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이거라도 갖다준 게 어딘가
이충기라고 있다.
내 기준에서는 인간이 아닌 존재다.
한 집안을 풍비박산시켜 놓고 홀로 잠적해버린 존재.
같이 수습을 해달라고 부탁을 해도 부족할 판에 자기 혼자 살겠다고 잠적을 해버린 놈이다.
여기서 내가 더 화가 나는 건 당시 매형은 그저 투자자 입장에서 더 많은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해 보증을 선 사람일 뿐이었는데, 그 뒷감당을 모두 매형이 하게 됐다는 거다.
절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매형은 그렇게 했고, 또 그래서 난 더 속에서 천불이 나고 매형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힘들었으며, 이충기를 증오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사실 매형이 그 당시 흔히 말하는 도리, 도의적 책임만 피했어도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될 이유는 없었다.
정확한 법률 용어까지는 나도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자세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 매형이 나도 피해자라며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면 처가 쪽 재산까지 탕진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거다.
그런데 매형은 자신으로 인해 금전적 피해를 보게 될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했고, 결국 처가를 희생시켰다.
그때보다 더 나이가 들어 사회 돌아가는 시스템, 사회 물정을 알게 된 지금에 와서 그때 일을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보다 더 피가 거꾸로 솟는다.
결국 매형은 그 도의적 책임이라는 것 때문에 돈은 돈대로 잃고 가족(자기 친가 쪽), 건강, 심지어 주변 사람까지 다 잃어버렸다.
정말 미련한 거지.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거고.
이충기는 사업적 머리가 제법 뛰어난 인물이었다.
물론 당시 난 그런 걸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기엔 턱없이 어린 나이였지만, 그럼에도 매형과 이충기가 함께 사업을 도모하는 모습을 몇 번 먼발치에서 볼 기회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난 매형은 그저 사람이 좋고 인맥이 넓은 화통한 사람일 뿐이고 진짜 사업 수완이 좋은 쪽은 이충기라고 보고 있었다.
그런 이충기와 죽마고우였던 매형을 운이 좋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형식상 동업이었지만 매형은 그냥 투자를 하고 또 투자자를 끌어오는 일만 하는 입장이었다.
나머지 사업에 관련된 모든 건 이충기 혼자 다 했던 걸로 알고 있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한때는 내가 형님, 형님 하며 매형만큼이나 따랐던 존재고.
매형과 동갑이고 부산 기장에 있는 대변이라는 작은 어촌에서 매형과 동네 친구로 쭉 같이 성장을 하다가 고등학교까지 함께 나온 매형의 절친이다.
처음 이 두 사람이 함께 사업을 펼칠 당시엔 정말 잘나갔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당시 두 사람은 지금의 나보다 한두 살 정도 나이가 어렸다.
그럼에도 아직 내 기억 속에 있는 당시 두 사람은 지금의 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른이었고 또 통이 큰 사람들이었다.
내 앞에서 정치 이야기도 많이 했었고, 또 부산에 힘 있는 재력가들도 상당히 많이 알고 있는 거 같았으며 또 그런 사람들과 인맥도 꽤 있는 것처럼 굴었으니까.
그래서 난 당시 매형을 진짜 대단하게 바라봤었는지도 모르겠다.
매형이 이충기와 본격적으로 붙어먹기 시작하고 한 몇 년 정도는 진짜 잘나갔다.
물론 지금은 아예 흔적도 없이 모두 사라졌지만 <경성 돈가스>, <정우동>과 같은 프랜차이즈 가게도 몇 개나 연거푸 성공을 시켰고, 또 그런 가게들을 부산대 앞이나 서면, 명장동 등에서 친구 놈들과 돌아다니다가 보게 될 때면 그게 매형이 하는 사업이라는 사실에 난 어깨에 힘이 상당히 많이 들어갔었다.
당시 학교에서 난 요즘 흔히 말하는 금수저로 통했다.
물론 진짜 집이 잘살아서 그런 이미지가 붙었던 건 아니었고, 우리 매형한테 몇 번 밥을 같이 얻어먹었던 혁재, 지현이가 학교에서 <경성 돈가스>, <정우동>이 은태 매형이 하는 사업이라는 약간의 과장 섞인 소문을 퍼뜨리면서 자연스럽게 금수저가 되어버렸다.
물론 난 그게 싫지 않았다.
그리고 난 또 그렇게 믿었던 거 같고.
그렇게 한 몇 년 정말 잘 가다가 생뚱맞게 러시아 쪽으로 사업을 확장시키면서 문제가 생겼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형과 이충기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접고 러시아 쪽으로 사업을 확장시킨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난 이러다 진짜 우리 누나가 재벌 되는 거 아냐? 하는 생각까지 했었고.
모든 게 너무 긍정적이기만 했고, 또 매형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러시아에서 나무를 가지고 톱밥을 만들어 수출을 하는 사업이 아주 전망이 좋았다고 한다.
당시 이충기는 한국 중고차를 러시아에 수출하는 일에도 어느 정도 손을 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 사업이 당시에만 해도 땅 짚고 헤엄치기만큼이나 쉽고 또 하기만 하면 무조건 돈이 되었다고.
물론 그 루트를 뚫고 사업권을 따내기까지가 어려워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무조건 되는 사업인데, 그걸 이충기가 매형과 함께한 게 아니라 그냥 자기 개인적으로 얼마 정도 돈을 투자해서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매형이 러시아 관련 사업에 관심을 보이니까 나무 톱밥을 만들어 수출하는 사업을 이충기가 매형에게 제안을 했던 거다.
물론 이 사업 역시 사업은 이충기가 직접 하고 매형은 한국에서 투자자 역할만 했다.
그런데 이 톱밥을 만드는 기계가 보통 비싼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고장도 잦았고.
그럼에도 매형은 이충기만 믿고 과감하게 투자를 한다.
1년 정도는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게 기계 가격도 기계 가격이지만, 공장 부지도 알아봐야 하고, 이것저것 제반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꽤 사이즈가 나오는 사업이었던 모양이지.
그때까지도 우리 집에선 매형이 하는 일에 대해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손만 대면 다 잘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런데 1년만 예상했던 적자가 2년으로 이어지고, 3년째 들어서서는 회복이 안 되는 수준까지 가버리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지.
거기다 더 큰 문제는 딱 그 시절이 러시아 환율이 폭망했던 시기였다.
사람이 이렇게 한 방에 가는 거구나… 하는 걸 이제 막 군대 전역을 했던 난 매형을 통해서 바로 옆에서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바로 그런 타이밍에 이충기 이 인간이 잠수를 타버린다.
사업이라는 게 밑 빠진 독에 계속 돈을 밀어 넣어야 하는 상황이 올 때도 있지만, 아닌 거 같으면 과감하게 손해를 감수하고 접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매형이 그걸 못 했다.
이미 자기 돈이 많이 들어가 있었으니까.
거기다 자기만 믿고 함께 이충기에게 투자한 사람들의 토탈 투자 액수도 적지 않았고.
그런데 여기서 이충기가 진짜 나쁜 놈인 게, 매형한테는 조금만 버티면 분명히 상황이 역전이 될 거라고 희망 고문을 시켜가며 계속해서 투자를 유치해 달라고 해놓고 자기 혼자 쏙 빠진 거다.
매형은 이충기만 믿고 여기저기 돈을 끌어다가 마이너스를 막고 있었고.
그러다 러시아 환율 폭망. 쾅!
정말 한 방에 모든 게 다 날아가버리는 상황.
그 이후로 매형은 말 그대로 폐인이 된다.
거기서 그쳤으면 되는데, 이것저것 계속 빚을 만들어가며 다른 사업을 기웃거리다 더 무너지는 거고, 결국 어떻게든 만회를 해보겠다고 비트코인에까지 손을 댔던 거다.
“….”
매형이 눈물을 훔쳐내며 다시 한번 코를 훌쩍였다.
곱창을 구워주려고 쟁반에 생곱을 가지고 온 아주머니가 슬쩍 눈치를 살피시더니 소주 한 병만 내려놓고 다시 돌아갔다.
그런 아주머니에게 일단 들고 온 생곱 쟁반도 같이 내려놓고 가라고 말씀을 드렸다.
“조금 있다가 필요하면 부를게요.”
“…네, 그렇게 하소.”
앞에 놓인 통장.
열어봤다.
1억 8천만 원이 찍혀 있었다.
당시 매형이 떠안아야 했던 금액에 한참 못 미치는 액수.
난 이 액수가 참 궁금했다.
도대체 뭘까.
이충기 그 인간은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걸까?
물론 이거라도 받은 게 어딘가.
이거라도 갖다준 게 어딘가.
하지만 이럴 거면 차라리 매형을 다시 찾지나 말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턱없이 부족한 돈이지만 갚아줬다는 사실에 그 인간에게 고마운 감정이 드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이제 막 자리가 잡히기 시작했단다.”
“뭘요? 뭐 하고 있는데요?”
“러시아에 쭉 있었단다.”
“하아…. 개새끼….”
“이것저것 다 해봤단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여기저기 돈을 좀 끌어와서 여행객들 상대로 작은 기념품 가게를 하나 열었는데, 그게 운 좋게 대형 여행사랑 조인이 되면서 이젠 좀 괜찮아졌는갑드라.”
“….”
“내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나드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돈은 꼭 갚아야 한다고 항상 생각을 해왔단다.”
“그게 중요합니까?”
끝까지 답답한 말만 늘어놓는 매형.
“조금만 더 시간을 달란다.”
“….”
“이제 막 자리가 잡히고 있는 중이라 한 방에 다 갚아주지는 못해도….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돈은 다 갚아주겠다고.”
“그 말을 믿어요?”
“하아….”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난 소주잔을 비워버렸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담배 한 대를 피웠다.
분명 좋은 일인데, 전혀 기대를 안 하고 있던 일이 벌어졌는데… 지난 몇 년간 매형이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니 그게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매형과 술을 마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매형은 누나에게 이충기가 가져온 통장을 건넸고, 그때부터 집 안에 정적이 흘렀다.
아영이는 어른들 눈치만 살피며 티브이를 보는 척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었고, 어머니는 두 눈을 꼬옥 감은 채 한참을 가만히 계셨다.
아버지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셨고, 그 소주를 유리 물잔에 절반 정도 따르신 후 안주도 없이 마시셨다.
“하아….”
결국 누나가 눈물을 보인다.
매형은 그런 누나를 달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만히 아버지 맞은편 식탁 의자에 앉아 다른 물잔에 소주를 따랐고, 잠시 후 누나는 그 통장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
그리고 잠시 뒤 누나가 들어간 방에서 꺼억꺼억 하는 억지로 울음을 참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영이는 여전히 티브이를 보는 척 연기를 할 뿐이었고, 어머니는 냉장고에서 아직 차례상에 올리지도 않은 산적 몇 조각과 튀김을 꺼내 아버지와 매형 앞으로 올려놓으셨다.
“하아… 흐흐흑….”
누나의 울음소리가 조금 더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아영이는 이 무거운 공기를 감당할 엄두가 안 난다는 듯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난 간신히 한숨만 토해내고 있는 강혜선에게, 미안하지만 아영이 방에 한번 들어가 보라고 눈짓했다.
하지만 강혜선을 고개를 흔들었다.
자기가 들어가서 뭘 하겠냐는 투로.
그래서 난 알았다며 그냥 잠시만 소파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상황이 대충 정리되면 같이 호텔로 가자고.
그리고 잠시 뒤 어머니가 누나 혼자 들어가 울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들어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누나의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난 조심히 아영이의 방문을 노크했다.
“삼촌이다.”
“…,”
“삼촌 좀 들어가도 되나?”
“…,”
아영이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아영이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럴 때 니라도 엄마 옆에 있어야… 니 엄마가 니 보기 민망해서라도 덜 울지 않겠나?”
그런데 난 몰랐다.
아영이 그 어린것이 함께 울고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