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80화 (180/226)

< 62. 위로, 위로! (3) >

정명이 보기에 피닉스의 플레이는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피닉스가 혼자서 헛짓거리 하는 게 너무 적나라했기 때문이다.

“이상해....진짜 이상해. 야, 너도 좀 봐봐. 피닉스 저 녀석, 엄청 이상하지 않냐?”

“볼 시간 없어. 그보다 용 싸움 날 것 같으니까, 슬슬 내려 와봐.”

“쩝, 알았다.”

쿠론의 요청대로 정명이 바텀라인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피닉스 또한 정명의 뒤를 쫓았고, 또 그 모습을 본 탑 라이너들 또한 텔레포트를 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죠?

-NHG, 여기선 망설이지 말고 걸어야 합니다!

포킹을 맞기 전에 싸움을 걸어야 한다.

그것은 정명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송하니에게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텔 온! 지금 간다구!”

동시에 송하니가 와드에 텔레포트를 탔다.

그리고 동시에 궁극기로 레드카펫을 아름답게 깔았고, 피닉스는 그 레드카펫 위에서 허우적대며 불에 타고 있었다.

-완벽한 이니시에이팅!

-더블 킬, 트리플 킬!

순식간에 TAQ 선수들이 각개격파 당하기 시작한다.

개인기, 컨트롤에서 모두 NHG가 우위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멸을 알리는 게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무리.]

“앗싸, 다 잡았다!”

“이걸로 승기 완전히 넘어왔네. 그래도 방심하지 말고 끝까지 잘 해보자.”

팀원들이 얼굴에 미소를 띄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정명은 오히려 얼굴을 찌푸렸다. 피닉스가 송하니의 궁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위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이런 씨. 평범하게 해도 이기는 건데, 이렇게 보니까 저 놈이 대줘서 이기는 것 같잖아 이거.’

그러한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해설자들은 신나서 떠들고 있었다.

-송하니, 킬 많이 먹었네요!

-제일 안 좋은 게, 한 명만 집중적으로 죽는 거보다 골고루 죽는 거거든요.

-역전을 위한 변수가 거의....사라졌습니다.

그 한타를 결정적으로, 게임은 무난하게 끝났다.

TAQ의 다른 사람들이 분발했지만, 한 명이 구명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게임이 끝나자마자 부스의 문이 열리며 팀의 코치가 들어왔다.

“잘했어! 다음 경기에서도 이렇게만 하자!”

“응, 응!”

에리와 하니가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에 반해, 정명은 심각한 표정으로 TAQ부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설마 연기하는 건가?’

이번 경기는 조금 과장하자면 피닉스가 망쳤다고 할 수 있는 경기였다.

때문에 피닉스는 자괴감이 든다는 듯, 눈을 감은 채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김준상을 포함한 팀원들은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며 피닉스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누가 보면 참 사이좋은 팀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긴가민가하네. 일단...조금 더 두고 보자.’

7분의 쉬는 시간이 지나자,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경기는 어째서인지 피닉스가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기본적인 실력 차이가 있기에 NHG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애초에 자신보다 더 강한 팀을 상대로 승부를 조작한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스코어는 이제 2:0.

덕분에 부스의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정명아?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 그럼 마지막 경기 하러 가 봅시다!”

리더가 불안해하면 동료들도 그 기분에 전염된다.

정명은 일단 이기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도 신경 쓰인단 말이지.’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3경기.

피닉스는 아예 던지기로 작정했는지, ‘나 잡아먹으쇼.’ 하듯 대충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야, 다시 한 번 봐봐. 피닉스 저 녀석 하는 짓이 이상하다니까?”

“지금 오빠가 더 이상한 거 알아?”

“아니. 그게...후, 알았어. 경기 다 끝나고 나서 이야기 하자.”

이번 경기에서도 순식간에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지막 경기가 끝났다.

[승리!]

“잘했어. 진짜 잘했어!”

“이번 시즌엔 뭔가 될 것 같다!”

여유롭게 TAQ의 도전을 이겨냈다. 이제 NAV에게 도전할 권한이 생긴 것이다.

게임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정신없이 떴다.

[3:0 으로 승리했습니다. 추가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포스트 시즌입니다. 추가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10만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잔여 포인트 : 172100]

포인트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자, 경기 내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던 정명이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아, 이건 좋네. 공짜로 포인트 받는 기분이 드는 거는.’

피닉스의 추잡한 짓에 기분이 나쁘면서도 기분이 좋은, 애매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정명은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서 퇴장했다.

......

“그래서, 뭔데?”

“뭐가?”

연습실에 도착하자마자 쿠론이 정명에게 따지듯 물었지만, 정명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야 이 붕어야! 네가 이따 말해 준다며!”

“아아아, 맞다. 잠깐만, 리플레이 보면서 얘기 해 줄게.”

곧이어 정명은 자신이 느낀 것에 대해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미세한 차이였지만, 정명은 피닉스를 예의주시하고 있었기에 바로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얘기를 하자마자 연습실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승부 조작이라는 것은, ‘아, 걔가 그랬어?’ 하고 끝낼 정도로 가벼운 사안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리플레이를 보던 팀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확실히. 일리가 있어.”

“하지만 이것 갖고는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 없잖아.”

“맞아. 근데 그걸 조사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지.”

먼저 김준상에게 조용히 전화했다.

‘방금 경기에서 져서 기분이 무척 더럽겠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이 악물고 조사해줄 수도 있고.’

물론 김준상에게만 연락을 하지는 않았고, 빨리 결과 내라는 차원에서 협회에도 말을 해 놓았다.

그리고 다음 날.

정명이 다시 김준상에게 전화해봤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고 나중에 얘기해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나한테도 못 말할 정도라니, 뭔가 일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에휴, 모르겠다. 내 일이나 열심히 하자.’

########

TAQ와의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이미 3위는 확보했다.

하지만 이 3위에 만족하는 선수는 NHG에 아무도 없었다.

‘좋아. 이번에야말로 잡아 보자.’

만년 2위를 하고 있는 팀 NAV는 대기업이 엄청나게 돈을 쏟아 붓고 있는 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구단주가 어찌나 우승에 대한 갈망이 큰지, 점점 구단의 규모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었다.

“하니야, 너도 저기서 영입 제안 오지 않았냐?”

“응? 어...맞아. 그랬었지. 구단주가 직접 찾아왔는데 꽤 젊더라. 근데 식스맨으로 오라는 말에 깠지 뭐.”

NAV는 선수를 키우기보다는 돈을 처발라서 각종 유명한 선수들을 다 끌어 모으는 팀이라고 할 수 있었다.

KAO에 있다가 이적한 박성준이 대표적인 선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코치에다가 호화로운 스태프들까지. 구단주가 아주 돈을 제대로 처발랐어.’

물론, 그럼에도 KAO를 이기진 못했다.

자세한 사정이야 모르지만, 정명은 좋은 선수를 사들이며 계속 팀 구성을 바꿨던 것이 나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예 못 잡을 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딱 2위까지만 했으면좋겠는데. 그러면 월챔 직행이니까.”

“인터뷰에서는 당연히 목표는 우승이라고 떠들고 다녔지만요.”

“그런 얘기는 굳이 안 해도 된다.”

정명은 차석진에게 짧게 대답하며 커뮤니티를 살폈다.

대기업은 언론 플레이도 수준급인지, 커뮤니티에는 NAV의 기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NAV는 언제나 그렇듯 직행으로 월드챔피언십에 갈 것.

-세체미? 진정한 세체미가 뭔지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해.

‘우리는 별로 신경 안 쓰는 모양새네. 하긴, 여태껏 계속 져왔으니.’

정명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팀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팀원들은 각자 연습하거나 무언가 열정적으로 토론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쿠론은 한숨을 푹푹 쉬며 리플레이를 돌려보고 있었다.

딱 봐도 무언가 고민이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근데 이거 뭔가 자주 있는 일 같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인가?’

리더로써 썩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

정명은 쿠론의 옆 의자에 앉고는, 송하니와 메테오에게 했던 말을 쿠론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쿠론. 무슨 일 있으면 말해봐. 이 오빠가 같이 고민 해줄게.”

평소대로라면 오빠는 지랄, 하면서 욕이 날아왔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쿠론은 정명의 말을 못 들었다는 듯, 리플레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정명이 답변을 기다리며 끈질기게 기다리자,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정명. 네가 보기에도 내가 요즘 하는 거 별로지?”

“응?”

쿠론은 자신의 플레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쿠론이 정명의 앞에서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꽤나 오랜만이었기에 정명 또한 진지해졌다.

‘흠, 슬럼프라도 겪고 있는 건가?’

사실 그동안 NHG의 바텀라인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이 들어오긴 했다.

그리고 쿠론 또한 그러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지만, 제 성에는 찰만한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는 시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궁상떨고 있는 모습은 예전에 송하니가 보여줬던 모습과 비슷했다.

게이머들이 자주 겪고는 하는, ‘내 컨트롤 구려 병’ 이라도 걸린 모양새였다.

‘쿠론도 북미에선 천재 취급 받았는데, 한국 오니 조금 잘 하는 게이머 정도로 되어버렸지. 안타깝게도.’

정명은 그렇게 생각하며 쿠론의 상태창을 불러왔다.

[미어스 쿠론]

피지컬 : 90/90

판단력 : 93/95

오더 : 65/70

정신력 : 80/84

피지컬이 90이면 북미 수준에서는 탑급이라고 할 수 있지만 피지컬 90도 한국에 오니 꽤나 흔했다.

거기다 피지컬이 최대치로 올라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기분마저 드니, 조바심이 나는 마음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쿠론도 송하니도 이렇게 계속 실력이 정체된 채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항상 당당하던 쿠론이 궁상떨고 있는 것을 보던 정명이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임시방편이지만 팀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릴 수있었다.

‘내가 또 팀원들이 불쌍하게 있는 것에 약하니까.’

정명이 곧바로 시스템창을 열었다.

남은 포인트는 18만.

다만 여기에서 뭘 사려는 것은 아니고, 지난번에 받은 아이템을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B등급 선물 상자 3개]

B등급 선물 상자.

지난 번 정명이 KAO의 세체미를, 그것도 그의 상징과도 같은 캐릭터인 사막의 황제를 솔로킬 내고서 받은 보상이었다.

처음에는 이것을 월드챔피언십에서 쓰기 위하여 아낀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정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상대가 10위 팀이나 그에 준하는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팀이면 모를까, 상대적으로 NAV보다 약한 정명의 팀이 더 강한 팀을 상대로 전력을 감춘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역시 조금 아깝긴 한데...’

잠시 망설였지만, 옆에서 한숨을 푹푹 내뱉고 있는 팀원을 보니 결심이 섰다.

정명은 팀원을 무척이나 아끼는 리더였으니까.

‘좋아, 까자.’

[B등급 선물 상자를 사용했습니다.]

[창고에 1개의 아이템이 추가되었습니다.]

[특급 경험치 부스터 (B등급)]

‘오, 이거 뭔가 좋아 보이는데?’

상자를 열면서도 혹시나 예전의 ‘싸움의 기술’ 같은 쓰레기 아이템이 나올까 걱정했지만, 선물상자가 B등급 정도 되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이번 경기에서 당장 도움이 될 만한 아이템은 아니었으므로, 정명은 계속해서 상자를 열었다.

[천리안 (B등급)]

[혈맹 (A등급)]

‘어라, 이건...’

오랜만에 보는 아이템이 나왔다.

ⓒ 추어탕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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