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영업이 다 거기서 거기 아냐?
난 정말 이 사람이 도대체 나한테 뭘 적당히 하라는 건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나한테 이렇게까지 적의를 품고 마치 작정하고 무시하듯 날 아래로 깔아 보고 있는 건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거기서 공 서방 네가 그렇게 말해버리면 내 입장은 뭐가 돼?”
“…형님.”
“누군 뭐 처가 챙기기 싫어서 안 챙겨?”
“아니,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형님.”
진짜 몰라서 물었다.
이렇게 태도가 갑자기 180도 바뀌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나.
내가 무슨 말실수를 했다거나 아님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을 했다거나….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난 그런 실수를 한 게 없는 거 같은데, 이 사람은 마치 내가 자신의 건드리지 말아야 할 역린을 건드린 것처럼 무척이나 불쾌한, 그리고 또 어쨌든 내가 네 윗사람이야! 하는 식의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언제 한 번은 말을 해줘야지, 해줘야지 하면서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 정도가 지나친 거 같아서 말이야.”
일단 난 지금 이 상황이 상당히 불쾌했다.
내가 이 사람한테 어떤 실수를 어떻게 했는지는 들어보기 전까지는 모르겠지만, 대화를 이끌어가는 스타일 자체가 마치 날 가르치는 듯한 태도여서 우선 마음에 안 들었고, 그리고 꼭 자기가 내 윗사람인 것처럼 구는 표정 자체도 상당히 거슬렸다.
예전부터 이상하게 그런 뉘앙스로 날 밟으려고 한다는 느낌을 종종 받아왔었다.
자기가 의사니까, 그리고 난 영업을 하는 사람이고.
그런 부분에서 자기가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은근슬쩍 해왔는데, 그럴 때마다 난 그냥 속으로 웃고 넘어갔었다.
매일같이 부대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어쨌거나 손위 동서인데 그냥 그런 식으로 자기 정신승리나 하라고 애써 그런 태도들을 무시해 왔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뭔가가 받치는 느낌이었다.
“너무 그렇게 목숨 걸고 점수 따려고 하지 마.”
“뭐를요?”
그때까지만 해도 난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손위 동서 대우를 해주며 침착을 유지했었다.
“왜 그렇게 유난을 떨어? 본가를 놔두고 명절을 처가에서 보내?”
“….”
“공 서방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난 뭐가 돼?”
이성적으로 이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충분히 입장이 난처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순간 아… 이 부분은 내가 살짝 실수를 한 거 같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고.
나야 집이 부산이라, 거기다 부모님 역시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하셔서 그럴 수 있는 거지만 사정상 그렇게 못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 아닌가.
그리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나 때문에 손위 동서가 부담을 갖고 또 집안 내에서 위축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하니 내가 굳이 그 자리에서 안 해도 됐을 말을 해서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네,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그 부분까지는 생각을 못 했네요.”
“생각을 좀 해, 공 서방. 생각이라는 걸 좀 해 가면서 행동을 하란 말이야.”
“….”
“왜? 기분 나빠?”
“…아닙니다.”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야. 이렇게 충격을 줘야 알아들을 거 같아서.”
아… 참자, 참자….
다 같은 말이라도 ‘아’가 다르고 ‘어’가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지적을 하는데 이렇게 사람을 최고조로 거슬리는 어휘와 억양만 골라서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이게 이 사람 스타일인 거겠지.
그리고 이 사람의 입장에선 내가 하는 말투나 억양이 거슬리게 느껴질 수도 있는 거고.
그래, 참자, 참자….
여긴 내가 에이스로 있는 회사가 아니다.
팩트만 가지고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상대도 아니고, 그렇게 따져서 이겨 본들 나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진짜 손위 동서만 아니면 속 시원하게 되받아쳐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참았다.
참는 수밖에.
그런데 여기서 난 손위 동서라는 사람의 스타일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게 된다.
그렇게 담배를 한 대 같이 피우고 다시 집으로 올라가서는 표정이 180도 바뀐다.
진짜 언제 내게 그런 살벌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헤헤헤 거리는 얼굴로 내게 농담을 던졌고, 또 강혜선에게는 ‘처제, 처제….’ 하며 아까 자신이 한 말실수는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며 진짜 실수였다고 사과까지 했다.
그렇게 처가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대리기사님을 불러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난 처가에서 있었던 불편했던 시간들에 대해 강혜선에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을 하게 됐다.
그런데 그냥 안 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고.
그렇게 명절 연휴를 알뜰하게 다 쓰고 다시 복귀한 회사.
“좋은 아침입니다, 차장님!”
“오랜만입니다, 안 팀장님.”
“출근하셨습니까?”
“오… 양 팀장님 얼굴 완전 많이 탔는데? 여행 잘 갔다 오셨어요?”
“여행은요, 무슨. 그냥 친척들이 하는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도망가 있었던 거죠.”
“도망을 발리까지 다 가고, 역시 이래서 싱글이 좋다니까.”
모두가 다 조금씩은 다른 명절 연휴를 보내고 다시 회사로 복귀를 한 상태였다.
주말까지 끼어서 연휴가 길었던 덕에 많은 직원들이 여행을 다녀온 거 같았고, 또 나처럼 결혼을 한 사람들은 양가를 왔다 갔다 하며 출근보다 더 힘든 연휴를 보낸 사람도 있는 거 같았다.
그리고 또 안 팀장처럼 하루 종일 집에서 먹고 자고만 하다가 며칠 안 본 사이 살이 쪄 있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게 우리 모두는 다시 업무로 돌아왔고, 밀려 있던 업무들을 쳐내기 위해 출근 첫날부터 갖가지 미팅에 불려다니며 바쁜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띠리링….
그러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손위 동서였다.
의외였다.
의외였고, 스마트폰 액정에 그 사람의 이름이 뜨는 순간, 처가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며 그가 내게 했던 행동, 지적들이 다시금 되살아나 기분이 살짝 불쾌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을 최대한 숨긴 채 기분 좋게 전화를 받았다.
“네, 형님.”
-공 서방 점심은 먹었어?
“네, 먹었죠. 형님은요?”
-어, 나도 먹었어.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야, 공 서방.”
“네.”
-너 왜 나한테 전화 안 하냐?
이건 또 뭔 소리야?
알고 봤더니 진짜 은근히 피곤한 스타일이네…
“네?”
-아니, 그날 그렇게 내가 그렇게 뭐라고 한 소리 했음 바로 그날은 좀 그렇더라도 다음 날이라도 나한테 전화를 해줘야 하는 거 아냐?
“….”
-이렇게 꼭 내가 먼저 전화를 걸게 만들어야 돼?
어떤 정신력으로 무장을 해야 이런 상대와 제정신으로 통화를 할 수 있는 걸까?
-그날 내가 한 소리 했다고 아직까지 꽁해 있는 건 아니지?
“아이고, 아닙니다, 형님. 꽁해 있다니요.”
-그럼 네가 먼저 전화를 해서 그날은 이러이러해서 형님이 이런 오해를 좀 하신 거 같은데, 제 진심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라든지, 아님 뭐 우리 사이에 그런 말 하는 게 조금 불편하다 싶으면 같이 식사라도 따로 하자든지 해야 할 거 아니냐고.
이 새끼 진짜 미쳤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 네…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이고, 참… 그래서 어디 영업 일 하겠어? 조만간 부장 승진 한다더니 홍성 인터내셔널 거긴 아무나 다 부장 달아주고 그래?
“…”
-농담이야, 이 사람아. 아, 왜 이렇게 영업을 한다는 친구가 눈치가 없지?
“….”
-오늘 마치고 뭐 해?
“오늘요?”
-마땅히 할 거 없으면 나랑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 나도 그날 공 서방 혼내놓고 마음이 영 안 좋더라고.
“…그러셨군요. 제가 미처 거기까지는…”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오늘 마치고 병원 앞으로 와. 한잔하자.
“저기 형님, 오늘은 좀….”
-그, 처제한테는 나랑 저녁이나 같이 하면서 술 한잔 한다고 미리 말해놓고.
난 이 인간이 왜 나에게 강혜선을 언급하며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드려고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그 자리에 나가고 싶지 않았고.
내 편견일까?
편견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난 퇴근 후에 그를 만나러 그가 운영하는 병원 앞으로 갔다.
“참치 좋아해?”
“네, 찾아다니면서 먹는 편은 아닌데, 있으면 먹습니다.”
“참치 먹으러 가자. 잘 아는 실장이 이번에 요 앞 사거리에 개인 집을 오픈했어.”
“…네.”
참치집에서 식사를 하고 또 사케도 한잔 같이 걸쳤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는 거지.
내가 이 사람 주량을 아니까.
지금 이 시간에 이렇게 약한 술로 천천히 달린다는 말은, 이제 시작이란 말이었다.
그래서 점점 더 불안해졌던 거 같다.
“근데 처형 혼자 집에 계시는데 일찍 안 들어가 보셔도 괜찮으십니까?”
“왜? 자네는 집에서 처제가 늦게 들어오면 눈치 줘?”
“그럼요. 눈치를 안 주더라도 당연히 눈치를 봐야죠. 영업하는 사람 아닙니까. 허구한 날 술인데, 오늘처럼 모처럼 간을 쉬게 만들어줄 수 있는 날까지 술을 마셔야 하면 당연히 눈치가 보이죠.
“나랑 같이 있는다고 말했지?”
재차 확인을 하는 손위 동서였다.
“…네.”
“그런데 뭐가 문제야.”
“아니, 제가 문제라는 말이 아니라 형님이….”
“나? 푸훕… 난 공 서방 너처럼 그렇게 잡혀서 살지 않아. 한 번씩 처가에서 너 하는 거 보면 안쓰러워. 왜 그렇게 해?”
도저히 내가 처가에서 하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로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정작 난 딱히 뭔가 장인, 장모님의 점수를 따겠다고 의식을 하고 행동했던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내 눈엔 손위 동서 이 사람이 어떻게든 자신의 지난 과오를 만회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처럼 보였고.
이래서 사람이 다 다른 모양이다.
내 눈엔 자기가 처가에서 하는 행동들이 참 안쓰러워 보였는데, 상대는 날 그렇게 보고 있었다니 이걸 웃어야 하는 건지, 울어야 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하, 하하하… 그런가요?”
“이해는 한다만… 너무 그렇게 애쓸 필요 없어. 그렇게 한다고 공 서방 너한테 돌아갈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짜 어떻게 말 한마디를 해도 이렇게 저렴하게 할 수 있는 걸까?
소위 나보다 더 많이 배웠다고 하는 사람이 말이다.
이건 버릇인 거다.
자기가 생각했을 때 자기보다 강한 상대, 혹은 자기가 잘 보여야 하는 상대 앞에서는 납작 엎드리고, 자기보다 약한 상대들 앞에서는 왕처럼 군림하려고 하는 버릇.
“아참, 근데 조금 있다가….”
“네, 형님.”
“그… 거래처 사람이 한 명 올 거야.”
“거래처요?”
“어, 우리 병원에 소모품 납품을 하고 있는 업체인데, 명절도 보내고 했으니까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고 연락이 왔더라고.”
“근데 전 왜 부르셨습니까?”
“같은 영업하는 사람들 아냐. 잘 통할 거 같아서.”
“…?”
“업계는 다르지만 영업이 다 거기서 거기 아냐? 사람 괜찮아. 잘 한번 사귀어 봐. 내가 친동생처럼 대하는 친구거든. 공 서방 너처럼.”
그때부터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디서 만나기로 하셨습니까?”
“아, 조금 있다가 이쪽으로 올 거야.”
“여기로요?”
“응.”
그런데 이미 우린 식사가 거의 다 끝나가는 상황.
“부담 가질 필요 없어. 그냥 편하게 생각해. 나이도 공 서방 너랑 비슷할걸? 사람 괜찮으니까 편하게 해, 편하게.”
20분 정도 뒤에 네이비 정장 차림의 남자 한 명과 딱 봐도 이제 막 영업 쪽 일을 배우기 시작하는 거 같은 20대 후반의 남자 한 명이 참치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손위 동서에게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 다음 내 또래의 남자는 자리에 함께 앉았고, 20대 후반의 남자는 놀랍게도 익숙하게 카운터로 가서 우리가 먹은 저녁 식사를 대신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럼 한번 제대로 한잔 빠라삐리뽕 하러 가볼까?”
“그럴까요?”
느끼한 눈빛을 주고받는 두 사람.
어디까지 끌려가야 하는 걸까.
어디까지 내가 손아래 동서라는 이유로 이 몰상식한 행동을 참아줘야 하는 걸까…
“공 서방.”
“네, 형님.”
“일어나자. 진짜 제대로 한잔 빨아 보자고. 우리끼리.”
“근데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까?”
그에게 필요했던 건 내가 아니라 정확하게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였다.
너무 불쾌했다.
“뭘 또 다 알면서 영업하는 사람이 순진한 척이야? 얼른 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