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30화 (30/226)

10. 새 둥지 (4)

며칠 뒤.

OMA 선수들은 자신들이 나오고 있는 TV를 보며 낄낄대고 웃고 있었다.

“아휴, 꼴사납네. 내가 저렇게 싸웠던가?”

“그래. 저렇게 싸웠어. 이제는 정신이 좀 드냐?”

TV에서는 조시와 서서, 그리고 정명이 투닥거리며 싸우는 모습이 고스란히 방송에 나오고 있었다.

정명은 TV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아오 PD놈 진짜. 적당히 편집하겠다고 했으면서, 나올 건 거의 다 나온 것 같은데? 저게 뭐가 편집 한 거야!”

PD가 사전에 양해를 구하긴 했다. 적당히 편집할 테니, 이 모습이 방송에 나와도 너무 서운해 하지 말라고.

당시에는 쿨 한척 맘대로 하라고 했지만, 이제와서 보니 정말 꼴사나운 모습이어서 정명은 고개를 푹 숙였다.

정명이 혼자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자, 조시가 다가와 정명의 어깨를 두드렸다.

“뭘 그렇게 꿍해있어? 프로들이 진흙탕에서 싸우는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혹시 방송에 나온 게 많이 신경 쓰여?”

“당연하지. 지금쯤이면 팬들이 욕을 엄청 하고 있겠지?”

“그야 그렇지. 궁금하면 한번 봐 볼까?”

조시는 그렇게 말하며 노트북을 켠 다음, LOH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정명의 예상대로 그곳에서는 서서의 팬들이 열심히 글을 올리고 있었다.

araoj : 와. 인성 봐. OMA는 어쩌다가 저런 걸 주워왔냐.

Haccp : ㅎㄷㄷ...오빠 다치진 않으셨을지 걱정...

Picco : 서서오빠가 OMA 나간 이유가 있었네. 거지같은 팀 잘 나갔다.

“아...이런 개놈들이...”

방송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커뮤니티 사이트가 안 좋은 글들로 도배가 되어 있다.

시무룩해 하는 정명에게 조시는 턱짓으로 다른 곳을 가리켰다.

“그곳만 보지 말고, 더 밑에를 봐봐.”

조시가 가리킨 게시판의 아래쪽에서는, 방금 읽었던 내용과 완전히 반대 의견이 적혀 있었다.

aipnum : ㅋㅋ 서서놈 나가떨어지는 것 봐. 저거 아주 허당이네.

kooj : 응. 빠순이들의 입장은 잘 들었고요. 조시 말은 논리력 100%여서 반박 불가입니다.

apple : 서서는 이제 퇴물 다되어가는데, 서빠만 인정을 안 한다. 개막전에서 발리면 이번엔 또 무슨 변명을 들고 올지...제발 인정 하자. 서서는 팬덤 빨로 연봉 올리는 거품중의 거품이다.

까는 사람이 있다면, 옹호해주는 사람도 있다. LOH 커뮤니티에서는 키보드배틀이 한창이었다.

정명에게 그 게시물을 보여준 조시는, 말을 이었다.

“정명이 뭘 걱정하는지는 아는데, 여기선 너무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어. 저스틴이 그러던데, 한국에서는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한다며?”

“음. 조금 그런 게 있긴 하지. 프로들은 겸손해야 하니까.”

“여기서는 안 그래. 인터뷰에서 까고 싶은 사람 있으면 까. 그래도 총 안 맞으니까.”

확실히, 북미와 한국의 문화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만약 북미에서 쓰는 트래시토크를 한국에 그대로 가져간다면, 모르긴 몰라도 이틀간은 커뮤니티 게시판이 전쟁터가 될 것이었다.

정명은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조시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가 아직 북미에 적응이 덜 된 것인지도 모르겠군. 충고 고마워.”

대화를 마친 뒤, 정명은 아직 TV를 보며 쑥덕대고 있는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좋아. 괜한 것 고민하지 말고, 연습이나 하자. 쓸데없는 것 때문에 시간 날렸네.”

“그래. 잘 생각했어. 우리는 상관없는데, 네 멘탈이 걱정이었다고. 네가 흔들리면 팀 전체가 흔들리니까.“

......

그 대화가 있은 뒤로, 정명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연습에 집중하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이 바닥은 실력 있는 놈이 목소리가 커지는 바닥이니,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봐야 시간낭비였다.

그리고 그 덕에 OMA는 연습게임에서 상당한 승률을 보이며, 조금씩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연습게임 승리! 보상으로 2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정명이 1부리그에 오니, 확실히 좋은 점이 있었다.

바로 연습게임을 할 때 얻는 포인트가 1.5배 정도 증가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모은 포인트와 연습게임 승률을 보는 정명의 표정은 뿌듯함이 가득했지만, 게임 외적으로 정명의 속을 썩이는 일이 있었다.

정명은 게임이 끝나자마자 걸려오는 OMA코치의 전화를 받았다.

-정명. 요즘 별다른 일 없지?

“네. 맨날 연습만 하고 지내는데, 당연히 별 일 없죠. 왜요?”

-사무실에 또 항의편지가 와서. 정명의 사과를 요구한다는 내용이야.

“아 그런가요...쯧. 무시해도 되죠?”

방송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금방 수그러들 줄 알았던 그 이슈는, 서서를 무조건 옹호하는 그의 팬과, 평소에 그들을 마땅찮아했던 사람들이 싸우게 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때문에 OMA와 토베노의 개막전은 그 대리전 양상이 되었으며, 개막전의 표가 순식간에 매진되는 것은 물론이고, 배팅사이트에 걸린 돈이 평소의 몇 배가 되는 것 까지.

분위기는 점점 과열되어가는 양상을 띄고 있었다.

정명은 짜증내했지만, 자극적인 이슈로 시청률을 올리겠다는 PD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그리고 그 당사자 중 한명인 서서는 그 분위기를 진정시키기는커녕, 트윗으로 OMA을 욕하며 그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난생 처음 항의편지를 받아보는 정명은 절로 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 새끼 거 참 적당히 좀 하지. 그리고 나는 왜 싸잡아서 욕하는데? 싸운 건 조시인데.”

정명은 서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어쩌다보니 악연으로 변했다.

판이 이렇게 커진 이상, 개막전에서 무조건 토베노를 이겨야만 했다.

만약 여기에서 진다면, 타격이 꽤 크다. 승점 문제가 아니라, 팬들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와 반대로 그들을 멋지게 이긴다면, 팬덤이 빈약한 OMA가 단번에 치고 나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정명이 생각하기에 OMA가 토베노를 이길 확률은 60%정도. 서서의 실력을 보니 미드라인에서 살짝 우위를 가져갈 수는 있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그것이 게임에서 확실하게 이긴다는 보장은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얼핏 듣기로는, 토레노도 죽기살기로 연습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뭐 방법이 없나? 지면 그만한 망신도 없는데.’

정명은 답답할 때면 들락거리고는 하는 포인트 상점을 열고는, 무언가 쓸만한 게 없나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냉장고에 먹을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냉장고를 열어보는 심리와 비슷했다.

[현재 능력치]

피지컬 (60/100)

정신력 (50/100)

오더 (40/100)

판단력 (50/100)

[피지컬 스탯을 1 구입하시겠습니까?]

가격 : 2000 포인트

[잔여 포인트 : 3100]

“으악! 시발, 이게 뭐야!”

“? 뭐야, 정명. 무슨 일 있어?”

“아니...아무것도 아니야. 벌레가 나온 줄 알았는데, 착각했나봐.”

벌레는 아니지만, 벌레만큼 끔찍한 것을 보기는 했다.

피지컬을 올리기 위한 필요 포인트. 피지컬이 60 이상이 되자, 이제는 피지컬 1을 올리기 위해 무지막지한 포인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정명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이건 아니야. 1부리그에서는 포인트를 얼마나 주는지 모르겠는데, 이제는 스탯을 올릴 때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군. 이런.’

하지만 포인트는 스탯을 올리는 데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명은 오랜만에 스킬 상점을 들어가 보았고, 곧바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뭔가 예전에 비해 달라진 것 같은데?’

잠깐 고민하던 정명은, 금방 차이점을 알아낼 수 있었다.

스킬 상점에서 [???]로 되어있던 목록 중 하나가 어느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가혹한 지휘 - 액티브스킬]

[5초] 동안 팀의 결속이 [B+] 등급으로 상승합니다.

사용조건 : 오더를 맡을 것. 1경기당 1번 사용가능.

*주의 : 이 스킬을 사용하면, 팀원의 피로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가격 : 3000포인트

“와. 이게 뭐지. 이런 건 언제 생겼대?”

정명은 평소에 스킬상점은 잘 들어가지 않는다. 상점에 걸려있는 스킬들은 가격이 높거나 사용 조건이 높아서 그림의 떡이었기 때문이다.

정명은 새로 생긴 스킬을 유심히 살폈다.

‘가격이...비싸긴 한데, 감당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야. 물론, 상점에서 얼토당토않은 것을 팔 것 같지는 않은데...’

문제는 ‘이게 쓸 만한 스킬인가’는 둘째 치고, 패널티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팀원의 피로도가 대폭 상승한다.’ 이건 정말 복불복스러운 패널티가 아닐 수 없었다.

잠깐 고민했지만, 정명은 처음이니까 속는 셈 치고 구입을 해 보기로 했다.

[가혹한 지휘]

가격 : 3000 포인트. 구매하시겠습니까?

‘그래.’

[구입에 성공하였습니다.]

[잔여 포인트 : 100 포인트]

그 효과가 궁금했던 정명은, 바로 그 다음 연습게임에서 스킬을 사용했다.

그리고 40분 뒤. 연습게임이 끝났다.

정명은 곧바로 팀원들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 이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오늘은 이쯤 할까?”

“어 그래. 그러자. 컨디션 조절 해야지. 개막전이 코앞인데.”

스킬의 패널티를 겪게 된 팀원들은, 게임이 끝나자마자 책상에 푹 머리를 숙였다.

팀원들은 피로를 호소했지만, 막상 그 스킬을 사용한 당사자인 정명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른 네 명의 팀원들에게만 패널티가 가해졌던 것이다.

정명은 잠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에이.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내가 서서쪽과 사이가 안 좋아진 것은 이 녀석들 때문이니, 잠깐 피곤한 건 참으라고 하지 뭐.’

그렇게 신무기를 장착한 정명은,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개막전을 준비할 수 있었다.

@@@

개막전 당일.

살짝 긴장한 채로 대기실에서 몸을 풀고 있던 정명에게 조시가 다가왔다.

“오늘 컨디션 어때? 괜찮아?”

“어. 나쁘지 않아. 왜?”

“아니, 혹시 저 녀석들 때문에 기가 죽었나 해서. 아니라면 다행이고.”

조시가 말하는 저 녀석들이란, 서서의 팬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일찌감치 경기장을 찾은 그들은, 온갖 응원도구를 휘두르며 그 위용을 과시했다.

온라인에서 저놈을 죽여살려 하며 싸웠던 팬들은 막상 경기장에 오자 질서 있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기분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북미 리그의 개막식은 정명의 생각보다 훨씬 담백했다.

북미와 한국의 개막식을 비교해본다면, 북미는 한국에서처럼 걸그룹을 부르거나, 특별한 행사를 하지는 않았다.

물론, 정명의 생각에도 이곳에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았고 말이다.

‘하긴, 팬들이 경기 보러 왔지 가수 공연 보러 온 것은 아니니까.’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방송사에서는 팬들에게 LOH 인형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정명 또한 주먹 만 한 캐릭터 인형을 관객석으로 던져주며, 한껏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여기요 여기!”

“이쪽으로 좀 던져 줘!”

-30분 후. 개막전 첫 경기가 시작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30분 후...

방송과 함께, 직원의 안내에 따라 선수들이 부스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도 OMA와 토베노 선수들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휴.”

정명은 의자에 앉아 크게 한숨을 쉬었다. 게임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주변 여건이 도와주지를 않는다.

어째서 갈등을 빚는 선수들은 죄다 미드라이너인지.

이쯤 되면 미드라이너를 하면 성격이 안 좋아 지는 것인지, 성격이 안 좋은 사람이 미드라이너를 하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게임 시작 직전. 해설자와 캐스터가 마이크를 잡았다.

-정명선수와 서서선수. 드디어 맞붙는군요.

-네. 경기 전부터 많은 이슈를 몰고 왔던 두 팀의 대결.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경기가 시작됩니다.]

[사령관의 오오라로 인하여 팀의 결속이 소폭 상승합니다.]

“좋아. 이번 경기는 미리 얘기했던 대로, 미드 위주로 공략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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