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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62화 (162/325)

# 162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나는 녀석이 울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었다.

그저 언제나처럼 자기 엄마, 아빠를 부끄러워하고 있는 중일 거라 오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은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주기 위해 녀석의 방에 들어왔던 거다.

어렸을 땐 그런 게 없었는데, 매형의 사업 실패 이후 아영이는 습관처럼 사람들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가끔 자기 엄마, 아빠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속마음을 나에게 들켜오곤 했다.

한창 예민할 때 아닌가.

특히 아영이는 자기 엄마, 아빠가 외삼촌인 내 앞에서 뭔가 자기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행동이나 말을 할 때에 더 싫은 기색을 티가 나게 하곤 했다.

“….”

외삼촌과 이제 막 새로운 가족이 된 숙모까지 있는 앞에서, 자기 엄마가 울음을 터뜨리고, 또 자기 아빠는 코가 삐뚤어질 정도로 술이 취해서 들어와 다시 또 술을 마시기 위해 식탁에 앉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린 거라 오해했다.

하지만 아영이는… 자기 방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아이다, 아이다. 그냥 누워 있어라. 삼촌 불 꺼줄까?”

“….”

“삼촌 나간다.”

물기가 촉촉하게 들어찬 녀석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난 지금은 녀석을 혼자 있게 내버려 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아영이 방의 불을 꺼준 다음 조심히 방문을 닫아 주었다.

마음이 아렸다.

분명 좋은 바람이 불고 있는 건 확실한데, 그 좋은 바람이 불기 전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했고, 또 상처를 받았다.

난 방문을 닫아주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아버지와 매형은 아무런 대화 없이 어머니가 챙겨주신 제사 음식으로 술잔을 나누고 계셨고, 강혜선이 싱크대 앞으로 서서 다른 안주가 될 만한 국물을 데우고 있었다.

그리고 누나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은태 니도 앉아라.”

귀가 어두우신 아버지의 쩌렁쩌렁한 음성이 집 안의 적막을 깨뜨렸다.

난 그런 아버지를 향해 짧게 고개를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내까지 거기 앉아서 술잔 받으면 내일 아침에 차례 못 지내요. 그냥 나는 잠이나 자러 갈랍니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벌써 간다 카노?”

아버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수 자신의 옆자리 식탁 의자를 빼셨다.

그리고 어머니가 나오셨다.

“고마 보내요. 혜선이 니도 그거까지만 하고 옷 챙겨 입고 자러 가라.”

“….”

“그라고 내일 좀 일찍 온나.”

“네, 어머니.”

“몇 시에?”

내가 물었다.

“한… 5시까지 온나.”

“5시?”

내가 깜짝 놀라서 다시 물었다.

“차례 일찍 지내고 내일은 다 같이 좀 쉬자. 느그는 내려온다고 고생했고, 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몇 개 안 되지만 음식 하고 청소한다고 다들 피곤하다. 내일 누나도 그렇고 니 매형도 일하러 가야 되는데, 일 가기 전에 일찍 지내고 다 같이 밥은 먹어야 안 되겠나. 그렇게 일 가야 하는 사람들은 가고, 쉴 수 있는 사람들은 좀 쉬고… 그렇게 하는 거로 하자. 느그 내일 몇 시 기차로 간다고 했노?”

엄마 생각이 맞는 거 같았다.

사실 보통 집안 제사나 명절 차례 때엔 매형이 밖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고 들어오는데, 그 역시 딱히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니까.

“오후 2시.”

“차례 정리 끝내놓고 한숨 눈 붙였다가 출발하면 되겠네.”

“그라면 내일 5시까지만 오면 돼요?”

“할 게 뭐 있다고. 음식 다 해놨겠다, 새벽에 일어나서 탕국만 끓이면 되는데…”

“그래도 그렇게 일찍 지낼 거면 내가 지금 제기라도 좀 꺼내놓고 갈까?”

“놔 놔라. 오늘은 잠이 안 오지 싶다, 엄마가. 천천히 혼자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닦아 보지 뭐.”

그렇게 말씀을 하시며 어머니가 아버지 옆자리로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니도 이 사람아. 이런 일이 있었으면 밖에서 은태 불러가 술을 마실 게 아니라 퍼뜩 집에 와가 느그 마누라한테 한시라도 빨리 말을 해줘야 할 거 아이가.”

어머니가 애써 엄한 말투로 말씀하셨고, 그럼에도 매형은 언제나처럼 힘 빠진 미소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어이? 어째 그래 사람이 시근이 안 드노.”

“미안해서요.”

“….”

“미안해가…맨정신으로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허허허… 미안해가…”

어머니는 좀 더 싫은 소리를 하시려다 말고 입맛을 잠시 다시신 후 다시 입을 여셨다.

“그래도 꼭 죽으라는 법은 없다. 안 그렇나?”

“…네.”

“됐다.”

도대체 뭐가 됐다는 말씀이실까.

이상하게도 정확하게 뭐가 됐다고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 ‘됐다’라는 한마디가 지금의 이 상황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해주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 순간 매형은 천장을 바라보며 꽉 막힌 한숨을 길게 내어 뺐고, 어머니 역시 항상 강한 장모 역할을 해오던 버릇 때문인지 애써 천장만 바라보며 눈에 힘을 주셨다.

“돈 좀 다시 생깄다고 또 뭐 엉뚱한 거 할 생각 하지 말고.”

장모가 박아버린 쐐기에 매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피식하고 웃었다.

“은지예, 아입니더. 또 그랄 수 있습니까, 어데. 그라면 제가 어데 인간입니까. 그냥 지금 하고 있는 거 그대로 하면서… 지금껏 제대로 못 했던 사위 노릇 하면서… 그렇게 살겠습니다.”

“사위 노릇 전에 제대로 된 남편 노릇, 애비 노릇부터 해야 안 되겠나.”

“그라믄요. 당연하지요. 하아… 당연히 그래야지요.”

“니는 단 한 번도 사위 노릇 제대로 못 했던 적이 없다. 최소한 내한테는 그런 사위다, 니가.”

“하아…”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이제 그만둬도 안 되겠나?”

“천천히 상황 봐 가면서요. 뭐 형편 되는 대로 꾸준히 갚아주겠다고 말은 하던데… 그것도 뭐 그때 가봐야 아는 거 아니겠습니까?”

매형이 술이 꼭지까지 오를 정도로 취하면 하는 버릇이 하나 있다.

위아래 입술을 모두 입속으로 숨겼다가 수차례 밖으로 빼어내며 뽁뽁뽁 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건데, 그 소리를 만들어내며 어떻게든 눈에 고인 물기를 눈 밖으로 안 떨어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매형이었다.

“인자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힘들 때 안 좋은 마음 안 가져준 기… 그기 어디고? 됐다. 이렇게 버틴 것도 니고, 그렇게 버티서 어떻게든 오늘 같은 날을 만들어 낸 거도 니다. 고생 많았다. 한 잔 쭉 해라. 한 잔 쭉 하고… 얼른 들어가 자라. 느그도 그렇게 멀뚱히 보고만 있지 말고 갈 거면 얼른 가라.”

누나 내외가 아영이를 데리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매형이 비트코인으로 전세금까지 다 날렸을 때 누나는 매형에게 만약 내가 계속 당신 친가 쪽 사람들 얼굴을 보고 살아야 하는 거라면 난 당신과 이혼을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당시 누나는 진지하게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고, 그런 누나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매형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지금은 돌아가셔서 안 계시고 나이 차이가 조금 크게 나는 형님 한 분과 누님 한 분이 계시는데, 첫 사업이 크게 무너졌을 때 그 형제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그 부분에 있어서 그 집 형제들을 욕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그 형제들의 태도가 무척 차가웠던 건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 매형네 친가 쪽 형제들은 아직까지 작은 어촌이지만 대변 그쪽에서 나름 유지 행세를 하며 잘살고 있는 거로 안다.

그런데 매형이 한번 사업에서 크게 꽈당하고 난 뒤부터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턴가 명절 때도 왕래가 거의 없게 됐고, 그러다 자기들 부모님 묘 이장을 할 때에 누나한테 뜬금없이 연락이 와서 돈을 좀 내라고 했단다.

이게 참 웃긴 부분인데, 매형의 사업 실패와 동시에 갑자기 집안 전반적으로 일이 잘 안 풀리기 시작하는 거 같다며 어디 점집 같은 데를 찾아갔던 모양이다.

매형의 큰 형님이라는 사람이.

더 정확하게는 그 큰 형님 되는 사람의 아내가 찾아갔었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부모님 묫자리가 문제라는 소리를 그 점집에서 하더란다.

이장을 해야 된다면서 말이다.

누나는 당시 정말 돈이라고는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걸 또 형제들끼리 공평하게 나눠서 내자고 했단다.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매형이야 자기들 동생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 사업 때문에 동생 몫의 아파트까지 다 날려버린 우리 누나는 도대체 무슨 죈데?

나야 누나 동생이니까 무조건 누나 입장에서만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거지.

처음 매형이 투자했던 사업이 크게 엎어져서 빚더미에 올라앉았을 때도 매형의 형제들은 1원 한 푼 도와준 게 없다.

그거 다 우리 집에서 월세 돌리던 아파트 두 채 처분하고 또 이리저리 어머니가 돈을 돌려 막아 가며 만들어준 거다.

정말 그쪽 집안 형제들이 도와준 거라고는 1원 한 푼도 없다.

물론 난 그 부분에 대해 그들을 비난할 마음도 없고.

자기 가족이 먼저지 다들 결혼해서 자기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는데 어떻게 한두 푼도 아니고 그 큰돈을 형제라는 이유로 선뜻 해주겠나.

그리고 그 돈이라는 게 뭔가 새로운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돈도 아니고,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빚을 청산하는 데 필요한 돈이었기에 아무리 형제라도 자기 돈을 내어주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이해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 부분은 정말 이해하고, 또 오히려 난 우리 부모님이 당시에 생각을 조금 잘못하셨던 거라고 아직까지도 아쉽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들 막냇동생이 저렇게 처가 재산을 거덜 내고 빌빌거리고 있는데, 거기다 대놓고 우리 누나한테 자기들 부모 묫자리 이장을 해야 할 거 같으니까 언제까지 얼마를 붙이라고 하는 건 진짜 좀 아니지 않나?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라는 생각을 했을지 몰라도, 누나 동생인 내 입장에선 진짜 뭐 저런 인간들이 다 있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아닌 말로 할 거였음 좀 진작에 하지.

그 이장이라는 걸 해서 진짜 집안의 액운을 막을 수 있는 거라면 말이다.

매형한테 안 좋은 일이 있기 전에.

매형이 사업을 말아 먹기 전에 말이다.

누나 입장에선 이미 최악의 상황까지 갔고, 또 여기서 더 나빠질 게 전혀 없는데, 자기들 부모 묫자리 이장을 하는 데 돈을 내라고 하니까 미치고 펄쩍 뛸 노릇 아니었겠나.

이장하는 데 돈이 무슨 수억씩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매형의 형님, 누님 쪽은 둘 다 먹고살 만한 형편인데도 그러니까 누나 입장에선 더 약이 오를 수밖에.

근데 그걸 누나가 또 어떻게 어떻게 만들어서 그 돈을 해줬다.

그러면, 최소한 그쪽에서도 조금의 성의라도 보여줘야 할 거 아닌가.

그렇게 집안 전체적으로 일이 잘 안 풀리는 거 같아서 부모 묫자리까지 이장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정도로 가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그 성의라는 게 대단한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아영이가 중학교에 올라갈 때였다.

아직 그때는 매형이 비트코인까지 손을 안 댔을 때다.

명절이라고 다 같이 만났겠지.

그런데 그 자리에서 중학교에 입학을 하는 아영이에게 그 집 장남, 그러니까 매형의 큰 형님이라는 사람이 설 용돈으로 현금 대신 백화점 상품권을 줬단다.

“….”

웃음밖에 안 나오는 거지.

그런 사람들이다.

형편이 안 좋은 집도 아니고, 충분히 먹고살 만하고 또 차도 몇 대씩 굴리면서 대변 그쪽 동네에서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 사람이 그러니까 누나 입장에서는 일부러 저러나 싶기도 했을 거고, 정나미가 떨어질 수밖에.

이건 내가 내 누나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상황이었다.

누나는 이미 그때부터 매형의 친가 쪽 사람들과는 인연을 끊을 생각을 하고 있었고, 왕래도 거의 없었던 거로 안다.

제사 같은 게 있을 때도 누나는 안 갔던 걸로 안다.

그러다가 매형이 비트코인으로 마지막 대형 사고를 치게 된다.

그때 누나가 이혼 이야기를 꺼냈고, 매형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사람들이 그렇듯 모질지 못했다.

누나가 아영이만 데리고 먼저 부모님 집으로 들어왔고, 매형은 염치가 없어서 혼자 찜질방 같은 곳만 전전하고 있던 때에 결국 어머니가 매형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뭐 지금까지 쭉 이런 그림인 거고.

아영이는 그 모든 일련의 일들을 나처럼 전해 들은 게 아니라 옆에서 직접 다 봤을 거 아닌가.

특히 예민한 녀석인데,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나.

외삼촌이라고 하나 있는 나 역시도 따지고 보면 나 살기 바빴지 진심으로 녀석을 위하고 또 챙기지는 못했던 거 같고.

“그대여.”

“…?”

호텔에 도착했을 때였다.

혼자 이런저런 옛날 생각에 잠겨, 창가에 서서 커튼을 모두 열고는 동백섬에서 펼쳐지는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 샤워를 끝내고 나왔는지, 샤워 가운 차림으로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강혜선이 내 옆에 다가와 있었고,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아아…”

“…뭐 하는 거야?”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강혜선은 내가 뭐 하는 거냐며 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음에도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든 게 다 날아갈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는지, 평소엔 잘 부르지도 않는 노래까지 부르며 날 미소 짓게 만들었다.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버리고오오오오…”

가사가 참 괜찮은 거 같았다.

내 이야기인 것도 같았고, 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도 같은 가사.

워낙에 유명한 멜로디라 함께 흥얼거릴 수는 있었지만, 정확한 가사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강혜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을 한 글자 한 글자 새겨 보니… 가사가 참 괜찮은 거 같았다.

강혜선은 등 뒤에서 내 허리를 꼬옥 안으며 계속 노래를 이어갔다.

그리고 난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야경을 감상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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