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26화 (226/325)

#226

제가 부장이니까요

“2차 컬렉션을 모델 사이즈별로 만 벌씩 주문 넣어 주기로 하고, 작가 컬렉션 사이즈별 250벌 단가는 개당 3만 9천 원까지 낮췄습니다.”

“된대? 그때 처음 샘플본 뽑을 땐 사이즈별 천 벌 밑으로는 최소 4만 3천 원을 부르던데…”

“처음 1차 컬렉션 기획 단계 때보다는 사업 규모가 커졌으니까요. 생산하겠다는 미니멈 개런티를 듣고는 그렇게 하자고 하더라고요.”

나와 장 본부장의 대화 내용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상무님이 뭔가 찜찜하단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무 쥐어짜는 건 아닐까요? 그래도 우리 협력 업체인데….”

상무님의 걱정에 장 본부장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폴앤크루로 인해 살아나고 있는 공장입니다. 한 번씩 압박을 넣어 줄 필요는 있습니다. 너무 맞춰주기만 하면, 그런 선의 때문에 좋은 파트너를 놓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최선의 매니지는 컨트롤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장 본부장이 안심을 시키자 그제야 상무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받아온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사인을 해놓고 그 계약서를 내게 다시 건네주며 상무님이 물었다.

“그런데 무슨 출장을 그렇게 급하게 잡으셨어요? 주말까지 끼어서. 그냥 다음 주에 가면 안 됩니까? 가급적 출장 갈 일 있음 주말 끼어서 가지 말고 주중에 가요, 주중에. 꼭 회사가 주말까지 일을 시키는 것 같잖아요. 예전에 공 부장이 그랬잖아. 부장이 그렇게 일을 해버리면 차장, 팀장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고, 그게 곧 문화가 되어버린다고.”

“이번만 딱 이렇게 하고 다음부터는 주말은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게 다음 주부터는 더 많이 바빠질 거 같습니다. 제이드 건 계약도 해야 되고, 또 광고 영상 건으로 프로덕션이랑 콘티 제작 미팅도 잡혀 있습니다.”

“왜, 중국 법인에서는 폴앤크루에 대한 확인이 없다고 합니까?”

상무님의 물음에 장 본부장은 손 차장의 의도를 눈치챈 듯 염려 섞인 눈빛으로 날 쳐다보기만 했다.

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비록 형식적이긴 하지만, 브랜드 업체로서 유통 업체에 마땅히 해줘야 할 브랜드 소개를 안 해준 상태에서 물량을 받아달라고 하니까, 중국 법인 입장에선 강매를 하는 거라고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걸 꼭 공 부장이 직접 가야 하는 거예요?”

“성의를 보여 주러 가는 겁니다. 중국 법인이 보고 싶어 하는 건 폴앤크루 실물이 아니라… 아마도 본사의 성의인 거 같아서요.”

난 현재 SS 편집샵에 깔려 있는 폴앤크루 1차 컬렉션들을 챙겨서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센젠 법인을 찾았다.

법인 쪽 한국 직원이 공항까지 픽업을 나와 줬고, 법인 사무실에 도착을 했을 땐 이미 그곳 법인장과 본부장, 그리고 손 차장이 본사 담당자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뭘 또 공 부장이 직접 오고 그랬어요? 안 그래도 바쁜 사람이…”

내가 법인장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손 차장은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회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폴앤크루 1차 컬렉션을 회의 테이블 위로 깔아놓고, 1시간 가까이 폴앤크루의 브랜드 콘셉트와 마케팅 방향, 그리고 현재 광고 모델로 제이드를 섭외하는 데 성공을 했다는 부분을 설명했다.

그리고 중국 법인이 요청을 한다면 중국 시장에 한해 별도의 마케팅 예산을 잡아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본사 기획 브랜드인데 당연히 받아줘야지. 본부장 생각은 어때요?”

“이런 부분은 저보다는 손 차장의 의견을 들어봐야죠. 손 차장은 어떤 거 같아요?”

나의 중국 출장을 유도한 장본인.

사실상 이번 미팅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손 차장이었다.

물론 거절을 할 수는 없을 거다.

상무님이 기획한 프로젝트의 총책임자가 직접 왔으니까.

“뚜껑을 열어 봐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일단 성공 확률이 높은 브랜드는 확실한 거 같습니다. 본사 차원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이고, 무엇보다 콘셉트의 의도 자체가 아티스트들만 꾸준히 섭외할 수 있다면 롱런을 할 수밖에 없는 기발한 콘셉트네요. 다만….”

그 어떤 요구를 해오더라도 들어줄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중국 법인 쪽으로 물량을 풀어서 1차 턴 오버를 만들어 내야 그 턴 오버를 예산으로 잡아서 다음 단계로 안전하게 넘어갈 수가 있으니까.

“법인이 물량을 받아줘야 하는 시기가 문제 아니겠습니까?”

어느 정도 예상한 지적이었다.

“공 부장 말대로 하자면 보름 뒤에 바로 2차 컬렉션 생산 들어간다고 하는데, 센딩에 걸리는 시간 길게 잡고 일주일. 지금 당장 갖춰진 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걸 우리가 받아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이야 SS 편집샵이라도 있지, 여긴 깔 데가 없습니다, 깔 데가. 지금부터 유통 채널 알아본다고 쳐도 문제죠. 인지도 하나 없는 신생 브랜드를 어느 채널이 받아줄 거며, 저희가 이 브랜드의 어떤 부분을 포인트로 잡고 영업을 할 거냐는 거죠. 결국엔 편집샵을 섭외해서 푸시를 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 본사에서 받아달라고 요청하는 물량이 문제가 되는 거죠. 제때 다 소화해내지 못하면 결국 이월 재고로 잡히는 거고, 이월 재고로 잡힐 게 뻔한 물량을 저희가 왜 제시하는 마진 그대로 받아줘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손 차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법인장과 본부장이 날 쳐다봤다.

“이월 상품이라는 개념이 없는 브랜드가 될 겁니다.”

“…?”

“전 컬렉션 완판을 목표로 준비 중이거든요.”

손 차장도 살짝 당황을 한 듯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리고 난 설명의 순서를 조금 바꿔서 현재 이야기 중인 폴앤크루 2차 컬렉션이 아닌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제작하게 될 작가 컬렉션을 설명했다.

“한 컬렉션당 천 장씩 생산을 하게 될 겁니다. 사이즈별로 250장씩. 모르긴 해도 마케팅이 제대로 먹혀서 성공을 하게 되면 이미 한국 안에서만 품귀 현상이 일어날 겁니다. 천 장입니다, 천 장. 국내 유통 판에 사이즈별로 두 장씩만 풀어도 끝나는 물량이죠.”

“흐음…”

“어느 정도 브랜드 마니아층만 형성이 되면 사실상 사이즈도 큰 문제가 안 되겠죠. 조던 시리즈를 모으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어디 컬렉션 디자인을 보고 구입을 합니까? 아닙니다. 조던 시리즈 하나 더 모았다는 자기 만족감에 중독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폴앤크루는 조던 시리즈와는 또 다르게 천 장이라는 한정 수량만 생산을 할 겁니다. 본사에서는 이미 폴앤크루가 그 정도 파급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

“자, 그러면 상무님의 컬렉션은 어떤 역할을 해줄 거냐. 조던 시리즈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맥스 시리즈로 상무님 컬렉션을 설명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습니다. 맥스 90, 95, 97, 98 시리즈의 품귀 컬러가 이월되는 거 보셨습니까? 안됩니다. 품귀 컬러는 아웃렛으로 풀리지도 않습니다. 스테디셀러죠, 그냥. 매장에서도 쉽게 구하기가 힘들어서 자기들끼리 인터넷으로 사고팝니다. 엄연히 매 시즌 재생산이 되는데도 말입니다. 이번 폴엔크루 2차 컬렉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시장 반응을 통해 1차 컬렉션 때 미흡했던 부분들을 전부 보완해서 제작에 들어갈 겁니다. 거기다 상무님 그림들 중 가장 시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것들로 컬렉션을 구성했고요. 이 2차 컬렉션은 매년, 필요에 따라 시즌별로 계속 생산을 해서 공급을 할 생각입니다. 이월되는 제품이 아닙니다.”

“흐음….”

손 차장은 내가 가져온 아이패드 화면을 자기 쪽으로 돌려서 2차 컬렉션들의 이미지와 1차 컬렉션들의 차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걸 저희가 중국 법인 아니면 누구한테 주겠습니까? 만토바한테 줄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우리 홍성 기획 브랜드인데, 해외 유통 쪽 수혜를 중국 법인이 받게 만들어야지, 아무리 관계가 좋아도 그걸 만토바에게 준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

손 차장이 내 말을 자르며 들어왔다.

“아직 뚜껑이 열려서 결과물이 나온 건 아니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기대잖아, 기대.”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왜 그 물량을 우리가 지금 받아줘야 하는 건지 그게 궁금한 거야, 난.”

“턴 오버가 필요합니다.”

내 대답을 듣고 손 차장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인천 창고에서 만토바 제품을 중국으로 센딩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었습니다.”

“아, 그 사장님 둘째 아들….”

“네. 법인장님은 예전에 창고 총책임자를 해보셨으니 잘 아시지 않습니까. P3 창고 시설이 얼마나 열악한지.”

“흐음….”

“말 그대로 그냥 창고죠, 그냥 창고. 무브 크랙이 없어서 지게차로 팔레트를 2층으로 쌓아놓고 작업을 하다가 난 사고였습니다.”

“가장 센딩량이 많은 만토바 물량을 왜 하필이면 P3 창고에서 작업을 했어요? 다른 창고는 다 무브 크랙이 있잖아.”

“만토바 제품으로 잡히는 중국 법인 턴 오버를 확인해 보시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금방 이해가 가실 겁니다. 중국 법인에서 이우 창고 쪽 유통 채널을 뚫고 난 뒤 갑자기 물량이 더 늘어났습니다. 저희는 또 그걸 맞추려고 발주가 들어오는 대로 다 쳐냈고요. P3 창고에서만 작업을 한 게 아니라 P3 창고까지 개방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P3 창고 같은 경우도 원래라면 재작년에 설비 투자가 이뤄졌어야 했는데, 그 예산이 중국 법인 설비 투자로 돌아가 버렸죠. 그때까진 사장님께서 분리 경영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으니까.”

“….”

“그 사고 이후로 상무님께서 폴앤크루로 잡힐 예산을 P3 창고 무브 크랙 설치를 위한 설비 투자로 돌려버리셨습니다. 필요한 부분이죠. 매출보다 중요한 건 직원들의 안전한 업무 환경이니까. 그러다 보니 지금 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를 다 기획해 놓고도 예산이 부족해서 시원하게 출발을 못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죽했으면 돈 주고 광고 모델 쓰는데, 광고주가 예산이 부족해서 연예인 소속사까지 직접 찾아가서 협상까지 해야 했겠습니까?”

“흐음….”

“그런데 제 입장에선 그렇습니다. 예산 문제로 프로젝트를 살짝 딜레이시킬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현재 가지고 있는 소스 안에서 턴 오버를 만들어가며 어떻게든 진행을 시켜 보고 싶습니다.”

“왜….”

“프로젝트가 진행이 되어야 티오를 만들 수가 있으니까요.”

“…!”

“본사에 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부분까지 계산을 해야 합니다. 현재 중국 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프랑스 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언젠가는 한국으로 들어와야 할 거 아닙니까.”

난 손 차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외국 나가서 고생하며 몇 년을 보내고 왔는데, 한국 복귀할 땐 어떻게든 한 직급씩은 올려줘야 할 거 아닙니까. 어차피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대부분이 본사 영업부 출신들입니다. 타이틀 티오는 한정되어 있는데, 본사에서 티오를 확보해 주지 못하면 무슨 수로 주재원 근무의 노고를 보상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주재원 근무하고 돌아오는 직원들 승진시켜 주자고 본사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한테 타이틀 내려놓고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것까지 공 부장이 챙길 필요가 있어?”

“제가 부장이니까요.”

“…!”

“제가 본사 영업부 부장이니까 당연히 제가 신경 써서 챙겨야 하는 부분이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