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너 해고! >
“정말요? 허, 그것 참.”
정명은 잠시 말을 멈추고, 에리가 직장에서 별로 좋은 평판을 받지 못했던 것을 떠올렸다.
‘뭐, 어쩔 수 없지. 이 바닥에서는 못하면 잘리는 거 아니겠어? 특히 코치라는 위치에 있다면, 실력뿐만 아니라 사내 정치 능력까지 필요하니까.’
에리의 하소연을 들었지만, 사실 정명은 그렇게 크게 걱정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직장을 옮기는 것 정도야 미국에서, 그리고 이스포츠라는 동네에서는 무척이나 흔히 있는 일이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일인 것이다.
때문에 정명은 막 해고당한 사람의 서러움만 적당히 들어주기로 했다.
“더러워서 진짜. 그냥 때려 치워버려요. 갈 데가 없는 것도 아니고.”
“흑...이력서 또 내기 싫어...”
“애는 뭐래요? 그 녀석 성격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은데. 같은 팀이잖아요?”
“아직 말 안했어. 얘기 할까 말까 고민 중이야.”
그렇게 10분간 에리의 하소연을 다 들어준 정명은, 이제 자신은 중국으로 떠날 거라 말하며 통화를 끝냈다.
그 다음, 핸드폰을 들어 XTC의 매니저에게 메일을 보냈다.
[매니저님, 슬슬 다른 선수들 좀 연습실로 모아주세요. 이제 휴가 끝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정명은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중국 공항에 도착한 정명은 에리에게서 온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팀에서 나왔어 :< 쿠론도 같이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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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도착한 정명은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직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연습실 안에는 매니저가 배를 긁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일찍 오셨네. 다른 팀원들은 아직 안 왔어요.”
“다 모이기로 한 게 내일 까진데...이것 참. 앞으로는 팀 분위기를 조금 빡빡하게 해야 겠어요.”
매니저는 정명과 둘이 있게 되자 무척 어색했는지, 화제를 돌렸다.
“어...TV라도 보실래요? 지금 막 재미있는 거 하려는 참이었는데...”
북미에서처럼, 리그가 없는 공백기를 메우기 위해 TV에서는 특집 방송이 한창이었다.
방송 주제는 차기 시즌인 섬머리그에 나오는 팀들의 분석과 예측.
그리고 정명과 함께 방송을 보고 있던 매니저는, XTC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벌떡 일어서서 TV 앞으로 밀착했다.
“오, 우리 팀이다!”
“조금 옆으로 비켜 봐요. 안 보이잖아요.”
정명 또한 과자봉지로 움직이던 손을 멈추며, 화면에 집중했다.
-팀의 리더는 한국인이면서도 북미에서 활동하다 중국으로 건너온, 복잡하네요.
-정명이라는 선수죠. 이 팀의 특이한 점으로는 정글러가 서양인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들어온 정보로는, 은퇴하고 다른 사람이 왔다고 하지만요.
특집 방송에서는 전 프로게이머라는 사람과 해설자가 나와, XTC의 경기를 품평하기 시작했다 해설은 XTC를 이번 리그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는 팀이라 말하면서도, 미드에 무척이나 의존하는 팀의 전력, 그리고 상대적으로 약한 바텀 라인을 약점으로 꼽았다.
-5:5 게임에서 혼자 분발해서 게임을 이끄는 건, 한계가 있거든요. 아마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 하면, 1부 리그에서는 하위권에 머물 겁니다.
-그런데, 그 혼자 게임을 이끄는 선수가 만만치 않다는 말이죠. 다음 화면을 보시죠.
그리고는 정명의 근황이라며, 한 경기 영상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얼마 전, 정명이 미국에서 특집방송에 출연해서 활약했던 그 영상이었다.
-크랙선수,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특이하게 미드 라인이 아니라 원딜러를 했군요. 그래서인지 확실히 이해도가 약간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서포터랑 붙어있을 때면, 완벽한 팀플레이로 그걸 다 커버하네요.
크랙이라는 선수가 정명과 에리의 플레이를 상당히 좋게 평가하기 시작하며, 하위권에 갈 것 같다는 예측을 수정하여, 중위권에는 안착할 수 있을 것 같다 결론지었다.
그 말을 들은 정명은 머쓱하게 웃으며 과자를 꺼내먹었다.
“괜히 부담되네요. 솔직히 저건 조금 운빨도 있었는데.”
”아뇨! 원딜 엄청 잘 하시네요. 이참에 원딜러로 옮기시는 것은 어때요? 뭐, 당신이라면 뭐든 잘 할 것 같긴 하지만.”
매니저의 칭찬에, 정명은 고개를 저었다.
“게임을 이끌어 나가려면 초반부터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데, 원딜러는 그게 힘들잖아요. 후반까지 가야 빛을 보는 캐릭터니까. 별로 좋아하게 될 것 같지는 않아요.”
정명이 지나쳐 온 길을 생각하면 이런 대답은 당연했다. 정명은 SAO시절부터 소년가장처럼 혼자 무언가를 해 나가야 했으니까.
“그런데 저 여성분은 누구세요? 프로인 건 확실하고...”
“백수에요.”
“네?”
“아니, 날아오르기 위해 시대를 기다리며 웅크려 있는 잠룡이라고 할까...”
“오오, 역시 비범한 분이시군요! 어쩐지...”
정명은 멍하니 화면을 보는 매니저를 지나쳐, 코치가 쓰는 컴퓨터에 앉았다.
그리고는 이번 시즌에 자신이 상대해야 할 팀들의 경기 영상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크랙이라는 사람의 판단이 틀린 게 아냐. 지금 우리 팀의 전력이라면, 하위권에서 빌빌댈 수밖에는 없겠네. 확실히 잡을 수 있을만한 팀이 몇 개 없어. 이대로라면 망한다...’
하위권까지 갈 정도로 승률이 떨어지면, 2부 리그에서 높은 승률로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지므로, 반드시 중위권 이상을 달성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2부 리그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든 해 봐야지. 처음에는 적응 문제도 있으니, 약한 팀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정명은 그렇게 생각하며 매니저를 돌아봤다.
“우리 첫 번째 상대가 누군지 그런 건 이제 알 수 없어요? 그 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그랬잖아요?”
정명이 웃으며 농담을 던졌지만, 매니저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안 되죠! 이제는 그랬다간 큰일 나요. 업계에서 퇴출당하게 될 수도 있어요!”
......
그 다음 날.
XTC 팀원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휴가로 재충전이 잘 되었는지, 다들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그런데, 아직 한 명이 도착하지 않았다.
매니저는 어리둥절해 하며 다른 선수들을 돌아봤다.
“어라? 시우는? 아직 안 왔나?”
“아까 전화해 보니까, 일이 있어서 조금 늦는다고 전해달라던데요? 3일 뒤에나 올 것 같다고...”
“그래? 흠, 바쁘다고...”
그 말을 들은 매니저는 인상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잡고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10분 뒤. 매니저는 시우의 SNS 계정에서 그가 왜 이곳으로 안 오는지에 대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이놈 여자친구랑 놀고 있었구만? 내가 연애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매니저는 한숨을 푹 쉬고는, 정명에게 다가갔다. 그가 좀 더 늦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 놔야 했으니까.
“저기, 정명. 시우 선수 말인데요...”
“잠깐만요. 이것만 마저 보고.”
정명은 시우라는 서포터의 플레이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가 처음 프로게이머가 되었을 때의 영상부터, 최근의 플레이 모습까지.
최근의 플레이는 당연히 2부 리그 승강전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것이었고, 그 모습을 반복해서 재생하던 정명은 화면에 나와 있는 시우의 캐릭터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 선수와의 계약이 얼마 안 남았죠? 서포터 시우와의 재계약은 하지 않는 쪽으로 진행해 주세요. 합의해서 계약을 종료하거나, 남은 기간 동안은 식스맨으로 벤치에 앉혀만 놓거나.”
그 단호한 결정에 당황한 것은 매니저였다.
“예? 이건 좀 갑작스러운데, 혹시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번 소집에 늦어서 방출하는 것은 조금 과한 처분이 아닌지...”
“그냥 못 하니까 내보내는 거예요.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요?”
“하,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대체할 사람을 구한다는 게...”
“적당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으로 바꾸겠습니다.”
시우라는 선수는 피지컬도, 운영 능력도 평범하다. 때문에 그냥 쓸 수도 있지만, 다른 대체인력이 나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애초부터 교체 대상 1순위였던 사람인 것이다.
이런 선수 영입에 관한 사항은 보통 한 선수가 이래라저래라 할 정도로 작은 이슈가 아니다. 하지만 정명의 경우에는 조금 특이했다. 구단주의 무한한 믿음에 따라, 정명의 계약서에는 이런 권한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가 익숙지 않았던 매니저는 정명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조금 날카로우신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무슨 일이라기보다는 오래 알고 지냈던 선수들이 은퇴하는 것 보니까, 제가 너무 느긋하게 지냈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뿐이에요.”
......
시우에게 방출 통보를 내린 다음 날. 3일 뒤에 온다던 시우가 하루 만에 연습실로 들어왔다.
그는 방출 결정에 무척이나 화가 났는지, 들어오자마자 씩씩거리며 정명에게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봐, 내가 당신보다 이 팀에 오래있었어! 당신이 뭔데 나가라 마라 하는 거야. 내가 이 팀에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안돼요. 잘 해야 해요. 상대 선수에게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봐달라고 할 거 아니잖아요. 그리고...알죠? 당신의 최근 2년간의 플레이에서 발전한 부분을 찾기 힘들다는 걸.”
시우는 인정하기 싫은지, 빽빽 소리를 질렀고, 정명은 매니저에게 경비를 부르라 손짓하며 말했다.
“그럼 이 팀에서 평생 근무하실 줄 알았나요?”
“그건 아니지만, 네가 그러면 안 되지. 사람이 물건이야? 네 기분에 따라 해고해도 되는 거냐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었다면, 공무원을 지망하셨어야죠. 다른 스포츠와 달리, 왜 이 스포츠판이 길어야 1년 정도로 계약하는지 모르시는 것은 아닐 텐데요.”
하지만 시우는 계속해서 난리를 피웠고, 결국 경비에 의해 쫓겨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매니저는 황당하다는 듯 시우를 욕했다.
“누가 보면 돈이라도 떼먹은 줄 알겠네. 남은 계약기간동안 돈 준다는데 뭐가 문제야? 저거 알고 보니 완전 꼴통이었네.”
......
그리고 그 다음 날.
시우와 바톤터치를 하듯, 두 명의 사람이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얼마 전. 백수가 된 두 모녀였다.
“여기야? 오 제법 좋네.”
쿠론과 에리는 나란히 XTC의 연습실로 왔다. 혼자 오라고 하면 쿠론이 안 올게 뻔했으니까, 제 엄마랑 같이 오라고 한 것이다.
정명은 통 크게도 둘에게 제법 괜찮은 연봉을 제시하며 그들을 불러들였고, 마침 일이 떨어졌던 둘은 정명의 제안을 기쁘게 수락했다.
‘두 명이니까 지출이 의외로 크겠지만... 상관없잖아? 내 돈 쓰는 것도 아니고, 구단주 돈 쓰는 건데.’
쿠론은 정명의 예전 생에서, 상당히 유명했던 게이머 중 한사람이었다.
비록 중간에 사고를 치는 바람에 게이머 생활을 오래 지속하지는 못 했지만, 실력만큼은 인정받은 게이머. 그게 바로 정명의 앞에 있는 꼬마였다.
정명은 예전의 일을 떠올리며, 쿠론의 능력치 창을 슬쩍 열었다.
[미어스 쿠론]
피지컬 : 72/89
판단력 : 75/95
오더 : 55/70
정신력: 55/84
‘상당한 능력치와 잠재력...역시 이 정도는 되어야 유명했던 프로게이머라고 할 수 있는 거지. 이 녀석은 일단 팀에 넣고 굴려야겠다. 조금만 훈련시키면 쓸 만 해 지겠어.’
정명은 굳이 전생에서 유명했던 프로게이머들을 찾아다니며 ‘제발 우리 팀으로 들어와 주세요.’ 따위의 짓을 생각은 없었지만, 앞에 떨어져있는 돈을 줍지 않을 정도로 고고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떨어져 있던 돈, 쿠론은 막 생각났다는 듯, 뒤돌아서 정명을 바라봤다.
“궁금한 게 있는데, 전에 있던 팀원이 나갔다며? 왜 나가게 된 거야?”
“못 해서 내보냈어.”
“뭐?”
“왜 놀라? 못 하면 나가야지 어떡해? 우리는 그 사람에게 기회를 줄 만큼 줬고, 더 이상 그에게 시간을 줄 수는 없었어. 여긴 학교가 아니잖아.”
정명의 말에, 쿠론은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에리의 일이 생각나서 무척 기분 나빠하면서도, 쉽게 해고를 말하는 정명에게 약간 겁을 집어먹은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코치가 다가왔다.
그는 조용한 방으로 정명을 밀어 넣고는, 정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래, 이 녀석들을 어디다 쓸 거야?”
“어디다 쓰긴요, 당연히 선수로 쓰려고 그렇죠. 아, 에리는 코치 일 좀 가르쳐 주시고요. 그쪽에 관심이 있는 것 같으니.”
“그건 상관없는데... 쿠론은 어쩌고? 저 녀석, 원래 미드에 있던 녀석이잖아. 너랑 포지션 겹치는데?”
“안 그래도 팀원들의 포지션 변경을 하려고요. 저는 정글로 포지션을 변경 할까 생각중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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