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213화 (213/226)

< 73. 천재 게이머 (1) >

수도권에 있는 한 군부대 근처에서는 부대를 나서는 군인들이 바글바글했다. 모두 휴가를 떠나는 군인들이었다.

그리고 오늘, 휴가 가는 날만을 기다려온 이지섭 상병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휴가는 받았는데 할 게 없네. 집에 가서 뭐 하지?”

“월챔이나 보면 되지 않나? 좀 있으면 할 거 같던데.”

“아 맞다. 그게 있었지? 개꿀이네 이거.”

“겨우 사회로 나왔는데 집에서 TV나 보겠다고? 여친 없냐?”

“이건 지가 먼저 말 꺼내놓고 헛소리야?”

이지섭과 동기의 대화는 자연스레 음담패설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 때, 히죽거리며 웃던 그들의 앞에 차 한대가 멈춰섰다.

“저기요. 말 좀 물을게요.”

그 말에 고개를 돌린 지섭은 순간 들고 있던 모자를 놓칠 정도로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는 무척 보기 힘든 미인이, 그것도 긴 금발을 가진 미인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죽거리며 음담패설을 늘어놓고 있던 지섭은 자동으로 차렷자세를 취하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잘못슴다?”

“군부대가 이 근처라고 했던 거 같은데요...혹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시나요?”

그 말과 동시에 지섭과 동기는 과도하다고 할 정도로 성심 성의껏 가는 길을 설명했다.

심지어 부대 앞까지 안내해주겠다고 할 정도였는데, 한국말을 꽤나 잘 하는 금발 미인은 입을 가리며 후후 웃었다.

“아뇨, 괜찮아요. 그 정도면 찾아갈 수 있어요. 그럼 휴가 잘 보내세요.”

“군인아저씨들 안녕!”

그것을 마지막으로 차가 떠나갔지만, 지섭은 하염없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입에 침이 튀도록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와 개이쁘네 진심. 어지간한 연애인 싸다구 때린다.”

“인정. 한 열 번쯤 왕복으로 때릴 거 같은데.”

“킥킥...인정, 인정.”

오랜만에 여자를, 그것도 평생에 몇 번 볼까 말까 한 미인을 본 두 명의 군인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저 사람 어디선가 본 거 같지 않냐? TV에서 본 것 같은데...”

동기의 말에 지섭이 휙 하고 고개를 돌렸다.

“연예인이지? 아님 모델? 누구든 나 오늘 부터 저 사람 팬 한다. 진심 요정인줄...아, 차 왔다. 일단 타자.”

그 때,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버스가 왔다. 자그마치 40분을 기다린 버스였다.

둘은 이야기를 끊으며 버스에 올라탔고, 자리에 앉은 지섭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래서 누구라고?”

“어...생각나려는데 버스 와서 까먹었어.”

“으이구 쓸모없는 놈.”

########

정명의 군대 생활은 무척이나 평탄하게 흘러갔다.

군대 생활을 엄청나게 잘 하는 것도, 엄청나게 못 하는 것도 아닌 부대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런 생활.

그리고 그런 정명에게도 휴가가 찾아왔다.

-엄마! 저 오늘 휴가 나왔어요!

-또 나왔니? 엄마는 지금 제주도야. 그러니까 집에 오지 말고 친구들이랑 잘 놀아라....

부모님의 문자를 확인한 정명은 피식 웃었다.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한테 인사라도 할까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듯 했다.

그리고 정명의 옆에 있던 그의 후임 신상호가 입을 열었다.

“애인임까?”

“아니. 부모님. 휴가 또 나왔냐는데.”

“큭큭, 저도 슬슬 그런 말 듣고 있슴다. 휴가를 맨날 나오는 것 같다나 뭐라나...”

같은 날 휴가를 가는 다른 군인들은 이미 다들 떠난 시각이지만, 부대 앞에는 두 명의 군인이 쓸쓸하게 서 있었다.

“픽업해 주러 오는 사람들 오고 있는 거 맞죠? 지금 꽤 오래 기다린 것 같은데.”

“그러게.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전화라도 해볼까...”

정명은 곧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고, 이내 3분이면 도착한다는 대답을 받았다.

“흠, 근데 방금 여자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혹시?”

“어. 애인 맞아.”

생각과는 달리 정명이 쿨하게 인정하자 상호가 조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유뱀 모솔 아니셨슴까?”

“내가 말 하지 않았나? 군대 오기 전에 만들어둔 애인 있다고.”

“전 못 들었습니다.”

“그럼 지금 들으면 되겠네. 지금 픽업하러 오는 사람이 내 애인이야. 그러니까 넌분위기 깨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역에서 내려. OK?”

“흠. 애인이라. 예쁩니까?”

“예쁘지. 엄청 예뻐.”

“창식이도 그렇게 입 털었던 거 아시잖습니까. 이제는 사진 없으면 안 믿을 겁니다.”

그 말에 정명이 쯧쯧 혀를 차며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던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사진에는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미녀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사진 빨도 잘 받은 사진이어서 A급 연예인도 뺨 때릴 수 있을 정도의 외모로 보였다.

하지만 상호는 그 모습에 놀라기는커녕 얼굴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정명에게 돌려줬다.

“뭡니까 이건?”

“애인 사진 보여달라며. 보여줬잖아. 왜 그런 반응이야?”

“아 개소리좀 하지 마십쇼. 어디서 사기를 치십니까? 그런 식으로 하면 저도 애인 있습니다.”

상호 또한 질 수 없다는 듯,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 사람은 꽤 유명한 사람이었기에 정명도 곧장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사람 AV배우 아니냐? 이딴 걸 왜 가지고 다니는 거야?”

“여러모로 쓸모 많습니다. 다 보셨으면 주십쇼.”

상호는 진짜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진을 다시 품안에 넣었다.

그리고 그 때, 둘의 앞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정명 아저씨!”

조수석의 문이 벌컥 열리며 차에서 튀어 나온 것은 귀여운 보브컷을 한 꼬마 아가씨, 쿠론이었다.

쿠론은 그대로 정명에게 달려와 정명의 품에 폭 안겼다. 1년 만의 재회였다.

그리고 쿠론을 따라서 에리 또한 차에서 내렸다.

“우리 쿠론, 머리 잘랐네?”

“응! 귀엽지? 히힛.”

“누나는 머리 기르고 있고...”

“그렇게 됐어.”

허리까지 기른 머리에서 어깨까지 닿는 보브컷으로 헤어스타일을 바꾼 쿠론, 숏컷에서 허리까지 닿을 정도로 머리를 기른 에리.

이것은 정명이 기억하고 있는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에, 괜히 예전 추억이 떠오른 정명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던 상호가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정말 유정명 병장님 애인분....맞으십니까?”

상호는 평소 까불던 모습과는 달리, 무척이나 공손한 말투였다. 그리고 에리는 즉답을 피하며 정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날 네 애인이라고 소개했었니?”

“어. 응.”

“흠...”

정명이 에리와 잠자리를 갖은 적이 있기는 했지만, 사귀는 것이라고 확실하게 한 적은 없다. 거기다가 정명은 에리와 1년 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때문에 정명은 혹시나 후임 앞에서 창피를 당할까봐 걱정했지만, 정명의 걱정과는 달리 에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한국 말 못 하시는 건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명이 애인 맞아요.”

“애인? 명이? 와, 미쳤다 진짜...와, 진심 유뱀. 혹시 전생에 우주를 구하셨다거나 하셨습니까?”

“개소리 말고 차에나 타. 바빠.”

그 후, 일행은 곧바로 차에 타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역까지 가는 동안 상호는 뭐가 그리 미쳤다는 건지 멍한 표정으로 미쳤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정명이 보기에는 정말로 미친 건 신상호 본인으로 보였다.

때문에 역에 도착하자마자 정명은 상호를 끌어내었다.

“넌 그만 내려 임마. 역에 다 왔어.”

“암튼 고맙습니다. 휴가 끝나고 봐요.”

불청객이 내리고 드디어 셋 만 남았다.

“휴, 시끄러운 사람이네. 네 친구니?”

“아니, 후임. 그런데 누나. 그 때 했던 약속 말인데...”

“저기, 누나. 그 때 했던 약속 말인데...”

정명은 상호가 나가자마자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에리는 즉답을 피하며 말을 돌렸다.

“우리 팀, 지금 월챔 준비 중인 거 알지? 월챔 때문에 한국으로 부트캠프 차린 것도...”

“어, 응. 알지.”

나이를 먹어갈 수록 피지컬의 한계를 느낀 에리는 최근 프로게이머를 은퇴했다.

그리고 정명의 조언에 따라 한 북미 팀의 코치로 가게 되었는데, 에리는 코치로 처음 데뷔한 것 치고는 평판이 무척이나 좋았다.

“기껏 휴가 나왔는데 미안해. 그런데 지금은 무척 중요한 시기야. 이해해줘.”

“당연하지. 충분히 이해 하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음...우리 연습실이라도 구경 할래?”

“콜! 지금 바로...아니, 잠깐 나 옷만 갈아입고. 일단 내 집으로 가줘.”

에리가 들어간 팀은 특이하게도 남녀 선수가 섞여있는 팀이었다.

그러한 조합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러한 팀을 관리하려면 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함을 정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연습실에 들어온 에리는 연습실 사람들에게 정명을 소개했고, 이내 한 스태프가 크게 웃으며 정명에게 다가왔다.

“우와, 이게 누구야. 아자토스 아닙니까!”

“절 아세요?”

“당연히 알죠! 크, 정말 다시 생각해도 아쉽습니다. 당신 같은 선수가 2년만 더 활동했더라면 전설을 썼을 텐데!”

“하하...지금부터 다시 쓰면 되죠 뭐. 그보다 할 게 없어서 연습실 구경 왔는데, 실력 좀 구경해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선수들은 지금 정명이 들어온 것도 모를 정도로 연습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에리는 밀린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자리를 잠시 뜬 상황.

심심했던 정명은 연습실을 본격적으로 탐험해 보기로 했다.

“그럼 여기. OMA에서 제일 잘 하는 사람이 누구에요?”

........

“거기 와드 지웠어?”

“응.”

“잠깐, 거기 갱킹 온 것 같아. 사려봐.”

스태프는 지금 바쁘게 오더를 내리고 있는 한 선수에게로 정명을 안내했다.

“OMA에서 가장 잘 하는 선수? 이 팀에 있는 사람이라면 같은 대답을 할 겁니다. 당연히 메리 세라죠. 미드라이너이자 오더인데 실력이 아주 월등합니다.”

‘메리? 그럼 이 녀석은 메리 5호 정도로 기억해 둘까.’

메리라는 이름은 무척이나 흔한 이름이었다.

정명은 미국에서 만났던 메리만 10명쯤 되었고, 이쯤 되니 슬슬 메리 1호 메리 2호처럼 번호를 붙여주고 있었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남성 게이머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죠.”

“왜요? 혹시 북미 팀을 우승으로 이끌만한 정도의 천재라도 됩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요. 예쁘거든요.”

“예쁘다고요? 그게 끝입니까?”

“네. 끝입니다.”

“아 그래요.”

금세 흥미가 식었다. 예쁜 사람이야 주변에도 많았으니까.

정명은 혹시나 해서 메라 세리라는 OMA 미드라이너의 능력치를 살폈다.

메리는 정명이 뒤에 있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프로게이머를 얼굴로 할 것도 아니고, 외모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지. 그럼 어디 한 번 볼까...’

[메리]

피지컬 (80/82)

정신력 (70/88)

오더 (68/80)

판단력 (75/90)

‘오, 제법인데? 이 정도면 한국 팀을 상대로도 꽤나 활약할 수 있겠어.’

과연 에이스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인재였다.

정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습을 구경하다가 이내 연습실을 나왔다.

황금 같은 휴가를 이렇게 보내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명아, 벌써 가려고?”

“어. 좀 쉬고 싶어서. 그런데 우리 전에 했던 약속 있잖아...”

“애들 연습 하는 거 잘 봤어? 잘 하지? 특히 메리.”

“잘 하긴 하더라. 물론 나보다는 못 하지만.”

정명의 농담에 에리가 큭큭 웃었다.

“모르는구나? 너 없는 동안 세상 많이 바뀌었어. 이제 프로게이머 중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은 네가 아닐 지도 모를 걸?”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라.’

순간 정명의 머릿속에 몇 사람이 떠올랐다.

중국에서 피지컬로 날리던 선수인 라이언이나 유럽의 써클페케, 그리고 한국에서 자신 다음가던 선수인 메이커까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정명은 그들을 머릿속에서 모두 지우고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입 밖으로 꺼냈다.

“메리? 메리 세라를 말 하는 거야?”

회심의 대답이었지만, 에리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응? 걔 얘기가 왜 나와? 메리가 잘 하긴 하지만 지금 한국 선수들하고 비교하면 좀 그렇지 않니?”

“뭐? 그럼 누군데? 나보다 잘 한다는 사람이.”

“메이커라는 사람이야. 그것도 모르니? 한국 사람이면서.”

“아, 그래. 쩝.”

“? 뭘 기대한 건데?”

뭔가 낚인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어차피 자신의 착각이었다.

정명은 입맛을 다시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이만 갈 게. 잘 봤어.”

“그래. 월챔 끝나면 연락 할 게.”

“아, 헤어지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뭔데?”

“우리 그때 약속했던 거 있잖아...”

그동안은 어물쩡 넘겼지만 이번만은 물러설 수 없다.

정명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화를 시도했고, 드디어 에리가 반응을 해보였다.

“어휴, 정말 누가 군인 아니랄까봐. 언제까지 그 얘기만 할 거니?”

“군인이니까 이러는 거지.”

정명은 자신이 정말 억압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한국 군인들은 어디 풀 데가 없다는 것이다.

군 생활은 무척 힘들었지만, 이 날만을 기약하며 버텼다는 헛소리까지 나오자 결국 에리가 킥킥 웃고 말았다.

“푸핫! 알았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좀 졸라. 근데 나 밀린 잡일만 좀 마무리하고....”

드디어 에리의 승인이 떨어졌다.

이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정명은 신이 나서 만세를 불렀다.

“와, 정말? 신난다!”

“창피하니까 큰소리로 떠들지 좀 말아줄래? 쿠론 옆에 두고서 그런 얘기 하고 싶니?”

아차 싶어 고개를 돌렸지만, 정작 쿠론은 다른 사람들이 연습하는 것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에리의 말로는 최근 쿠론은 게임에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또다시 몇 개월이 흘렀다.

정명의 전역 날은 어느덧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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