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57화-----------------
그로부터 2주가 지났다.
팀원들은 연습, 집, 연습, 집의 사이클을 반복하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고 아차, 하는 순간 어느새 한국에서의 첫 경기를 코앞에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늘의 연습 경기는 TAQ와의 경기 전, 마지막 연습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빠앙! 교통사고 간다!”
송하니가 탑에서 텔레포트를 타고 바텀에 도착했다.
송하니의 목표는 점멸을 아낌없이 써 가며 허겁지겁 도망가고 있는 바텀 듀오 둘.
목표를 포착하자마자 하니 또한 점멸을 써서 궁극기를 꽂아 넣었다.
그동안 NHG의 바텀 듀오 또한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차석진 또한 적절한 궁극기 연계로 스턴 시간을 늘려, 안정적으로 킬을 낼 수 있게 하였다.
아주 부드러운 스킬 연계와 팀워크였다.
[우주대스타, 더블 킬!]
“야호!”
더블 킬과 동시에 타워, 그리고 용 1스택까지.
이번 경기도 느낌이 아주 좋았다.
송하니가 더블 킬을 내자, 쿠론이 씩 웃었다.
“아주 좋아. 잘했어.”
“어엉? 네가 내 칭찬을 하니까 좀 어색하다 야…….”
“그래? 그러면… 킬 좀 그만 뺏어 먹어 이 돼지야. 그러다가 뱃살 축 늘어난다?”
“뭐얏! 난 완벽한 몸매를 유지 중이거든? 한번 볼래?”
점점 늘어나는 팀워크에 비례하며 팀원들의 사이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았다.
보기에는 티격태격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친한 친구의 느낌인 것이다.
“돼지는 너겠지! 그보다 너, 내 이름 적혀 있는 간식 좀 그만 퍼먹어!”
“싫은데? 아, 그리고 난 사과 맛 푸딩 별로니까, 앞으로는 복숭아로 부탁해.”
“야! 설마 내 푸딩 또 먹었어? 캭!”
‘음… 친한 거 맞겠지?’
아직 게임 중이건만, 저 둘은 조금 긴장이 풀어진 듯했다.
하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하니가 바텀 라인에 갱킹을 온 것이 결정적이었고, 그 후로 스노우볼이 거침없이 굴러갔으니까.
결국 그 게임은 25분 만에 금방 끝이 났다.
‘그러고 보니 오늘 성적이 상당히 좋은데?’
오늘 이 팀과의 전적은 승승패승승, 승률 80%라는 대단히 좋은 성적이었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정명은 옆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에리를 불렀다.
“에리, 우리가 2주 전에 이 팀이랑 연습했을 때 승률이 얼마였죠?”
“응, 잠깐만.”
에리는 태블릿 PC를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원하는 데이터를 찾아냈다.
2주 전 연습했을 때는 승패패승패. 즉, 승률 40%였는데 그때에 비해 성적이 월등히 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상대 팀에서도 확인이 되었는지, 곧장 채팅이 날아왔다.
“아니, 대체 2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때에 비해 실력이 확 늘은 것 같은데?”
“그냥 열심히 했어요.”
이것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열심히 한 것 말고는 딱히 한 게 없으니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고.
물론 조금 효율적인 연습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정명은 경험치 부스터의 남은 시간을 살폈다.
*경험치 부스터 사용 종료까지 12일 12시간 남았습니다.
*경험치 부스터로 절약한 시간
-830시간 동안 연습을 추가로 한 효과가 있습니다.
경험치 부스터는 마치 모 만화에 나오는 시간과 공간의 방처럼 보였다.
한번 써 보니 단기간에 실력을 끌어올려 주는 아주 좋은 아이템인 것 같았기에, 정명은 기간이 끝나면 한 번 더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금 비싼 게 흠이라고 할 수는 있었지만.
잠시 후. 상대 팀 선수는 채팅을 끝내기 전, 예의상 덕담을 건넸다.
“내일 경기죠? 잘 하세요.”
“감사합니다.”
“아, 맞다. 정명 씨, 내일 경기에서 탐험가는 무조건 밴해요. 거기 파랑 탐험가가 무지하게 짜증난다고요.”
“하하…….”
“피닉스 그 녀석. 좀 재수 없는 녀석이긴 한데, 실력은 진짜니까.”
파랑 탐험가.
당시에 엄청나게 유행했던 아이템 빌드.
이것을 처음 맞이한 사람들은 정말 사기적인 아이템 빌드라며 욕을 하기 바빴지만, 정명은 그에 대한 몇 가지 대처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파랑 탐험가 말고, 또 사기라고 불리던 전략들이 뭐가 있었더라…….’
*
마침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정명과 팀원들은 수많은 인파를 힘겹게 뚫고 오지는 않았고, 샛길을 통해 편하게 방송국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안에 들어가자 정명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이제 해설가로 전업한 전 팀원, 조시였다.
“형, 아까 TAQ 측에서 사전 인터뷰 땄는데, NHG는 무조건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호언장담하더라고요.”
“그랬어?”
“예. 확실히 개소리죠 그거?”
“음… 아예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고. 우리가 1승 4패 했었거든. 2주 전에.”
“흠, 2주 전이라. 그러면 지금은요?”
“당연히 우리가 바르지.”
“큭큭, 그런가요?”
조시와의 대화를 마친 정명은 부스 안으로 들어가 경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송하니는 팬 서비스라도 하려는 건지, 카메라 한 대를 붙잡고는 혼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러분, 저 꼭 응원해 주셔야 해요! TAQ 응원하기 있기? 없기?”
그리고 방송국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스태프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야, 이거 방송이 왜 이렇게 끊겨?”
“트래픽이 아슬아슬합니다! 접속자가 너무 몰렸어요!”
‘이거 완전 시장판이네.’
정신없는 와중에 정명은 집중을 하기 위해 눈을 감고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그후, 10분 뒤.
마침내 한국 리그에서의 첫 경기가 시작되었다.
게임이 시작되자 까불며 돌아다니던 송하니 또한 진지한 표정으로 경기에 임했다.
“피닉스라는 애가 잘한다던 탐험가 있지. 어떻게 할 거야? 밴할까?”
“아니, 생각 굳혔어. 열어 줘.”
-탐험가 열렸습니다!
-탐험가가 밴에서 풀리는 건 12경기 만이죠? 과연 무슨 생각으로 열어 준 것일지!
이렇게 되면 TAQ에서 오히려 생각이 복잡해질 수도 있다.
카운터를 준비해 놓은 것인가? 아니면 확실한 대처법이 있나? 하는 그런 생각들.
하지만 피닉스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18번 캐릭터를 골랐다.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그에 맞서는 NHG의 선택은… 카드맨이네요. 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피지컬을 올렸다고는 하지만, 굳이 솔로 킬을 노린다거나 하는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
정명은 이번 경기에선 운영 위주로 경기를 펼쳐 나가기로 했다.
게임이 시작되고 10분이 지났다.
팬들은 한국 전통의 수면제 메타 대신 치열하게 치고 박는 혈투를 기대했지만,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1킬도 나지 않았다.
서로 무척이나 조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 팀 모두 상당히 사리네요. 많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경기 시작 전에 서버가 터질 뻔했다는 것을 양쪽 모두 들었을 텐데, 그것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봅니다.
평소에 쓰이지도 않는 태엽로봇이 월드 챔피언십 시즌만 되면 유행하기 시작한다.
공방 모두 밸런스가 갖춰진 안정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정명의 팀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의 첫 게임.
열심히 연습은 했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팀원들은 마른침만 꿀꺽 삼키며 조용히 파밍만 해 나갔다.
탑만 빼고.
“메테오, 탑으로 좀 와 줄래요?”
“그래.”
아직 한국어가 서툴지만, 대충 이해는 했는지 알았다고 한다. 사실 열심히 핑을 찍는 모습을 보면 아마 말이 없었어도 알아들었을 테지만.
그러나 이리저리 각을 재던 메테오는 영 여의찮다고 생각했는지 백 핑을 찍었다.
“하니, 빼자. 이거 안 된다.”
“노노. 다이브, 두 다이브!”
“야! 가지 말라고!”
하니는 소위 ‘탑신병자’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라인을 쭉쭉 밀면서 정글러를 계속 콜하거나, 쭉쭉 미는 과정에서 다소 뻔한 갱킹에 죽거나.
정명이 그런 것을 교정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나아지고 있기는 했지만, 완전히 고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송하니의 악어, 궁극기 켜고 달려듭니다!
-이거 좀 무리인 것 같은데, 과연 어떻게 될지!
하니와 메테오, 둘은 쿨타임이 엄청 긴 소환사 스킬까지 쏟아 부어 가며 겨우 킬을 따 내긴 했다.
비록 곧이어 등장한 상대편 정글러에게 킬을 내주고 말았지만.
회색 화면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던 하니는 손가락을 꺾어 뚜둑 소리를 내더니, 재미있어졌다는 듯 씩 웃었다.
“후. 좋아, 그럼 이제 APM좀 올려 볼까?”
“APM 올릴 필요 없고, 와드나 박아. 그리고 와드를 박았으면 좀 봐. 미니맵을!”
송하니는 그런 말이 들리지 않는지, 또다시 대책 없이 라인을 쭉쭉 밀고 있다.
하지만 정명은 또 다시 한마디 하는 대신, 그에 맞춰 라인을 밀었다. 지원을 가기 위해서였다.
파랑 탐험가는 라인 클리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캐릭터이므로, 정명처럼 라인을 쭉쭉 밀고 다른 라인으로 로밍을 가는 것이 파랑 탐험가를 상대하는 정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기에, 그들에겐 정명이 처음 선보이는 카운터 전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 마침 잘됐다. 정명 오빠, 탑으로 로밍 좀. 엄격, 진지, 궁서체!”
“탑 콜 좀 그만 해, 이것아. 대체 몇 번째냐?”
정명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궁극기 타이밍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테오의 동선에 맞춰 궁극기를 사용했다.
송하니가 만들어 놓은 미니언 2웨이브에 3인 다이브.
탱커 캐릭터고 뭐고, 이러면 버틸 재간이 없다. 완벽한 계산, 죽는 각이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땡큐!”
아주 깔끔한 킬.
하니는 카메라가 자신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앞을 보며 윙크했다.
‘쯧쯧, 저 요망한 것 같으니.’
그렇게 정명이 몇 번 궁극기를 쓰니,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갔다.
“좋아, 그럼 시야 장악 끝났으니 용 먹자. 저쪽에선 절대로 못 내려온다.”
“동의. 바로 치면 순삭이야.”
그런데 못 내려올 것이라는 정명의 예상과는 달리, 상대방은 용 근처에서 계속 꾸물거리고 있었다.
특히 피닉스는 탐험가의 생존기를 믿는 것인지, 위험 거리까지 다가와 견제구를 날리며 용을 순순히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피닉스, 이거 고작 첫 용일뿐이거든요? 줘야 합니다 이건.
-저러다 잡히면 정말 큰일 나요. 믿을 건 파랑 탐험가의 후반 캐린데, 지금 잡히면 그 후반도 없습니다.
피닉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정명 또한 마찬가지였다.
“쟤, 뭐냐? 분명 우리가 먹을 차례인데 스틸이라도 노리나?”
“제가 잡아 볼게요.”
석진은 그렇게 말하며 달려들었다.
훈련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피지컬과 컨트롤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잠시, 정명이 궁을 타고 피닉스의 뒤를 점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관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설마 저 팀이 진짜로 일내는 거 아냐? 하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를 연출하는 PD는 순간 기쁨에 차올라, 옆에 있던 스태프를 바라봤다.
“됐다, 됐어! 태규야, 이번 방송 시청자 수가 얼마나 되냐? 18만? 아니, 20만?”
PD는 결승전이 치러질 때나 나오는 시청자 수를 입에 담았다하지만 스태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이런, 그럼 16만? 15만?”
“터졌습니다…….”
“뭐?”
“지금 막 서버 터졌어요. 인터넷 스트리밍은 안 되고, 지금 TV로만 송출되고 있어요.”
송하니가 윙크하는 순간부터 불안하던 서버가 기어코 나가 버렸다.
특히 NHG가 막 승리를 따내기 직전, 서버가 나가 버린 것이다.
때문에 화가 난 시청자들이 다른 스트리밍 사이트를 찾아 경기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 NHG와 TAQ의 대결이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올라왔다.
화려한 데뷔였다.
*
정명이 부스에서 나오자 어색한 풍경이 보였다.
미국, 중국보다는 훨씬 작은 경기장.
하지만 열정만큼은 전혀 뒤쳐지지 않는 팬들이 있는 경기장이었다.
이번 경기에서 승리를 한 NHG 선수들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한국에서 승리 후 인터뷰를 진행하는 미녀 리포터가 정명에게로 다가왔다.
과거에서는 TV에서만 볼 수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정명은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외국에서 온 팀은 무척이나 신기한 존재인 탓에 정명을 포함한 팀원들은 꽤 긴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피곤해진 정명이 눈치를 주자 리포터가 눈치껏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미국에서 온 선수들에게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보여 주지 못해서 아쉽다는 팬들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치 맛.
한국 리그의 높은 벽을 깨닫게 해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말이었다.
정명은 그 짓궂은 질문에 농담으로 답했다.
“저는 한국인이고요, 김치 맛 이미 많이 봤습니다. 다른 팀원들에게도 곧 먹일 생각인데 그건 개인 방송으로 보여 드릴게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정명이 한숨을 푹 내뱉었다.
이번 경기는 다른 경기보다 배로 지친 것 같았다.
그런데 무대에서 나오자마자 메시지가 뜨기 시작했다.
[재야 고수가 당신의 팀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아프니까TV의 고위 인사가 당신을 주목합니다.]
[‘전략가’가 당신의 전략에 관심을 갖습니다.]
‘나, 이번 경기 제법 괜찮게 했나 보지?’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경기 한 번으로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것이다. 자신의 팀은 다른 북미 팀과는 수준이 다르다고.
너희들과 싸워도 지지 않는다고.
그런데 메시지가 떠도 너무 많이 떴다.
“아오, 그만 좀 떠. 알았으니까!”
[‘세체미’가 당신에게 관심을…….]
정명은 시끄럽게 울리는 메시지창을 콱 닫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