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편지 (2) >
쿠론은 옆 방에서 인터넷 방송 플랫폼, 아이튜브에서 첫 방송을 하고 있었다. 팀원들을 통틀어서 첫 타자로 방송하는 것이었다.
“방송은 잘 되나요?”
“그럭저럭? 시청자수가 조금 적은 것만 빼면 말이야.”
에리는 잘 되고 있다 말했지만, 정명은 고개를 조금 갸우뚱했다.
방 안에서 언성을 높이고 있는 쿠론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진짜 어이없네. 이거 사기 아니야?
“뭐지....방 안에 들어가 봐도 되죠?”
에리가 끄덕이자 정명이 문을 열었고, 곧이어 쿠론이 카메라에 어떤 종이를 바짝 갖다 대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야, 이거 잘 봐봐. 무슨 개소리야? 말이 안 되잖아. 이 빈칸을 채울 단어가 여기 다섯 개 중에 있다고?”
프로게이머라고 해서 게임 방송만 하라는 법은 없다.
쿠론은 게임은 잠시 접어둔 채 예능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방송 주제가 한국의 수능 영어 문제를 풀어 보는 것이었다.
‘근데 쟤는 왜 문제 풀다 말고 욕 하고 있는 거야?’
채팅창을 보니, 씩씩거리는 쿠론을 비웃는 채팅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ㅉㅉ 영알못이네.
-미국 사람 맞음? 미국 사람이면 한국 수능영어는 10분 만에 풀어야 하는 것 아님?
-저래도 나보다는 잘 풀겠지. 제 대신 토익 시험 좀 봐 주세요 ㅠㅠ
“꺼져 새꺄!”
쿠론이 다른 한국어는 몰라도 욕만은 참 잘 했다.
정명은 방송에 방해되지 않도록 방문을 탁, 닫았다.
“아까부터 저러고 있더라. 방송에서 저렇게 막 해도 괜찮은 걸까?”
“괜찮아요. 잘 놀고 있는 것 같은데요 뭐. 그리고 지금은 사람이 많이 없지만, 앞으로는 많아질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정명이 알고 있기로는 아직 아이튜브에 진출한 다른 게이머는 없었다.
덕분에 정명과 정명의 팀원들은 아무런 경쟁 없이 성공적으로 아이튜브에 초기 멤버로써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듯 했다.
‘나 혼자라면 모르겠는데, 팀원들의 수익은 꼭 신경 써 주고 싶으니까.’
그러던 그 때, 정명의 핸드폰이 울렸다.
웅웅거리는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발신자는 TAQ의 김준상.
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였다.
-형! 형네 팀도 아주라 TV랑 계약했어요? 그 협회에서 추천한 그곳 있잖아요!
정명이 전화를 받자마자 김준상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었다. 뭔가 급해 보이는 말투였다.
“아니? 나는 안 한다고 했어.”
-진짜요? 감독님 말로는 협회에서 계약 하라고 압박 엄청 넣었다던데.
“내가 뭐 그런 거 신경 쓰는 사람이냐? 그쪽에서도 나 말 안 듣는 거 아니까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더만.”
-그거 다행이네요. 방금 우리 팀이 아주라 TV에서 첫 방송 해봤는데요, 여기 좀 이상해요.
“뭐가 이상한데?”
-마이크를 방송에서 못 쓴대요. 게임 화면만 보여주는 거죠. 아니, 개인방송을 왜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 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개인방송을 수준 높은 경기 보려고 보는 줄 아나?
정명이 알고 있는 과거에서 아주라 TV는 GOO TV와 달리, 금방 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빨리 망하는 게 선수들에게는 더 좋았을 것이다.
빨리 망했다면 각 프로 팀들은 시청자수가 바닥인 곳은 접고, 서둘러 다른 플랫폼으로 이주했을 테니까.
‘프로들은 계약에 묶여서 시청자수도 안 나오는 방송을 매 주마다 해야 했었지. 쯧쯧, 그래서 계약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니까.’
몇 몇 선수들은 아주라 TV의 앞 글자와 모 소설에 나오는 감옥의 이름을 합쳐서 아주카반이라고 부르고는 했다.
다른 플랫폼으로 탈출하고 싶어도 계약에 묶여 못 나가는 마음을 드러내는 말이었다.
‘아 몰라, 내가 알 바 아니지 뭐. 난 나랑 내 팀원들만 돈 잘 벌면 만족해.’
########
스프링 시즌이 끝난 후로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정명의 예상대로 아주라 TV는 떨어지는 접근성과 불편함으로 나날이 시청자수가떨어지고 있었고, 그에 비례하여 선수들의 불만 또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정명의 상황은 정 반대였다.
정명과 팀원들의 방송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구독자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타 구단이 아주라 TV에 묶여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동안, 앞서 달려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실이 담긴 열매가 하나 둘 열리기 시작했다.
“네 덕분에 행사도 가보고, 참 좋네.”
“난 가기 싫어. 사람 북적거리는 거 딱 질색이란 말이야.”
휴가가 얼마 안 남은 어느 날의 아침.
정명이 쿠론을 차에 태우고 게임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요즘 인터넷 방송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쿠론에게 행사 섭외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무대 올라가서는 얼굴 펴라. 이미 입금 된 거 알지? 그것도 꽤 많이.”
“쳇. 그 정도는 알아.”
행사는 평범하지만, 규모가 큰 게임 행사였다.
쿠론은 거기서 팬들과 사진을 찍어주거나 악수해주고, 게임을 엄청 재미있다는 시연해주기만 하면 끝.
무척 쉬운 일이었다.
잠시 후, 정명과 쿠론이 대기실에 도착했다.
그러자 직원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쿠론의 머리를 만져주거나 하며 메이크업을 해주기 시작했다.
“어쩜, 피부 좀 봐. 너무 예쁘시다!”
“응응. 인형 같다. 저기, 혹시 한국말 할 줄 아세요?”
“조금...”
“어머, 말했다 말했어!”
메이크업을 해주는 직원들은 꺅꺅거리며 인형에게 옷을 입히듯, 쿠론을 꾸며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직원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지루하게 있는 정명을 보며 말했다.
“지금 옷 갈아입어야 하는데. 매니저분은 잠시 나가주시겠어요?”
“아, 네.”
‘매니저 아닌데요. 우리 둘 다 못 알아본 건가?’
사실 행사에 섭외된 것은 쿠론 뿐이고 정명은 그런 쿠론을 따라 나온 것일 뿐이었다.
이 녀석 혼자 행사를 보내기에는 뭔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문 밖으로 쫓겨나와 심심했던 정명은 행사장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행사장에는 미녀 도우미들이 심심찮게 돌아다니며 팬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는데, 막상 팬들은 신작 게임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 도우미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쿠론이 나왔다.
정명은 한창 꾸미고 나온 쿠론의 모습을 보자마자 킥킥 웃었다.
“그거 잘 어울리네. 평소에도 그러고 다녀라.”
“흥.”
대기실에서 나온 쿠론은 알록달록한 옷의 마법 소녀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게임 캐릭터를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생각보다 꽤 잘 어울리네. 하긴, 옷걸이가 좋은데 뭐가 안 어울리겠냐만.’
쿠론은 왜 이런 이상한 옷을 입어야 하냐고 따졌지만, 입으면 보수를 더 주겠다고해서 수용했다.
“그럼 잘 하고 와.”
“...응.”
정명은 게임 팬들이 도우미들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쿠론의 부담이 적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쿠론이 대기실에서 나가자마자 시선이 쏠렸다.
“뭐냐 쟤. 외국인인가?”
“멍청아. 프로게이머 쿠론이잖아! 게임 팬이라는 녀석이 그것도 못 알아봐?”
“서양인이 코스프레 하니까 진짜 같아. 싱크로율 쩐다!”
그리고 쿠론은 어째서인지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자마자 대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명의 등 뒤로 숨었다.
“왜?”
“....그냥.”
‘이제 와서 사람들 시선 받는 게 무서울 리는 없고...뭐지?’
그냥 낯설어서 그런 것인 것 같기에 정명은 쿠론을 적당히 달래주기로 했다.
“착하다 착해.”
그렇게 말하며 쿠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리가 평소에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한 것이었다.
그러길 1분.
가만히 있던 쿠론이 정명의 손을 탁 쳐냈다.
“애 취급하지 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표정에는 미소를 띄고 있다. 그리고 쿠론은 속으로 많이 진정됐는지, 당당히 무대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행사가 마무리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계속 지켜봤지만 별 다른 일은 없어 보였고, 그제야 정명 또한 안도의 한숨을 후 내뱉었다.
‘애 돌보는 기분이군.’
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동생이라기보다는 부모처럼 된다.
정명도 마찬가지였다.
송하니, 쿠론, 차석진.
아직 성인이 되지 못 한 급식충 팀원을 3명씩이나 돌보다 보니, 정명은 가끔씩 부모가 된 느낌을 받고는 했다.
‘물론, 부모가 되어본 일이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리고 일이 무사히 끝나갈 때 쯤, 다른 급식충 팀원에게 연락이 왔다.
-오빠! 나 좀 태우러 와조! 나 지금 소속사 사무실임!
.......
슬슬 배가 고파질 저녁 시간.
행사가 끝난 쿠론을 집에 데려다준 정명은 곧장 송하니가 있다는 사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도착한 건물 입구가 조금 시끌벅적 했다.
“잠깐만 들여보내주시면 안 돼요? 혁 오빠한테 감기약만 주고 나올 게요.”
“안 됩니다.”
자세히 보니 팬과 경비원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팬은 절박 하다는 듯 말했지만, 경비원에게는 귀찮은 일일 뿐인 듯 했다.
정명은 실랑이를 벌이는 그 옆으로 자연스레 통과했다. 미리 말을 해 놨기에, 프리패스로 통과해버린 것이다.
“앗, 잠깐만. 나도!”
“학생은 안 돼!”
‘신경 끄자....’
그리고 정명은 조금 복도를 걷자마자 송하니가 있는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뇽!”
문을 두드리자, 송하니가 하품을 하며 방에서 나왔다.
평상복 차림인지, 송하니는 이상한 토끼가 그려져 있는 후드를 입고 있었다.
“쿠론은? 오늘 행사인가 뭔가 있었다며?”
“집 보냈지. 원래 같이 가자고 했는데, 피곤하다고 먼저 가겠대.”
“아, 그래? 역시. 보기엔 그래도 의리 있는 녀석이라니까....”
“응? 무슨 말?”
“아무 것도 아니야. 팀장님 저 그럼 이제 집에 갈게요!”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송하니. 그런데 정명의 눈에 매니저가 보이지 않는다.
연예인을 집에 데려다주는 일은 보통 매니저가 하는 일이기에, 정명이 궁금해져서 입을 열었다.
“민서씨는?”
“매니저언니? 어....아, 맞다.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갔어!”
하니는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둘이 걷고 있는 건물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헤헤. 오빠 집 바로 갈 거?”
“연습실에나 가려고. 슬슬 정리 해 둬야지. 곧 연습 시작인데.”
“같이 가자!”
“너도 오겠다고? 집에 간다며?”
“응응! 가서 밥 해줘.”
얼굴이 알려지면, 나가서 맘 편히 먹기 힘들다.
때문에 연습실에서 밥을 해먹고는 했는데, 주방장은 보통 정명이었다.
“그럴까? 근데 해먹기 귀찮으니까 라면이나 끓여먹자.”
“노노! 오무라이스 해줘. 오무라이스!”
“너 진짜 애 같다...”
송하니가 원래 밖에서 이러고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명이 부모마냥 급식충 팀원들을 돌봐주는 것처럼, 팀원들도 그런 돌봄에 익숙해졌기에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다섯 명의 사람들이 정명의 길을 막았다.
그리고는 꾸벅, 90도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언제나 불꽃처럼! 부스터입니다!”
화려하게 옷을 입은 여자들이 하니의 앞에 와서 단체로 인사했다.
그들의 정체는 부스터. 요즘 엄청 뜨고 있는 걸 그룹이었다.
물론 하니의 위상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는 나름 순위권에 드는 가수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방송 끝내고 오셨나 봐요?”
“네. 음악캠프에서. 그보다 이거 저희 새 앨범인데....”
멤버 중 한명이 공손하게 CD를 건넸다. 그 멤버는 걸 크러시니 뭐니 하며 카리스마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멤버였기에, 정명이 볼 때에는 무척이나 이상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하니는 당연하다는 듯, 약간 거만한 눈빛으로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
방금 전 오무라이스에 파프리카를 넣니 마니 하며 징징거리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네. 잘 들을게요.”
그렇게 말하며 곧장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는 충분히 멀어지자 하니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자연스레 정명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이거.”
하니가 건넨 것은 방금 받은 앨범이었다. 정명은 얼떨결에 앨범CD를 받았다.
‘뭐지? 나 가지라는 건가?’
앨범에는 멤버들의 싸인이 되어 있어, 팬들에게는 소장가치가 높은 물건일 것으로 보였다.
정명이 그렇게 생각하며 CD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하니가 확 낚아챘다.
“아 미안. 매니저 언니한테 주던 버릇이...헤헤.”
이제 와서 귀여운 척을 하며 CD를 뺏어가자, 정명이 항의했다.
“줬다 뺐냐? 부스터 싸인 앨범 받았다고 자랑할 거란 말이야.”
“어....오빠 혹시 저 그룹 팬이야?”
하니가 걱정스레 묻자, 정명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 했다.
“아니. 사실 누군지도 잘 몰라. 나 TV 거의 안 보는 거 알잖아.”
“그래? 그럼 줄게!”
그렇게 말하며 인심 썼다는 듯, 다시 앨범을 건넸다.
쿠론을 행사장에 데려다 주고 송하니를 집에 데려다 주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왠지 피곤해진 정명은 팀의 마지막 급식충 멤버, 석진에게 뜬금없이 전화를 걸었다.
“야, 넌 무슨 일 없지?”
-네? 대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무 일 없으면 됐다.”
-어, 저 일 있어요. 지금 사람 수가 한 명이 모자라서 풀 팟이 안 되는데, 게임 들어오실래요?
무척이나 간단한 부탁에, 정명이 피식 웃었다.
“그래. 그건 해줄 수 있겠네.”
그로부터 며칠 후, 공식적인 휴가기간이 끝났다.
오랜만에 만난 팀들은 꽤 많은 부분에서 바뀌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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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쉬엄쉬엄 하겠습니다. 지금 너무 지쳐서...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