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88화 (88/226)

< 29. 나는 자신 있는데? (1) >

정명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온 것은 조시, 코치, 그리고 전력 분석 팀 2명.

정명은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이들과 함께 계약할 것을 요청했고, 구단주는 흔쾌히 허락했다.

어지간해서는 정명의 말에 OK라고 해주는 구단주였다.

‘구단주가 대단히 협조적이니까 일이 금방금방 풀리네. 매니저도 무척이나 협조적이고.’

정명은 그렇게 생각하며, 황반뚱이라는 매니저가 건넨 리그 일정표를 건네받고는, 정독하기 시작했다.

비록, 내용이 모두 중국어로 되어 있어 전혀 읽을 수가 없었으므로 다시 돌려줘야만 했지만.

“휴, 센스 있게 번역 좀 해서 주시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잖아요.”

“앗!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작업해서 다시 드리겠습니다.”

“그건 됐고요, 이제 팀원 소개나 좀 해주세요.”

그 말에 매니저가 중국의 팀원들을 바라보며 바쁘게 손짓했다.

그러자 팀원들은 하나 둘 정명에게 90도로 인사하기 시작했고, 이내 미국에서 온 다른 사람들과도 안면을 텄다.

그러는 동안, 정명은 그들의 능력치창을 살피고 있었다.

[티웨인]

피지컬 : 68/85

운영능력 : 57/73

팀워크 : B+

포텐셜 : B-

[간절함] :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많이 있습니다. 근면함과 참을성이 30% 증가합니다.

‘역시 기본은 하는 사람들이야. 잘만 하면, 1부 리그에 금방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정명이 그들의 능력치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옆에 있던 매니저가 덧붙였다.

“이름 외우기 힘드시면 적당히 1호, 2호, 3호로 부르시는 건 어떨까요.”

“하하. 농담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아, 영어 되시는 분이 누구셨죠?”

“접니다. 티웨인이라고 합니다.”

왜소한 체구의 남자가 손을 들며 앞으로 나왔다.

발음이 조금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그 정도로도 감지덕지였으므로 정명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 내에서 통역할 일이 있으면 당신에게 말 하겠습니다. 아셨죠?”

“예.”

“그리고 지난 시즌에는 XTC가 리그 중위권에 머물고 있었다고 했던가요? 실력을 좀 더 보고 싶은데.”

그 말에, 매니저가 냉큼 끼어들었다.

“바로 연습 해보시려고요? 바로 준비할까요?”

“그렇게 할...아니, 지금은 잠깐 쉬죠. 시차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니, 오늘 내일은 푹 쉬겠습니다.”

정명의 심정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었으나, 옆에 있던 조시가 고개를 맹렬하게 저었기에 관두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방에 쉬러 들어간 사람들은 마치 신생아라도 된 것 마냥, 쓰러져 잠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정명은 게임사에서 지급받은 중국 아이디를 이리저리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없다.

미국에서 중국까지 날아온 게 무척 힘들었는지, 조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시체처럼 늘어져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미국에서 온 사람 중, 하루 만에 회복한 것은 정명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이제는 새로운 팀원이 된 사람이 다가왔다. 상태 창에 근면하다고 적혀 있던 티웨인이었다.

“정명, 솔로랭크 하나요? 같이 하실래요?”

“아뇨. 괜찮아요. 지금은 점수 차이가 너무 많이 나니까, 나중에 부탁합니다.”

그렇게 말한 정명은 게임 클라이언트 창으로 들어가 로그인을 하려고 했지만, 이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이거 뭐가 이리 복잡하죠? 서버가 1서버부터 35서버까지. 서버가 30개가 넘네. 흠...8서버로 가면 되나요? 중국인들은 숫자 8을 좋아하니까.”

“아뇨, 1서버로 가셔야 해요. 다른 곳은 다 쓰레기에요. 1서버에서만 진정한 고수를 볼 수 있죠.”

진정한 고수라는 말에 정명이 속으로 피식 웃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1서버에 겨우겨우 로그인을 한 정명은 또다시 뜨는 이상한 버튼에게로 시선을 멈췄다.

“그런데 이 버튼은 뭐예요? 북미나 한국 서버에선 볼 수 없었던 건데.”

“그건 친구 찾기 기능이에요.”

“친구 찾기?”

“20위안 (3000원) 정도 내면 엄청 귀여운 여자, 혹은 고랭커의 게이머가 당신과 한두 판 게임을 해 주는 기능이에요. 운 좋으면 고랭커 귀여운 여자도 만날 수 있고요.”

버튼을 눌러보려던 정명은 티웨인의 말을 듣고는 한숨을 푹 내쉬며 커서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솔직히 궁금하기는 한데, 됐습니다. 나중에 조시가 하는 거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할게요. 그 녀석은 분명 할 테니까.”

“음, 다른 것도 있어요. 100위안 정도 내면, 엄청 귀여운 남자애랑 게임을 할 수 있다고도 하던데, 그건 잘 모르겠네요.”

중국 서버는 한국과 북미와는 달리, 엄청나게 상업적이었다.

돈 돈 돈. 뭘 하려고만 하면 돈을 내라는 알림창이 떴고, 정명은 솔로 랭크를 시작하기 전부터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 참. 혹시 중국 팬들의 반응은 어때요? 우리 욕하고 있지는 않죠? 아니면 관심도 없나?”

“아뇨, 중국 팬들 사이에서도 정명과 조시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이나 관심을 끌고 있어요. 북미 사람들이 중국을 정벌하기 위해 왔다고. 보통은 재미있어 하는 분위기에요.”

“하하, 정벌까지야.”

“만약, 솔로랭크를 돌리면 당신을 분명 알아볼 거예요. 프로게이머 아이디는 곧장 관전에 표시되니까.”

티웨인의 말은 정말이었다.

솔로랭크를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아는 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xiaomiao : 당신이 북미에서 건너왔다는 게이머?

“맞아요. 절 아시네요.”

norrong : 오, 중국에 온 걸 환영해. 그거 알아? 나, 당신이 첫 경기에서 퍼스트 블러드를 따낸다에 100위안 걸었다고.

정명의 걱정과는 달리, 중국 사람들은 의외로 정명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명은 중국에 오기 전, 그놈의 중화사상 때문에 사람들이 배타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조금 우려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3분 뒤.

마침내 중국서버에서의 첫 솔로랭크가 시작되었다.

@@@@@@

몇 시간 후.

저녁이 되었지만, 조시는 밥만 대충 먹고 다시 자러 올라갔다.

정명은 무슨 병이라도 걸린 것 아니냐며 놀렸지만, 조시는 무시한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어휴, 오늘 연습도 글렀군. 아, 매니저님?”

“예.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우리 첫 상대는 어떤 팀인가요? 녹스라고 했던가?”

정명의 물음에, 매니저는 흐흐 웃으며 답했다.

“사실 이번 개막전에 대한 관심이 예상보다 높아졌거든요. 노랑머리 사람들이 중국에 왔다고, 아주 기대가 커요.”

“그래서요?”

“첫 경기부터 지면 자존심이 무척 상하잖아요? 꼭 이겨야 하는 경기니까, 대진을 조금 조절했어요. 조금 약한 팀으로. 녹스는 지난 시즌, 12개의 팀 중 10위를 기록한 팀이니까 쉽게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정명은 놀랐다는 표정을 지어줄까 하다가, 관두었다.

이제 중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필요 없어요. 아니, 그보다 그런 게 가능한 겁니까? 나로써는 상상이 잘 안 되는데요.”

“네. 방송국 사람한테 조금 찔러 주면 돼요.”

“아니, 매니저님. 리그 일정표 빼왔다는 것도 그렇고, 지금 말도 그렇고. 조금 불법적인 일에 손을 많이 대시는 것 같은데, 후.”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저 4년제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에요. 지식인입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린 매니저는 말을 돌리며, 나가서 술이나 마시자고 정명을 꼬셨다.

한 식구가 된 기념으로, 자기가 사겠다는 것이었다.

“이 근처에 꽤 인기 있는 바가 있거든요. 거기 바텐더가 모델 하던 사람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좋은 곳이에요. 가실래요?”

“일단 아셔야 할 게, 우리는 놀러 온 것 아닙니다.”

“친목도 다질 겸 해서 가시는 건 어때요? 거기에는 한국인 게이머들도 자주 온다고요.”

정명은 어쩔까 하다가 조시가 들어간 방에 잠시 시선을 고정하더니, 이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좋아요. 근데 저 비싼 거 먹을 거예요. 아셨죠?”

잠시 후.

근처 연습실의 게이머들이 자주 모인다는 것은 정말이었는지, 정명은 한국의 게이머를 곧장 볼 수 있었다.

이원희라는 한국의 게이머가 바텐더에게 치근덕거리며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저 사람 이원희 아닌가? 중국으로 간 다음 소식이 안 들리길래, 어디 납치라도 당했나 했는데.’

정명의 기억으로는 처음에 그는 무척 순한 인상의 프로게이머였다.

그리고 그 인상대로, 학교를 다니다가 곧바로 게이머가 되어 세상 물정 모른 채, 사회에 나오게 된 사람.

정명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그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중국의 ‘돈 맛’을 본 후, 180도 변했다.

프로게이머 시장이 호황이어서 돈이 되긴 하는데, 너무 되는 게 문제였다.

어린 나이에 홀로 해외에 나와 큰돈을 벌다보니,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꼴을 보아 하니, 돈 펑펑 쓰며 살고 있나 보구만. 이른 나이에 선수 하나 버려놓은 거지 뭐. 나랑은 상관없지만.’

눈치 없게도, 매니저는 그런 이원희에게 다가가 합석을 권유했다.

같은 한국인이니만큼, 정명과 말이 통할 것이라 생각하여 벌인 일이었다.

매니저의 합석 권유에, 이원희는 호탕하게 웃으며 정명을 돌아봤다.

“정명 선수? 알죠, 알죠. 요즘 화제의 선수 아닙니까. 기념으로, 제가 술 살게요. 이쪽으로 앉으십쇼.”

‘후, 만취한 사람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라는 거야. 매니저 이놈 진짜 이거...’

정명은 한숨을 푹푹 쉬며 그의 옆자리에 앉고는, 적당한 화제를 꺼냈다.

.....

“아, 솔로랭크 돌리셨어요? 어때요, 다들 엄청나게 잘 하죠?”

“한국만큼 승부욕이 강하더라고요. 솔로랭크인데도 상당히 진지하게 하던데요.”

“여기는 북미와는 달리, 만만치 않은 곳이에요. 아시죠? 중국과 북미의 수준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 적응하려면 꽤 노력하셔야 할 겁니다.”

술에 취해 얼굴이 시뻘개진 이원희는 자꾸만 중국과 북미의 비교를 하며 북미를 깎아내렸다. 일명 ‘중국 부심’이었다.

그리고 그런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정명은 점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북미가 못 하는 건 맞지만, 그래도 내 고향과도 같은 곳인데, 너무 함부로 말 하네.’

그렇게 생각한 정명은 자세를 삐딱하게 하며, 팔짱을 꼈다.

“제가 월드챔피언십 가서 중국 팀 이랑도 연습 많이 해 봤는데요. 그렇게 엄청나게 차이나지는 않아요. 그에 비하면, 2부 리그나 솔로 랭크 같은 것은 뭐, 누워서 떡 먹기죠.”

정명의 빈정거림에, 이원희는 입을 다물었다.

월드 챔피언십에 나간 경력은 프로게이머들에겐 훈장과도 같았으니까.

마치 골드 리그에 있는 사람이 다이아 리그 사람 앞에서는 제대로 말을 못 꺼내는 것과 같았다.

“하, 월드 챔피언십...그렇게 잘나신 분이 왜 이곳으로 오셨죠?”

이제는 따지듯 말했지만, 정명은 태연하게 답했다.

“돈 많이 준다기에 왔죠.”

“얼마나? 100만 위안?”

“50만 달러. 위안화로는 330만 정도. 이 정도면 올 만 하지?”

그 말에 이원희는 또다시 할 말을 찾지 못 했다.연봉이 자신보다 두 배 이상 높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흥, 돈 많이 버신다니 당신 것 까지 산다는 말은 취소입니다. 당신이 먹은 것은 당신이 계산하세요.”

“알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투덜거리며 계산하고 나가려던 이원희가 카운터에서 붙잡힌 것이다.

정명이 보기에, 이원희는 꽤나 유창한 중국어로 관리인에게 따지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한 번, 더 긁어 봐. 진짜.]

[손님, 자꾸 이러시면 저희도 나름대로의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야, 애들 불러.]

“왜 저래요?”

매니저는 잠시 그들의 말다툼을 엿듣더니, 킥킥 웃으며 말했다.

“잔액 부족이라고 하는 것 같네요. 흐흐, 재밌겠는데요. 여기 관리인, 꽤 험악한 사람인데.”

계산서에 적힌 금액은 3000위안. 한국 돈으로는 50만 원 정도의 금액이었다.

이원희는 그제야 술이 확 깼는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그런 그에게 정명이 피식 웃으며 다가갔다.

“대신 계산할 테니 나중에 갚으세요...는 농담이고, 만난 기념으로, 제가 살게요. 하하.”

“뭐요? 나 돈 있습니다!”

“있으면 지금 계산 하세요. 아니면 저기 덩치 큰 아저씨들이랑 노시던가.”

정명이 가리킨 곳에는 관리인이 부른 경비들이 입구를 막고 서 있었다.

의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게서 조폭 비슷한 분위기가 났다.

“이익...!”

계산까지 해줬는데, 이원희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정명이 카드를 긁는 것을 지켜보던 이원희는 욕설을 내뱉으며 뛰어나갔고, 정명은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리고 XTC의 매니저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관리인에게 그동안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사정을 모두 전해들은 관리인은 정명이 무척 대범한 사람이라며 연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 다음 날.

정명의 계좌에는 이원희라는 이름으로 6000위안이 입금되었다.

@@@@@

며칠 뒤, 미국의 게임 채널 방송국.

아직 미국의 리그가 열리려면 시간이 좀 남아있지만, 방송국 사람들은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게임 채널이 생긴 이래 최초로, 미국에서 중국의 리그를 중계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던 사람들 중의 한명인 앨버트는 이상하다는 듯 모니터 한 곳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야, 잠깐. 원래 대진표가 이랬나? 정명의 첫 상대는 녹스라는 팀이었잖아.”

앨버트의 말에, 동료는 모니터를 슬쩍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답했다.

“됐어. 중국 애들 저러는 게 한 두 번이냐?”

“뭐 그야 그렇지. 아, 여기 그 한국인이 있는 팀이잖아. 구단주가 이번에 돈 좀 써서 전력 보강했다던데, 걱정이네.”

ⓒ 추어탕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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