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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21화 (121/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21화-----------------

“아, 이거 벌써 하는구나, 올스타전?”

“이번부터 올스타전 투표를 겨울에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경기는 리그 끝나면 바로 할 거라고.”

“잘 바꿨네. 월드 챔피언십하고 같이하면 일정이 너무 빡빡해.”

올스타전 투표.

대중들에게는 처음 공개되는 것이지만, 사실 선수들을 포함한 관계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올스타전 투표 페이지에는 각 선수들이 무게감 있는 포즈를 취하고 자신을 뽑아 달라 말하고 있었으니까.

즉, 선수들은 일주일 전에 이미 올스타전 프로필 사진 촬영을 마쳤던 것이었다.

“벌써 투표한 사람이 몇만 명이나 되다니. 야, 사오미, 너 나한테 투표했지? 지난번에 내가 너한테 소고기 먹여 줬잖아, 소고기.”

“예, 예, 했죠. 꼭 가시길 바랄게요, 일본.”

“석진아, 너는? 이상하게 내 투표함에서 한 표가 비는 것 같은데?”

“지금 하겠습니닷!”

정명은 다른 팀원들에게 일일이 말을 걸며, 나한테 투표했냐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현재 정명의 순위는 2위. 이대로라면 일본에 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인데,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팀 내의 분위기는 밝았다.

“한 팀당 2명 출전 제한이니까, 잘하면 가실 수 있겠는데요, 일본에?”

한 팀당 2명제한.

한 팀에서 2명까지만 올스타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면 올스타가 아니라, 그냥 제일 잘하는 팀 다섯 명이 나와 버릴 게 뻔했으므로 제한을 건 것이었다.

“형도 공약을 내거는 건 어떠세요?”

“공약? 무슨 공약?”

“그 왜, 다른 선수들은 자기가 올스타에 뽑히게 되면 시청자들에게 스킨 1,000개를 돌린다거나, 어디에 기부한다 한다고 하던데. 그런 것, 뭐 없어요?”

올스타전에 뽑히게 되면, 기본으로 1만 달러를 받는다.

한화로 따지면 1,100만 원 정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이 선수들을 오라고 했지만, 비시즌에는 쉰다는 이유로 불참한다는 선수들이 많아지자, 결국 미끼를 내건 것이었다.

‘공약? 나도 올스타전에 꼭 가고 싶기는 한데, 이런 게 과연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라서…….’

사오미의 말로는 어떤 선수는 뽑히게 되면 수영복만을 입고 게임 방송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거나, 연습실에 초대하겠다거나 하는 것을 내걸었다고는 하지만 정명은 그렇게 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수영복은 또 뭐야? 누구 좋으라고. 걔 혹시 여자야?”

“아뇨. 그런데 반응은 좋았다고…….”

“그런 거 안 해도 될 놈은 된다. 오히려 거기에 신경 쓰기보다는, 리그에서 좋은 모습 보여 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중국 팬들은 올스타전을 이벤트라기보다 또 하나의 리그라고 생각고 있는 것 같으니까.”

며칠 뒤.

선수 대기실에서 몸을 풀고 있는 XTC의 대기실에 몇몇이 찾아왔다.

평소라면 무대에서 인사만 했을 해설진이 대기실까지 찾아온 것이다.

“와, 이거 중국을 대표하는 올스타 멤버 아니십니까?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장린. 그리고 올스타에 아직 뽑히지는 않았는데요.”

“‘아직은’ 말이죠. 제가 볼 땐, 시간문제 같던데?”

해설자들은 이미 정명이 올스타전에 뽑힐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명이 보여 준 플레이에서 워낙 인상 깊게 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정명 씨, 오늘 수도승 나오나요? 한 번만 더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어서.”

“밴이 풀려야 쓸 수 있죠, 어디 제 맘대로 할 수 있나요. 하하.”

정명이 깜짝 실력을 보여 준 뒤로도 몇몇 경기가 치러졌지만 정명은 단 한 차례도 그 캐릭터를 다시 사용하지 못했다.

상대방에서 무조건 첫 번째로 밴을 해 버렸으니까.

한 번만 보여 줬기에 그때 보여 줬던 모습이 우연인지 단순히 컨디션이 좋았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위험 요소는 처음부터 배제한다는 판단이었다.

‘나 같아도 그러겠다. 밴 카드가 3개나 되는데, 굳이 풀어 줄 이유가 없으니까.’

때문에 정명은 그 이후로 숙련도 LV5가 된 캐릭터는 솔로 랭크뿐만 아니라, 연습 게임에서도 아예 단 한 판도 플레이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회에서 못 쓰는 거, 그 시간에 다른 캐릭터를 연습하겠다는 것이다.

혹시 다른 캐릭터도 하다 보면 LV5로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정명의 목표는 그렇게 숙련도 캐릭터를 늘려서, 밴 카드로도 막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만약 그런 캐릭터가 100개가 넘는다면… 참 재밌겠네. 올 마스터라고 불러도 되겠어.’

잠시 후.

밴픽이 시작되자,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석의 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수도승이 풀렸어?”

“미쳤네. 무슨 자신감이지?”

팬들이 웅성거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번 XTC의 상대, 팀 JUG가 지난번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캐릭터, 수도승을 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지, 무슨 이유가 있어서 풀어 준 건가?”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 아냐?”

“아니면 미리 카운터를 준비해 둔 것일 수도 있어.”

팬들은 각자 그 이유를 추측해 봤지만, 그 속내는 팀 관계자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다.

웃으며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은 이제 조금은 긴장한 채로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분위기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정명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뭐야, 혹시 연습을 안 해서 꺼내지 않는다던가 하는 건 아니겠지?”

“빨리 픽 해라!”

이번에는 볼 수 없는 건가, 하고 팬들이 초조해지기 시작할 때쯤. 정명은 요즘 전혀 쓰지 못했던 캐릭터를 선택창에 올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관중석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나왔다! 쫄보 놈들 때문에 맨날 밴 당했는데!”

“야! 너 지금 어디냐? 뭐, 데이트? 닥치고 지금 TV 틀어. 지금 이거 놓치면 후회한다, 너.”

떠들썩하던 것도 잠시.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다시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석의 팬, 아리이나 콴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역시 한국인들은 진짜, 뭔가 타고난 것 같다. 아, 맞아. 오늘 경기 끝나면 조공이라도 보내 줄까?”

그 말을 들은 그녀의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 콴을 쳐다봤다.

“명함 줬는데 연락 안 온 뒤로는 꼴도 보기 싫다며, 이년아.”

“아, 몰라. 역시 잘하는 사람 응원하는 게 재미있어.”

-지금 매코 선수가 정명의 레벨링 속도를 따라가질 못하고 있거든요. 이렇게 되면 붕대 괴물로는 운신의 폭이 무척이나 좁아지죠.

-정글을 장악당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탑 라이너가 위험하죠?

정명은 라인전을 폭파시켜 버리며, 해설자들에게 조기 퇴근의 꿈을 심어 주고 있었다.

경기 전, 정명이 얼핏 본 결과 상대방 정글러의 피지컬은 80대에 겨우 올라선 상태.

10이나 차이 나서야, 도저히 상대방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중국이 왜 그렇게 피지컬 좋은 선수 영입에 목을 맸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그냥 피지컬 90도 아니다.

정명은 항상 컨디션이 최상인 상태였고, 사소한 것 하나라도 승부가 갈리는 최상위권 플레이 특성상 그건 무척이나 크게 작용했다.

“형, 지금 다이브 각 보이지 않아요?”

“될 것 같다. 미니언 몰아. 이대로 탑 다이브 가 보자.”

이미 레드 지역 정글에 와드를 빼곡히 박아 놨기에, 상대 정글이 올 염려는 없다.

만약 온다면 분노의 발차기를 날려 줄 생각이었지만, 상대방도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럼 간다.”

[이크!]

정명이 상대의 시야 밖에서 음파를 날렸다.

그와 동시에 자연스레 이어지는 와드 차고 발차기. 완벽한 설계였다.

-모든 건 결과가 말해 주는 거거든요. 이번 경기에서 수도승을 풀어준 건… 최악의 선택이었네요.

-정명 선수의 피지컬이 요즘 물이 오른 느낌입니다. 중국에 왔을 때랑 비교하면, 완전히 천지 차이예요. 이 사람, 27살인 것 맞죠? 주민등록증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 스킬을 쓰는 사람을 잡으려면, 상대편에서도 영웅을 내보내야 하지 않을까요?라…….’

정명은 경기를 하던 도중, [5초 영웅] 스킬에 적혀 있던 스킬 설명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그런 내용 적혀 있는 것을 보고도 별생각 없이 넘어갔지만, 새삼스레 그때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이건 그냥… 컨디션만 제대로라면, 이 정도의 상대에게는 질 이유가 없겠어.’

피지컬이 90이 넘는 괴물들을 잡으려면 상대하는 쪽에서도 피지컬 90이 넘는 괴물을 갖다 놔야 한다.

정명은 이번 경기를 하며 그렇게 느꼈다.

*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올스타전 투표가 점점 막판으로 치닫자, 선수들은 SNS에 점점 자극적인 공약을 걸며, 아주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뭐지… 그렇게 일본이 가고 싶나? 중국은 일본 엄청 싫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일본은 LOH를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나라였다.

그래서 게임사가 올스타전을 일본을 무대로 선택한 듯했는데, 이벤트를 꽤 성대하게 열 것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슬슬 투표의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할 시각이었기에 정명은 투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보기로 했다.

곧이어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한 정명은 어마어마한 득표 수에 입을 쩍 벌렸다.

‘와, 이건 무슨 500만 표가 넘네. 미친 것 아냐?’

기껏해야 30만, 40만이면 1등인 한국 리그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에서는 최소 500만 표 이상은 얻어야 상위권에 갈 수 있는 듯해 보였다.

그 어마어마한 규모를 본 정명은 살짝 긴장한 채 정글러 부분의 투표로 이동했다.

‘휴… 이 정도면 확정이라도 봐도 되겠다.’

팀 ME에서 유명한 선수들과 포지션이 안 겹친 것이 주요했다. 올스타전에는 각 팀당 2명만 나올 수 있으니까.

ME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다져 온 지지 기반이 있으므로, 만약 그들이 상대였다면 정명이 아무리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 줬다 하더라도 쉽지 않은 상대였을 것이다.

정명이 안도의 한숨을 돌리며 솔로 랭크나 돌리려던 그때,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송하니에게서 온 인터넷 전화였다.

그리고 송하니는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오빠! 나 뽑았지, 응?

“뭐가?”

-올. 스. 타. 전!

“한국 거는 관심이 없어서 잘 안 봤는데?”

정명도 한국 아이디가 있었기에 물론 투표는 할 수 있었다.

물론 귀찮았으므로 그런 일은 하지 않았지만.

“아, 맞다. 너도 공약 걸었냐? 다른 애들은 당선 공약 하나씩 걸었다던데.”

“고옹약? 그런 거 없는데? 그냥 5번 찍어! 알지? 우리가 남이가~ 우히히.”

하니는 이상하게 부산 사투리를 흉내 냈는데, 왠지 바보 같아서 정명은 킥킥 웃어 버렸다.

“알았다. 내 소중한 한 표, 너에게 주마.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훌륭한 게이머가 되시길 바랍니다.”

-웅, 땡큐. 아, 그리고 오빠도 올스타 거의 확정인 것 같더라? 축하!

전화를 끊은 정명은 투표를 하기 위해 오랜만에 한국 사이트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꽤 특이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뭐야, 득표율 85%? 미친 이건 그냥 몰표잖아? 지금 보니, 그냥 자랑하고 싶어서 보라고 했구만? 이거.’

하니는 정명이 굳이 투표하지 않더라도 그녀를 지지하는 콘크리트층이 있어서 당선은 이미 확정으로 보였다. 실력뿐만 아니라, 인기도가 포함된 결과였다.

거기다가 뽑힌 사람들의 얼굴들을 보니, 한국 타도를 외치며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중국과는 달리 한국은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반쯤은 인기 투표네, 이거. 중국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 멤버가 될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데.’

그리고 그날 저녁, 정명에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동시에 들려왔다.

좋은 소식은 물론, 올스타전 멤버로 정명이 선정되었다는 것이었다.

[올스타전]

올스타전은 당신의 추종자를 가장 많이 모을 수 있는 기회 중 하나입니다.

올스타전에서 당신의 실력을 증명하여, 당신의 명성을 올리십시오.

정명은 메시지창이 뜨는 것과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오오, 내가 뽑혔다. 친구들, 나 일본 간다!”

“기념품 기다리고 있을게요.”

좋은 소식은 물론, 정명이 올스타전 멤버에 뽑혔다는 것이었다.

물론 득표 수를 봤을 때 이렇게 되리라고 진작부터 예상하고 있었지만, 당선이 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는 건 또 다른 일이었으므로 정명은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오늘 내가 저녁 쏠게. 다들 나가자!”

기분이 좋아진 정명이 호기롭게 외쳤다.

그런데 기분 좋게 나가려는 정명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왕수, 팀 ME의 감독이었다.

‘뭐지, 이 꼰대 놈이. 나에게 대체 무슨 볼일로…….’

정명은 왠지 불길한 느낌을 받으며 전화를 받았고, 왕수는 곧바로 용건을 늘어놓았다.

-혹시 리그 끝나고 무슨 계획 있으십니까?

“쉬려고 했는데요. 왜 그러시는지…….”

-잘됐네요. 리그 끝나면 올스타전 합숙을 할 생각이라서요. 그럼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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