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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32화 (232/325)

#232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폴앤크루의 첫 번째 크루인 도상훈 작가가 홍성 본사를 다시 찾아왔다.

우린 그에게 뜻깊은 순간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작가 컬렉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이익과는 별개로 이번 프로젝트 본연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고 싶었다.

그 정도 가치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폴앤크루는 그저 기획력이 뛰어난 마케팅 브랜드로 잠시 반짝하고 사라질 브랜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 양 차장, 그리고 차 팀장은 회의실 테이블 위로 곱게 접어 쌓아 놓은 맨투맨 다섯 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도상훈 작가를 데리고 이지혜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네, 덕분에….”

“같이 점심이나 먹자고 연락드렸습니다.”

난 도상훈 작가에게 미리 비워 두었던 그의 자리를 손으로 권한 다음 함께 자리에 앉았다.

도상훈 작가는 자신의 앞으로 놓여져 있는 맨투맨을 쳐다보며 그게 뭐냐고 물었다.

“작가님 작품으로 만든 맨투맨입니다.”

“….”

“한번 보시죠.”

미묘한 감정이 그의 얼굴에 잠시 스몄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맨투맨 한 장을 펼친 그는 환하게 웃기만 할 뿐 말을 잇지 못했다.

“총 천 장을 생산했습니다. 천 장 한정판. 리미티드 넘버 1번부터 999번까지, 그리고 남은 한 장의 작품은 작가님들을 위해 넘버링을 하지 않고 작가님들의 이름을 새겨서 선물로 드리기로 했습니다.”

“…!”

이지혜가 태그 뒷면에 새긴 도상훈 작가의 이름을 보여 주었다.

“이걸 이렇게까지….”

“저희는 그림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래서 작가님들에게 자신이 그린 작품이 어떤 의미일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상상만 해 봤습니다. 과연 도상훈 작가님께 작품은 어떤 의미일지.”

“….”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기도 할 거 같고, 판매가 된 다음에도 한 번씩 보고 싶을 것도 같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작가에게 있어 작품은 자식과도 같다고.”

“그런 놈도 있고, 아닌 놈도 있고 그렇습니다.”

“부디 이 다섯 작품은 작가님에게 자식과도 같은 작품들이었음 좋겠네요.”

“이놈들은 그런 놈들이죠.”

“그래서 저희가 일전에 작가님을 통해 구매했던 작품 다섯 점으로 상품을 만들면서 작가님의 성함을 넣어 한 장씩 따로 뺐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이 폴앤크루를 통해 이렇게 다시 태어났습니다.”

“…!”

“작가님의 작품 다섯 점으로 만든 총 5천 점의 맨투맨은 앞으로 폴앤크루를 통해 장당 38만 원에 판매가 될 예정입니다. 소비자들은 그저 단순한 맨투맨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작가님의 작품을 구입하게 되는 겁니다.”

그 후로도 우린 폴앤크루와 콜라보를 한 작가들을 차례대로 본사로 불러 리미티드 넘버 대신 작가의 이름을 새긴 맨투맨을 전달하였고, 기념 촬영을 했다.

도상훈 작가 포함 총 여섯 명의 크루가 모였다.

그리고 우린 그 여섯 명의 크루가 자신들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맨투맨을 입고 있는 모습을 촬영해서 현상을 한 뒤 액자에 넣었다.

지금 당장은 몇 명 안 되는 크루지만 앞으로 백 명, 천 명, 만 명… 더 많은 크루들이 모이게 되면 그들의 기념사진으로 폴앤크루 특별관을 장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혹시 몰라 미리 준비를 했던 거다.

우리는 상상했다.

저자본으로 출발한 폴앤크루의 발칙한 프로젝트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상상을.

폴앤크루의 브랜드보다는 프로젝트가 뻗어 나가는 상상을 했던 거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명 아티스트들만을 위한 브랜드가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폴앤크루와 콜라보를 하기를 희망하고, 그래서 그들이 펼치지 못한 꿈을 폴앤크루가 현실로 만들어 주는 브랜드가 되기를 원했다.

많은 유명 브랜드들이 대형 스타 작가, 유명 디자이너들과 콜라보한 제품들을 시장에 내놓는다.

하지만 역으로 폴앤크루와 콜라보를 하게 되면 스타 작가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놔 준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다.

폴앤크루 1차 작가 컬렉션은 총 여섯 작가들의 작품 32점으로 출발했다.

작가들에게 기념으로 전달한 한 장씩을 제외하고 한 작품당 999점을 리미티드 넘버를 붙여 생산하였고, 한 컬렉션당 중국 법인에게 넘겨줄 수량 외엔 모두 시장에 깔았다.

전국의 SS 편집샵엔 폴앤크루 섹션이 따로 마련되었고, 각 매장별로 최소 두 명씩 제품이 아닌 작가들의 이력을 숙지시킨 매장 직원들을 배치시켰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제이드를 통한 브랜드 노출은 적중했고,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명 작가들의 꾸준한 창작 활동을 돕고자 하는 기성 작가들은 많았다.

제이드 광고 영상에 불이 붙기 전부터 웹디자인팀이 만든 영상 배너를 홍보팀이 각종 미술 관련 커뮤니티에 올렸었다.

그리고 제이드 광고 영상을 각 멤버별로 시리즈 제작을 한다는 게 제이드 팬들에 의해 이슈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폴앤크루에 대한 관심은 올라갈 수밖에 없었고, 그런 관심에 힘입어 각종 미술 관련 커뮤니티에 폴앤크루에 관한 게시물들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맨투맨 하나에 38만 원 ㅎㄷㄷ 피카소 작품도 아니고 어느 미친놈이 이걸 사 입을까?

-피카소 작품이면 사서 입을 거임?

-남의 사업 궁금해할 시간 있음, 그럴 시간에 네 그림이나 그려

-피카소 작품으로 만든 맨투맨을 38만 원 주고 사 입는 놈이 더 미친놈 같은데?

-판화 한 점 가격도 안 되네.

-ㅇㅇ 나도 그 생각 하고 있었음. 저걸 옷으로 생각할 거냐, 아님 그림을 옷에 그린 작품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봐줄 거냐에 따라 가치는 달라질 거라 생각함. 아무래도 폴앤크루는 옷이 아닌 작품의 가격을 제시한 거 같음. 판화처럼 999장이라는 한정 수량만 생산하겠다고 하는 것만 봐도 그렇고.

-다 상술이지.

-병신, 상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대한민국 미술계에 상술이 아닌 게 어딨음? 저렇게 대놓고 하는 게 더 인간적이구만.

-ㅋㅋㅋㅋㅋㅋ인정

-폴앤크루가 문턱을 낮춰주고 있다는 느낌은 나만 받고 있는 거임?

-취지도 좋고 저 정도 가격은 저 상품을 어떻게 볼지 그 관점에 따라 조금 호불호가 갈리긴 할 거 같은데, 난 한 장 사러 갈 거임.

-우리 작품이 저렇게 변할 수도 있는 거임. 장당 38만 원… 가격이 조금 세긴 한데, 난 내가 그린 그림이 그 밑으로 가격 측정이 된다면 오히려 슬플 거 같음.

-우리 아빠가 옷 공장을 운영해서 앎. 내가 폴앤크루 실물을 봤는데, 저 정도면 38만 원 비싼 거 절대 아님. 물론 싼 것도 아니지만, 999장 한정 제작에, 보니까 엠보싱 처리도 많이 들어가 있고, 일단 저 물량으로 저런 패턴을 뽑으면 기본 단가 자체가 비쌈. 거기다 작정하고 싼 브랜드를 만드는 게 아니라면 오히려 저렇게 고급 전략으로 가는 게 맞는 거 같기도 함.

-정작 진짜 예술은 폴앤크루가 하고 있는 거 같음. ‘예술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는 말을 직접 보여 주고 있는 듯.

-그거 누가 했던 말이지?

-너희 엄마가

-ㅋㅋㅋㅋ미친 새끼

-그렇네.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을 때, 정작 그런 것보다는 기존의 어떤 것에서 의미나 가치를 발견해내는 것이 진짜 예술이라고 말한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고 있음. 나도 가서 하나 사 봐야겠다. 도대체 폴앤크루가 발견한 가치가 뭔지 궁금해졌음

-그래서 그거 누가 했던 말이냐고!

-너희 아빠가

-아, 미친 새끼들, 진짜ㅋㅋㅋㅋ 아, 진짜 궁금하다고!

폴앤크루 2차 컬렉션과 작가 컬렉션이 전국의 SS 편집샵으로 깔린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각 매장으로부터 품절 난 작가 컬렉션 리스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대단한 성과라고는 할 수 없는 게, 컬렉션당 판매용으로 999장만 생산을 해서 그 많은 매장에 고루 분배해서 깔아주다 보니 정작 사이즈별로 매장에 들어가는 건 서너 장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게 매출 탄력의 원동력으로 작용해 주기 시작했다.

양 차장이 참 작전을 잘 쓴 게, 매일 아침 출근을 하자마자 전날 전국의 매장들에서 올라온 품절 리스트를 보기 쉽게 정리를 한 뒤 그 리스트를 전국의 SS 편집샵 실장들에게 보내기 시작한 거다.

사실상 이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작업이기도 했다.

어느 매장에 어느 정도 물량이 재고로 남아 있는지는 각 매장에서도 포스 프로그램으로 얼마든지 확인이 가능하니까.

하지만 양 차장은 SS 편집샵 매장들끼리 폴앤크루 매출을 서로 경쟁하도록 유도했고, 그 결과 더 빠른 속도로 품절 난 작가 컬렉션 리스트가 쌓여갔다.

약 2주 만에 전국의 SS 편집샵에서 판매된 폴앤크루의 총 판매량은 기존 상무님의 작품으로 만든 컬렉션들 포함해서 3만 장을 돌파했고, 이건 하루 평균 각 매장에서 20장 이상씩 꾸준히 판매가 이뤄졌다는 말이었다.

신생 브랜드, 그것도 홍성의 자체 브랜드로 이런 매출을 올린 건 그저 성공이라는 단어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컸다.

하지만 나와 양 차장은 뒤를 보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다.

우리에겐 남아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았으니까.

어떻게든 영업부가 폴앤크루를 총괄하는 기간 동안 최대의 마진으로 판매량을 늘려 놓아야 했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는 심정이 아닌, 우린 물 들어왔을 때 모터를 단다는 심정으로 매달렸다.

“뭐라고 합니까?”

“의아해하죠. 매출이 이렇게 올라오고 있는데, 왜 단독 매장 오픈이 아닌 SS 편집샵 오픈을 제안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난 양 차장을 시켜 SS 편집샵을 넣지 못하고 있었던 유통 판 측의 문을 두드렸다.

폴앤크루의 2주간 매출을 무기로 앞세워서.

유통 판들 역시 자기네 편집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사 편집샵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걸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SS 편집샵은 롯데와 신세계 양쪽에 넣지 못하고 그나마 브랜드가 덜 겹치고 있는 유통 판과만 계약을 해서 론칭을 시켰던 거다.

그런데 여기서 우린 결정을 해야 했다.

어차피 폴앤크루가 분리경영을 하게 되면, 폴앤크루는 틀림없이 모든 유통 판에 단독 매장 형식으로 들어가겠다고 입장을 밝힐 것이다.

이건 만약 내가 폴앤크루의 사장이 된다고 해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진짜 우리 영업부 입장에선 양 차장의 말처럼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된다.

아직 우리가 폴앤크루의 총책권을 가지고 있을 때, 불이 붙기 시작한 폴앤크루를 무기로 앞세워서 영업부에 도움이 될 만한 뭔가를 진행시켜야 했다.

폴앤크루의 매출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고 있다면, 그리고 그 폴앤크루의 판매 채널이 SS 편집샵밖에 없다면 SS 편집샵의 입점을 망설였던 유통 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SS 편집샵 입점을 승인해줄 수밖에.

“이걸 이렇게 급하게 진행할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양 차장을 시켜 SS 편집샵이 들어가지 못한 유통 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보고를 드리자 상무님은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결국 분리경영이 되고 또 폴앤크루의 컬렉션이 늘어나면 단독 매장 론칭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올 겁니다.”

“그야 당연하죠. 단독 매장은 컬렉션만 어느 정도 갖춰지면 지금 당장에라도 준비를 해야 하는 부분 아닌가요?”

“그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준비를 하겠다는 말을 하기가 무섭게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하는 상무님이었다.

그가 무슨 계산을 하는지 대충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난 내가 양 차장에게 주문했던 것처럼, 우린 우리가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지금 당장은 영업부가 총괄을 하고 있으니, 폴앤크루를 무기로 SS 편집샵의 매장 수부터 늘려놓고 싶다고 말했다.

“이건 폴앤크루와는 별개로 영업부 자체 영업입니다. 우선 아직 SS 편집샵을 넣지 못한 경쟁 유통 판 측에 SS 편집샵을 추가 론칭시켜 놓고 폴앤크루뿐만 아니라 SS 편집샵 자체의 턴 오버도 함께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채널이 많아야 그만큼 회전도 빨리 돕니다. 2차 작가 컬렉션 준비하겠습니다. 1차 때는 6명 작가의 32개 컬렉션으로 진행을 했었는데, 2차 때는 11명의 작가 50개 컬렉션 내외로 갖춰질 거 같습니다.”

“버, 벌써 뭐… 진행이 되고 있는 겁니까?”

“네, 이미 작가 선정은 다 끝난 상태고, 작품 선별 중에 있습니다.”

“흐음….”

“롯데, 신세계 양쪽 모두 잡을 수만 있으면 한 매장당 작가 컬렉션은 2장 정도도 못 돌립니다. 완판은 그만큼 빨리 나는 거죠. 어느 한 매장에서라도 완판이 빨리 나 버려야 다른 매장에서도 보유하고 있는 컬렉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많은 푸시를 하게 됩니다. 거기다 현재 SS 편집샵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다른 브랜드의 재고들도 아웃렛으로 풀리기 전에 쉐어가 될 테니, 그만큼 마진 세이브도 가능할 겁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장 본부장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그건 공 부장의 판단이 맞습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롯데, 신세계 양쪽에 SS 편집샵을 밀어 넣는 게…”

“알고 있습니다.”

“…!”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확실하게 봤다.

짧은 찰나였지만, 장 본부장의 말을 자를 때 짜증이 섞여 있던 상무님의 표정은 무척이나 차가웠었다.

그리고 장 본부장이 당황해하자, 그제야 자신이 과한 반응을 보였다는 걸 눈치챈 듯 어색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때 알게 됐다.

언제부턴가 나와 상무님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고, 누가 먼저라도 그 선을 넘게 되면 중간에서 장 본부장이 곤란해지는 거 같았다.

그건 정말 싫었다.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노력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성격상 그런 걸 잘하는 스타일은 절대 못 되지만, 어쨌든 상무님의 비위를 맞춰 보고 싶었고, 어디에서 출발한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오해가 있다면 그걸 풀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번번이 기회가 어긋났고, 무엇보다 그의 기분만을 살피기엔 그도 그렇고 나 역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가 나의 직장 생활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냥 상무님과 잘 지내고 싶었다, 예전처럼.

분명 상무님이 내게 다가왔을 땐 내가 그와의 거리를 어느 정도 두려고 했던 게 사실이다.

부담스러웠으니까.

하지만 그가 이런 식으로 내게서 멀어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 했던 거고.

후회?

아니, 그런 건 해 본 적 없다.

다만 그의 변한 모습이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왜 저러지?

분명 내가 살살거리며 다가가서 먼저 구부리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난 이상하게도 남들 다 하는 그게 하기 싫은 거지.

그리고 또 하고 싶어도 상황이 참 애매한 게 그의 태도가 불확실했다.

날 적대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전 같은 것도 아니고… 참 애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사소한 표정 변화까지 내가 신경을 다 써야 한다는 사실이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있었다.

상무님이 다른 상대처럼 일만 하자고, 회사에 왔으면 일만 하자고 속 시원하게 쏘아붙일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고, 그렇게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가고 있을 때였다.

언제부턴가 우린 간단하게 점심조차 같이 먹지 않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모든 미팅은 업무 시간 중에 이뤄졌고, 그 미팅이 끝이 나면 난 영업부로 다시 내려가거나 아님 박 이사의 방을 찾아 박 이사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장 본부장과도 조금씩 거리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무님은 몰라도 장 본부장과도 이렇게 서로 눈치를 봐야 하는 사이로 변해 버렸다는 게 안타까웠고.

그럴수록 난 더 일에 매달렸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폴앤크루는 정말 신기한 프로젝트였다.

기존의 아이디어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가지고 오는 프로젝트.

기획 초기 단계부터 콘셉트 설정이 잘되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전무님이 말씀해 주셨다.

단타성 프로젝트가 아닌 연발성 프로젝트.

사실 이런 프로젝트는 어느 브랜드건 만들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며, 전무님은 그걸 또 상무님이 계신 앞에서 상무님이나 장 본부장이 아닌 날 칭찬하셨다.

이젠 칭찬을 받는 것도 무섭다.

그렇게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폴앤크루는 2차 작가 컬렉션까지 국내 완판을 이뤄내며 단 몇 달 사이에 확실하게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

“오랜만입니다, 부장님.”

상무님의 방.

분명 빨라도 내년 2월에나 올 거라고 했던 강경준이 상무님의 방 소파에 앉아 있었다.

첫 만남 때와는 달리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아마 홍성 합류를 좀 더 빨리 하시게 될 거 같아요.”

상무님이 말했다.

“이렇게 급하게 모실 생각은 아니었는데, 본인이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요.”

장 본부장은 무표정했다.

그는 내 눈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던지, 애꿎은 스마트폰만 만지고 있었다.

그래서 난 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상무님이 권하는 소파에 앉아 강경준에게 물었다.

“그럼 다니고 계시던 회사는….”

“계약은 올 연말까지예요. 두 달 휴가가 있어서 원래라면 그 휴가 안 쓰고 연말까지 일해 주다가 그 휴가비로 홍성에 오기 전 두 달 정도 여행이나 하면서 머리를 좀 식히려고 했는데… 좀 급하게 휴가를 쓰고 들어왔습니다.”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잘 못 알아들었다.

대충 원래 계획보다 한국에 들어오는 게 조금 앞당겨졌다고 하면 될 것을….

“제가 또 재밌는 게 있음 잘 못 참는 스타일이라서요.”

“…?”

“폴앤크루… 될 거라는 건 알았지만, 반응이 이렇게까지 빨리 올라올 줄은 사실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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