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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35화 (235/325)

#235

버티십시오

“공 부장 너도 참… 그걸 또 그렇게 들이받아 버리냐? 대놓고 상무님 비꼬았던 거 아냐, 폴앤크루 이만큼 끌고 오는 데 네가 한 게 뭐가 있느냐고….”

울산 식육점.

정말 오랜만에 장 본부장과 단둘이서 울산 식육점을 찾았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즈음 장 본부장으로부터 간만에 소주나 한잔하자는 연락을 받았고, 마침 술 생각이 절실하던 참이었던 난 강혜선에게 양해를 구하고 장 본부장과 함께 울산 식육점으로 향했다.

“그러라고 며칠 전부터 계속 저 슬슬 긁으셨던 거 아닙니까?”

“긁어? 뭘?”

“푸흡…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 왜 말을 하다가 말아? 긁긴 누가 긁었다는 거야?”

자기는 절대 그랬던 적이 없었다는 듯 펄쩍 뛰는 장 본부장.

난 그의 빈 잔을 채워주며 물었다.

“그러는 본부장님이야말로 아까 왜 그러셨습니까? 그냥 가만히 계시지, 상무님도 옆에 계신데… 뭐 한다고 제 편을 들어주겠다고 알렌 강, 그 양반을 저격하셨습니까?”

장 본부장은 대답 대신 내가 들고 있던 술병을 빼앗듯 가로채 내 잔을 채웠다.

“제가 상무님이었다면 상당히 섭섭했을 거 같은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부장님은 그런 자리에서 무조건 상무님 편에 서 계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상무님 옆자리라고 해서 그게 꼭 알렌 그 친구 옆자리여야 하는 건 아니니까.”

“….”

“공 부장 옆자리가 곧 상무님 옆자리일 수도 있는 거 아냐?”

“지난 며칠간 보니까 이미 배는 떠난 거 같던데요?”

내가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실실거리며 말하자, 장 본부장도 함께 피식하고 웃으며 내 앞으로 술잔을 내밀었다.

우린 가볍게 술잔을 부딪쳤고, 단숨에 술잔을 비워버렸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공 부장 네 앞에서는 쪽팔리고 싶지가 않더라.”

“….”

“혼자서 외롭게 아닌 걸 아닌 거 같다고 말하고 있는 공 부장을 몇 날 며칠간 옆에서 지켜보자니… 아닌 걸 알면서도 말 한마디 못 하고 있는 내가 그렇게 비겁해 보일 수가 없는 거야.”

“좀 비겁해지세요.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다들 뭐 다 그렇게 직장 생활 하는 거 아닙니까?”

“근데 왜 공 부장 넌 그렇게 안 해?”

“저도 그렇게 할 수만 있음 하고 싶었는데, 뭐 때문인지 저한테는 그럴 기회를 아예 안 주시더라고요.”

날 바라보는 장 본부장의 눈빛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가 현재 날 얼마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고, 또 그 어떤 힘도 되어 주지 못해서 미안한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안주 좀 드세요. 빈속에 술만 계속 그렇게 넣지 말고.”

“진짜… 그렇게 할 수만 있음 그렇게 하고 싶은 거야?”

“아뇨. 그냥 한번 해 본 소립니다. 본부장님 마음이라도 좀 편하시라고.”

“놀리지? 푸훕….”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장 본부장은 앞서 비운 잔에 대한 안주는 집어 먹지도 않고 곧바로 혼자 자신의 잔을 채우고는 다시 그 잔을 비워버렸다.

“크흐… 내가 말린다고 말려 봤는데…. 이미 너무 멀리 가 계시더라고.”

“안주 좀 드시라니까….”

난 그의 앞접시 위로 초리구이 한 점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는 연거푸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술병을 잡았고, 난 그 술병을 가로채며 내가 초리구이를 올려놓은 그의 앞접시를 눈짓했다.

장 본부장은 억지로 내가 준비해준 안주를 소금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그의 잔에 술을 채워주기 전 내 잔부터 비워놓고 난 그의 술잔을 채웠다.

“나도 알렌 강 그 친구를 이렇게까지 급하게 섭외를 하실 줄은 몰랐어. 급하게 하려고 하다 보니 연봉 협상도 그 친구한테 일방적으로 끌려가다시피 해줄 수밖에 없었고, 뭐랄까…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본인 스스로도 알고 있는데, 그걸 이제 와 인정하고 싶지 않으신 모양이야, 지금 상태가.”

“잘못된 선택이라니요?”

“알렌 강의 영입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볼 수는 없어. 아직 뚜껑을 열어서 그 친구의 가치를 제대로 본 건 아니니까. 다만 그 친구의 연봉이 너무 높아. 그렇게까지 줄 이유가 없는 건데, 그걸 또 그렇게 하시더라고…”

“상무님만 알고 있는 그 양반의 가치가 있는 거겠죠.”

“비꼬지 말고.”

“비꼬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급했어.”

“….”

“많이 급하셨어.”

“…뭐가요?”

“위에서 사장님, 전무님이 주시는 무언의 압박을 버텨낼 체력이 아직은 못 되셨던 거야.”

“그게 무슨….”

“거기다 상무님 동생도 회사에 입사를 했고… 뭔가 자신의 능력을 한 번쯤은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하게 작용을 했던 게 아니었나 싶어.”

“….”

무거워진 술자리.

난 이런 분위기가 술자리 내내 이어지는 건 싫었다.

“그 손 차장 말입니다.”

“응.”

“이야기 들었습니다.”

“뭘?”

“그… 두 분 관계가 왜 그렇게 되셨는지.”

“….”

“본부장님한테 고맙다는 말을 꼭 했어야 했는데… 그 말을 할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 말을 지금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뭐야? 부담 주지 마. 폴앤크루 영업부장 자리는 어디까지나 알렌 강 그 친구의 결정이야.”

“알고 있습니다.”

“….”

“그냥요. 본부장님도 알고 계셔야 할 거 같아서요.”

그리고 다음 날이었다.

설마하니 정말 영업부를 직접 찾아와서 인수인계를 받겠다고 할까… 했던 건 나의 착각이었다.

내가 말했던 대로 사복 차림은 아니었지만,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알렌 강이 오전 근무 중에 영업부 사무실을 찾았다.

그의 등장으로 영업부 사무실의 분위기는 조금씩 얼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렌 강은 특유의 여유 있는 표정으로 영업부 사무실을 둘러보며 천천히 내 자리로 걸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부장님.”

“일찍 오셨네요?”

“영업 마케팅부 사무실에서 한참을 헤맸습니다. 전 부장님 자리가 당연히 영업 마케팅부 사무실에 있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도 참… 낯선 사람이 와서 두리번거리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어볼 법도 한데, 아무도 그래 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낯선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강 대표님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럼 알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을 했던 걸까요?”

“그럴 만큼 한가한 사람들도 아니고요.”

알렌 강이 피식하고 웃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의 웃음이 가소롭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일단 어제 부장님께서 영업부 사무실로 오라고 하셔서 오긴 왔는데….”

“잠시만 기다리세요.”

난 내선 전화기를 들어 양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양 차장은 파티션 너머로 나와 알렌 강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난 일부로 내선 전화기로 양 차장에게 호출을 넣었고, 차 팀장을 내 자리로 보내라고 말했다.

“네, 부장님.”

“앞으로 폴앤크루를 총괄하실 강 대표님이십니다. 인사는 나중에 따로 하시고, 일단 지금까지 기획 1팀에서 진행하고 있었던 폴앤크루 관련 서류 모두 강 대표님한테 넘겨드리세요. 그리고 또 전달하실 내용 있으시면 전달해 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차 팀장이 알렌 강을 안내하며 몸을 돌렸을 때였다.

“궁금했습니다.”

“….”

영업부 사무실을 둘러보며 알렌 강이 말했다.

“CGM을 밀어내고 모리엘츠를 잡은 홍성 인터내셔널 영업부는 과연 어떤 스페셜한 곳일지.”

“직접 보시니까 어떠십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시간은 많습니다. 천천히 알아가면 되는 거죠.”

“기대하겠습니다.”

“딱히 보여드릴 게 없는데, 저희는… 그럼 저희도 기대하겠습니다.”

알렌 강은 미소만 살짝 남겨놓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알렌 강이 차 팀장을 따라 사무실을 나섰을 때였다.

알렌 강이 사무실을 나선 뒤에도 사무실의 공기는 좀처럼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했다.

상무님의 동생, 민규가 아직 사무실에 남아 있었으니까.

사무실의 직원들이 힐긋거리며 민규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였다.

“마!”

갑자기 터져 나온 안 차장의 고함.

“네, 넵!”

민규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하고 일어났다.

“뭐 하냐, 너?”

“네?”

“어째서 네 눈알 굴리는 소리가 내 자리까지 들리냐고.”

“….”

“일해라, 일.”

“…네.”

“왜? 네가 신경 써야 하는 일 같아?”

“아, 아닙니다.”

“아닌 걸 아는 놈이 왜 그렇게 눈치를 살펴?”

안 차장의 그 말은 은연중에 민규 눈치를 봤던 전 영업부 직원들을 향해 하는 말 같았다.

“네가 눈치 보고 신경 쓴다고 바뀌는 거 하나 없다. 넌 그냥 영업부 신입사원일 뿐이야. 왜? 아직도 우리가 널 사장님 아들, 상무님 동생으로 대해주길 바라?”

“아닙니다, 그런 거.”

“그런 거 아님, 그냥 넌 네 할 일만 해. 그럼 되는 거야.”

“알겠습니다.”

“어디 시건방지게….”

민규를 향한 안 차장의 구박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업부 직원들은 각자의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야, 근데 너네 형 도대체 왜 그러냐?”

“푸흡…”

안 차장의 말에 급기야 분위기를 잡고 있던 양 차장이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은 영업부 사무실 전체로 번져 나갔다.

“아니, 씨발 그렇잖아. 인간적으로 이건 좀 아닌 거 아냐?”

결국 민규도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고, 안 차장은 들고 있던 플라스틱 자를 민규에게 던지며 웃지 말라고 겁을 줬다.

하지만 민규는 재빠르게 그 자를 피하며 ‘아, 그걸 왜 저한테 따지십니까?’ 하고 되받아쳤다.

그리고 잠시 뒤 김 차장이 영업 기획부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우리 사무실로 내려오면서 엘리베이터 복도 앞에서 차 팀장과 알렌 강을 만났다고 내게 말했다.

“아, 네. 인수인계해 주라고 내려보냈습니다.”

“부장님, 시간 좀 있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그럼 저랑 커피라도 한잔….”

“…네.”

김 차장과 함께 탕비실로 들어갔다.

“어쩐 일이십니까?”

“안 그래도 아까 저희 사무실에 와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내려갔습니다.”

“뭐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커피 한 잔을 김 차장의 앞으로 내려놓고 그를 마주 보며 앉았다.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차장님도 참… 혹시 뭐 제 걱정 돼서 내려오신 겁니까?”

“버티십시오, 부장님.”

“…?”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버티십시오.”

“그게 무슨….”

“그럼 알아서 무너질 겁니다.”

“뭐가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강 대표는.”

“….”

“부장님도 아시겠지만, 저… 눈칫밥으로 지금까지 안 쫓겨나고 홍성에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그동안 이런 일이 전혀 없었겠습니까? 회사가 외부 인사를 영입해서 분위기를 뒤흔들 땐 그 이유는 딱 세 가지뿐입니다.”

“….”

“하나. 너희가 하고 있는 거 다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걸 보여주려고 할 때. 하지만 우리 영업부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이죠.”

“계속해 보세요.”

“둘. 칼부림을 쳐야 할 때. 특히 저런 수장급을 영입할 때엔 대신 칼부림 한판 시원하게 쳐주고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사람이 필요한 거죠.”

“세 번째는요?”

“회사에 망조가 들었을 때죠.”

“셋 다 아닌 거 같은데요?”

“그래서 드리는 말입니다. 그냥 버티시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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