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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59화 (159/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59화-----------------

“뭐냐, 이건.”

정명은 황당한 표정으로 쪽지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정명이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쪽지를 4번쯤 더 읽은 후였다.

‘아, 그렇지. 전화…….’

겨우 정신을 차린 정명은 곧장 고객센터에 전화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안타깝게도 전화를 해서 따질 수는 없었지만.

“고객센터 전화번호가… 없네?”

아무리 봐도 고객센터 전화번호가 보이지 않는다.

자주 묻는 질문인 FAQ에 나와 있는 답변들도 전부 결제 관련 답변들 뿐.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다.

결국 정명은 한참을 뒤적거리고 나서야 메일로만 문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답변이 올 때쯤에는 시간이 지나 정명이 받은 정지도 자연스레 풀려 있어, 큰 의미는 없겠지만.

정명은 어이가 없다는 듯 옆에 있던 송하니를 쳐다봤다.

“뭐, 이딴 게 다 있냐. 미국에서 이따위로 서비스했으면 회사가 당장 작살이 났을 텐데. 그렇지 하니야?”

하지만 송하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어깨를 으쓱댈 뿐이었다.

사실 송하니는 미국에 가 본 적이 거의 없었으므로,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깨만 으쓱대지 말고, 뭐 아는 거 있으면 털어놔 봐. 너, 우가우가TV에서 개인 방송 많이 해 봤을 거 아니냐.”

“아니, 나도 개인 방송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뎅? 난 개인 방송 거의 안 했걸랑.”

“네가? 개인 방송을?”

“응. 특히 매니저 언니가 많이 말렸어. 내가 개인 방송하면 말실수할 것 같대.”

“그건… 맞는 말이로군.”

송하니는 자신의 소속사 계약과 관련한 이유 때문에 개인 방송을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정명은 시청자들이 송하니를 그렇게 부르짖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개인 방송으로 가장 보고 싶은 사람 중 하나였을 송하니가 개인 방송을 전혀 하지 않으니, 팬들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애가 탔던 것이었다.

‘그럼 누구에게 물어보지? 어디 알 만한 사람이…….’

정명은 연습실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하니가 이쪽에 관심이 쏠려 있는 틈을 타서 또다시 하니의 간식을 빼먹고 있는 쿠론, 벌써부터 솔로 랭크를 돌리고 있는 메테오와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는 에리까지.

외국인들만 잔뜩 있어서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결국 정명은 입을 꾹 닫고 멀뚱멀뚱 구경하고 있는 한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석진아, 네가 나설 차례 아니냐? 너 여기 현지인이잖아. 뭐라도 좀 해 봐라.”

“죄송… 개인 방송은 인기가 없어서 금방 접었어요. 사실 잘 모릅니다.”

“아, 그래.”

결국 정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송 창을 닫았다.

개인 방송을 다시 열어 보려 애쓰다 보니, 모든 게 허무해진다는 시간인 일명 현자타임이 무척 강하게 왔기 때문이다.

솔직한 말로, 정명이 개인 방송에 목매달 이유는 전혀 없었으니까.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지. 더러워서 관둔다, 관둬.’

방송에 대한 생각을 접은 정명은 연습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

“아, 당연히 그렇겠죠. 욕 쓰고도 정지가 안 되려면 G BJ 정도는 되어야 할걸요?”

“G BJ?”

“Gold 등급 BJ요. 일반 BJ와는 조금 다르죠.”

며칠 뒤, 경기가 끝난 시각.

정명은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우가우가TV에 대해 잘 알 것 같은 사람에게 찾아갔다.

한국의 개인 방송에 대하여 잘 알 것 같은 사람은 해설자 겸 개인 방송을 부업으로 하고 있는 해설자, 코끼리였다.

코끼리는 오랫동안 방송을 한 BJ답게, 공식적으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 같은 것들을 꽤 많이 알고 있었다.

“방송 시간이 길고, 또 수입이 많은 BJ들은 골드 BJ를 신청할 수 있거든요. 만약 골드 BJ가 되면 욕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조금 자극적인 방송을 하는 것도 허용되죠.”

“자극적인 방송이라. 어떻게 하면 골드 BJ가 될 수 있는데요?”

“딱 이런 기준이 있다, 라기보다는 뭐랄까요… 운영자 마음대로라고 해야 하나?”

“허.”

“독과점 시장이 다 이렇죠. 뭐, 이것도 다 트이치 TV가 망한 후에 생겨난 거예요.”

독과점 시장.

트이치 TV가 망한 이후로, 한국 시장에서는 개인 방송을 할 수 있는 사이트는 딱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바로 우가우가 TV였고, 우가우가 TV는 그렇게 승자가 된 후로 수수료 인상과 더불어 BJ에 대한 갑질 따위의 전리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은 정명은 입맛을 쩝, 다셨다.

“과연, 오자마자 김치 맛 제대로 봤네요. 한국 생활, 어렵다!”

“하하. 그럼 이건 어때요? 정명 씨, 아직 다른 팀 연습실에 놀러간 적 없다고 하셨죠?”

“네. 사실 아는 선수도 얼마 없어요. 왕따입니다. 흑흑.”

능청스러운 정명의 태도에, 해설자가 낄낄 웃었다.

“제가 개인 방송 순위 높은 선수들이 있는 팀을 하나 알거든요. 오늘 한번 놀러가 보는 건 어때요? 분명 재미있을 거예요.”

“오, 정말요?”

그 말을 들은 정명은 다른 팀 연습실에 놀러갈 생각에 조금 설렜다. 한국 팀들은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지 내심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저는 상관없어요. 그런데 어떤 팀이에요?”

“팀 TAQ요.”

“아…….”

해설자가 놀러 가자고 한 연습실은 팀 TAQ.

피닉스가 있는 팀이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정명은 팀 TAQ의 연습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국에 오니, 이거 하나는 좋았다.

다들 고만고만한 곳에 연습실이 붙어 있어서 놀러 가기 편하다는 것.

미국에서는 다른 팀 연습실에 놀러 가려면 날 잡아서 가야 했는데, 한국에 오니 퇴근길에 잠깐 들르는 수준으로 다른 팀과 손쉽게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TAQ 연습실에 들어가자 정명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정명과 이미 친분이 있는 김준상이었다.

“어, 형! 웬일이야?”

“잠깐 들렀어. 개인 방송 비법 좀 전수하려고.”

“개인 방송?”

정명은 자신이 개인 방송에서 겪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러자 김준상은 입맛을 쩝 다셨다.

“그렇지. 그럴 수도 있지. 지금은 우가우가TV가 갑이니까. 다들 거지 같은 운영에 불만은 조금씩 있어도 참는 거지.”

“골드 BJ인가 뭔가 따면 욕 정도는 할 수 있다며?”

“맞아. 심사를 받아야 하긴 하는데, 형은 무조건 할 수 있을걸? 아마 담당자가 잘 모르고 형을 정지시킨 것 같은데, 형이 만약 영구 정지가 되었어도 금방 풀어 줬을 거야.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녀석들이니까.”

준상과 함께 우가우가 TV에 대한 욕을 하던 정명은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헀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이 팀에서 개인 방송 랭킹이 가장 높은 게 누구야? 한 수 배우고 가고 싶은데.”

“음… 사실…….”

김준상은 살짝 뜸을 들이더니, 이내 한쪽에서 열심히 개인 방송을 하고 있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실 저기 있는 피닉스가 제일 인기가 좋아.”

정명은 준상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피닉스는 미션이라는 것을 수행하고 있었다.

달풍선을 쏜 시청자가 제시한 미션을 수행하는 것. 그게 피닉스의 콘셉트였다.

피닉스의 경우에는 10만 원에 해당하는 달풍선 1,000개를 보내 주면 시청자가 제시한 미션을 수행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그 미션이라는 것이 일부러 트롤을 하는 행위가 대다수였다.

정명은 못 볼 걸 봤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추해라. 저 녀석에게는 별로 배우고 싶지 않네.”

“그러는 게 좋을 거야. 저 녀석 따라하다간 형 이미지 다 박살 난다.”

준상은 그렇게 말하며 정명을 다른 방으로 이끌었다.

“이리 와. 내가 제대로 알려 줄 테니. 일단 화질 개선하는 캐시 아이템은 샀어?”

“응.”

“일단 오픈 이벤트로 퀴클리 뷰 아이템을 몇 개 뿌리는 것으로 시작하자.”

“어후, 이건 무슨 창업 자본 드는 것도 아니고 개인 방송하는 데 뭐 이렇게 돈이 많이 필요하냐.”

“아직 안 끝났어. 그리고 또 뭘 사야 하냐면…….”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연습실로 돌아온 정명은 곧장 개인 방송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개인 방송 강의까지 들었으니 적당히 해 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아예 개인 방송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빠, 솔랭 하려고? 나랑 같이하자!”

“그래. 그런데 난 방송도 할 거야. 개인 방송.”

“그럼 나도, 나도! 개인 방송 같이 하자!”

“넌 소속사에 허락이나 맡고 와. 지난번에 안 된다고 했다며.”

방송을 하려면 고성능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 방송을 송출하는 것과 게임을 하는 것, 두 가지를 동시에 하려면 어지간한 피시방 컴퓨터 사양으로는 안 된다.

그리고 모니터 두 대.

게임을 하는 모니터와 방송을 관리하는 모니터를 각각 따로 둬야 한다.

단, BJ의 얼굴을 담는 캠 카메라는 그렇게 좋을 필요가 없다.

좋은 카메라를 쓰기는커녕, 오히려 적당히 나빠야 좋다.

적당히 화질이 안 좋은 카메라는 평범한 사람도 미남, 미녀로 만들어 주는 마법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어… 이거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옆에서 송하니가 캠 카메라를 어색하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적당한 각도, 일명 얼짱 각도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에 잡힌 자신의 모습을 뿌듯하다는 듯 바라봤다.

“오, 이거 좋다. 앞으로 방송국에서도 HD 카메라를 금지시키고 이런 카메라만 썼으면 좋겠어!”

“맘에 든다니 다행이네.”

정명은 웃으며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정명의 세컨드 모니터에는 한 소녀가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까불지 않고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송하니에게서는 무언가 은은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듯했다.

‘입만 닫고 있으면 완전 화보네, 화보야.’

하지만 하니의 입이 닫혀 있는 것은, 딱 10초뿐이었다.

“와. 오빠, 진심 대박. 나 완전 여신 아님?”

“우리 하니, 또 연예인 병 도졌구나. 그거에는 약도 없는데.”

정명은 플레이용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며 한마디 덧붙였다.

“뭐, 그래도 제법 귀엽긴 하네. 내가 딱 10년만 젊었어도 번호 따는 건데.”

“…어, …정말? 근데 오빠 내 번호 있잖아.”

“뭐래.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 말을 끝으로 끊임없이 재잘거리던 송하니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게임에 로그인하기 직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10년은 또 뭐야?”

“너와 나의 나이 차이. 10년이면… 차석진 정도의 나이겠네. 석진이가 너랑 동갑이랬지? 고3.”

“석진이는… 별로야. 너무 어려. 헤벌쭉하는 모습이 바보 같아. 무게감이 없어.”

송하니는 뜬금없이 차석진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차석진이 인간쓰레기라는 말이 아닌, 연애 상대로 본다면 그렇다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정명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냐.”

그 말을 끝으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정명이 한국에서 하는 첫 방송이기도 했다.

그런데 자그마한 문제가 있었다.

게임이 너무 쉬웠다.

[킬러_송 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이거 양학 방송인가요?

-상대방도 나름 다이아인데 왜 이렇게 떡바름? ㄷㄷ.

-벌써 몇 연승이지 대체.

“양학 방송 아닙니다. 하도 오랜만에 하니까, 순위가 너무 많이 내려가서 그래요.”

오랜만에 솔로 랭크를 돌리니, 조금 민망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상대와의 실력 격차가 워낙 커서, 상대가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로 상대를 압도했기 때문이었다.

“곧 승급이니 금방 마스터 리그로 올라갈 겁니다. 마스터까지만 가도 좀 더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던 그때, 미드에서 킬이 나는 소리가 들렸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미드에 계신 분이 조금 힘드신가 보네요. 벌써 4데스라니. 뭐, 저렇게 푸짐하게 싸셔도 제가 캐리한다는 것에는 변함없지만요.”

하지만 상대 미드라이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킬을 내자마자 열심히 전체 채팅을 날리기 시작했다.

건들면잠수: 다이아에 있는 놈들은 진짜 사람도 아닌 듯. ㅋㅋ 더럽게 못하네.

‘뭐지, 저건.’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상대방에게 킬을 낸 후,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 욕을 해대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봐 온 정명의 결론은 빠르게 차단하는 것이 자신의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개인 방송의 채팅에서 조금 뜻밖의 이야기가 들렸다.

-저거 미드에 캐애액 부캐 아님?

-맞네. BJ 캐애액. 전 프로 게이머, 지금 시청자랑 듀오해서 양학 방송 중이라고 함.

정명은 소통을 잘하는 BJ였으므로,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캐애액? 그게 누구죠?”

캐애액.

실력이 부족해서 팀에서 잘린 후, 그대로 개인 방송으로 전업한 전 프로 게이머.

만약 그렇다면 지금 미드에서 보여 주는 모습이 설명이 된다.

시청자들의 얘기에 따르면, 캐애액의 본캐는 그랜드 마스터 티어.

전 그랜드 마스터가 부캐로 다이아 리그에 왔으니 라인을 터트리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탑 라인에 있던 정명은 미드로 로밍을 가기 시작했다.

“저, 잠깐 태세 전환 좀 하겠습니다. 사실 이거 양학 방송 맞아요. 지금부터 그렇게 하기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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