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그럼 제 입장은 뭐가 됩니까?
화가 무척 많이 났는데, 무엇 때문에 화가 나고 있는 건지 천천히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손위 동서와 그의 거래처 영업직원들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난 여전히 자리에 앉아 볼에 바람을 불어 넣어놓고 그걸 천천히 빼어내며 불쾌한 감정을 삭여야만 했다.
“뭐해? 빨리 나와?”
그러는 동안 먼저 가게를 빠져나갔던 손위 동서가 가게 안으로 고개만 넣어서 날 불렀다.
얼른 나오라고.
난 여전히 얼음이 된 상태로 무릎 위로 올려놓은 서류 가방 손잡이를 꼬옥 잡았다.
어떻게든 화를 분출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식탁 위로 손을 올려놓고 주먹을 말아 쥐며 화를 참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공 서방.”
“….”
“야, 공 서방.”
“…네.”
“아, 뭐 하냐고. 빨리 나오라고.”
“…네.”
왜 화가 났을까.
어째서 정말 손발이 다 떨리고 당장에라도 고함을 꽥! 하고 질러버리고 싶을 정도로 꼭지가 돌고 있는 걸까.
손위 동서가 날 만만하게 보고 있는 거 같아서?
내가 하고 있는 영업직을 업신여기는 거 같아서?
그런 건 아닌 거 같았다.
그럴 수도 있지.
날 만만하게 보고 또 내가 하고 있는 영업직을 업신여길 수도 있지.
내가 무슨 수로, 내가 왜 그런 사람을 제대로 상대해 주겠나.
의미 없는 일이고 또 피곤한 일이다.
언제부턴가 난 누군가로부터 무시를 받는 게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무시?
누가 날 무시해?
무시할 거면 해.
난 관심없어.
약간 이런 마인드로 변했다고 할까?
예전에는 은근한 무시라도 누군가가 날 무시하는 거 같으면 그게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좋다는 게 아니라 상대에 따라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거다.
내가 잘 보여야 할 상대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상대가 별생각 없이 하는 무시에 내가 발끈해서 내 감정을 좀먹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런 의미 없는 감정 노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다만 지금 이 상황은 손위 동서가 날 만만하게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러는 거든, 아님 자신과 나와의 집안 서열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 이러는 거든 어쨌든 내가 피해를 보고 있는 게 확실한 거였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거 같았을 뿐이다.
“야, 공 서방.”
“네, 갑니다, 형님!”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과 몇 발짝 떨어져 그들이 가려고 하는 목적지까지 따라갔다.
그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게 어쩔 수 없이 목적지까지 끌려갔던 이유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목적지까지 가는데, 솔직한 말로 그들 무리에 끼고 싶지가 않았다.
내 입장을 정확하게 말해줄 기회는 아직 얼마든지 남아 있으니까.
그렇게 10분 정도 걸었나?
지하도를 한 번 건넜고, 또 그 일대 번화가를 한 번 지나치는 순간 그들의 목적지가 내가 예상하고 있던 그런 곳이었다는 게 확실해졌다.
순간 강혜선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그녀가 내 집안 사람들에게 해준 게 얼만데.
그동안 불안정했던 내 집안을 상대로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고자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것들을 해주겠다고 했을 때 그녀가 얼마나 많은 이해와 인내, 그리고 배려를 해줬나.
사실 내가 본가에 해주겠다고 했던 것들… 그거 여자 입장에선 싫었을 수도 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랑 결혼을 해서 이젠 우리 가정을 꾸려야 하는데, 내가 계속 본가에만 얽매여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또 짜증이 났겠나.
하지만 강혜선은 그런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빨리 밀린 숙제를 끝낼 수 있도록, 그래서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빨리 편안해질 수 있도록 응원만 해줬던 사람이다.
강혜선이 내게 그렇게까지 마음을 써주고 있는데, 내가 지금 이 기분을 못 참아서 저 인간 같지도 않은 손위 동서를 그대로 들이받아 버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진짜 아닌 말로 사회에서 만난 사람이었으면 나한테 죽었다.
특히 일적으로 엮인 관계였음 영혼까지 탈곡기에 쑤셔 넣어 탈탈탈 다 털어버렸을 거다.
그런데 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저 인간은 내 처가 쪽 가족이었고, 또 영원히 안 보고 살 수는 없는 존재라는 게 문제였다.
이제야 알 거 같았다.
왜 내가 손발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난 건지.
저 인간에 대한 실망감이 아니라… 그냥 이 시간에 저 인간들과 이러고 있어야 하는 상황 자체에 화가 났던 거 같다.
강혜선과 함께 있어야 할 시간을 이렇게 의미 없는, 그리고 무척 불쾌한 자리 때문에 빼앗겼단 생각에 화가 났던 거 같다.
“자, 들어가시죠!”
그들이 가고자 했던 목적지 앞에서 가게 입구를 손짓하며 영업직원이 쾌활하게 말했다.
그 순간 난 속으로 ‘너도 참 먹고산다고 고생이 많다. 저런 인간을 상대로 명절 연휴 끝나자마자 이런 지저분한 영업을 뛰어야 되니…’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 연민의 감정이 아니었다.
내가 뭐라고, 내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연민과 같은 주제넘는 감정을 가지겠나.
그저 일종의 감정이입이었던 거 같다.
나도 영업맨이다.
그래서 현재 그가 하고 있을 생각, 피로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내가 대리, 팀장이었을 시절 브랜드 매장 여실장들을 상대로 했던 접대가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현재 그가 어떤 심정으로 이런 영업을 할 수밖에 없고, 또 현재 얼마나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쉬고 싶을까… 하는 심정을 짐작해 보게 됐으니까.
“들어가자.”
손위 동서가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징그러운 벌레 한 마리가 내 어깨에 올라앉은 느낌이었다.
“….”
“아까부터 왜 그렇게 얼을 타? 야, 공 서방.”
“네, 형님.”
“들어가자니까?”
그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예전에 상무보와 박 이사를 상대로 크게 호통을 치시던 전무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상대가 그 어떤 무례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을 못 했음 그걸로 끝이야. 땡이라고.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하고 싸웠어야 할 거 아니냐고!’
가슴 속 깊은 곳 어딘가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또 상무보에게 직접 사과를 하겠다고 홍성 본사까지 직접 찾아온 유통 판 본사 상무를 상대하던 전무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이 홍성에게 했던 무례를 모두 다 전해 들어 알고 계셨으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던 전무님.
그가 앉을 자리까지 직접 안내하며 그와 전무님 개인 대 개인의 관계가 아닌 우리 홍성과 유통 판과의 관계만 놓고 상대를 존중해 주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형님.”
“왜?”
“저는 그만 집에 가보겠습니다.”
“뭐?”
하지만 전무님은 절대 우유부단한 분이 아니셨고, 기회를 만들어 짧은 한마디, 표정 하나로 상대를 녹다운시키셨다.
이상하게 그걸 한번 따라 해 보고 싶었다.
주저리, 주저리 말을 길게 늘어놓고 상대를 털어버리는 게 아니라, 임팩트 있는 말 한마디, 날카로운 표정 한 번으로 상대의 전의를 모두 빼앗아버리고 싶었다.
“그게 뭔 소리야? 여기까지 따라와 놓고…”
손위 동서는 내 어깨에 두르고 있던 팔을 내리며 살짝 언짢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누가 여기까지 따라왔나, 끌려온 거지.
“이런 데 오실 줄 몰랐죠, 전.”
난 최대한 생각 없는 사람의 미소를 얼굴에 걸어놓고 손위 동서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도 되는 인간 같았다.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쭉 봐야 하는 사람이니 다툼을 만들 이유는 없었지만,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면 얼마든지 농락 정도는 해줘야 되겠다 싶었다.
“이런 데가 어떤 덴데?”
“하하하… 아무튼 형님, 죄송합니다. 저는 싫습니다.”
난 다시 한번 미소를 얼굴에 걸어놓고 내 입장을 정확하게 밝혔고, 그러는 동안 입구에서 대기하던 영업직원 두 명 중 선임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 선임 영업직원을 향해 손위 동서가 말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냐, 아냐. 별일 아냐. 잠시 할 이야기가 있어서. 먼저 들어가 있어.”
“…네.”
하지만 영업직원의 촉이 어디 보통 촉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몸을 돌렸고, 자기를 따라온 신입 영업직원에게 먼저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아놓고 기다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나와 손위 동서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따라와서 이러면 내 입장이 뭐가 돼?”
그걸 왜 나한테 묻지?
참 재밌게도 자기 입장 운운하는 사람치고 남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신경 써 주는 사람은 없다.
희한하게도 그렇다.
꼭 보면 자기밖에 모르는 것들이 입장을 운운한다.
“좋은 사람이 있어서 소개시켜 주겠다고 불렀는데, 이렇게 간다고 하면 내 입장이 뭐가 되냐고.”
짧지만 임팩트 있는 한마디가 필요했다.
“형님 입장 때문에 제가 저 안에 따라 들어가면… 그럼 제 입장은 뭐가 되는 겁니까?”
그리고 날을 세운 눈빛 한 번.
그 눈빛을 보낼 때엔 미소를 짓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차가운 눈빛으로 ‘내가 저기 안에 따라 들어가면 내가 너랑 똑같은 인간밖에 더 돼?’ 하는 표정을 담아 한참 동안 손위 동서를 쳐다봤다.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여기선 이겨야 했다.
말을 길게 늘어놓는 거보단 짧게라도 눈싸움 한 번을 이겨버리는 게 맞는 거 같았다.
결국 손위 동서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야, 공 서방. 뭔가 오해를 한 거 같은데… 왜? 내가 이런 데 같이 가자고 하니까 기분 나빠?”
“아뇨. 기분이 나쁘긴요. 그냥 전 이런 곳 자체를 안 좋아합니다. 안 좋아하는 걸 억지로 하는 건 더 안 좋아하고요.”
“나는 있잖아. 주위에 동서들끼리 이런 데 한 번씩 같이 다니면서 처가 스트레스를 푸는 친구들을 보면 그게 그렇게 부럽더라?”
이런 미친 새끼를 다 봤나.
그런 사람들이 진짜 있기는 할까?
있을까?
뭐 자기 주위엔 있을 수도 있지.
끼리끼리 노는 거니까.
그런데 최소한 내 주위엔 그런 미친놈들은 없다.
“나는 그냥 서로 허물없이 어울려 보자고… 아, 왜 그동안 장인, 장모님 있는 앞에서 못 했던 이야기들 허심탄회하게 남자들끼리 해보자고 이런 자리를 마련했던 거야.”
이런 놈들이 영업을 하면 큰일 나는 거다.
자기 실적을 위해 회사 팔아먹고 엄한 상사까지 다 팔아먹고 결국 팔아먹을 게 없어 자기 영혼까지 팔아먹다가 밑천을 다 거덜 내서 결국 회사 욕, 상사 욕을 하며 퇴사를 하는 거지.
결국 회사나 자기 상사들은 자기한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게 하나 없는데….
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손목에 채워진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8시 3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 시간에 이런 곳을 온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 아닌가?
“저는 오늘 형님 만나서 참치집에서 형님한테 비싼 참치 얻어먹고, 또 그게 고마워서 2차로 호프집에서 형님한테 맥주 한잔 대접한 거로 집사람한테 말하겠습니다. 8시 35분이네요? 저는 밖에서 좀 더 시간 보내다가 지금부터 딱 2시간 뒤에 집으로 출발하겠습니다.”
“….”
“혹시라도 자리가 더 길어질 거 같으시면 중간에 문자 메시지 하나 보내주십시오. 형님 시간에 맞춰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야, 공 서방. 진짜 사람 입장 이렇게 난처하게 만들 거야? 거래처 사람도 와 있는데.”
“아!”
난 재빨리 시선을 돌려 가게 입구에서 나와 손위 동서를 지켜보고 있는 영업직원을 쳐다봤다.
그리고 재킷 안주머니에서 명함 지갑을 꺼내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홍성 인터내셔널의 공은태라고 합니다.”
나의 명함을 받은 상대는 명함에 찍힌 회사명과 나의 직함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자신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내게 전달했다.
“피곤하시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우리 영업하는 사람들 일이 다 그렇죠.”
“아, 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어디 조용한 곱창집 같은 데 가서 한잔 같이합시다. 제가 사겠습니다.”
“…네.”
“사실 이런 데가… 가족들끼리 올 만한 자리는 아니잖아요?”
“그, 그렇죠. 하하하.”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전 이만….”
그리고 난 손위 동서를 향해 고개만 한 번 숙여준 뒤 몸을 돌렸다.
몸을 돌려, 정확한 목적지도 없는 상태에서 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어떻게든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지금 이 상황이 웃겨서 웃음이 나왔던 게 아니라, 전무님이 보여주셨던 당시 그 행동, 대처들을 떠올리며 그걸 살짝 응용을 해봤을 뿐인데, 이게 통했다는 사실이 재미가 있어서 웃음이 나왔던 거 같다.
그래, 말 길게 할 필요 없다.
이젠 회사에서 위치도 있는데, 언제까지 대리, 팀장 시절에 해 왔던 것처럼 일일이 상대에게 내 입장을 이해시키고 설명을 하겠나.
짧은 몇 마디 굵직한 말, 그리고 표정만으로 상대가 알아서 날 이해하고 거기에 맞추게 만드는 게 맞는 거다.
그걸 못 하는 상대라면 굳이 내가 감정 노동 해가며 상대할 이유가 없는 거고.
앞으로는 회사에서 일을 하건 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건 이렇게 콘셉트를 조금씩 변화시켜도 좋을 거 같았다.
팡! 팡!
그 시간에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강혜선에게는 이미 카톡으로 11시 정도는 되어야 들어가게 될 거라고 미리 말을 해 놓은 상태.
혼자 술집에 가서 청승맞게 혼술을 하는 것도 아닌 거 같았고, 그렇다고 정장 차림으로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주위 백화점 한 곳을 둘러보고 난 후, 그 주위에 있는 코인 야구장에 들어가 공을 몇 번 쳤다.
스트레스도 좀 풀 겸.
팡! 팡! 팡!
날아오는 저 공들이 하나같이 손위 동서의 얼굴로 보이니 공이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었다.
팡! 팡! 팡!
그렇게 5천 원 치 공을 다 치고 난 후 밖으로 나와 재킷을 챙겨 입는데, 손위 동서로부터 부재중 전화 두 통이 와 있었다.
일부러 전화를 안 걸어줬다.
스마트폰 스크린을 끄는데 다시 손위 동서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그건 일부러 안 받았고.
지금 이 상황에서 전화를 받아 무슨 말을 더 하겠나.
오히려 내가 전화를 일부러 안 받아야 내가 지금 얼마나 불쾌해하고 있다는 걸 상대가 알지 않겠나.
결국 그로부터 문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한다.
-30분 뒤에 일어나기로 했어.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답장 정도는 해줘야겠단 생각에 입맛을 다시며 문자를 보냈다.
-네, 형님. 그럼 조심히 들어가시고, 좋은 밤 보내세요.
-전화 일부러 안 받는 거야?
-네. 다음에 통화하시죠.
-처제한테는 오늘 있었던 일 비밀로 해줘. 부탁이야.
-네, 알겠습니다.
그걸로 끝이지 뭐.
그렇게 한 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장모님이 김장을 하셨다며 몇 포기씩 가져가라고 강혜선과 처형에게 연락을 하셨던 모양이다.
금요일 점심시간 때였는데, 강혜선으로부터 오늘 마치고 처가에 같이 갈 수 있겠느냐고 카톡이 왔다.
처형 내외도 오는 건지 궁금했지만 카톡으로 물어보지는 않았고, 퇴근 후 함께 처가로 가는 차 안에서 아마 손위 동서도 같이 와서 저녁을 먹을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불편한 자리.
그런데 난 그 자리에서 상대를 더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밝게 행동했다.
마치 일전에 있었던 해프닝을 모르는 사람처럼.
하지만 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가 불안하게끔 의미심장한 미소를 한 번씩 고의로 날렸다.
그는 식사 자리 내내 침묵했다.
장인어른이 어디 불편한 데가 있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평소와 달리 말이 없었고, 또 매 순간 불안한 눈빛을 내게 들켰다.
그런데 앞으로 당분간은 그냥 저렇게 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다.
그러다 나중에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그때의 불쾌함이 완전히 사라질 즈음, 먼저 연락을 해서 술이나 한잔 같이하자고 하면 되는 거 아닐까?
가족이라는 건 때론 형식을 유지하는 거로 만족해야 할 때도 있다.
모든 관계에 진심이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겠나.
일단 겉으로라도 손아래 동서 역할을 해주면 되는 거지.
“공 서방.”
“네, 형님.”
“같이 담배나 한 대 피우러 갈까?”
“아뇨, 전 괜찮습니다. 형님 혼자 나가서 한 대 피우고 오시죠.”
“왜? 같이 가자. 가서 한 대 피우고 오자.”
“진짜 괜찮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아뇨, 지금은 안 피 우 고 싶 습 니 다.”
난 다시 한번 가족들 몰래 정색에 가깝도록 짧게지만 표정을 굳히며 그를 쳐다봤다.
더 이상 귀찮게 안 굴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담아서 말이다.
“…그래, 알았어.”
전무님식 대화 방법.
이거 은근히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