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37화 (37/226)

11. 바쁘니까 비켜 (完)

다음 날.

ITU의 젊은 구단주 샤오랑은 맥주를 마시며 OMA와 ITU의 경기 재방송을 보고 있었다. 당연히 ITU가 처참하게 깨진 그 경기였다.

팀 매니저는 굳은 표정으로 경기를 보고 있는 샤오랑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 녀석들이 깜짝 전략을 들고 나와서...하지만 고작해야 딱 한 번만 통할 전략입니다. 이번만 봐 주십시오. 다음에는 꼭 이기겠습니다.”

매니저는 샤오랑보다 15살은 많은 사람이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중국의 재벌 2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샤오랑 또한, 그게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하대를 했다.

“봐 달라는 건 또 뭐야. 내가 무슨 깡패도 아니고. 내가 경기에서 졌다고 때리고 윽박지르고 그럴 줄 알았어? 됐어. 앞으로 치를 경기가 10경기도 더 남아있는데, 화는 무슨. 앞으로 잘 하면 돼 앞으로...”

“예. 감사합니다.”

샤오랑은 1패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유로운 모습이었지만 매니저는 안다. 그가 얼마나 성격 급하고 참을성이 없는지를.

때문에 매니저는 긴장을 풀지 않고, 계속해서 샤오랑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샤오랑은 매니저에게 폭탄을 하나 떨어트렸다.

“아 참. 우리 연습생 중에 싹이 보이는 녀석, 혹시 있어? 지금도 계속 신인 선수 발굴을 계속하고 있지?”

“예. 그런데 아직 이렇다 할 녀석은 안 보입니다. 거기다 요즘은 유망주라 할지라도 경쟁이 무척 심해서...아마추어쪽에서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정도의 선수를 데려오려면, 예산이 더욱 필요할 것 같습니다.”

“흠...그래? 지금 우리 애들이 몇 위를 하고 있지?”

“2위입니다.”

“뭐? 진짜?”

쿨한 척,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던 샤오랑은 깜짝 놀랐다.

2위라니, 당장 1부리그에 도전해볼만한 성적 아닌가. 하지만 그 기대는 1초도 되지 않아 박살나고 말았다.

“그런데 2부리그가 아니라 3부리그입니다. 그래도 이번 시즌이 끝나면 2부리그로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모두가 알고 있듯, 중국은 사람이 많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서는 2부리그까지 있는 LOH 리그도 중국만은 3부리그까지 운영되고 있었다. 프로를 희망하는 프로지망생의 숫자가 어찌나 많은지, 한국, 미국의 프로지망생의 숫자를 더해도 중국의 반밖에 안 됐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3부리그라는 이름에서 오는 부정적 이미지가 어디 갈 리 없다. 매니저에게 낚였다고 생각한 샤오랑은 얼굴을 구기며 언성을 높였다.

“야, 지금 연습생들 운영하는 데 드는 돈이 얼마야?”

“선수들 연봉만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전부 다. 운영비 포함해서.”

“매년 10만 달러 정도 듭니다. 세금 포함해서.”

“아니 시발, 뭐 그렇게 많이 들어? 내가 알기로는 워너비들 연봉도 엄청 낮은 걸로 기억하는데.”

샤오랑의 말 대로, 선수들에게 주는 돈은 얼마 안 된다. 아무리 유망주라고는 해도, 신인 프로게이머들의 연봉은 말도 안 되게 낮으니까.

때문에 운영비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 해먹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영비를 야금야금 먹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인 팀 매니저는 시침을 뚝 떼며 말했다.

“하지만 좋은 선수들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이 정도 지원은 당연한...”

“성적이 나오면서 그런 말을 하면 말도 안 해. 됐고, 계약이 끝나면 연습생은 다 없애. 그 돈을 한국 사람들 영입하는데 쓸 거니까.”

“예? 하지만 한국인을 영입하는 것은 중국인으로써 무척 자존심이 상하는 일 아닙니까? 말도 안 됩니다!”

“누가 들으면 네 돈으로 구단 운영하는 줄 알겠다? 잔말 말고, 없애. 그리고 선수들한테 몰래 접촉해 봐. 한국에서는 연봉이 무척 적다고 하니까, 잘만 꼬시면 넘어 올 거야.”

한국인들의 자국리그 이탈.

원래 같았으면 1년 뒤에나 시작될 일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일이 앞당겨지기 시작했다.

@@@

며칠 후. 정명과 조시는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OMA의 경기가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잠시 뒤. 목표물을 포착한 정명은 조시에게 확인을 받듯 말했다.

“저기 있다. 그치?”

“네...맞아요. 그 사람들이에요.”

정명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한 중국인 기자단이었다.

그들은 오늘도 여전히 방송국 한쪽에서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었다. OMA가 이겼을 때와는 달리, 오늘의 경기는 ITU가 이겼기에 무척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정명은 그런 기분에 찬물을 끼얹어 줄 생각이었지만.

“조시, 일단 넌 뒤로 빠져 있어.”

“네? 왜요?”

“네가 가면 잡아먹힐 것 같아서 그래. 너 같은 순둥이한테 뭘 맡기냐. 아니면 네가 걔네들한테 쌍욕이라도 퍼부을래?”

“아뇨...”

“그러니까 이번 일은 나랑 맥도날드 씨한테 맡겨. 맥, 가요.”

이미 싸움의 준비는 마쳤다. 아니, 싸울 필요도 없다. 오늘 정명은 그들에게 통보를 하러 왔을 뿐이었으니까.

정명은 협회 간부와 함께, 그들에게 다가갔다.

선제공격을 날린 것은 협회 직원이었다.

맥도날드는 이미 그녀를 익히 알고 있었는지, 인사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선제공격을 날렸다.

“메이. 내가 말 했죠? 적당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고. 당신은 이번 OMA 일로 선을 넘었어요. 그동안은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안 될 겁니다.”

“말씀 드렸잖아요. 그 기사는 지웠다고. 제가 뭘 더 어떻게 해드려야 해요?”

“이미 읽을 사람 다 읽고, 온갖 소동이 벌어졌는데 지금 와서 그 기사를 지운다고 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죠? 우리는 당신의 방송국 출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신은 앞으로 3년 동안 이 건물에 들어올 수 없어요.”

“뭐라고요? 하지만...!”

맥과 메이라는 기자의 말다툼은 10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사실, 메이가 아무리 따져봐야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미 그녀의 퇴출에 관한 사항은 OMA, 게임사, 방송사측의 협의에 따라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안이었고, 정명과 맥은 그에 대한 최종통보를 하러 왔을 뿐이었으니까.

메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정명에게 말을 걸었다,

“아, 당신...OMA 선수시죠? 그런데 저랑 인터뷰 했던 선수는 어디에 있나요?”

“잠깐 옆에다 두고 왔어요. 걔는 마음이 약해서, 심한 말을 못 하거든요.”

“그런가요...”

이제 와서 보니, 메이는 영어를 아주 잘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잘 못 알아들은 척, 이상한 기사를 적었으니 당하는 입장으로써는 한대 더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불쌍한 척, 애교를 부리던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정명을 불렀다.

“잠시 둘이서만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를 남이 들으면 창피해서...”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지만, 곧 방송국에서 치워질 사람인데 뭐가 어렵다고 부탁을 안 들어줄까.

정명은 메이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래요. 그래도 오래는 안 됩니다.”

‘돈이라도 찔러 주려나 보군. 그래봐야 소용없는데.’

이것도 협회 직원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가끔, 여기가 북미가 아닌 자신의 나라로 착각해서 이런 일을 벌이고는 한다고. 물론 이곳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메이는 정명보다 방송국 길을 더 잘 아는지 익숙하게 정명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충분히 인적이 드문 곳으로 왔다고 판단한 정명은 그런 그녀를 멈춰 세웠다.

“어디까지 가세요? 더 들어가지 말고, 여기서 말 하세요.”

메이 또한 이쯤 되면 적당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멈췄다. 그리고는 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저기요, 여기 금연빌딩인데요?”

“너무 그렇게 쪼잔하게 굴면, 여자들에게 인기 없어요. 기억해 두세요.”

그렇게 자신만의 논리를 펼치던 메이는 정명에게 담배연기를 후 하고 내뱉었다. 담배연기를 정통으로 맞은 정명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게 무슨......야!”

“한 번, 해드릴게요.”

“네?”

“한 번 해 드릴 테니까, 봐 줘요 정말. 여기에서 쫓겨나기 싫단 말이에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정명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마냥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었다.

그러자, 메이는 의미전달이 잘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섹스 해 주겠다고요. 당신, 프로게이머이니까 연애할 시간도 없을 거 아니에요. 많이 쌓여 있죠? 제가 조금 풀어 줄게요. 어때요?”

그렇게 하며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 풀기 시작한다. 그러자, 하얀색 속옷과 큰 가슴이 살짝 눈에 들어온다.

“정명씨, 혹시 남자 좋아하거나 하지는 않죠? 미국에서 워낙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건 아닌데, 이봐요...”

정명은 그런 메이를 바라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젊은 나이에 나름 귀여운 얼굴. 자신만만하게 구는 것도 이해될 법 했다.

하지만 정명은 미국에 와서 눈이 꽤 높아진 상태였다.

딱히 미국에서 손꼽히는 건강 미녀이자 그의 열렬한 팬인 벨라까지 갈 것도 없다.

여기서 바로 3분 거리에서 음향 팀으로 근무하는 35세 유부녀 렉시만 해도, 메이보다는 훨씬 정명의 취향이었으니까.

그녀에게 조금의 매력도 느끼지 못한 정명은 더욱 단호하게 말 했다.

“잘 들으세요. 당신은 이제부터 이 건물에 출입할 수 없습니다. 이건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라, 제가 봐 준다 뭐 한다 할 수 있지도 않아요.”

“하지만...”

“중국에서는 어떤지 모르는데, 미국은 달라요. 당신이 행한 일에 대한 책임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소송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히 여기세요. 이번 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곤해 한 줄 아십니까?”

드디어 소송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소송을 해도 되긴 하는데 하지 않는 쪽으로 회의를 마쳤다.

사건 자체가 그렇게 크게 번지지 않았고, 중국 기자들에게 경종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너무 일을 키우지는 말자고. 거기다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분위기도 한 몫 했다.

하지만 메이는 그런 얘기만으로도 충분히 겁을 먹은 듯 했다.

계속 당찬 모습으로 있던 메이는 소송 이야기엔 겁을 먹었는지 담배를 잡고 있는 손가락 끝을 살짝 떨었다.

메이는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힘겹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인터뷰 했던 사람...조시라고 했나요? 잠깐 만나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그러세요. 제가 조시의 부모님도 아니고, 누굴 만나라 만나지 마라 할 수는 없으니까요. 단, 당신이 조시와 어떤 말을 주고받더라도 당신이 이곳에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겁니다. 그럼 부디 다음에는 웃으며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메이와 조시의 대화는 평범했다.

왜곡된 기사를 써서 진심으로 미안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 뭐 그런 원론적인 얘기였다.

그리고 조시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시선을 한쪽에 고정하고 있었다.

뭔가 싶어 정명이 시선을 따라가니, 조시는 살짝살짝 보이는 메이의 속옷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정명은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그런 소동이 있은 후로, 1개월하고도 반이 지났다.

어느덧 리그는 중반 시점으로 흘러, 슬슬 이번 리그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명은 TV 화면에 나오는 표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1위 GLG 7승 1패 (+9)

2위 TBM 7승 2패 (+8)

........

5위 OMA 6승 3패 ( +4)

......

12위 스콜피온즈 1승 9패 (-11)

‘여기서 더 이상 올라가지를 못 하네. 내가 혼자서 끙끙대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건가...’

북미 리그는 1~2위의 독주였다.

오랫동안 북미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던 그들은 OMA마저 격파하며 그 건재함을 과시했고, 정명은 혼자 분투했지만 워낙 기본기에서 차이 나는 탓에 쓴 맛을 봐야만 했다.

하지만 팀원들에게 왜 이렇게 못하냐며 윽박지르지는 않았다.

이미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그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해 봐야, 실력이 나아지기는커녕 멘탈만 부숴먹기 딱 좋다.

정명은 마음속에서 조급함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래, 멀리 보자. 포인트도 착실히 쌓아가고 있고, 팀 성적 또한 꾸준히 오르고 있다. 다음 시즌에는 더 잘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정명이 혼자 연습실에서 중얼중얼 거리고 있던 그 때, OMA의 사무실 측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코치는 아니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그리고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은 정명은, 그에게 뜻밖의 애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명씨, 한국의 언벤이라는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메일 좀 확인해 달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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