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56화-----------------
정명이 과거로 회귀하고 나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때문에 정명은 이제 과거의 프로 게이머는커녕 당시 유명했던 선수들조차 어떤 선수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가 있듯, 굳이 자신의 비밀 노트를 뒤져 보지 않아도 기억나는 선수들이 가끔 있었다.
한국 최초로 로열 로더를 이룬 선수, 컨트롤이 무척 좋은 선수, 프로 게이머 업계에서 가장 잘생겼다고 평가받던 선수 등등…
그리고 피닉스 선수 또한, 정명이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선수 중 하나였다.
‘보니까, 지금은 전성기라기보다는 성장하고 있는 시기인 것 같은데.’
정명은 팀 TAQ의 경기를 찾아보고 있었다.
지난번 연습 경기에서 1승 4패를 함으로써 TAQ가 어떠한 팀인지 몸으로 체득하긴 했지만, 다른 팀들은 그들에게 어떻게 대처했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정명은 자신의 비밀 노트를 꺼내고는, 자신이 피닉스 선수에 대해 적어 놓은 것을 찾아보았다.
*피닉스는 정상급 선수 중 하나였다.
*그러나 다른 정상급 선수와 피닉스가 비교되는 점이 있다. 피지컬이나 운영 능력 같은 기본기가 특출 났다기보다는 특별한 전략이나 템트리로 재미를 많이 본 선수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 그러한 전략이 카피되거나 파훼되는 순간,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물론 빡세게 노력했다면 성적 유지는 가능했겠지만, 안타깝게도 피닉스라는 녀석은 노력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정명은 노트를 읽자마자 손바닥을 짝 마주쳤다.
‘아, 맞아, 맞아. 그랬었지, 참. 상당한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빡센 연습을 싫어하는 종류의 선수였어.’
그렇다면 당연히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프로 게이머 업계라는 것은, 재능에다가 노력까지 받쳐 줘야 버틸 수 있는 만만치 않은 바닥이었으니까.
노트를 품에 넣은 정명은 다시 TAQ의 최근 경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최근 경기라고 함은, 해외 리그에서 TAQ가 외국 팀을 상대로 펼친 경기였다.
-Q 포킹 한 방에 피가 1/3이 빠지는데요?
-맞고만 있지 말고, 달려든다든가 하는 결단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포킹 맞아 봐야 답 없어요.
‘잘하긴 잘하네.’
피닉스는 일명 ‘파랑 탐험가’로 상대를 구워삶고 있었다.
파랑 탐험가.
원딜러 캐릭터인 탐험가 캐릭터가 파란색 아이템을, 심지어 신발까지 파랑색 아이템으로 깔맞춤한다는 전략.
나중에야 ‘그게 뭐 어쨌다고?’ 하는 전략이었지만 당시에는 꽤나 혁명적인 빌드였고, 그러한 것을 한번 당해 본 선수들은 너도나도 탐험가를 밴하거나 따라 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것은 피닉스가 가장 먼저 대회에서 선보인 전략이었으며, 방송을 보아하니 지금 가장 핫한 전략 중 하나인 듯싶었다.
이렇게만 놓고 보니 정명은 이렇게 잘나가는 게이머가 왜 승부 조작 같은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노력을 싫어했다고 했던가? 쯧, 그럴 거면 은퇴해서 개인 방송이나 할 것이지.’
정명은 시계를 슥 보더니 다른 팀원들에게로 다가갔다.
이제 피닉스에 대한 것은 잊어버리고 연습을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 할 일이나 열심히 해야지. 뭐, 내가 뭘 어쩌겠어.’
피닉스라는 사람에 대한 대처 방법?
있을 리가 없다.
에리는 뒤통수 맞기 전에 먼저 치라고 조언했지만, 지금 시점에서 정명이 뭘 어쩌겠는가.
아직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은 녀석을 찾아가서 줘 팰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피닉스의 동태를 자세히 관찰하는 정도가 정명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결국 정명은 희망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혹시 내가 돈 잘 버는 걸 보면, 과거와는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니까.’
정명은 ‘프로 게이머도 이렇게 돈 많이 벌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 준 대표적인 게이머 중 한 명이었다.
때문에 해외에서 돈을 많이 벌어 온 정명을 보며 피닉스는 무언가 깨닫는 게 있을지도 몰랐고, 정명은 그러한 기대를 품어 보기로 했다.
*
“미안. 오랜만에 하니까 게임이 잘 안 되네.”
조 추첨식이 끝난 후, 연습이 재개되었다.
연습을 시작한 것은 다른 팀들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정명은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팀과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사실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가뜩이나 정명의 팀원들은 오랜만에 연습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한국 팀들은 해외 리그를 준비하기 위해 휴식기를 거의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명은 연습실의 화이트보드에 ‘4패’라고 적었다.
그 모습을 보며 차석진이 키보드에 머리를 떨어트렸다.
“미안합니다. 내가 좀 더 시야 장악을 확실히 했어야 하는 건데…….”
“아, 괜찮아, 괜찮아. 이 정도면 감이 점점 돌아오고 있는 것 같으니까. 열심히 하면 금방 컨디션 찾을 거야.”
휴식기를 가졌기에 패배한 것이라는 건 모두가 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너무 연패를 했기 때문인지 팀의 분위기가 축 쳐졌다.
‘에고, 불쌍한 내 새끼들.’
정명 또한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마음이 썩 편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팀원들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있는 건 리더로서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으므로, 정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해 보기로 했다.
‘좋아, 한정되어 있는 포인트로 반전을 꾀해 보자고.’
정명은 시스템창을 열었다.
[현재 포인트: 542,300]
“하, 내가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다.”
스스로 생각해도 뿌듯한 포인트 저축이었다.
미국에서 얻었던 로열 로더 달성의 보상과 전승 우승의 보상, 그리고 특별한 팬 보상까지.
비시즌이었기에 사용하지 않고 쌓아 두었던 포인트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정명은 포인트의 출처를 하나하나 떠올려 보다가 20만 포인트를 한 번에 얻은 퀘스트에서 잠깐 생각을 멈췄다
‘특별한 팬이 이미 팬이라서 그 대신 포인트를 주는 거라고 했었지? 근데 그건 누구였을까?’
잠깐 떠올렸으나 짐작도 가지 않는다.
결국 정명은 이번 일은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정명에게 하니가 오도도도 달려오기 시작했다.
“오빠! 쿠론이 또 내 간식 먹었어! 내가 이름표까지 붙여 놨는데!”
“쿠론?”
정명은 쿠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쿠론은 ‘어쩌라는 거야.’라는 눈빛으로 과자를 꺼내 먹고 있었다.
“그래서?”
“쟤 좀 혼내 주세요.”
“어휴…….”
애들 같은 모습에 정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습실 돌아가는 꼴을 보다 보면 정명은 가끔 애 다섯을 키우고 있는 부모가 된 기분을 느꼈다.
“그럼 엉덩이라도 때려 주든가.”
“하… 오빠 좀 깬다.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 나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진짜거든? 에리가 그랬어. 그러면 말 잘 듣는다고.”
물론 정명이 시도해 본 적은 없다.
하니는 진심이냐는 듯 한참을 고민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엉덩이라도 때려 주려는지 비장한 표정으로 쿠론의 뒤를 쫒았다.
‘뭐, 곧 친해지겠지. 그럼 어디…….’
정명은 다시 포인트 활용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역시 피지컬인가.’
‘역시 가장 중요한 건 피지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능력치]
피지컬 (91/100)
정신력 (89/100)
오더 (89/100)
판단력 (90/100)
‘흠… 별로군.’
낮다.
조 지명식에서 봤던 선수들보다 훨씬 낮다.
이렇게 되면 피닉스 같은 녀석들에게 참교육을 시켜주기는커녕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
북미에서는 이 정도로도 최고가 될 수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아닌 것이다.
때문에 정명은 조금 과감해지기로 했다.
*
[…15만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피지컬 구입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런, 미친…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정명이 시스템 화면을 만지작거린 지 5분이 지났건만, 정명은 아직도 손이 떨렸다.
운 좋게, 그리고 엄청나게 힘들게 벌었던 42만 포인트를 전부 때려 박아 피지컬을 올려 버렸기 때문이다.
망연자실하게 잔여 포인트를 바라보던 정명은 피지컬 스탯으로 시선을 돌렸다.
피지컬 스탯 94.
이 정도면 한국 리그에서도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최상급의 피지컬이었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죽을 때 포인트 싸 들고 갈 것도 아니고…….’
정신을 차린 정명은 남은 포인트로 다른 스탯을 더 올려 볼까 하다가 관뒀다.
한국 리그 같은 정상급 리그에서는 혼자 강해져 봐야 크게 티가 나지 않으니까.
‘역시 같이 강해져야 해.’
정명은 다시 시스템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같이 강해질 수 있는 것으로.
[스킬 상점]
[아이템 상점]
‘아이템 상점. 오랜만에 가 볼까.’
상점 버튼을 누르자, 하위 메뉴가 나타났다.
[하급 상점]
[중급 상점]
[상급 상점]
[???]
처음 단계부터 이미 열려 있었던 하급 상점.
정명은 이미 하급 상점의 모든 아이템들을 구매 가능한 상태로 개방하고, 또 살펴봤었다.
그리고 모든 아이템을 살펴본 정명의 결론은 하나였다.
‘하급 상점은 쓸모없으니까 됐어.’
하급 상점에는 일정 시간동안 팀워크를 3% 올려준다거나, 친밀도를 3% 올려준다는 등의 정말로 애매한 능력치의 아이템만이 있었다.
무척이나 저렴하긴 했지만, 딱 가격만큼의 성능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급 상점에서 나온 정명은 상급 상점으로 들어갔다.
[상급 상점에 입장하기 위한 조건을 확인 중입니다.]
-상급 상점 입장권 2장을 보유 중입니다. 입장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상급 상점 입장권 두 장.
한 장은 로열 로더 퀘스트를 달성할 때 얻었고, 또 다른 한 장은 북미 리그에서 우승을 했을 때 얻었다.
정명은 곧장 ‘아니요’ 버튼을 눌렀다.
‘아니, 그냥 눌러 봤어. 입장권씩이나 필요하면 엄청나게 비싼 아이템이 있을 게 뻔한데, 구경만 하다 나오라고? 그건 싫지.’
정명은 이제 중급 상점으로 향했다.
사실 다른 곳은 그냥 구경해 본 것이었고, 원래 노렸던 목표는 바로 이곳에 있었다.
[개인 방송의 신]
[돈 많은 스폰서]
[재야 고수 탐색]
[배신자 판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아이템은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정명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명은 자신이 찾는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급 경험치 부스터]
-팀원들의 성장이 300% 빨라집니다.
‘경험치 부스터. 지금 내 상황에선 이게 딱인 것 같은데.’
가격은 한 달에 5만 포인트. 무려 기간제였다.
비싸다면 비싼 가격이지만, 정명은 20분 전. 무려 42만 포인트를 일시불로 질러 버린 사람이었다.
때문에 정명은 비싸다고 느끼기는커녕 조금 저렴한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아이템을 구입했다.
이제 남은 포인트는 고작 7만.
정명은 잔여 포인트 100만이 될 날을 꿈꾸며 연습을 재개했다.
*
그로부터 2주가 지났다.
오늘 연습할 팀은 중하위권 팀.
초반에는 이길 확률이 40~45% 정도로 낮았지만, 이제는 60%의 확률로 승리를 따 내고 있었다.
이제는 승률도 제법 올랐고, 팀원들의 실력 또한 쑥쑥 커지는 게 느껴졌다.
[미어스 쿠론의 피지컬이 1 상승했습니다.]
‘좋아, 좋아. 5만 포인트를 바른 보람이 있어. 아주 쑥쑥 크는구나.’
한국 리그에서 포인트를 얼마나 줄지는 모르지만, 포인트가 더 짭짤하게 벌리면 이런 중급 부스터가 아닌, 상급 부스터 이상의 아이템을 사 볼 계획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송하니는 중급 부스터 따위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지 스탯이 하나도 안 올랐지만, 다른 팀원들은 제법 올랐기에 정명은 아이템 구입에 대하여 무척이나 만족했다.
그리고 잠시 뒤.
중하위권 팀과 연습 게임을 끝낸 정명은 다른 연습 상대를 찾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형, 코코폭스가 우리랑 연습 게임 할 수 있겠냐는데요?”
“좋지. 코코폭스는 꽤 오랜만이네. 마지막으로 게임 한 게 2주 전이었나?”
“그런데 실험적인 픽을 할 것 같다고 양해해 달래요.”
“실험적인 픽?”
코코폭스는 조금 실험적인 픽을 꺼내겠다며 미리 밑밥을 깔았다.
연습 게임이라서 실험적인 픽을 꺼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조금 만만한 팀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픽이었다.
“이 녀석들, 우리가 예전에 감을 못 찾아서 빌빌대던 때를 생각하나 보다.”
“그런가 보네요.”
정명은 석진과 눈을 마주치며 씩 웃었다.
“가자, 발라 주러.”
*
그 시각.
피닉스와 함께 연습실로 돌아가던 김준상은 낯선 사람에게서 받은 명함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름, 전화번호, 인터넷 사이트 주소만 적혀 있는 정체불명의 명함이었다.
“뭐야, 시발. 우리를 뭐로 보고?”
평소의 김준상답지 않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무척이나 흥분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법 도박 사이트의 명함이었으니까.
그 브로커는 둘이 프로 게이머라는 것을 알아보지는 못한 듯했지만, 그런 명함을 받은 것만으로도 김준상은 기분이 나빴던 것이었다.
화가 난 준상은 명함을 구겨서 길가의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피닉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다음 날.
피닉스는 쓰레기통을 뒤적거려 명함을 꺼냈다.
다른 이유는 없고,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흠, 타워를 먼저 미는 쪽에 배당금이…….”
피닉스는 명함에 적혀 있던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예상했던 대로 불법 도박 사이트였다.
그 사이트에서는 승패 예측에 돈을 걸 수도 있었지만, 다른 부가적인 곳에 돈을 걸 수도 있었다.
퍼스트 블러드를 내는 팀, 용을 먼저 먹은 팀 등등…….
‘NHG 정도면 당연히 이길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승패 예측은 역시나 배당금이 낮다. 모두가 정명의 팀이 패배하는 것에 돈을 걸고 있었으니까.
피닉스는 그 대신, 다른 쪽에 관심을 돌렸다.
‘용을 먼저 먹은 팀이라. 이거는 정말 할 만하겠는데.’
승패 조작처럼 져 주는 것도 아니다.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특히 2주 전, NHG와의 연습 게임을 떠올려 보면 NHG에게 밀린다거나 하여 돈을 잃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이거 진짜 돈 되는 건가? 그럼 딱 100만 원만 걸어 보자. 100만 원 정도는 별것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