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47화 (47/226)

14. 윈터리그의 결말 (3)

사건이 점점 알려지며, 정명은 일 년 동안 받을 연락을 일주일 만에 전부 받아야만 했다.

‘핸드폰 연락처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한번 씩 연락 한 것 같은데...’

정명은 한숨과 함께 또다시 울어대는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벨라였다.

그녀는 전화를 한 목적이 뭔지 팬카페 회원수가 100명이 넘었다고 자랑을 하더니,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화제의 이야기를 꺼냈다.

-500달러라...실력 차이가 어지간히 나지 않는 이상은 솔로킬이 잘 안 나는데. 혹시 너 돈 있니? 내가 대신 내줄까?

“네가 그걸 왜 내줘. 그리고 나도 돈 있거든? 돈 쓰러 갈 시간이 없어서 월급이 그대로 있단 말이다."

-으응....그래 그럼. 아, 근데 오해하지 말고 들어? 이번 일 끝나고, 너 돈 좀 더 써야 돼.

“돈? 무슨 돈?”

-팬들이 보는 네 이미지는 아직 굳어진 게 아니야. 앞으로 더 변화할 거라고. 사람들의 관심을 끈 건 좋은데, 적을 너무 많이 만들어놨어. 이런 상황은 달갑지 않다고.

벨라는 정명의 이미지가 비호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이 끝나면 다른 곳에 기부하는 것을 제안했다. 돈은 들지만, 꽤나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명은 갑자기 급진전되는 이야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어...기부? 얼마 쯤? 1000?”

-1만....아니, 네가 건 현상금이 500달러였으니까, 1명당 500달러. 경기를 하는 선수가 10명이니 5000달러를 내겠다고 대충 의미부여해서 내면 될 것 같아.

5000달러. 세금을 뗐을 때, 정명의 한 달 순수입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통장 잔고가 얼마 남아있는지를 생각해 낸 정명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벨라야...반만 꿔 줘 주지 않을래? 내가 나중에 성공하면 갚을게.”

......

경기 당일 선수 대기실.

정명은 턱에 팔을 괴고 지루한 듯 온라인에서의 혈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메타트론 (GLG) : 동종업계 사람이 뒤에서 총질이나 하고 인성 다 드러나네요. 앞으로 저 사람 받아줄 팀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허니푸 : 누가 누굴 걱정함. 아직까지 통역 없으면 인터뷰도 제대로 못 하는 네 앞길이나 걱정하는 게...

-싱글리프트 : ? 재미로 하는 것 치고는 퍼포먼스가 너무 과하네. 저 사람, 북미로 들어 온지 얼마나 됐죠?

?TBM우승 : 님이 트래시 토크 했을 때를 생각해봐요.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음트위터에서의 싸움은 점점 진흙탕이 되어갔다.

몇 몇 선수들은 개인방송에서 돌리는 솔로랭크 또한 연습이 된다는 논리를 펼치며 개인방송은 문제가 없다는 것을 피력했다.

그리고 정명은 그런 선수들을 보며 속으로 끊임없이 재평가를 하고 있었다.

‘메타트론 이놈은 원래 찌질한 놈이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싱글리프트 이놈은 방송에서 욕하다가 벌금도 맞은 놈이 누굴 지적해?’

피터는 트위터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 정명에게 다가오더니 같이 트위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얘네 아직도 짹짹거리고 있네요. 솔직히 저는 이번 일로 왜 싸우는지 이해가 안 가요. P.O에 진출할 가능성이 없다고 연습을 포기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을 같은 프로게이머라고 실드쳐주는 사람들이나...”

“그래. 알아주니 고맙다.”

“그보다 서서는 어때요? 그놈이 입을 닫고 있을 리가 없는데.”

피터는 그렇게 말하며 익숙한 듯 서서의 트위터로 들어갔다. 평소에 서서를 그렇게 욕하면서도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는지 서서의 트위터를 즐겨찾기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피터는 원하는 것을 찾지 못 했는지, 핸드폰을 더 빠르게 두드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하네. 이놈이 이런 맛있어 보이는 떡밥을 물지 않을 리가 없는데.”

하루에 트위터를 10개씩 올리며 왕성한 SNS활동을 하던 서서는 약점이라도 잡힌듯 이번 일에는 입을 꾹 닫고 있었고, 피터는 이제 서서의 팬 카페까지 들어가서 게시물을 뒤졌지만 별 다른 수확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정명은 지난 번, 서서와 ‘정글러 없이 1:1빵’을 해서 이긴 것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최소한의 상도의는 있는 놈이로군. 이번에도 짹짹거리면서 떠들었으면 아예 사람 취급을 안 해주려고 했는데.’

크롬을 잡고난 뒤, 그 다음 만난 상대는 11위팀, 래디언즈였다.

이 팀 또한 P.O 진출권에서 멀어진 뒤, 일찌감치 개인방송에 올인하고 있는 팀 중 하나였기에 소문의 당사자인 OMA 선수들을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그리고 정명은 그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뭐 잘했다고 저렇게 화를 내는지 원. 이럴 때면 삭발 빵이 아니라 캐삭 빵을 하고 싶다니까. 1:1에서 진 사람은 프로게이머를 은퇴하는 거야. 어떠냐?”

“농담이시죠?”

“당연하지. 이제야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벌써 은퇴하면...부모님이 하는 PC방에 취업이라도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태연한 척은 했지만, 속은 타들어갔다.

정명은 카메라가 잡히는 얼굴은 계속 무표정을 유지한 채로, 자리에 앉자마자 다리를 달달 떨기 시작했다.

‘젠장, 평소 같으면 당연히 이길 경기라 하품이 나왔을 텐데, 오늘은 조금 긴장되네.’

일단 시원하게 질러놓기는 했는데, 역시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솔로킬을 따기는커녕 무리하게 타워 다이브라도 하다가 솔로킬을 당해버리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으니까.

정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킬 상점을 열어 혹시나 해금된 스킬이 있나 둘러보기 시작했다.

[???]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스킬을 열람할 수 없습니다.

[???]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스킬을...

‘이번에도 열린 것은 없나. 차라리 그냥 스탯을 올려버릴까? 아니, 하지만 지금 스탯을 올려봤자...’

포인트를 들고 있음에도 바로바로 스탯을 올리지 않는 이유는 별 것 없었다.

스탯을 올린다고 해도,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려면 10의 자리가 바뀌어야 하니까. 50에서 55로 증가한다고 해도 별 변화가 없으니, 50에서 바로 60으로 올릴 수 있는 포인트를 모으는 게 아닌 이상은 그냥 남겨두는 것이다.

혹시 우연히 스킬 상점이 갱신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서.

그러는 사이, 부스에 스태프가 들어와 경기 시작을 알렸다.

“선수분들, 별 문제가 없다면 곧바로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아쉽지만 일단 시스템 창을 닫았다. 화면을 보니, 선수들이 하나 둘. 대기실에 입장하고 있었다.

......

-렉스 선수가 솔로킬을 당하지 않으려고 작정한 듯 싶네요. 타락천사라니, 버티기에 딱 알맞은 캐릭터 아닙니까. 아무래도 오늘 래디언즈측에서 회식할 것 같은데요!

해설가의 말이 부스까지 들리지는 않지만, OMA 사람들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거 진짜 오랜만에 보네. 유행은 한참 전에 지난 캐릭터긴 한데, 확실히 저거라면 버틸 수 있지.”

“차라리 초반에 승부를 보는 건 어때요? 나중에는 정글러 견제까지 와서 솔로킬이 불가능할 수도 있어요.”

정명도 그 의견에는 동의했기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고. 초반엔 상성이고 뭐고 그냥 순수 피지컬 싸움이니까 그렇게 하는 게 낫겠지.”

“차라리 100달러만 걸지 그랬어요. 이거 오늘 돈 뜯길 거 같은데?”

“내 말이. 돈 좀 더 꿔달라고 할걸.”

하지만 그런 걱정과는 다르게 게임은 상당히 좋게 풀려나갔다. 렉스의 움직임이 영 매끄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명은 그 이유를 대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저 놈,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네. 하긴 저게 언제 적에 쓰였던 캐릭터냐. 딱 보니까 하루 이틀 조금 해보다가 갖고 나온 것 같은데...잘하면 되겠다. 타이밍은 첫 귀환 뒤, 아이템을 사고 나서.’

귀환을 했다가 다시 라인에 복귀한 정명은 솔로킬을 딸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좋아. 바로 지금! 이건 좀 꼼수긴 한데, 내 500달러를 지키기 위해서 너희들이 좀 희생해라!’

[가혹한 지휘를 사용합니다]

[팀원들의 결속이 B+로 증가합니다.]

[팀원들의 집중력이 150% 상승합니다.]

[주의하십시오. 이 스킬을 너무 자주 사용한다면, 팀원들이 당신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피어 수치 : 낮음

*효과 지속시간 : 5초

한타 상황에서 써야 제대로 된 효율이 나오는 스킬이었지만, 정명은 라인전 구도에서 그냥 이 스킬을 질러버렸다. 부과효과인 집중력 150% 상승을 노린 것이다.

그리고 피지컬 70짜리 선수가 엄청난 집중력으로 파고드니, 월간 베스트 무비에 거뜬히 들 법한 움직임이 나와 버리며 가볍게 킬을 따냈다.

제 3자가 보기엔 무척이나 쉽게 킬을 내는 모습이었지만, 사실 집중력 풀가동으로 무척 힘겹게 킬을 낸 것이었다.

-아앗! 혹시 보셨나요? 방금 그 움직임, 엄청 기묘하지 않았나요?

-와, 이게 대체 뭐죠? 다시 한 번 리플레이로 보시죠. 지금 렉스 선수가 대머리가 된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플레이가 나왔어요!

[스킬 지속시간 카운트다운. 5, 4, 3, 2, 1....]

[모든 버프가 사라집니다.]

[팀원들의 스트레스가 대폭 상승합니다.]

스킬 버프의 효과로 혼자 재미를 본 정명은 내심 미안한 마음으로 팀원들을 살폈다.

‘휴...이걸로 솔로킬 임무는 달성...벌써부터 팀원들의 움직임이 좀 둔해지긴 했는데, 상관없겠지. 워낙 실력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니까.’

20분 뒤, 정명의 생각대로 래디언즈에게 낙승을 거둔 OMA는 뿌듯한 표정으로 부스에서 나왔다. 또 한명의 대머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리 기쁜지, 현장 분위기가 무척이나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뒤. 렉스는 크롬이 삭발을 하지 않겠다고 뻗대다 욕을 엄청나게 먹은 것을 봤는지, 순순히 삭발을 하고 인증샷을 올렸다.

래디언즈의 렉스를 삭발시킨 이후로도, 정명의 대머리 만들기는 계속됐지만 처음 솔로킬을 당했던 크롬선수처럼 삭발을 하지 않겠다고 뻗대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솔로킬을 당한 선수들도 ‘삭발 퍼포먼스’를 방송으로 내보내며 재미를 주는 게 더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시간은 흘러, 정명이 렉스를 삭발시킨 이후 2주가 지났다.

윈터리그는 드디어 시즌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 플레이오프까지 오게 되었다.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순위는 더 이상 바뀌지 않고 중후반에 고착됐던 순위 그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공동 3위였던 OMA가 단독 3위로 올라가긴 했지만, 사소한 변화였다.

코치는 선수들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고 혹시나 풀어지지는 않았는지 수시로 체크하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앞으로 조금만 더 하면 된다. TBM같은 괴물들 이겨서 우승하라고는 안 해. 3위, 딱 3위까지만 하자. 그러면 월드챔피언십 포인트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어! 구단주도 3위 안에만 들면 보너스를 기대해도 좋다고 했으니까, 다들 마지막까지 힘내라. 필요한 것 있으면 말만 해. 웬만하면 다 이루어질 거다!”

‘시즌 3위라. 첫 상대는 서서가 있는 토베노니까, 실수만 안 하면 문제없어. 이번에는 솔로킬이고 뭐고 신경 쓰지 말고, 이기는 것에만 집중하자.’

정명은 플레이오프 진출과 동시에 받았던 퀘스트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북미리그 1회차]

*당신이 리그에서 인정받을만한 성과를 낸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1위 달성 시

포인트 30000 증가

B급 선물상자 1개

자유 포인트 1개

명성 300 증가

경기에서 얻는 포인트 100% 증가

C급 이하 스킬상점 오픈

*2위 달성 시

포인트 20000 증가

C급 선물상자 1개

명성 200 증가

경기에서 얻는 포인트 75% 증가

D급 이하 스킬상점 오픈

3위 달성 시

포인트 10000 증가

C급 스킬 1개

명성 100 증가

경기에서 얻는 포인트 50% 증가

*대회 입상을 통해 얻는 상자에서는 낮은 확률로 특별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리그에서 3위 이상의 성적을 거뒀을 때만 퀘스트를 완료 수 있습니다.

*몇 번이고 도전하십시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할 때 까지.

‘하...1위 하고 싶다. 하지만 TBM은 3년째 부동의 1위지. 만만치가 않아. 연습게임에서도 거의 이기지 못 했고.’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P.O에 진출하여 마음이 싱숭생숭 한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피터는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팬들의 반응을 살폈다.

“형, 그러고 보니 그 500달러 주는 거 아직도 하는 거예요?”

“아 그거? 아마도? 솔직히 이제 만만치 않은 사람들만 남아서 솔로킬이 힘들기는 한데, 이번 시즌까지는 유효하지. 근데 왜?”

“팬들이 물어보더라고요.”

피터는 그렇게 말하며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그곳에서는 피터가 트윗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뭐야, 너 트위터 시작했냐? 야, 그거 하지 말라니까.”

“팬들 관리도 중요한 일이에요. 아, 여기 재밌는 거 있다. 삭발 내기가 아직도 유효하면, 이미 삭발한 서서는 어떻게 하냐는데요?”

피터의 물음에, 정명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눈썹을 쓱쓱 쓰다듬고는 답했다.

“글쎄. 솔로킬 낸다고 확답은 못 주는데 만약 된다면...다른 곳을 밀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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