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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38화 (138/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38화-----------------

“누나, 이거 진짜 망한 거 아니에요? 과장 하나도 안 보태고, 스태프 숫자가 더 많아 보이는데.”

“큰 소리로 말하지 마, 멍청아. 지금 다들 기분 날카로운 것 몰라?”

그 시각.

이번 아이돌 그룹의 미국 진출을 준비한 ATB 측의 소속사뿐만 아니라, 그들의 미국 도전을 촬영하던 극한도전 팀 역시 비상이 걸려 있었다. SNS 언론 플레이를 포함한 대대적인 홍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ATB라는 이름값에 비해 공연의 관객석이 무척이나 허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극한도전의 PD, 이정주는 소속사와는 다른 의미로 발을 동동 굴렀다.

“큰일 났네, 이거. 분량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

“왜요? 찍어 놓은 거 많지 않아요?”

“망하는 모습 밖에는 없잖아. 그걸 방송에 내보내라고? 너 내가 경위서 쓰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은 거냐?”

평소라면 오히려 좋다고 망하는 모습을 내보냈겠지만, 이번 ATB의 미국 진출은 한류 확산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나랏돈까지 들어간 대형 프로젝트.

많은 이권이 걸려 있는 만큼, 편집의 방향을 자신의 멋대로 한다면 후일을 장담할 수 없다.

잠시 끙끙대던 PD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뒤따라오는 방송 스태프를 바라봤다.

“아, 그러고 보니 정찬이 걔는 게이머들 연습실 가서 뭐 좀 찍었대?”

“자기 말로는 그럭저럭 괜찮은 장면이 많다고 하던데요? 최소한 5분은 나올 수 있을 거래요.”

“그래? 그거 다행이네. 원래는 ATB 공연을 풀타임으로 잡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조금이라도 끼워 넣을 수밖에. 5분? 흠, 정찬이가 5분이라고 했으면 10분은 쓸 수 있겠군. 안 그러냐?”

“네에…….”

“됐고, 인터뷰나 따러 가자. 한 컷이라도 더 잡아야지. 나가자.”

그 후, PD는 카메라맨과 리포터, 그리고 통역을 대동하고 인터뷰를 할 사람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ATB의 열성적인 팬들로 보이는 사람이 앞에 있음에도 PD는 두리번거리며 인터뷰할 사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본 리포터가 물었다.

“뭐 찾고 계세요? 그냥 저기 저 팬이랑 인터뷰하면 되는 것 아니에요?”

리포터가 가리킨 곳에는 제법 많은 팬들이 모여 있었다. 처음에는 썰렁했지만, 공연 시작이 다가오자 사람이 꽤나 몰려든 것이다.

하지만 PD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혀를 쯧, 차며 말했다.

“저건 한국에서 따라온 팬이잖아. 쟤랑 인터뷰해서 뭐하게?”

ATB를 보기 위해 한국의 팬들이 몰리긴 했지만, 한인만 몰려서야 미국까지 온 의미가 없다.

전부 한인이라고 하면 그냥 한국이나 일본에서 활동하고 말지, 비싼 돈 들여 미국까지 온 의미가 없는 것이다.

공연장을 한참 둘러보던 PD는 결국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 씨. 구경 온 사람이 뭐 다 한국에서까지 따라온 빠순이 아니면 유학생밖에 없냐? K-POP 정말 인기 있는 거 맞아?”

“PD님, 저기 저 사람은 어때요? 저런 사람 찾고 계신 것 맞죠?”

리포터가 가리킨 곳에는 자그마한 키의 금발 소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일행과 함께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

“야, 이거 완전 망한 것 같은데? 큭큭, SNS 보니까 언론 플레이만 엄청나게 해 놨던데, 꼴좋다.”

“아냐, 슬슬 사람 모여드는 것 같네, 뭐.”

처음에는 관객석이 텅텅 비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특히 몇몇 사람은 상당한 팬인지 각종 응원 도구를 갖고 서 있었는데, 대포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몇몇 팬의 모습은 평범한 팬이 아니라 마치 베테랑 기자처럼 보였다.

“쳇, 망하는 게 더 재밌는데. 꼴에 인기는 좀 있나 보네.”

“어? 저거 극한도전 촬영 팀 아닌가? 여기로 오고 있는 것 같은데요?”

영어를 잘하지 못했기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던 차석진이 급하게 말했다.

차석진이 가리킨 곳에서 꽤나 많은 수의 촬영 팀이 정명의 일행이 있는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촬영 팀의 리포터는 통역을 통해 쿠론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K-POP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신가요?”

“몰라요.”

“예?”

“공짜 표 뿌린다기에 그냥 한번 와 본 거예요. K-POP이 뭔지 잘 몰라요.”

너무나도 솔직한 쿠론의 대답에 촬영 팀 전부가 굳어 버렸다.

그런데 그때, 쿠론을 찍고 있던 카메라맨이 놀란 듯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었다.

“어! 쿠론 맞죠? 정명 씨랑 석진 씨도 있네?”

*

그 후, 4시간이 지났다.

의외로 ATB의 공연은 꽤 성공적이었다.

비록 미국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이 오지 않았지만 교포, 그리고 미국에 거주하는 아시아권 팬들이 공연장을 많이 찾아 줬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쿠론은 먼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정명은 운 좋게도 PD의 초대를 받아 ATB 미국 진출 뒤풀이 파티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뒤풀이 장소로 가는 정명의 차 안에 오늘은 조금 특별한 손님들이 있었다.

“오, 잘생겼다. 진짜 잘생겼다. 그죠?”

“그러게. 왜 인기 있는 줄 알겠어.”

“하하, 감사합니다. 쑥스럽네요.”

차석진이 아이돌 멤버의 외모를 칭찬하고 정명이 맞받아친다.

차의 뒷좌석에 있는 건 ATB의 아이돌 멤버 두 명.

그들은 게임에 꽤나 관심이 있는지, 프로 게이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여 동승하게 된 것이었다.

-오빠! 가지 마요!

-사랑해, 사랑해!

아직 공연의 열기가 식지 않았는지, 아직까지도 차 밖에서 ATB의 열성적인 팬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뒷좌석에 앉은 두 명의 아이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와, 원래 타고 왔던 밴 말고 다른 차에 나눠 타길 잘했다. 밴은 꽉 막혀서 아예 가지를 못하네.”

“그러게. 진짜 지겹다, 지겨워.”

“하하, 팬분들이 많이 극성인가 봐요.”

“그렇죠, 뭐. 정명 씨는 모르겠지만, 팬들이라는 게 참… 팬이라는 이름하에 툭하면 사생활을 침범한다니까요.”

그 둘은 쌓인 게 많았던지, 팬들이 얼마나 자신들을 귀찮게 구는지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정명은 그 이야기에 적당히 맞받아쳐 주며 앞서 가는 차를 따라가는 데 집중했다.

“어, 여기는… 뒤풀이 장소가 이쪽인가요?”

“전에 와 보신 적 있으세요?”

“예, 꽤 자주. 그런데 이곳은 조금…….”

뒤풀이 장소는 한인 타운 내의 식당이 아닌, 미국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술집이었다.

한인 타운에 가면 ATB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고, 또 미국에 왔으면 미국 음식을 먹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논리가 작용한 탓에 이곳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왜요? 이 동네, 별로 맛없어요? 반응이 별로신데.”

“아뇨, 그건 아니고… 하하.”

정명은 말을 흐리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켠 정명이 오늘의 프로 리그 경기가 막 끝난 것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냥 한인 타운 가지, 뭘 또 본토의 맛을 즐긴다고 여기까지 와, 오기는?’

그들이 잡은 뒤풀이 장소는 정명에게 익숙한 장소이자 매번 경기가 펼쳐지는 방송국 근처의 맛집. 정명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은 곳이었다.

“저기인가 보네요.”

차에서 내린 정명의 일행은 방송국 스태프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때, 붉은 머리의 여자가 핸드폰을 들고 주뼛주뼛 정명의 일행에게 다가왔다.

“저기… 괜찮다면 사진 좀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여자가 말한 것은 간단한 영어였기에 일행은 모두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라는 예명을 가진 아이돌이 뭐라고 대답하기 직전, 멀찌감치 있던 PD가 갑자기 이곳으로 달려왔다.

“선미 씨, 사진 찍어도 되니까, 사진 찍어 달라는 요청 다시 한 번만 해 달라고 해 주세요. 그리고 야, 정찬아. 빨리 카메라 들고 와. 컷 하나 잡겠다.”

당사자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PD가 나서서 수락했다.

매니저는 사진은 안 된다며 말렸지만, PD는 ‘성공적인 미국 진출의 증거’라며 매니저를 설득했다.

“알겠습니다. 위에는 제가 말해 놓을게요.”

“좋아요. 정찬아, 준비됐지?”

“예!”

사진 한 번 찍자고 5분 넘게 기다리고 있던 여자는 겨우겨우 OK 사인이 떨어지자, 그제야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여자가 카메라를 들고 다가간 사람은 아이돌 멤버가 아닌, 카메라 바깥에서 멀뚱멀뚱 서 있던 정명이었다.

“정명? 저, 사진 좀…….”

“네? 아, 예.”

예상치 못한 반응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당황했다.

혹시 정명을 ATB의 멤버로 착각한 건가 싶었던 PD는 통역을 시켜 다시 한 번 물었다.

“저기요? 그 사람은 ATB의 멤버가 아닌데요?”

“ATB? 처음 듣는데. 새로운 구단이 생겼나요?”

“혹시 K-POP 좋아하시나요?”

“K-POP? 그건 또 뭐예요?”

비슷한 일은 계속되었다.

가게에 들어가서는 종업원이, 밥을 먹으면서는 옆 테이블에 있던 사람이.

ATB의 멤버가 평화롭게 밥을 먹는 동안, 정명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는 체를 하는 팬들을 향해 웃어 줘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매니저는 팀장이라는 사람을 불렀고, 소속사의 팀장은 무척 예의 바르게 다가와 명함을 건넸다.

“저희가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한 인맥과 노하우가 전혀 없어서… 나중에 도움 주시면 꼭 사례하겠습니다.”

“예? 저는 도움 드릴 게 없는데요. 저 아는 연예인 없어요.”

“그거야 모를 일이죠. 한국에 오시면 저희 회사 건물에 한번 들르시죠. 우리 소속사에 핑키핑쿠라는 걸그룹이 있는데, 만나고 가실 수도 있어요.”

그 말에 가만히 있던 차석진이 반응했다.

“어, 정말요? 요즘 메롱 차트 장기 집권하고 있는 그 그룹이요?”

“하하, 예. 그 그룹이요. 아니면… 송하니 아시죠? 송하니와 만날 기회가 있을 수도 있으세요. 아니, 송하니는 제 선에서는 확답을 못 드리지만 운이 좋다면 아마도…….”

“송하니요? 프로 게이머? 저 송하니랑 팀도 짜서 해 본 적 있는데, 걔가 거기 소속사였어요?”

정명은 반가운 마음으로 지난번, 한국에서 용병으로 팀을 짰을 때 찍었던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팀장이라는 사람은 이제 예의 바른 것을 넘어, 굽실대기 시작했다.

*

그 후, 2주가 지났다.

드디어 정명이 극한도전의 방송에 얼굴을 비췄다.

사실 정명은 극한도전이 언제 방영되는지 몰랐지만,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연락이 빗발쳐서 강제로 알게 된 것이었다.

정명은 방송을 곧바로 보지 않고 영어 자막이 지원될 때까지 기다린 뒤, 다른 팀원들과 함께 방송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 인터뷰는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에라이, 너 같으면 그걸 방송에 쓰겠냐? 그, 뭐였지? ‘K-POP? 몰라요, 그딴 거.’라고 했던가.”

방송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 보겠다며 핸드폰 시계로 시간을 재고 있던 차석진은 ‘오오’ 하며 웃었다.

“벌써 우리 방송 분량이 10분 넘었어요. 잘해야 5분이라고 하더니!”

게이머 팀의 방송 분량은 예상했던 5분, 10분을 한참 넘은 20분.

방송 내용은 팀원들이 연습을 하는 모습, 대회에서 활약을 한 것, 그리고 상당한 인기를 가진 것을 증명하는 것들이 주 내용이었다.

“어우, 공중파 탔다고 부모님한테 연락이 엄청 오나 봐요. 형은 이런 거 없었어요?”

“글쎄, 부모님은 별말 없어서 잘 모르겠네.”

차석진은 역시 공중파의 파급력은 케이블과는 수준이 다르다며 혀를 내둘렀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학창 시절의 친구들까지 연락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송이 나가자 언론 또한 발 빠르게 움직였다.

[프로 게이머와 콜라보레이션을 한 한국형 한류 진출 사업 계획 검토 중.]

정명이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모습이 꽤나 인상 깊었는지, 한류 확산을 위해 북미의 프로 게이머들과 협조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물론, 정명이 사전에 들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별 지랄들을 다 하는군.”

“고위 공직자가 직접 언급했다고 적혀 있는데… 되도록이면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겠냐. 하루 종일 카메라맨이 붙어 있다는 거, 생각보다 상당히 피곤했어. 당분간 방송 촬영은 대통령이 부탁한다고 해도 안 할 것 같다.”

정명은 그것으로 방송 관련 일은 끝난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시작이었다.

뒤늦게 몸이 달아오른 다른 방송국들이 수없이 취재 요청을 보냈던 것이다.

물론, 정명은 그 요청을 딱 잘라서 거절했다.

“이제 리그가 중반으로 접어드는데, 무슨 촬영을 또 해? 이제 슬슬 스퍼트 올릴 시점인데.”

하지만 그것으로 포기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정명을 대신할 사람들을 찾았다.

-저 한국 방송 타게 되었습니다. ㅎㅎ-저도요. 바쁘긴 하지만, 특별히 취재 요청 허용함…….

현재 북미에 진출해 있는 선수들의 SNS에서는 방송국의 취재 요청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빗발쳤고, 실제로 촬영을 한 사람들도 제법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별 재미를 보지 못했고, 프로 게이머 취재 열풍은 그렇게 차츰차츰 사그라졌다.

*

며칠 뒤.

리그가 집중적으로 펼쳐지는 ‘슈퍼 위크’에 대비하여 연습 계획을 짜던 정명은 뜻밖의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났습니다. 당신은 ‘명문 구단’의 명예를 걸고 경기에서 승리해야만 합니다.]

[도전자: 팀 OMA]

‘뭐야, 이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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