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45화 (45/226)

14. 윈터리그의 결말 (1)

정명이 메일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자, 벨이 울린지 딱 두 번 만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핸커 컴퍼니 비서실 장웨이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진샤오랑에게 전화를 했으나, 당황스럽게도 전화를 받은 것은 젊은 여자였다.

이 여자가 구단주일리는 없었으므로, 정명은 얼떨떨하게 물었다.

“이거 진샤오랑이라는 사람 핸드폰 아니에요?”

-회장님 말씀이십니까? 혹시 약속이 되어있으신지요?

“저는 프로게이머 유정명이라는 사람인데요, 진샤오랑씨가 저를 찾으셨다고 해서 연락드렸어요.”

정명이 신원을 밝히자, 비서는 기계적인 목소리로 답변을 해 주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연결해드리겠습니다.

정명은 어떤 남자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회장님 소리를 듣던 그 사람은 중국의 재벌 2세이자 ITU의 구단주, 진샤오랑이었다.

-반갑습니다. 제가 ITU의 구단주, 진샤오랑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근데 저를 찾으셨다고...?

-예.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간단한 겁니다. 혹시 내일 시간 되시는지요.

당연히 된다. 슈퍼위크도 끝났는데 바로 다음 날부터 연습을 강행할 팀은 한 곳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정명은 구단주와의 만남에 흥미가 동했다.

‘한번 보러 가기로 할까. 중국 구단을 쥐락펴락하는 중국의 재벌 2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예전부터 궁금하긴 했는데.’

나쁠 것은 없다. 정명이 OMA에서 뼈를 묻을 것도 아니고 ITU 구단주 좀 만났다고 해서 별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대답은 바로 나왔다.

“예. 간단한 거라면야. 괜찮습니다.”

......

다음 날. 정명은 히어스라는 고급 레스토랑에 다시 한 번 오게 되었다. 그곳은 얼마 전, 벨라가 저녁을 사줬던 곳이랑 같은 곳이기도 했다.

‘예약하려면 몇 개월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니...허세인가? 벨라 때도 그렇고, 당일 날 먹을 수 있는 것 같은데?’

정명은 몰랐지만 사실 그 소문은 정확했다.

다만, 사람 사는 곳이라면 디주니랜드의 익스프레스 티켓처럼 약간의 돈을 더 지불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없애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기에 그것을 이용했을 뿐인 것이다.

물론, 돈 많은 사람의 특권이었지만.

잠시 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간 정명은 곧바로 샤오랑을 만날 수 있었다. 정명을 알아본 샤오랑은 먼저 악수를 청했다.

“?好. 안녕하십니까. ITU의 구단주이자 핸커 컴퍼니의 회장, 진샤오랑입니다.”

재벌 2세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옷차림과 깍듯한 인사.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건실한 청년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회장소리를 듣는 재벌 2,3세들의 성격이 좋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그것을 외부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들이 그런 성격을 숨기지 않아도 될 때가 있다. 바로 자신 밑의 사람들을 대할 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샤오랑은 정명과 만나자마자 ITU 선수들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을 늘어놓았다.

“정명씨, 어제 우리 팀과 경기를 하셨죠? 어떻던가요? 우리 팀의 실력은.”

“혹시 최근 ITU의 성적이 좋지 못해 물으신 거라면,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프로 생활을 하다보면, 맨날 이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실력이 좋은 친구들 같으니 조급해하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시죠.”

“하하,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 내부 분석과는 의견이 다르시네요. 이걸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샤오랑은 그렇게 말하며 정명에게 몇 장의 서류를 건넸다. 그리고 그 서류를 본 정명은 눈을 크게 떴다.

[팡위엔]

나이 : 20 (2년차)

포지션 : 탑 라이너 (선발 당시 경쟁률 67:1)

피지컬평가 : 62점

운영능력평가 : 43점

오더 평가 : 적성 없음

[타이 콴]

나이 : 19 (2년차)

포지션 : 정글러

피지컬평가 : 65

운영능력평가 : 55

오더 평가 : 중

서류에 적혀 있는 이름들은 ITU 선수들의 이름이었다.

정명은 서류를 넘겨보며 얼떨떨하게 물었다.

“어...이게 뭔가요?”

“요즘은 데이터의 시대 아니겠습니까? 선수들의 능력을 수치로 표현해 본 것이죠. 재미있죠?”

선수의 능력을 분석한 자료는 정명이 사용하는 시스템과 그 형태가 꽤나 닮아있었다.

‘와, 이거 제법인데. 딱 내가 생각한 거랑 비슷한 수치야. 정확도가 상당해.’

그런데 의아했다. 딱 봐도 팀 내부에서나 돌법한 자료 같은데, 타 구단의 사람에게 자료를 너무 쉽게 보여준 것 같았으니까.

그런 정명의 의문에 샤오랑은 껄껄 웃으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외부에 공개될 자료니까요. 저희는 이런 선수 스탯 자료를 바탕으로 간단한 게임 비슷한 것을 만들어 보려고 기획중이거든요.”

정명은 그제야 한 카드게임을 떠올릴 수 있었다.

5명의 영웅들. ITU가 투자했다가 거하게 말아먹은 게임이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정명의 입장에서는 무척 재밌어 보인다고밖에 말 할 수밖에는 없었지만.

“그거 재밌겠네요. 근데 혹시 거기에 제 분석 자료도 있나요?”

약간 기대감 섞인 질문에 샤오랑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뇨, 없습니다.”

“어...그렇군요.”

약간 김이 빠지는 대답이었지만, 납득했다.

자신이 그렇게 인기가 많거나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샤오랑 입장에서는 중국팀 위주로 자료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정명의 생각과는 다르게, 샤오랑은 조금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사실 중국, 북미, 한국 쪽 데이터는 정리가 완료되었습니다. 유럽 쪽만 작업하면 되죠. 그런데 데이터를 만드는 직원들 말로는...딱 한 사람이 애를 먹이고 있다더군요.”

“음...혹시 그게 저인가요?”

“예. NPG 시절은 자료를 구하지 못해 알 수 없었습니다만, SAO 시절부터 OMA에서 활동하는 지금시점까지.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성장 폭이 엄청나게 두드러지더군요. 수치를 어떻게 정해야할지 난감할 정도로 말입니다.”

정명은 괜히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아직 유명하지 않은 자신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모든 플레이들은 이미 다른 팀들에게 낱낱이 분석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명으로써는 이 주제가 썩 달갑지 않았기에, 적당히 화제를 돌렸다.

“그런가요. 좋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만나자고 하신 용건이 혹시 그것 때문인가요?”

그러나 샤오랑은 정명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제 할 말만 계속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아, 될 놈은 되는구나. 반대로 안 될 놈은 끝까지 안 되는구나. 마치 우리 팀 선수들처럼.”

샤오랑은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다른 서류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중국 선수들이 아닌, 한국 선수들이 적혀있는 분석 자료였다.

“정명선수는 SAO, 그리고 OMA를 거치며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가 팀 전체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셨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그런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하기로 하셨고요?”

“바로 그렇습니다. 그것도 최정상급의 선수를요. 그리고 그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정명은 샤오랑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한 귀로 흘리며 서류를 한장한장 넘겨보았다.

[김준상]

소속 : 팀 아서스 (2016 월드챔피언십 2위)나이 : 23 (4년차)

포지션 : 원딜러

피지컬 평가 : 83

운영능력평가 : 81

오더 평가 : 알 수 없음

샤오랑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은 지난 번, OMA와 연습게임을 했던 아서스 선수들이었다.

샤오랑은 아서스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낮게 깔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런데...아서스를 운영하는 구단은 우리 못지않은 대기업이고, 선수들을 데려오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혹시 아서스와 ITU를 잇는 다리가 되어주실 수 있으신지...”

‘아하, 바라는 게 이거였구나? 빨리 좀 말하지. 집에 가고 싶은데.’

북미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정명이 한국 팀들과 상당한 친분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소문은 상당히 신뢰성 있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특히, 랭킹 2위 팀이 북미의 중위권 구단과 렉을 무릅쓰고서 연습 게임을 했다. 이것은 인맥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당연히 무척이나 과장된 소문이었지만, 샤오랑은 꽤나 진지해 보였다.

‘멋대로 오해하기는. 설명하기 귀찮은데 대충 받아줄까.’

정명이 딱히 꼬셔오지 않더라도, 원래 이번시즌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나갈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돈 많이 주는 팀을 소개시켜준다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연락할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았던 정명은 적당히 힘써주는 척 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제가 걔네랑 친하기는 한데, 계약문제라는 게 인맥만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는 거라...”

......

다음 날 아침.

정명은 머쓱한 얼굴로 서랍 안의 내용물들을 쳐다보았다. 어젯밤, 샤오랑이 잘 부탁한다며 건네주었던 선물들이었다.

“롤릭스 시계랑...도멘 르로...그랑...에라이, 와인은 뭐라고 적혀있는 건지도 모르겠네.”

비싼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냐만은, 이건 너무 중국 사람들의 취향에 맞춘 선물이었다.

정명은 시계의 정품 보증서를 한참동안 내려다 본 뒤, 서랍을 탁 소리 나게 닫았다.

“이거...중고나라 같은 곳에 팔 수 있으려나?”

......

아침 7시. 팀원들은 아직 모두 잠들어 있을 시간이지만, 오늘 따라 눈이 금방 떠진 정명은 슬렁슬렁 연습실로 내려갔다.

“예. 이번 시즌 끝날 때 까지만요.”

“..............”

“얼마 안 남은 시간이지만, 잘 부탁한다고 하시네요.”

‘부지런도 해라. 아침 7시인데 벌써 왔네. 샤오랑이 매니저를 보내겠다고 했으니, 매니저와 통역인가보군.’

OMA의 연습실에 들어온 외부인은 ITU의 관계자들이었다.

시즌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몇몇 팀들은 연습을 거의 포기했기에 연습상대를 구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때문에 정명은 샤오랑을 만난 김에 같이 플레이오프를 대비하자고 제안했고, 샤오랑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팬들 사이에서 ITU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는 해도, 그들은 무척이나 괜찮은 연습상대였으니까.

‘아무리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이 없어졌다고는 해도 벌써 포기하다니. 다음 시즌에는 대기업이 들어온다는 소문도 있고 2부 리그 수준도 엄청 높아졌다고 하던데. 쯧쯧.’

정명은 왠지 북미리그가 왜 자꾸 꼴지를 도맡아 하는지 또 한 번 알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다가갔다.

‘아, 역시. ITU의 매니저군. 샤오랑이 직접 시킨 일이다보니 아침부터 허겁지겁 왔나보네.’

자신이 관리하는 ITU 선수들을 쥐 잡듯 잡았던 매니저였지만, 자신보다 센 사람의 말은 고분고분 잘 따르는 듯 했다.

그 바로 옆에는 통역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는데,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둘둘 껴입어서 얼굴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정명이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여자는 화들짝 놀란 듯 하더니 밖으로 후다닥 달려 나갔다.

“저 여자...재주도 좋네. 요즘 취업난이 심각한데도 금방 재취업에 성공한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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