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90화 (90/226)

< 30. 돌파구 (1) >

“연습 금지? 뭔가요, 그건 또.”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놀라지 않는 정명이었으므로, 정명은 허둥지둥 대는 매니저를 뚱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다른 팀들이 연습을 해 주지 않겠다고 했다니까요? 이제는 말을 걸어도 대답도 안 해요. 분명 어제의 인터뷰가 영향을 미쳤던 게 분명합니다. 지금이라도 사과를 하는 게.....”

“어제의 인터뷰?”

정명의 승자 인터뷰는 중국 특유의 약간의 과장을 담아서, 커뮤니티에 올라갔다.

어떻게 보면 약간 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인터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나서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으므로, 정명은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기분이 나빴다고는 해도, 설마 협회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감정적으로 움직일까요. 연습 금지? 그거 공문으로 내려 온 거예요?”

“당연히 아니죠, 그런 거, 공문으로 내렸다가 유출이라도 되면 정말 큰일 나요.”

“에이, 그러면 아니겠죠. 제가 다른 사람들한테 한 번 물어볼게요.”

하지만 정명은 다른 중국 선수들에게서 정확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연습 금지 조치가 치러졌다는 것은 정말인지, 친구 창에 있는 다른 선수들에게 연락을 해 봐도 답장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말로 하면, 일명 읽씹이었다.

‘흠, 아예 대답을 안 하겠다는 건가? 뭐, 이 정도는 예상 했고.’

정명은 대답을 해줄 만한 사람을 찾아서 핸드폰 연락처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마침 적당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통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짝퉁 기자였다가 그 다음에는 통역사, 이제는 잘 나가는 팀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메이였다.

그녀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눈다는 듯, 소근소근대며 정명에게 신신당부했다.

-이거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 통화 내용부터, 지금 통화했다는 사실 그 자체도요.

“걱정 마세요. 나 입 무겁습니다.”

-알아요. 그러지 않았으면 전화도 안 받았을 테니까. 아무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정치적인 사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치적인 사안이요?”

-자세한 얘기를 들으려면 구단주를 직접 찾아가 보세요. 그런데 조심하셔야 해요. 이런 일로 전에 해체한 팀이 있거든요. 슬레이어라고, 협회의 공격을 받다가 결국 구단주가 팀을 해체해버렸었죠......

결국 정명은 XTC의 구단주를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구단주에게서 이야기의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당연히 인터뷰 때문에 협회장이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그 정도 도발이야 평소라면 쉽게 넘겼을 테지요. 하지만 쌓인 게 있어서 협회장의 화가 폭발한 것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설명 드리자면... 우리는 협회에 소속되어있지 않습니다. 창단 초기에 가입하라고 얘기는 들었는데,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아서 가입을 하지 않았거든요.”

발단은 WEM이라는 해외 리그에서 선수 보증금이라는 걸었던 것이 문제였다. 한 명당 300불 정도로, 참가하려면 보증금을 내고 참가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보증금이요?”

“네. 협회 측은 그런 괘씸한 리그에는 참가하면 안 된다며,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 저희도 참여 요청을 받아서 보이콧 참여는 했는데, 협상에 진전도 없고 해서 그냥 보증금 내고 참여하겠다고 했거든요. 그 이후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긴 했습니다만, 이렇게 나올 줄이야...”

‘메이의 말 대로 정치적인 사안인가. 인터뷰 이상하게 했다고 괜히 나만 욕먹었군. 젠장.’

정명은 조금 짜증이 났지만, 구단주가 준 비싼 차를 마시자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구단주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표했다.

“제가 최대한 수습 해보겠습니다. 정명 선수도 그동안은 최대한 저쪽을 자극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일이 더 커지니까요.”

구단주가 걱정스레 말했지만, 그저 웃을 뿐이었다.

“하하, 글쎄요. 생각해 볼게요. 그런데 일을 더 키우는 게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

그 시각.

한국에서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고 있는 인기 게이머, 한유라는 경기에서 승리하자 기분 좋은 마음으로 부스에서 나왔다.

하지만 좋았던 기분은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사라져버렸다. 자신들을 따라온 팬들을 보며, 다른 팀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늘도 팬들이 엄청 많이 따라 나왔네...아직 다른 팀의 경기가 남아 있는데...’

아직 다음 팀들의 경기가 남아있지만, 팬들은 한유라 팀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그 뒷모습을 보기 위해 다 따라 나와 버렸다. 여러 모로 낯부끄러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유라는 금방 얼굴을 피며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자본주의의 팬 서비스였다.

“누나! 여기요, 여기!”

“거기 뒤에 밀지 좀 마쇼! 앞에도 자리 없거든?”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할게요.”

그녀가 속해 있는 팀은 다섯 명의 미녀 프로게이머들이 모인 팀, 팀 키카오였다. 원래는 용사파티라는 장난스러운 이름의 팀이었지만, 대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이름이 바뀌었다.

애초에 실력이 없어도 인기를 끌 법 한 외모를 갖고 있는 선수들이였다.

하지만 팀 키카오는 거기에 더해 실력과 팬 매너까지 갖추었다. 인기의 요소는 전부 갖추고 있는 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잘 나가지는 않았다. 이 팀이 이렇게 잘 나가게 된 것의 시작은, 팀에 한 사람의 에이스가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졌어. 우리 팀에 남아있으라고 하기 미안할 정도로.’

그리고 그 에이스는 지금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한 덩치 큰 남자가 멈춰 세웠다.

“잠깐, 잠깐! 저기, 싸인 좀 해줄 수 있나? 어...친구가 팬이라서.”

“헷, 물론이죠. 사랑을 담아서...자, 여기요!”

남자에게 싸인을 건넨 뒤, 마침내 다섯 명의 팀 모두가 차에 올라탔다. 선수들의 모습이 사라졌지만, 팬들은 여전히 밖에서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송하니! 송하니! 오늘 경기 잘 봤어요!”

“하니야, 나랑 결혼하자!”

하지만 그 에이스는 차에 타자마자 표정을 바꾼 지 오래였다. 천사 같은 모두의 아이돌에서, 만사가 귀찮은 게으름뱅이 백수로.

그리고 그녀는 짜증난다는 듯, 창밖을 응시했다.

“경기도 끝났는데, 왜 귀찮게 구는 거야? 남은 경기나 제대로 볼 것이지. 아, 그건 뭐예요 매니저오빠?”

“방금 팬들이 건네 준 선물들이야. 너한테 꼭 전해주라고 하더라.”

그렇게 말하며 매니저가 송하니에게 선물을 건넸지만 송하니는 관심 없다는 듯, 구석에다가 선물상자를 치워놓았다.

“에잉, 귀찮아. 매니저오빠. 이따가 저것 좀 다 열어서 확인해줘. 이상한 거 있으면 버리고.”

“하니야, 그래도 팬한테 받은 건데...”

“몰라, 지난번에는 이상한 거 들어있었단 말이야. 안전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 다음에 볼 게. 어차피 쓸모없는 거만 들어 있을 텐데, 뭐. 게임 한정판 CD나 보낼 것이지.”

그리고 송하니는 이제 열성 팬이라는 이름하에, 짜증나게 군다는 자신의 팬들에 대해 불평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팬이면 무슨 짓을 해도 면죄부가 생기는 줄 알아? 삼촌 팬이라면서 내 몸을 끈적하게 쳐다볼 때면, 정말 소름 돋거든? 카메라 없었으면 한 대 패줬을 거라고.”

“어, 응. 그래. 나쁜 녀석이네.”

송하니가 본격적으로 짜증을 내기 시작하자, 매니저가 알아서 입을 닫았다. 짜증을 내는 송하니를 건드려봐야, 좋은 꼴을 못 본 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한유라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가만히 있어야겠다...’

어린 나이에 인기를 끌어서인지 꽤나 거만하고 제멋대로지만, 누구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대회에 나가면 혼자 맵을 휩쓰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 송하니에게 굳이 나서서 쓴 소리를 할 사람은 팀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송하니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숙소에 도착할 때 까지 재잘거리는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핸드폰을 보며 입을 닫고 있었고, 한유라는 그런 송하니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

‘뭐 하는 거지? 엄청 집중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유라가 송하니의 화면을 슬쩍 쳐다보니, 송하니가 한참 동안 보고 있었던 것은 어떤 메일이었다.

그리고 한유라가 뭐하냐고 물어보기 직전, 나른하게 누워있던 송하니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외쳤다.

“우리, 연습실로 돌아가면 바로 연습 하자!”

“뭐? 경기를 치른 당일은 무조건 쉴 거라며? 원래는 안 쉬었는데, 네가 엄청 우겨서 결국 쉬게 된 거잖아?”

“아 몰라, 몰라. 연습 할 거야. 알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랑 연습을 하고 싶은데...”

@@@@@

XTC의 연습실.

평소라면 연습으로 시끄러웠을 시간이지만, 오늘 연습실에는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정명은 핸드폰 연락처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연락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 많은데...대부분 미국에 있는 사람들이네. 젠장.’

미국 사람들이라면 연습 금지는 무슨 개가 짖는 소리냐며,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안타깝게도,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들과는 연습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아직 멀었나? 분명 내 기억으로는, 어떤 회사가 대륙 건너서도 원활하게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을 개발했던 것 같은데...’

정명의 기억대로, 과학기술의 발달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술이 상용화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했기에 당장 쓸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때문에 정명은 한국 정도에서 아는 사람을 찾아봐야 했다. 한국이라면 중국과 원활한 게임진행이 될 테니까.

‘대만도 가능할지 모르겠네.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그리고 정명은 시차 때문에 전화 대신, 메일을 몇 사람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고, 정명이 ‘오늘은 솔로랭크나 돌려야 겠다...’ 라고 생각할 때 쯤, 딱 한 사람에게서 답장이 왔다.

“다행이다. 한 사람 응답해줬어. 야, 모여 봐. 이 녀석이 연습 해줄 것 같다!”

정명은 반색하며 송하니와의 화상채팅을 연결했다.

“얼굴 보는 거 되게 오랜만이다, 너.”

-하이용!

화면 너머로 손을 흔들며 웃고 있는 송하니가 보였다.

그와 동시에, 정명의 뒤로 다른 팀원들이 느릿느릿 걸어오기 시작했다.

“다행이네요. 연습해주겠다는 팀이 있어서. 아, 누구에요? 그런 착한 사람들이.”

“한국 팀이야. 그러니까, 카키오?...카카...야, 너 팀 이름이 뭐였지?”

-키카오, 키카오 프렌즈잖아. 오빤 아직 내 팀 이름이 뭔지도 몰라? 실망이야 진짜!

그 말과 동시에 연습실에 정적이 흘렀다.

정명은 뭔가 싶어서 갑자기 조용해진 팀원들을 뒤돌아보았고, 동요하고 있는 중국인 팀원들을 볼 수 있었다.

“방금 그 목소리...하니 아냐?”

“뭐, 디바? 그러고 보니...”

무슨 일인지 몰라 눈만 끔뻑대고 있는 것은 조시와 정명뿐이었다.

매니저를 포함한 중국인 팀원들은 갑자기 들린 송하니의 목소리에, 순식간에 정명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진짜 디바야, 진짜?”

“하니, 하니다! 하니쨩!”

“안녕하세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중국인 팀원들은 각자 아는 한국어를 쏟아내며 소리쳤고, 정명은 그런 팀원들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야, 뭐야. 너희들 쟤 알아? 아니, 그것보다 한국어 언제부터 그렇게 잘 했어?”

“정명이야말로 왜 그렇게 태연해요? 송하니잖아요! 디바!”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던 거예요? 왜 말 안했어요?”

다급하게 묻는 티웨이에게 정명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답했다.

“안 물어 봤으니까.”

그리고 호들갑을 떠는 팀 동료들을 본 송하니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오빠 팀원들이야? 뭐래? 나 유명하다고 하지, 응? 히히. 내가 이런 사람이야. 이제 오빠 나랑 연락하려면 대기표 끊어야 할지도.

“아니. 전에 돈 떼먹고 달아났던 사기꾼이랑 닮은 것 같다고 흥분해 있는데. 지금 너 잡으러 가겠대.”

-뭐야, 거짓말 하지 마! 요즘 나 중국에서 인기 엄청나거든? 지금 CF요청 다섯 개가 밀려있단 말이야!

정명의 말에, 송하니가 발끈하며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옆에서 ‘빨리 하고 자자, 피곤해 하니야’ 하는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정색하며 본론을 꺼내놓았다.

-메일은 읽었어. 뭐, 여러 가지 이유로 연습을 못 하고 있다며? 해외 나가서 고생이네~ 그리고는 마치 선심 쓴다는 듯, 흐흥, 콧바람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럼 나랑 같이 연습 할래? 지난번에는 졌지만, 이제는 내가 더 잘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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