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82화 (182/226)

< 62. 위로, 위로! (5) >

“아 그러니까 맞기 전에 싸움 걸어야 했다니까.”

2경기가 끝나자 NAV의 미드 라이너인 박성준이 볼멘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성준의 모니터에는 [패배]라는 글자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결과론적인 성준의 말에, 같은 동료인 김성호는 살짝 짜증을 냈다.

“싸워? 포킹 맞아서 이미 반피까지 떨어졌는데 거기서 한 판 붙어보는 게 나았다고?”

NAV 입장에서 오늘의 경기는 당연히 이길 것이라 생각한 경기였다.

그동안의 전적과 객관적인 데이터들, 그리고 수많은 전문가들의 예상까지. 어디를 봐도 이길 확률이 높다고 생각할 수밖에는 없는 경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순식간에 스코어가 2:0으로 벌어졌고, 생각치도 못한 일격을 맞은 선수들은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코치가 곧장 부스로 들어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괜찮아, 괜찮아. 다음 경기 이기면 되지! 우리가 누구냐, 연속 4번 월드 챔피언십에 진출 한 NAV 아니냐. 힘내자!”

“...예.”

“그래요.”

말로는 패패승승승을 보여 주자며 으쌰으쌰했지만, 조금 위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3경기가 시작되었다.

......

-NAV가 NHG의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 하네요!

-휘둘립니다, 휘둘려요!

한 때, ‘OP 캐릭터의 카운터는 갱킹’ 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OP 캐릭터의 카운터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2:1은 사기적인 캐릭터도 못 당해낸다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번 경기에서 NAV 선수들은 그 말을 뼈저리게 공감하고 있었다.

“아오, 악어 저거 자꾸 정글러 부르네. 1:1에는 자신이 없어서 그런가?”

갱킹 때문에 또 한 번 킬을 내주자, 탑 라이너인 이민호가 솔로랭크에서나 할 법한 소리를 했다.

당연히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고 자꾸 죽으니 홧김에 하는 헛소리였으므로 팀원들 또한 그 혼잣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원딜러 김상호는 자신의 팀이 왜 매번 KAO를 꺾지 못하고 2위에만 머무는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젠장, 오더에서 너무 차이가 난다. 이래서 제대로 된 오더를 하나 둬야 한다고 말했던 건데...’

“지금 쟤네 집 간 사이에 용 타이밍 잡는 게 나아 보이는데?”

“아냐, 역습 당하면 힘들어. 차라리 바텀 1차 타워 밀어버리자.”

의견이 또다시 갈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견 대립 때문에 오더가 있는 것인데, 이 팀은 오더를 위주로 움직이기보다는 각자 의견을 내는 방식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사실 오더 같은 게 있어봐야 팀원들은 오더의 말을 잘 듣지 않으니까.

NAV는 각 팀원들을 키운다기보다는 영입하는 팀이었는데 그 선수들은 NAV에 들어오기 전, 각 팀에서 오더를 맡고 있는 머리 큰 선수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많은 팀에는 오더가 있어야 해. 그것도 무척이나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그리고 마침내 게임이 끝났다.

-GG! 게임 마무리됩니다!

-이걸 대체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NAV 상대로 3:0이라니요!

“하아...”

게임에서 패배하자 NAV 선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작게 한숨을 쉬며 묵묵히 장비를 챙겼다.

그리고 코치와 감독은 조용히 부스로 들어와서 침울하게 있는 선수들을 위로하기시작했다.

“수고 했다. 잘 했어, 그래도 잘 했어.”

“아직 기회는 남아 있으니까 괜찮다. 직행이건 선발전 통해서 가건 월드챔피언십만 가면 장땡인 거 아냐?”

성호는 인터뷰를 위해 무대로 나오는 NHG선수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보기에 NHG 선수들은 자신의 팀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성이 넘치는 선수들이 넘쳤음에도, 무척이나 잘 통제되고 정돈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질서 있고 정돈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성호에게는 상당히 인상 깊은 모습으로 느껴졌다.

‘정말 대단한 리더로군. 딱 봐도 누구보다 개성 넘치는 팀원들이 있는데, 그 팀원들을 저렇게 얌전하게 만들어 놨다니.’

한 명의 카리스마 있는 리더와 그를 믿고 따르는 팀원들. NHG는 성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팀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만약 저 녀석이 우리 팀의 리더였다면 혹시 우리 팀도...아니, 됐다. 여기까지 하자.’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은 거기까지였다.

코치의 말 대로 아직 월드챔피언십 결정전이 있었으므로, 성호는 얌전히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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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멍청아! 내가 거기서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

“들어가서 결과적으로 잘 됐잖아. 결과만 좋으면 됐지 왜 난리람?”

성호가 부러워하던 질서정연하고 품위 넘치던 모습은 어디로 내팽겨쳤는지, 쿠론과 하니는 차에 오르자마자 시끄럽게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둘은 정명을 사이에 두고 앉더니 고양이 인형과 강아지 인형을 각각 들고는 서로에게 휘둘러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소란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둘 가운데 낀 정명이었다.

“야, 난리 피울 거면 너네끼리 앉아서 싸워. 나 가운데에 끼지 말고.”

“노랑머리 옆에 앉기 싫어! 베에에.”

“하!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었나, 완전 초딩 아냐 저거?”

지금 NHG에게는 상호가 부러워했던 카리스마 있는 리더와 품격 있는 팀원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웅웅거리고 있는 핸드폰을 들었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김준상에게 전화가 오고 있었다.

‘결승 진출 축하해주려고 걸었나?’

“야, 꼬맹이들 좀 조용히 해 봐. 오빠 전화 좀 받게. 여보세요?”

-형! 지난번에 말 해준 거 있잖아. 대충 결과가 나와서 전화했어.

“뭐? 피닉스에 대한 거?”

자세한 설명이 없이 ‘그거’ 라고만 말했는데도 정명은 곧장 알아들었다.

그리고 정명의 말에 하니가 정명을 툭툭 치며 귀를 가리켰고, 정명은 하니가 원하는 것이 뭔지 곧장 알아채고는 스피커폰을 켰다.

이제 척하면 척. 이미 말이 필요 없었다.

“그래? 어떻게 됐어?”

-수사 들어갔어. 그 녀석, 감독님이 물어볼 때는 절대 아니라고 하더니 수갑 채우니까 어버버 거리며 묻지도 않은 것까지 털어 놓더라.

정명은 피닉스가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증거 수집을 위해서 대단한 게 필요하지는 않았고, 그냥 컴퓨터의 접속 기록을 뒤져보니 증거를 쉽게 잡아낼 수 있었다고 했다.

“하긴, 개인 컴퓨터의 접속 기록 지우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맞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피닉스의 성 취향도 알 수 있게 되었는데...혹시 궁금해?

“그딴 거 알 게 뭐냐. 그래서?”

-증거 인멸 우려로 구속 됐다고 하는데 자세한 건 아직 몰라. 또 소식 오면 알려 줄게.

“그래, 고맙다.”

-아, 혹시 모르니까 얘기하는 건데, 이거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마. 잘 하면 우리 선에서 처리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알지? 스포츠 판이 주작에 얼마나 민감한지...

“무슨 소린지 안다. 이런 얘기 밖에 흘러나가 봐야 프로게이머라면 좋을 거 없으니까. 걱정 마라.”

-그리고 재미있는 게 있었는데, 피닉스가 NAV가 이기는 쪽에 걸었다더라. 형이 이겼으니 많이 잃었겠어.

“그래. 돈 꽤나 날렸겠네. 큭큭.”

-잠깐만. 감독님이 부르시네. 그럼 결승 진출 축하하고 나중에 다시 전화 할게.

“그래. 욕봐라.”

정명이 전화를 끊자, 모두들 초롱초롱한 눈으로 정명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래?”

“뭘 뭐래, 다 들었잖아. 아, 그리고 월드챔피언십 결정전은 식스맨으로 대체해서 할 거라고 하더라. 뭐, 본인도 그렇게 큰 기대는 안 하는 거 같지만.”

식스맨의 실력을 떠나 지금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경기를 펼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피닉스 때문에 게임에서 졌다는 피해망상도 한 몫 할 것이고,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집중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게 뻔했다.

“이 건에 대해서는 이제 신경 끄자. 우리는 결승전만 잘 치르면 된다.”

“결승전이라. 그렇지. 근데 우리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지? 처음엔 오빠가 팀 만들겠다고 했을 때 뭔 헛소린가 싶었는데. 이제는 수익 구조도 꽤 안정적이 되고, 성적도...”

하니가 그동안 겪었던 일을 조곤조곤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를 듣던 정명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답했다.

“그러게. 참....신기하네.”

.........

한국 1위 팀, KAO.

‘한국 1위 팀은 세계 1위 팀이다’ 라는 자부심을 갖게 해준 대표적인 팀이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그 팀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

팀의 중심인 미드라이너, 그리고 팀을 받쳐주는 코치.

그 두 명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팀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특히 정명은 지난번에 KAO의 코치라는 사람을 한 번 본 일이 있었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에리보다 능력이 한참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그저 선수들이 알아서 잘 해주니,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의 정명으로써는 호재라고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저건 진짜 못 잡을 팀이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NAV와의 경기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팀원들이 연습실에 모였다.

하지만 아직 전날의 피로가 가시지 않았는지, 몇 몇 팀원들은 소파에 쓰러져서 졸고 있었다.

“일어나 이것들아. 이제 그만 연습 시작하자.”

“캬악!”

‘맘 같아선 쉬게 해 주고 싶은데, 일주일 뒤가 결승전이니까.’

더욱이 이번 결승전은 꽤 특별했다.

규모도 그렇고, VIP들도 많이 온다고 했다.

정명은 날이 갈수록 이스포츠 판에 대한 규모가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에리는 VIP가 온다는 정명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VIP? 누군데?”

“대기업 스폰서나 정치인들 아닐까요? 저도 자세한 건 못 들어서.”

“음, 그래? 그래서 어쩌라고?”

석진은 ‘그럼 경기 끝나고 그분들이랑 회식해야 하나요?’ 하며 벌써부터 불안해하는 말을 했지만, 에리는 VIP고 뭐고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생각의 차이가 컸던 것이다.

정명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사진이나 좀 같이 찍어달라는 거겠죠. 특별히 신경 쓸 건 없고요.”

“아, 나 알아. 여행가면 사진밖에 남는 거 없다고 하더니, 그거지?”

“네, 뭐...비슷합니다.”

마침 TV에서 이번 결승전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공중파에서도 결승전 관련 광고가 나오니, 참 이상하면서도 신기했다.

“자, 그럼 이제 연습하자. 많이 쉬었지?”

“흑흑...”

“힘내라. 1등하면 좋잖아. 상금도 많고. 우리는 구단에서 상금 떼어가는 것도 없으니까 세금만 내면 된다고.”

리그의 우승 상금은 3억이었다.

준우승은 2등인 1억 원이고, 3등부터는 상금이 뚝뚝 떨어지는 구조였다.

받은 상금은 먼저 구단에서 일정 퍼센트로 떼어간다.

그리고 남은 돈을 선수들끼리 n분의 1을 한 다음, 각자 세금을 내고 또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선물을 쏘면 비로소 선수들의 통장에 입금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뭐, 생각보다 얼마 안 되긴 하지. 월드챔피언십 정도 되면 상금이 또 대단하지만.’

그 후, 팀원들은 곧바로 연습에 돌입했다.

그런데 정명은 NAV전을 준비할 때보다 팀 분위기가 훨씬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슬럼프라며 울상을 짓던 송하니, 그리고 쿠론이 한결 편한 표정으로 연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빠, 잠깐만.”

“왜?”

“나 이제 슬럼프 끝난 것 같아. 예전처럼 조급한 마음도 안 들고.”

“그래? 그거 다행이네.”

“오빠가 잘 가르쳐줘서 인 것 같기도...헤헤.”

정명은 하니의 말이 무슨 말인지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연습 게임이 끝난 후, 정명은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하늘 위의 하늘]

*보상

-15만 포인트

-신규 A랭크 스킬

-??? 제한 해제

‘이것 덕분에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지.’

이 퀘스트는 예전 쭈구리 시절에 받았던 퀘스트였다.

하지만 세계 2위 팀을 잡는다는 무지막지한 난이도의 퀘스트였기에, 한참을 못 깨고 있던 퀘스트이기도 했다.

정명은 감개무량하다는 생각을 하며 보상을 확인했다.

ⓒ 추어탕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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