 단번에 기각되었다.
PC방 리그 정도야, 평범한 조합을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와, 와와! 내가 잡았어! 오빠야, 봐라! 내가 이겼다!”
“그래, 잘 했어. 그대로만 해.”
“우와, 우와, 우와......”
솔로 킬을 따낸 하니는 무척이나 흥분하며 사투리를 쏟아냈지만, 정명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여기서 자신의 팀이 질 것이라고는 단 한 순간도 생각해본 적 없었으니까.
그리고 30분 후, 당연하게도 정명은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좋아, 이렇게만 가자.’
하니의 걱정과는 달리, 정명의 팀은 PC방 예선에서 단 한판도 내주지 않으며 승승장구를 해 나갔다.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하지만 그런 성적에도 불구하고 딱히 놀라는 사람은 없었는데, 그야 기존에 있던 정명의 이름값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PC방에서 치러지는 예선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이 경기에서 이기면 다음부터는 이런 PC방이 아닌 큰 경기장에서 관객들 앞에 서게 되는데, 그러한 부담감 때문인지 하니는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오빠야, 괜찮겠지?”
“넌 아직도 그러고 있냐? 당연히 괜찮지.”
“하지만 마지막 상대는 NPG이기도 하고...걔네 잘하잖아. 끄으으...”
마지막 예선 상대는 요즘 엄청나게 주목받고 있는 신인인 유일환이 있는 NPG였다.
정명은 하니처럼 벌벌 떠는 대신, 여유만만하게 웃으며 경기를 준비했다.
‘좋아, 악마적인 재능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보자!’
하지만 그런 정명의 기대와는 달리, 게임은 특별한 일 없이 팀 프레이의 승기가 굳어지고 있었다. 마치 아마추어와 프로의 대결만큼 실력차이가 나는 모습이었다.
‘뭐, 예상은 했어. 나름 잘 하는 녀석이라고 해 봐야 유일환 저 녀석 하나니까.’
딱히 변수는 없었다.
하지만 단 한 번, 유일환은 정명을 놀래키는 데 성공했다.
[게이머 유일환이 1초 용사를 사용합니다.]
‘어라, 이것 봐라. 저것도 있어?’
유일환이 사용한 스킬은 정명이 예전에 꽤나 애용했던 1초 용사라는 스킬이었다.
정명은 같은 스킬을 사용해줄까 하다가 이번엔 그 스킬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것보다 한 단계 높은 클래스의 스킬을 사용해주기로 했다.
[5초 영웅을 사용합니다.]
1초간 좋은 움직임을 보였던 유일환의 탈주닌자는 1초가 지나자마자 신나게 얻어터지기 시작했다.
결국 킬 각을 잡으려 들어왔던 유일환은 역으로 당하며 킬을 하나 내주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와, 역시 유정명...”
뒤에서 보고 있던 해설자 지망생, 이동호가 나지막이 감탄했다.
코치 또한 유일환이 압도적으로 지는 꼴을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끝났군...’
........
경기가 팀 프레이의 승리로 끝난 후, 유일환이 정명에게 다가왔다.
게이머 후배로써 인사를 하려는 것이었다.
“역시 잘 하시네요. 못 당하겠습니다.”
“그쪽도 잘 하시던데요 뭐.”
정명의 칭찬에 일환이 수줍게 웃었다. 방금 경기에서 진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모습이었다.
“다음엔 1부 리그에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기...아름다우신 외국인 팀원분들도 같이요.”
“그래요. 사이좋게 승강전 뚫어 봐요.”
분위기가 꽤 좋다.
정명은 제법 괜찮은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악수를 나눴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정명은 뜻밖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신가요?”
“어, 정명씨. 다름이 아니라 민원 때문에 연락 했어.”
“네? 민원이요?”
“정명씨 팀에 외국인이 3명이잖아.”
“그렇죠.”
“그거 때문에 민원이 접수 됐거든. 외국 사람이 3명인데 한국 팀으로써 한국 리그를 뛸 수 있냐는 뭐 그런 내용인데...”
“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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