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타깃 마케팅이 가능한 거죠
두 달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어느덧 8월이 찾아왔고, 드디어 폴앤크루의 첫 정상 제품에 세상에 나왔다.
급할 건 없었다.
이미 세상에 나온 첫 정상 제품은 가을, 겨울을 겨냥한 두꺼운 맨투맨, 후드 티였고 이걸 어떻게 효과적으로 띄울지는 천천히 고민해 보면 되는 문제였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동안 우리 영업부는 폴앤크루에 집중하지 않았었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고, 또 세상에 나온다고 해도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으니까.
다만 폴앤크루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난 영업 마케팅부까지 다 끌어안는 데 집중을 했고, 또 다행히 어느 정도 성공을 한 거 같았다.
영업 마케팅부와 영업 기획부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간극까지 억지로 좁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만큼의 간극이 또 그만큼의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는 동안 난 폴앤크루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로 인해 마이너스 영업이 될 수도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다른 브랜드들로 매출을 쥐어짜 내고 있었다.
하지만 장 본부장의 전사 운영본부는 말이 달랐다.
전사 운영본부는 그 두 달 동안 폴앤크루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드디어 전사 운영본부다운 전사 운영본부가 완성되어 갔다.
장 본부장의 능력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폴앤크루.
꼭 상무만을 위한 프로젝트는 아니었던 거 같다.
이제 와 눈치를 챈 거지만, 장 본부장은 전사 운영본부를 여느 기업 전사 운영본부처럼 회사의 핵심 부서로 끌어 올리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전사 운영본부가 제 역할을 다해 주는 순간 상무의 파워는 올라가고, 더불어 영업부에 집중된 파워를 조금은 분산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전사 운영본부를 제대로 된 부서로 만들기 위해선 본부장을 중심으로 부서 전체가 똘똘 뭉칠 수 있는 프로젝트가 필요했던 거였고.
지난 두 달간 거의 매일같이 새로 나온 샘플들을 들고 영업부를 찾아왔던 장 본부장.
매 샘플이 나올 때마다 난 트집을 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트집을 잡아 주는 내게 장 본부장은 항상 고맙다는 말을 했고 또 며칠 지나지 않아 내가 잡은 트집으로 보완된 새로운 샘플을 가지고 왔다.
장 본부장이 미처 발견해내지 못한 샘플의 취약점을 개선시키기 위해, 그리고 홍성이 컨트롤하고 있는 여타 명품 브랜드들 틈에 끼어서도 퀄리티 면에서 의심받지 않을 제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난 기꺼이 트집을 잡았다.
“아무래도 폴앤크루 브랜드 폰트는 돈 좀 주고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이걸론 안 되겠어?”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됩니까?”
“언젠 안 그랬던 것처럼…”
“느낌이 없습니다.”
“…!”
“그냥… 폴앤크루가 브랜드 네임인 건 알겠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이거도 돈 주고 한 건데….”
“좀 더 주고 새로 해 보시죠.”
“영 아니야?”
“아쉽습니다.”
그렇게 브랜드 폰트를 바꿔서 오면 난 또 다른 걸 트집 잡았다.
“목 뒤에 택… 이거 너무 크지 않습니까? 재질도 너무 딱딱해요. 버버리 택 있잖아요.”
“가는 거.”
“네. 양쪽으로 실 박음질되어 있는 거. 지금 이건 너무 거슬려요. 이게 그냥 이렇게 보면 모르는데, 이런 택은 막상 입으면 목 주변이 너무 까끌거려요. 그 까끌거리는 느낌 싫어하는 사람들은 옷 사자마자 그거부터 자르고 입는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건? 다른 건 어때?”
“근데 이게… 저희는 어디까지나 영업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디자인적인 부분까지 제가 지적할 순 없는 부분이고… 그래도 이거 엠보싱 처리가 너무 약한 거 같지 않습니까?”
“엠보싱?”
“그냥 얇은 스티커 하나 붙여놓은 거 같아요.”
“스티커 맞아. 기본 엠보싱에 윗부분은 페인팅된 스티커를 덧댄 거야.”
“그러니까요. 볼륨감이 전혀 없어요.”
“좀 그렇지?”
“아예 이만큼 튀어나오게 엠보싱 처리하는 건 불가능한 건가요?”
“비싸. 그렇게 하려면 소재 자체를 한 겹 더 붙여야 돼. 안 그럼 옷 라인 전체가 다 뒤틀린다고 하더라고.”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요?”
“이거 한 장 뽑는 데 2만 4천 원 정도 나오거든. 근데 여기서 한 겹 더 되어 있는 원단으로 바꾸면 최소 3만 2천 원 정도는 달라고 할걸?”
“3만 2천 원, 3만 2천 원… 확실히 세긴 세네요.”
“하나하나 따져 보면 만토바 공장에서 찍는 거랑 큰 차이가 안 나. 물류비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더라도 제품 생산비만 놓고 보면 비슷비슷해.”
“장수 상관없이 무조건 3만 2천 원입니까?”
“많이 뽑을 수도 없어. 사이즈별로 뽑아내다 보면 한 컬렉션당 최소 사이즈 다섯 개는 나와야 하는데, 시작부터 그렇게 대량으로 뽑는 건 도박이잖아.”
“음… 사이즈를 그냥 세 개로 줄이시는 건 어떠세요?”
“세 개로?”
“어차피 박스형 맨투맨, 후드 티 아닙니까. 스몰, 미디움, 라지로만 제작하면 되죠. 스몰을 일반 제품 미디움 사이즈로, 또 라지를 일반 제품 엑스라지 사이즈로 맞춰서 제작하면 사이즈 종류가 줄어드는 대신 각 사이즈별 발주량은 키울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럼 객단가를 어느 정도는 낮출 수도 있을 거고.”
“흐음…”
“맨투맨, 후드 티는 다들 헐렁하게 해서 입지 자기 몸에 딱 맞게 안 입습니다.”
“오케이. 이 부분은 내가 사무실 올라가서 직원들이랑 다시 이야기를 좀 해볼게.”
“엠보싱 좀 더 넣으셔야 됩니다. 안 그럼 이거 지금… 키스 해링이랑 느낌이 너무 비슷해요.”
“패턴이 아예 다른데?”
“그건 이제 저희 생각인 거고요. 특색이 크게 없잖아요. 이런 팝아트 패턴을 쓰는 브랜드가 한두 개도 아니고… 그 안에서 경쟁력을 만들려면 뭔가 우리만의 특색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그때 본부장님이 말씀하셨던 엠보싱이어야 하지 않겠냐는 거죠.”
“이걸로 부족해?”
“하다가 만 거 같아요. 좀 더 확 찍어 주세요. 누가 봐도 아, 이 정도 두께의 엠보싱은 폴앤크루다… 하고 알 수 있게. 어차피 엠보싱 찍을 때 틀은 짜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원단 추가로 더 덧대야 하는 거 말고 엠보싱 자체에 들어가는 추가 비용은 없는 거잖아요.”
“그럴 거야 아마.”
“그리고… 뭐 벌써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엠보싱을 크게 넣으면 이미테이션 걱정도 안 해도 됩니다.”
“하긴, 그 부분도 신경을 쓰긴 써야겠지?”
“브랜드가 좀 뜬다 싶으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게 이미테이션이니까요. 엠보싱 두껍게 넣으려면 이미테이션 업자들 입장에서도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꺼릴 겁니다.”
그리고 더 이상 제품 자체만으로는 트집 잡을 게 없어진 이후부터는 브랜드 소모품들이 나와 장 본부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옷걸이 샘플이야. 몇 개 퀄리티 있어 보이는 거로 가져왔는데, 한번 봐줘.”
“다 괜찮은데요?”
“이거 어때?”
“옷을 한번 입혀보죠.”
그렇게 나와 장 본부장은 홍성의 새로운 성인 의류 편집샵에 진열될 폴앤크루를 상상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근데 이걸 지금 당장 준비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편집샵 자체 옷걸이가 있는데…”
“이렇게 옷걸이로라도 차별화를 줘야 눈에 띄지, 안 그럼 무슨 수로 소비자들 눈에 띄게 만들겠어?”
“그것도 맞는 말씀이긴 한데… 오히려 그래서 더 역효과가 나지는 않을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뭔가 옷걸이에서부터 차이가 나면… 제가 만약 소비자라면 두 가지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될 거 같습니다.”
“…?”
“하나는 내가 모르는 완전 비싼 브랜드다. 다른 하나는 이 편집샵에서 만든 기획 상품이다. 그런데 기획 상품이라는 느낌이 훨씬 더 강하게 들 거 같아요. 그리고 기획 상품이라면 상대적으로 가격적인 메리트가 있어야 하는 거고. 그런데 현재 본부장님이 측정하고 있는 가격대면 메리트가 있는 가격은 아니잖아요.”
“흐음…”
“일단 준비는 해놓더라도 처음 편집샵에 깔 때엔 일반 옷걸이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시장 반응 봐 가면서 자체 옷걸이로 교체를 해도 되는 부분 아닙니까?”
“그럴까? 안 그래도 예산 쪼갠다고 지금 식겁하고 있는데, 이건 좀 뒤로 미룰까?”
“급한 건 아니니까. 옷걸이랑 쇼핑백 제작은 브랜드 뜨는 거 봐서 독립 매장 오픈까지 가게 되면 그때 천천히 준비하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오케이,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다음 주에 최종 샘플 나오고, 하자 발견 안 되면 그 최종 샘플로 공장 돌리기로 했다.”
“결국 해내시네요. 크흐… 기분이 어떠십니까?”
“공 부장한테 미안하고 또 고맙고… 그렇네.”
“잘될 겁니다.”
“그렇겠지?”
“전사 운영본부가 할 일은 이제 다 끝난 거 같습니다. 이젠 저희 영업부한테 맡기시면 됩니다.”
“끝나긴. 바로 다음 컬렉션 준비하자고 상무님이 난리도 아니신데…”
“푸훕…”
“요즘 신나셨어. 퇴근하실 생각을 안 한다.”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지나 최종 샘플이 도착했을 때였다.
이대로 시장에 깔리는 거라고 보면 된다.
말이 샘플이지, 정제품이나 다름없는 완성품이었다.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지만, 소비자로 하여금 지갑을 열고 싶게 만드는 건 MD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 우리 영업부의 역할이다.
난 양 차장과 함께 기획 1팀을 불러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폴앤크루의 영업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SS샵(이번에 새로 론칭한 성인복 편집샵 브랜드 쇼 앤 스피릿의 줄임말) 직원들에게 입혀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왜 H.I샵 처음 론칭했을 때 나크리스 슈즈를 직원들에게 한 켤레씩 신게 만들었잖아요.”
이지혜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이 남는 아이디어였다.
아니나 다를까 양 차장이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나크리스야 슈즈였잖아. 슈즈랑 맨투맨 티는 좀 달라. 맨투맨을 매장 직원들에게 입히면 자칫 유니폼으로 보일 수가 있거든. 브랜드를 어느 정도 띄운 상태에서는 해볼 만한 마케팅인데, 인지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매장 직원들에게 입히면 자칫 디자인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도 주저하게 만들 수가 있어.”
“아…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혹시 이런 건 어떻습니까?”
미팅 내내 가만히 듣고만 있던 차 팀장이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명품 자랑하는 유튜버들에게 입혀 보는….”
“…?”
“패션 유튜버들 있지 않습니까. 신상품 구입해서 구매 후기 올리면서 자랑질하는 유튜버들…”
뭐라 구체화시키기는 참 애매한데 이상하게 느낌이 오는 아이디어였다.
“패션 유튜버요?”
내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브랜드 론칭시켜 놓고 가장 일반적으로 시도하는 마케팅은 누가 뭐래도 연예인 마케팅입니다. 그런데 전속 모델로 삼지 않는 다음에야 PPL 광고나 공항 패션 협찬 정도인데, 저희가 원하는 대로 노출이 이뤄지기도 힘들뿐더러, 대형 브랜드가 아닌 다음에는 투자 대비 실적이 별로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흐음….”
난 차 팀장의 말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양 차장 역시 나와 비슷한 기분이었던지,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 비용 역시 만만치 않고요. 어차피 회사 차원에서는 한 번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서 공개 론칭을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컬렉션 오픈만 하는 상태인데, 큰돈 들여서 연예인 마케팅을 할 이유는 없을 거 같고, 그렇다고 매장에 깔아만 놓는다고 그게 곧 판매 노출로 이어지지도 않을 거 같고… 그나마 아직 유명 유튜버들은 연예인들처럼 그렇게까지 비싸지 않습니다.”
“하긴. 그런 채널을 즐겨 보는 사람들은 다들 패션 쪽으로 어느 정도 관심이 있거나, 구매할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겠죠?”
“타깃 마케팅이 가능한 거죠.”
“양 차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코스트 정도는 알아봐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너무 터무니없이 부르면 모르겠지만, 큰 부담이 안 된다면 나쁘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