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50화 (50/226)

14. 윈터리그의 결말 (完)

새벽 1시. GLG의 미드라이너 스케스벤은 상대로 잡힌 사람들의 랭킹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가져다 대고는 그가 친하게 지내는 래디언즈의 미드라이너, 크롬에게 불평하기 시작했다.

“야. 상대가 왜 저래? 그랜드 마스터를 단 사람이 둘 밖에는 없고, 나머지는 마스터 리그에서 빌빌거리는 애들 뿐 이잖아.”

“형님.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같은 새벽에는 원체 사람이 없어서 가끔 이런 매칭이 잡히고는 하니까요.”

게임 매칭 알고리즘은 되도록 실력이 비슷한 상대를 매칭 시켜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랭킹 상위권으로 갈수록 사람의 숫자가 들어들기에 매칭이 점점 어려워지게 된다.

그런데 거기에다 사람이 거의 없는 새벽이라면? 극소수의 유저만 남게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력 차가 크더라도 매칭을 시켜줄 때가 있는 것이다. 게임 한 판 하자고 1시간, 2시간 기다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니까.

물론 게이머 입장에선 그런 것은 알 바 아니었기에, 스케스벤은 욕을 하며 마지못해 마우스를 잡았다.

“알 게 뭐냐. 차라리 막판 하고 나가는 게 낫겠어. 계속 저런 녀석들이랑 하다 보면 내 실력까지 줄어드는 것 같으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스케스벤은 의욕 만만인 상태였다. 사실 그는 양민학살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무척 성격 나쁘게도 말이다.

그러나 게임시작 10분이 지났음에도, 스케스벤은 여전히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 하고 있었다.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적 팀의 정글러 때문이었다.

‘씨, 뭐야? 저놈은. 타이밍 더럽게 잘 맞추네.’

솔로킬 각이 보여 타이밍을 잡다보면, 어느 새 지원을 와서 라이너를 살리고는 가버린다.

그 뿐만이 아니다. 맵을 무척 잘 읽는지, 미리 숨어 있다가 상대 정글러가 오면 같이 잡아먹는 일명 ‘역갱’도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다. 어쩌다가 정글러를 하게 됐다고 어리바리 하고 있는 크롬과는 무척 비교가 되는 모습인 것이다.

스케스벤은 잠깐 정글러의 아이디를 슬쩍 들여다보고는 처음 보는 정글러의 정체를 묻기 시작했다.

“디아블로? 저 녀석 누군지 아는 사람? 처음 보는 아이디인데.”

-모르겠는데요.

-저도 처음입니다.

-마스터 리그인 것을 보면, 프로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프로라고 생각하자니 리그에서 떨어진 프로들은 벌써부터 짐 싸서 휴가를 갔고, 지금도 리그를 뛰고 있는 프로들이라고 생각하자니 4강에 진출한 사람들은 그랜드 마스터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그런 근거를 토대로 아마추어일 것이라는 의견이 모아졌고, 게임이 끝난 뒤. 스케스벤은 대기실에서 정명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

[정글러 포지션의 이해도가 증가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여 포지션 변경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읽고 있던 정명은 생각지 못한 말에 눈을 껌뻑였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프로가 될 생각이 없냐고?”

정명은 아무래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 한 것 같아, 오해를 풀어주려 키보드에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스케스벤은 정명의 말도 기다리지 않고 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꽤 하네. 야, 너. GLG의 2군 멤버로 들어와라. 이런 거 보통 선수가 하는 일은 아닌데, 운이 좋네.

신이 난 듯 떠드는 것은 스케스벤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정명이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지, 정명을 알아보지 못 한 같은 편 아마추어 팀원들 까지 흥분하며 떠들었다.

“와, 저 사람 GLG 미드라이너 스케스벤 아니에요? 이거 엄청난 기회 같은데. 바로 연락 해봐요.”

“GLG는 2군만 가도 연봉이 상당하다던데. ㄷㄷ; 나 이런 거 처음 봄. 내가 다 떨리네.”

‘스케스벤? 저 사람이?’

OMA 돌풍에 관하여 묻는 기자에게 ‘왜 인기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쓰레기 팀’이라고 혹평한 사람이 바로 스케스벤이었다.

한국에서라면 엄두도 못 낼 막말이었지만 이곳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수위였고, 처음 트래시토크를 받아본 정명은 꽤나 당황했었다.

‘당시에는 별 말 안했지. 그때는 인기 팀이랑 싸워봐야 좋을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억울하게 욕을 먹었던 예전 일을 떠올린 정명은 소소한 복수 삼아 그의 성격을 긁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죄송. 안 될 것 같네요.”

-혹시 다른 곳에서 오퍼가 온 게 있나?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GLG도 돈으로는 어디 밀리는 곳이 아니라고. 네가 프로게이머로써 커리어를 키우고 싶다면...

“안 한다고. 몇 번을 말 해.”

정명이 재차 거절하자, 스케스벤은 정명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런 프로도 안 된 워너비 새끼가 좋게 봐줬으면 적당히 튕기고......

‘하하. 역시나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는군. 입이 참 험하네.

뜻대로 일이 술술 풀려 잠시 킥킥대고 웃던 정명은 그에게 재미있는 제안 하나를 했다.

“저랑 1:1 해서 이길 수 있다면 생각 해 볼게요.”

자존심 싸움으로 많이 하고들 하는 1:1 대결의 승리조건은 솔로킬을 내거나, 타워를 밀거나, 먼저 미니언을 100마리 처치한 사람이 이기게 된다. 만약 솔로킬을 낼 때까지 한다고 하면 게임이 몇 시간이 지나도록 안 끝날 수도 있으니까.

1:1 대결에 임하는 정명과 스케스벤의 차이는 딱 하나였다.

스케스벤은 미드라인에 서는 캐릭터를 골랐다. 늘 그래왔듯이.

하지만 정명은 미드라인에 서는 캐릭터를 고르지 않고 사거리가 긴 원딜 포지션의 캐릭터를 고르고는 사거리를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두드려 팼다. 변수가 많은 5:5 싸움과 달리, 1:1 싸움은 명백하게 좋은 캐릭터라는 게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잠시 뒤. 일찌감치 타워를 밀어버리고 의기양양하게 대기실로 돌아온 정명에게 스케스벤은 욕을 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야! 이거 내가 손이 안 풀려서 그래. 한판 더 해!”

“저 자야 되는데요.”

“쫄았냐? 한판 더 하면 질 것 같지?”

스케스벤은 정명을 도발하여 어떻게든 한 판 더 해보려고 했지만, 매너 없는 것으로 따지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LOH 한국 서버에서 몇 년을 굴렀던 정명이었다.

그랬던 그가 저런 싸구려 도발에 넘어갈리 없었고, 정명은 한 마디만을 남겨놓고 게임을 종료했다.

“ㅎㅎ 그보다 님, 프로 맞아요? 그런 것 치고는 되게 못 하시네요. 수고요.”

......

일주일 뒤.

긴장된 표정으로 OMA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됐다.

플레이 오프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준비했다.

이제 해야 할 것은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OMA 사람들이 방송국 라운지에 들어오자마자 먼저 들어와있던 GLG의 미드라이너, 스케스벤이 정명을 뚫어져라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알았나보네. 그게 나였다는 걸. 근데 어쩌라고?’

둘이 눈싸움을 하는 가운데, 한 남자가 정명의 등 뒤로 다가왔다. 정명이 고개를 돌려 보니 그 남자는 전 SAO 멤버이자 같은 동료였던 새비였다.

“새비! 오랜만이에요!”

“어, 그래. 근데 저건 뭔데 눈을 저리 부라리고 있냐? 야 너. 이쪽에 볼 일 있어? 그럼 이리 와서 말 해.”

그러자 스케스벤은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험악하게 생긴 새비가 등장하니 자동으로 분노조절이 된 것이었다.

스케스벤이 자리를 서둘러 벗어나자, 새비는 씩 웃으며 정명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응원 차 온 거야. 다른 애들은 잘 모르겠는데, 아마 보고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힘내라고.”

새비는 정명에게 부담이 될까 싶어 되도록 짧게, 그리고 응원한다고 말하는 선에서 대화를 마쳤다.

정명은 그 배려에 고마워하며 무대 위의 부스로 향했다.

......

‘피지컬, 운영능력, 팀워크. 절대 우리에게 밀리지 않는다. 이걸 어쩌면 좋을까.’

정명은 라인을 밀고 홈으로 귀환하는 동안, 시스템 창을 확인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오더 스탯 : 50]

[팀의 결속 : C+랭크]

[신뢰의 오오라 : 팀의 결속이 C+랭크에서 B 랭크로 증가합니다. 또한, 팀원과의 친밀도가 빠르게 증가합니다.]

‘우리 팀이 못 하는 것이 아니야. 우리도 처음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 했다고. 다만 저 녀석들도 잘 할 뿐인 것이지.’

한때 애용했던 스킬인 가혹한 지휘 스킬.

그 스킬을을 사용할 때의 능력치 보정은 5초간 결속 B+증가, 집중력 150% 증가이다.

따라서 지금 OMA의 실력을 보면, 그 스킬이 쓸모없을 정도로 실력이 상승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파워 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략을 걸 때마다 GLG에게 턱턱 가로막혔으며 무엇 하나 뜻대로 풀리는 게 없었다. 정명은 답답함을 느끼며 이온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과연 폼으로 3년 연속 월드챔피언십에 진출한 것은 아니라는 건가.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 이 경기는 정명의 프로게이머 생활 중 가장 중요한 경기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때문에 정명은 그동안 얻었던 깨달음과 능력 같은 것을 총 동원해야만 했다.

-갱킹이 미드에 집중되는군요. 한 놈만 팬다 이건가요?

-미드는 꽉 틀어 막혔습니다. 그렇다면 OMA의 다른 선수들이 무언가 해 내야 해요. LOH는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닌, 5:5 게임이니까요.

계속되는 집중 공격에 지칠 법도 하건만, 정명은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차라리 나한테 와라. 솔직히 내가 제일 잘 버틸 수 있으니, 다른 애들에게 공격이 집중되는 것 보다는 그게 낫겠지.’

그러나 그런 희생이 의미 없게도, 정명은 버텼으나 다른 팀원들이 버티지 못했다. 라인전에서 박살이 난 것이다.

-첫 번째 세트는 GLG의 승리로 끝납니다. 통계에 따르면 첫 세트를 따낸 팀이 최종적으로 승리할 확률이 70%나 된다는군요. 과연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요?

게임이 허무할 정도로 빨리 끝난 뒤, 코치가 허겁지겁 부스로 들어와 다른 팀원들의 어깨를 주무르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이렇게 큰 경기는 처음이지? 하던 대로만 해. 그러면 우리도 충분히 해볼만하니까.”

“네. 그럴게요.”

“피터, 많이 긴장되면 세수라도 하고 오는 건 어때?”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정명은 다시 한 번 공포의 지휘관 스킬을 써볼까 하다가 피터의 대답에 잠시 미뤄두었다.

‘긴장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일단 두고 볼까. 집중력이 100%로 고정된다면 긴장으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중요한 순간에 정신을 집중한다고 해도 집중력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니까.’

그러나 2경기가 진행되며 정명은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OMA가 2경기에서마저 패하며 벼랑 끝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2경기를 패한 뒤, 팀원들은 화장실을 가거나 음료수를 마시며 마음을 추슬렀고, 정명은 혼자 부스에 남아 이제는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지휘관 스킬을 사용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안 되겠다. 저 녀석들, 말로는 긴장 안 했다고 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긴장 때문에 못 하고 있는 것 같아.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은 뭐라도 해 봐야지.’

[공포의 지휘관 스킬을 사용합니다.]

-팀원들의 컨디션이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집중력이 100%로 고정됩니다.

-팀원들의 스트레스가 소폭 상승합니다.

스킬의 효과인지, 경기를 해 나가며 긴장이 좀 나아졌는지 OMA는 연속으로 2경기를 따냈다. 스코어를 2:2까지 만들며 패패승승승을 코앞에 둔 것이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5세트를 치르기 전, 정명은 텅 빈 모니터를 바라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젠장...이건 또 뭐지? 급한데 하필 왜 지금...’

[스킬 사용 제한]

*패널티가 부여되는 스킬을 너무 자주 사용하여 팀원들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스킬을 더 사용하려면 스킬을 업그레이드 하거나 ?????을 높이십시오.

-휴식이 필요합니다. 이 스킬은 2주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정명이 시스템창을 닫는 것과 동시에 스태프가 들어왔고, 게임 시작을 알렸으니까.

부담감이 엄청난 마지막 5세트.

게임 시작 직후, 정명은 딱 한 마디로 작전을 설명했다.

“버티는 쪽으로 가자. 너희들 생각으로도 그게 낫겠지?”

팀원들은 모두 동의했고, OMA는 최대한 방어적인 캐릭터들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다 똑같은지, GLG또한 방어적인 캐릭터들을 꺼내며 장기전을 예고했다.

5경기는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무조건 이기는 각이 아니면 싸우려 하지 않았고, 양쪽 다 섣불리 뭘 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경기는 40분, 50분을 넘었고, 마침내 60분을 넘으며 초장기전으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같이 움직여. 극 후반에는 한 명만 끊겨도 그대로 게임 끝이야. 타워 같은 거 무시하고 들어와 버리니까.”

게임이 60분이 넘는 극 후반까지 진행이 된다면 그동안 몇 킬을 땄는지, 타워 숫자는 어떠한지 같은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 모두가 강력한 아이템을 두르고 있고, 딜러는 탱커도 녹여버리기에 한 번 잘 싸우는 것으로 게임이 끝나버리니까.

그리고 길고 긴 눈치싸움 끝에, 최후의 한타가 시작되었다.

-메타트론, 이니시에이팅 겁니다! 목표는 원딜러!

실력도, 아이템 상황도 모두 비슷비슷하다. 이길 확률도, 질 확률도 50%인 상황.

선수도, 관객도, 해설자도 모두 흥분해 소리를 지르고 있는 가운데 정명이 소리쳤다.

“피터는 알아서 살라고 해! 우리도 원딜 잡으러 들어간다!”

그로부터 1분 뒤, 60분이 넘는 초장기전은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인하여 끝이 났다.

정명은 환호성을 지르는 팬들의 소리 사이로 시스템 알림음이 들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퀘스트를 달성하였......]

[스킬......해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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