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90화 (190/226)

< 65. TAC 코스프레 (1) >

NAV가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은 정명이 팀원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향했다.

모니터 화면에서는 마침 넥서스가 깨지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아, 이걸 이렇게....

-아쉽네요. 정말 아쉽습니다.

한국 팀의 탈락에 해설들이 말을 잇지 못한다.

화면에서는 NAV 선수들이 고개를 푹 떨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 하고 있었다.

“키야, 한국 팀이 벌써 떨어지다니. 이거 실화냐?”

석진이 인터넷 용어를 섞어 쓰며 놀람을 표현했지만, 그걸 듣던 쿠론이 얼굴을 찌푸렸다.

“야, 그 이상한 말투 쓰지 마라. 뭔가 거슬려.”

“어, 응.”

팀 내 먹이사슬 최하위에 위치한 석진이 곧바로 꼬리를 내리자 쿠론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뒤늦게 온 정명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저 녀석들, 그냥 라인전에서 발리더라고. 우리가 싸웠던 NAV가 맞나 싶더라니까.”

“그래? 왜 그랬지? 컨디션이 안 좋았나?”

“아니면 월챔 준비 기간 동안 펑펑 놀았을 수도 있고.”

쿠론이 비꼬듯 말했지만, 정명은 적당히 넘겨들었다.

“컨디션이 안 좋았나 보군. 그나저나 언벤 또 난리 났겠는데?”

석진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아마 지금쯤이면 NAV의 공개 처형식이 진행되고 있지 않을까요.”

“그렇겠지. 가차 없는 곳이니까.”

살짝 궁금해진 정명이 핸드폰을 켜서 언벤에 접속했다.

아니다 다를까 한국 커뮤니티인 언벤의 게시판은 분노로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 : 조별리그에서는 전승으로 진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NAV의 선수가 실제 했던 말

게시물을 클릭해보니, NAV를 조롱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NAV가 중국 출발 전에 했던 이야기 때문에 더 욕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전승으로 통과하겠다는 설레발은 왜 쳐가지고...’

동료 선수가 떨어진 건 안타깝지만, 솔직히 이 상황은 조금 웃기다.

정명은 피식 웃으며 다음 글을 눌렀다.

[??? : 걱정 마. 그 녀석은 한국 3천왕 중 가장 약한 녀석이었으니까.]

글을 클릭해보니, 정명이 NAV선수들을 비웃고 있는 것 같은 조잡한 그림판 합성 사진이 떠 있다. NAV가 월챔 3위로 진출했으니, 그걸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어때요?”

“물어볼 것도 없어. 평소의 그대로다.”

커뮤니티를 대충 둘러본 정명은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NAV가 탈락한 만큼 그 기대심리가 이쪽으로 오는 것 같다. 더 열심히 해야겠네.’

그로부터 며칠 후.

일찌감치 탈락한 팀 NAV의 사람이 정명을 찾아왔다.

찾아온 사람은 정명과 이미 안면이 있었던 NAV의 코치였다.

코치는 정명을 기다리는 동안 담배 하나를 다 태웠는지, 담배 하나를 더 꺼냈다. 그리고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후...지금 커뮤니티 분위기 안 좋죠?”

“안 들어가 보셨나요?”

“예. 들어가기 겁나서.”

“신경 쓰지 마세요. 거기야 뭐 항상 그런 곳이니까요.”

분위기가 썩어간다는 것을 돌려 말하자, 코치가 담배 하나를 더 꺼냈다. 그리고 대화가 끊겼다.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정명은 침묵을 지켰다.

코치는 변명과도 같은 몇 마디 말을 한 후, 고개를 살짝 숙였다.

“뭐...우리 몫까지 우승하십쇼. 우리 팀은 여기까지네요.”

“예. 한국 가서 뵙겠습니다.”

3분 남짓한 짧은 만남이 끝나자 정명이 곧바로 돌아왔다.

쿠론은 무슨 얘기가 오고갔는지 무척이나 궁금한 듯,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뭐래?”

“뭘 뭐래. 그냥 인사하러 온 거지.”

“디즈니 월드 안 간대? 그 왜, 탈락한 팀은 게임사에서 디즈니랜드 티켓 준다며.”

“조별리그에서 광탈하고 희희낙락 디즈니랜드를 간다라. 정신력 만렙 찍어도 그건 힘들 것 같다.”

“정신력 만렙? 무슨 소리? 그보다 뭐 도움 될 만한 얘기 없었어?”

“도움 될 만한 얘기?”

코치는 조별리그 탈락에 대해서 변명을 하듯, 팀원들의 컨디션이 안 좋았다고 하소연하긴 했다. 노점상에서 음식을 사먹은 게 잘못이었는지, 탑 라이너가 구토하고 난리를 피웠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떠올린 정명은 팀원들에게 아무거나 주워 먹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시켰다.

“그러니까 밖에서 뭐 사먹을 생각 하지 마. 특히 쿠론, 너. 알아들었어? 지난번에유통기한 지난 거 먹고 한참 고생했잖아.”

“아 그게 대체 언제 적 일이야. 엄마처럼 잔소리 하지 말아줄래?”

쿠론이 요즘은 엄마가 두 명인 거 같다고 투덜대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제 연습을 시작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명 또한 자리에 앉았다.

‘NAV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우리는 붙었고 저 녀석들은 떨어졌다. 더 왈가왈부 할 필요 없어.’

NAV처럼 컨디션이 나쁜 게 아니라면 8강전은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인 정명이 퀘스트 창을 띄웠다.

[월드챔피언십 8강]

별 볼일 없던 팀이 걸러졌습니다.

이제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진짜들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목표

-월드 챔피언십 8강에서 통과

보상

-20만 포인트

‘지금까지 여러 번 월챔에 왔지만 4강 진출은 한 번도 못 해봤지. 좋아, 이번에야말로 뚫어 보자.’

#####

“오빠, 오늘 조 추첨식 아님?”

“맞긴 한데, 너희들은 그냥 있어. 우르르 가 봐야 피곤하기만 하다.”

월드 챔피언십이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났다.

빡빡한 스케줄로 인하여 슬슬 피곤함을 느낄 때였기에, 정명은 어지간한 일은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는 자신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정명아, 잠깐만 기다려 줄래? 나 세수 좀 하고...”

정명이 일어나자,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있는 에리가 따라서 일어났다. 언제나 운전을 담당했기에 따라 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명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지금도 충분히 피곤해 보이는데, 그냥 혼자 갔다 올게요.”

“으으....미안.”

정명에게 미안해하면서도 내심 좋아라 하는 게 얼굴에 써있다.

그걸 쉽게 눈치 챈 정명은 큭큭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기다리고 있어요. 가장 만만한 북미 팀 뽑아올 테니까!”

.....

몇 시간 뒤.

하나의 큰 이벤트와도 같은 8강 조 추첨식이 치러졌다. 다른 사람들은 코치니 뭐니 하며 잔뜩 왔는데, 혼자 온 것은 정명뿐이었다.

그리고 정명은 조 추첨식이 진행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 정명 선수 팬이었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정명의 옆에 앉아있던 한 북미 선수가 정명에게 소곤소곤 말을 붙인다.

정명은 살짝 귀찮았지만 그는 정명에게 친한 척, 수다쟁이처럼 계속 말을 걸었다.

“저는 중국 팀만 안 걸리면 좋겠어요. 사실 누굴 만나도 힘들긴 하지만요.”

“그러면 어떤 팀이랑 붙고 싶으신가요?”

“당연히 TAC죠! 대만 팀인 타이완 어쌔신 크리드요. 아, 정명씨 차례네요. 잘 뽑고 오세요. 우리 팀만 빼고요.”

정명이 제비를 뽑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자, 순간 방송국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침을 꿀떡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는 프로게이머들과는 반대로, 해설이나 스태프는 유명인의등장에 신이 나서 분위기를 띄웠다.

“자, 그럼 이번엔 NHG의 정명 선수가 공을 뽑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1위 팀을 상대 할 무고한 희생자는 누가 될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하네요. 하하!”

정명은 상대팀들이 긴장하는 것을 보고서야 한국 1위 팀이라는 명예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명이 곧바로 공을 뽑았고, 카메라에 잘 보이게끔 공을 들어올렸다.

[RainForest]

‘유럽의 1위 팀이군.’

“유력한 우승팀, NHG의 8강전 상대는 레인 포레스트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자리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무대에서 안도의 한숨과 절망의 한숨이 같이 나왔다.

안도의 한숨은 정명과 붙지 않는 다른 팀에게서. 그리고 절망의 한숨은 팀 RF쪽에서 나왔다.

‘쩝, 중국 팀이 걸리는 것 보단 낫지만, 그래도 북미가 좋은데.’

정명은 내심 북미 팀이 걸리길 바랐지만, 그 정도까지 운이 좋지는 않은 듯 했다.

그리고 정명이 자리에 앉자, 수다쟁이 북미 선수가 다음 타자로 나섰다.

“제발 TAC....제발 TAC....”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며 나간 북미 선수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공을 뽑았다.

그리고 정명처럼 카메라가 잘 보이는 곳에 공을 들었다.

[TAC]

“아자! 으하하하!”

-에이, 내가 뽑고 싶었는데.

-진짜 좋겠다.

-상대가 TAC니까 북미 팀도 오랜만에 4강 가는 건가?

‘저 팀, 참 인기 많네. 그렇게 만나고 싶은가?’

1시간 뒤.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던 조 추첨식이 마무리되었다.

정명은 이벤트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숙소로 돌아왔고, 방에 들어가자 석진이 정명을 맞았다.

“형, 저 조 추첨식 다 봤어요! 의외로 재미있던데요?”

“그래?”

“네! 다들 형이랑 한 마디라도 하고 싶어서 난리인 것 같던데, 역시 대단하세요! 같은 게이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니.”

“하하, 그 정도 까지는 아니고...아무튼 봤다시피 우리 상대는 RF야. 유럽에서 좀 날렸던 팀이라고 하니까 방심할 수 없겠어.”

“아, 네. 그러고 보니 진짜 아까웠어요!”

“뭐가?”

“시청자들에게는 상자 안의 공이 보이거든요. 그런데 형이 처음에 만지작거렸던 공 뽑았으면 우리가 TAC랑 붙는 거였더라고요. 아시죠? 그 만만한 팀.”

아니나 다를까, 또 이 소리다.

석진은 아쉽게 가장 만만한 팀을 놓쳤다고 생각했지만, 정명은 전혀 아쉽지 않았다.

“아니, 그다지 아쉽진 않은데. 오히려 다행이지.”

.............

얼마 지나지 않아 8강 리그가 시작되었다.

정명의 상대인 RF는 나름 열심히 경기를 했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명의 팀은 별 다른 전략 없이, RF를 그냥 피지컬로 때려눕혀버렸다.

-한 라인만 밀리면 어떻게든 커버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2라인 이상 라인전에서 지면 정글러가 할 게 없어요.

-CS는 기초체력이거든요. 체력이 없으면 후반 간다고 해 봤자 버티질 못 해요!

솔로킬을 내지는 못 했지만, 3라인 전부 CS격차가 계속해서 벌어진다.

유럽 1위 팀이라기에 조금 걱정했지만, 정명은 무난하게 4강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정명뿐만 아니라 팀원들 또한 게이머 인생의 커리어하이를 갱신하는 순간이었다.

“걔네들도 나름 잘 하긴 했는데, 우리에게는 안 되지!”

“마자마자!”

여유롭게 승리를 따 내자, 팀원들의 어깨에 슬슬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슬슬 자신의 팀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생기는 것이었다.

‘뭐...이 정도는 괜찮겠지.’

아직은 자만이 아니라 자부심 정도의, 딱 좋은 상태였으므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팀원들은 이제 다음 상대로 누가 올라오니 마니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으으, TAC가 올라왔으면 좋겠는데.”

“왜?”

“왜냐니, 걔네랑 붙으면 엄청 꿀이잖아요? 이런 말 하긴 뭐한데, 연습 게임 해본 다른 팀 말로는 걔네 만나면 1승 거저 먹는 거라고 하던데.”

석진이 만만하게 생각할 법 했다.

그야 그들은 한국 리그에 와서 10연패라는, 나쁜 의미에서 기록적인 스코어를 남겼으니까.

때문에 월드 챔피언십에서 가장 붙고 싶은 팀 1위에 꼽히기도 했으며, 정명이 옆에 있던 선수가 TAC를 뽑자마자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와 TAC의 영상을 확인한 에리는 이상하다는 듯, 석진에게 물었다.

“석진, 얘네들 못 하는 거 맞아? 지금 영상 보니까 잘 하는 것 같은데.”

“어...네. 맞을 걸요? 걔네가 한국 팀한테 처참하게 깨지는 방송, 제가 직접 봤거든요.”

그들의 이력은 이랬다.

한국의 이벤트 매치에서 10연패, 조별 리그에서 북미 팀에게 패배, 한국 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승률 10% 기록.

8강에는 어떻게 올라왔지? 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해. NAV같은 팀이 라인전에서부터 맥을 못 추다니.”

“NAV의 코치가 그랬다면서요? 컨디션이 안 좋았다고. 그래서였겠죠 뭐.”

석진이나 다른 팀들은 그동안 TAC가 보여준 행동 때문에 TAC를 완전이 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실체를 아는 것은 TAC 팀 본인들, 그리고 미래를 알고 있는 정명뿐이었던것이다.

‘정말...알고 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는군. 저렇게 엄청나게 허접해 보이는 팀이 KAO를 꺾고 리그에서 우승했다니 말이야.’

그리고 그 다음 날, 소문으로만 듣던 TAC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TAC와 8강에서 맞붙게 된 북미 팀 TBM은 라인전에서부터 맥을 못 추고 있었다.

-그냥 쌥니다. 별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어요!

TAC는 별 다른 것 없이, 그냥 라인전이 정말 쌨다.

NAV의 코치는 컨디션이 안 좋았다고 변명 했지만 실상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뿐, 사실 NAV는 실력으로 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경기였다.

-GG. TAC, 4강에 진출합니다.

경기가 끝나자 TAC를 뽑아서 좋아했던 선수는 키보드에 머리를 처박고 고개를 들지 못 하고 있었다.

‘쯧쯧...TAC 뽑았다고 그렇게 좋아 하더니.’

해설들은 역시나 북미잼 클라스가 어디 가겠냐며 TBM을 까고 있었는데, 경기를 봤음에도 아직 TAC의 진짜 실력을 눈치 채지 못 하고 있는 듯 했다.

‘과거에서는 저 팀을 저렇게 무시하다가 모든 팀들이 줄줄이 깨졌지. 그럼 나는 만약을 위해서 보험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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