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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57화 (157/325)

# 157

저도 콜입니다

장 부장 역시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브랜드였다.

이건 안 팀장이 건져온 건수를 그냥 무마시킬 수가 없어서 신경을 써주는 게 아니라, 정작 장 부장 본인을 위해서라도 시도를 해봐야 하는 브랜드였다.

전사 운영 본부장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영업부장으로서 굵직한 뭔가를 하나 정도는 터뜨려놓고 가고 싶지 않겠나.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내년 상반기 인사 발표 때까지 전 회사 차원이 아닌 우리 영업부 안에서는 뭔가가 터질 수 있는 건덕지는 거의 없다고 봐야 되는 거고.

어차피 본부장 승진은 확정이 났지만, 영업부장 기간이 너무 짧았다.

영업부장 타이틀로 자기가 직접 그럴싸한 그림을 만들어본 게 거의 없는 거 같다는 아쉬움도 항상 가지고 있었고.

그런데 만약 장 부장이 영업부장으로 있는 동안 모리엘츠가 터지기만 하면, 그건 그냥 단순히 대형 브랜드를 하나 잡아냈다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홍성의 레전드를 찍는 거라고 봐야된다.

사실 모리엘츠를 장 부장이 있는 동안 우리 영업부가 잡아낼 수만 있으면, 미리 사장님의 약속이 없었더라도 장 부장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승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리엘츠는 존재감이 확실한 브랜드니까.

홍성이 그 모리엘츠로 돈을 벌 수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상대가 무슨 의도로 자신의 명함을 안 팀장에게 건넸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거리가 먼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접촉 정도는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고.

“일단… 메일부터 하나 보내 봐. 뭐라고 답장이 오는지부터 같이 확인하고 다시 생각을 해보자.”

역시 장 부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장 부장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그리고 침착하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우선 난 대외적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받은 영업부장 - The sales department head 타이틀로 상대 마케팅 디렉터에게 메일을 한 통 보냈다.

내가 보낸 메일 내용을 요약하면 대충 이랬다.

1. 우리 쪽 팀장이 파리 출장길에 귀하의 명함을 한 장 받아왔는데, 현재 우리 홍성은 해당 팀장이 받아온 귀하의 명함 한 장으로 인해 어쩌면 귀하뿐 아니라 귀사와도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기대를 하고 있는 중이다.

2. 우리 홍성은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리와 시간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3. 만약 귀하의 편한 일정을 공유해 준다면 그에 맞춰서 귀하와의 만남을 준비해 보고자 한다.

물론 내가 봐도 민망할 정도로 오버스러운 메일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 정도 대우는 해줘야 하는 상대였고, 특히나 우리 쪽에선 마케팅 디렉터에 준하는 타이틀이 아닌 영업부장 타이틀로 접촉을 시도하는 장면이었기에 혹시라도 이런 부분에서 상대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예의를 갖추는 게 중요했다.

상황 자체가 애매했다.

안 팀장이 모리엘츠 마케팅 디렉터의 명함을 직접 받아온 건 사실이었지만, 상대가 정확하게 어떤 의도로 이 명함을 건넸는지는 안 팀장 본인도 살짝 헷갈려 하고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이 명함 한 장 때문에 박 이사한테까지 보고를 올렸다가 상대의 의도가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그게 아닌 게 되어버리면 보고를 올린 장 부장은 얼마나 입장이 우스워지겠나.

그런데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을 때였다.

그쪽 파리 현지 시각으로 오전 9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기대를 하고 메일을 보내긴 했지만, 답장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곤 예상을 못 하고 있었다.

시간상으로만 봤을 땐 그쪽에선 거의 출근과 동시에 메일을 확인하고 바로 답장을 한 것 같았다.

답장이 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답장의 내용은 훨씬 더 예사롭지 않았고.

답장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1. 이렇게 빨리 연락을 받게 될지는 몰랐다.

빠른 연락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2.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부티크는 정상 영업을 한다.

하지만 난 금요일까지만 근무를 한다.

주말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평일로 약속을 잡았으면 한다.

3. 귀하의 일정이 잡혀지면 스케줄을 보내주길 바란다.

그에 맞춰서 미팅을 준비하도록 하겠다.

답장 내용을 확인하는 내내 심장이 쿵쾅거렸다.

답장에 담긴 상대의 태도에는 상당히 예의가 있었으며, 또 그래서일까 내가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콧대가 높을 거란 그들의 이미지까지 한 방에 다 지워지는 느낌이었다.

난 곧바로 내가 보낸 메일과 받은 답장을 모두 복사해서 사내 메신저로 장 부장에게 보낸 뒤 전화를 걸었다.

“방금 메신저 보냈는데, 받으셨습니까?

-확인하고 있는 중. 잠깐 올라와라.

그렇게 난 다시 장 부장을 만나러 영업 마케팅부 사무실까지 올라갔고, 거기에서 장 부장에게 갤러리아 측과 접촉을 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모리엘츠 팝업 전시가 한 몇 년 한국엔 안 들어오지 않았어? 내 기억이 맞으면 3, 4년 전부터 국내엔 안 들어왔던 거 같은데…”

“저도 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는데, 한 몇 년 이야기가 없었던 건 맞습니다.”

“일단 갤러리아 측에 연락해서 정확하게 확인해 봐. 그리고 할 수 있으면 이유까지 알아보고.”

유통 판에 따라 부서 조직이 조금씩 다르기는 한데, 의류뿐 아니라 수입 자동차, 고가의 주얼리 팝업 전시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따내는 유통 판답게 갤러리아는 이벤트만 관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

그리고 우리 홍성은 그 부서를 통해 아주 가끔씩이지만 계약 기간이 완료되는 브랜드에 한해 특가전을 진행하기도 하고.

“거기 한 과장과 통화를 잠시 해봤는데요, 모리엘츠 팝업 전시 요청이 안 들어온 건 올해로 3년 째라고 합니다.”

“그지? 대충 그 정도 된 거 같긴 해. 이유는 뭐래?”

“SC(센딩 컨트롤) 에이전시들의 변덕을 자기들이 어떻게 다 알겠느냐고요.”

“하긴… 팝업 전시 들어오는 브랜드들이 어디 한두 개겠어? 그걸 어떻게 하나하나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겠어? 3년 동안 말이 없었음 자기들도 손절을 했겠지.”

“어떻게 할까요?”

“너 토요일 끼어서 다녀와도 괜찮겠냐?”

“이번 주에 갔다 오란 말씀이시죠?”

“괜찮겠어?”

“부장님만 콜 하시면 저도 콜입니다.”

“콜. 한번 갔다 와라.”

“출장 계획서는 어떻게 만들면 되겠습니까?”

장 부장은 한참 동안 검지와 중지로 책상 위를 피아노 건반 치듯 두드리다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뒤 말했다.

“나크리스, 쁘띠토널 본사 방문이라고 해.”

“네.”

뭔가가 구체화되기 전까지는 박 이사에게 보고를 안 올리겠단 뜻이었다.

영업을 하다 보면 마진을 지켜내기 위해 거래처 사람들에게 회사 규정을 팔아먹기도 하지만, 또 때론 지금 장 부장처럼 회사를 상대로 혹은 직속 상관을 상대로 뭔가를 잠시 숨기고자 다른 뭔가를 팔아먹어야 할 때도 있는 법.

지금 장 부장에겐 내게 허락한 파리 출장 명목이 바로 그런 거였다.

괜히 상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도 해 보기도 전에 박 이사 선에서 태클이 걸릴 수도 있는 문제니까.

장 부장의 판단은 박 이사를 무시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박 이사를 곤란하게 만들지 말자는 의도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난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사 정도 달고 있으면 겁이 많아질 수밖에.

우리야 욕 한 번 얻어 먹고 소주 한잔으로 그 욕을 씻어내면 되는 거지만, 이사라는 자리는 그런 자리가 아니니까.

그와 동시에 내 어깨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어주려는 의도도 조금은 포함이 되어 있으려나?

고작 안 팀장이 받아온 명함 한 장으로 진행이 되는 만남인데, 어떻게 만남 한 번에 뭔가 디테일을 뽑아올 수 있겠나.

홍성은 맨땅에 헤딩을 하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사장님, 전무님 세대 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지금의 홍성은 절대 맨땅에 헤딩을 하는 스타일로 브랜드를 따내기 위해 브랜드 측을 만나러 다니지 않는다.

거의 모든 게 다 갖춰진 상태에서 브랜드를 초이스하고, 또 브랜드 측과 미팅이 잡히면 같이 하자, 말자 하는 식의 소모적인 미팅을 하는 게 아니라 거의 곧바로 마진 협상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이미 미팅을 잡는 과정에서 함께하자, 말자 하는 이야기는 다 끝이 나 있는 상태고, 직접 얼굴을 맞대고 테이블에 함께 앉을 때엔 마진을 비롯해 기타 디테일을 잡는 게 전부다.

하지만 이번에 말 그대로 명함 한 장이 전부인 만남.

맨땅에 헤딩을 하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난 이번 파리 출장이 설렜다.

이건 내 개인적인 욕심이 만들어낸 설렘이었다.

모리엘츠.

거기다 마케팅 디렉터다.

이건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완성된 고급스러움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만 봐도 내 입장에선 상당히 남는 장사였다.

거기다 모리엘츠 마케팅 디렉터와 미팅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건 두고두고 술자리 무용담으로 삼을 수도 있는 거고.

어디 그뿐인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대 역시 꽤 적극적이었다.

수요일 오후 1시.

난 파리 드골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편에 올랐다.

12시간 40분을 날아가 도착한 현지는 이미 어둠이 다 내려앉은 저녁이었고, 이지혜가 공항까지 직접 마중을 나와 있었다.

“차장님!”

몇 달 만에 보는 이지혜.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안심이 됐다.

적응을 잘하고 있는 모양이다.

안 팀장에게 대충 전해 듣긴 했지만, 얼굴이 좋아 보였다.

난 출국장을 빠져나오며 여권을 든 손을 이지혜를 향해 흔들어 보였고, 그런 내 곁으로 빠르게 걸어온 이지혜는 내가 끌고 온 슈트케이스를 건네받으려고 했다.

“됐어요, 놔둬. 내가 끌어요.”

“주세요.”

“아, 됐다니까.”

난 재차 이지혜의 손을 뿌리친 덕에 캐리어를 빼앗기지 않았고, 그녀가 회사 차를 세워놓았다고 하는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현재 하고 있는 파리 생활은 할 만한지 물어봤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와서 현지에 적응하고 또 업무가 손에 익는다 싶으니까 벌써 가을이네요.”

“본사 복귀 안 하고 싶단 말로 들리네?”

“설마요. 아직은 새로운 환경에 신선한 재미로 다니고 있는 거지, 일만 놓고 보면 본사 일이 훨씬 더 재밌어요.”

“큰일 날 소리 하고 있네.”

“…네?”

“일이 재밌으면 어떻게 하나? 조심해야 돼요.”

“뭘요?”

“일하는 거 재밌고, 그래서 매일매일 출근이 기다려지는 순간…”

“순간?”

“연애 못 한다?”

“푸흡… 전 또 무슨 말씀을 하신다고요.”

다음 날이었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아침 일찍 이지혜가 찾아왔다.

전날 호텔까지 회사 차량으로 직접 운전을 해서 데려다준 이지혜에게 내가 부탁을 좀 했었다.

쁘띠토널 본사가 어딘지를 모른다.

찾아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찾아갈 수도 있겠지만, 굳이 쉬운 길을 놔두고 왜 사서 고생을 할까.

거기다 쁘띠토널 입장에서 난 같은 홍성 식구이기도 하지만 가장 신경 써서 챙겨야 하는 고객인 셈이다.

만토바와 링겐까지 직접 다 이어준 본사 영업부를 대신해서 오지 않았나.

이지혜 본인도 겉으로나마 당연히 자신이 날 데리러 오겠다고 말을 했었고, 또 전날 비행 여독으로 함께 저녁을 먹으며 몇 가지 부탁을 하려고 했는데, 그걸 못 해서 같이 아침 식사라도 하면서 이야기를 꺼낼 생각에 그녀에게 수고스럽겠지만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간단하게 식사를 끝내고 커피 한 잔씩을 다시 시켜서 내가 파리 출장을 온 진짜 목적을 말해줬다.

“난 오늘 그 자리에 지혜 씨랑 같이 갈까 해요.”

“저랑요?”

이지혜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네.”

“아니 전… 왜….”

“내가 언제 출장 갈 때 혼자 다니는 거 봤어요?”

“…!”

“그런데 이번엔 왜 혼자 왔겠어? 지혜 씨한테 좋은 기회잖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모리엘츠 마케팅 디렉터랑 미팅을 해보겠어요? 사실 이런 기회는 계속 이쪽 업계에서 일을 한다는 전제하에 돈 주고도 못 해 보는 경험이에요.”

“그야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나한테는 영업 5팀 식구들이 제일 먼저네.”

“…!”

“이래서 처음이라는 게 참 중요한 거 같아요. 팀장을 달고 처음으로 내 팀이란 게 생겼을 때의 감흥을 아직까지 못 잊겠어요.”

“저야 갈 수만 있음 당연히 가고 싶죠. 하지만 해야 할 업무가…”

“윤 본부장님한텐 내가 직접 부탁드릴게요. 아, 인간적으로 그 정도는 해줘야지. 본사에서 일 잘하고 있던 에이스를 내가 큰맘 먹고 보내줬는데, 그 에이스 반나절 빌리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겠어요, 설마?”

“에이스는요, 무슨…”

“몰랐어요? 지혜 씨 에이스야.”

“차장님도 참… 아, 그래서 오늘….”

쁘띠토널 CEO와의 점심 약속은 내일이었다.

말만 CEO지 어쩔 수 없이 법인 내의 파워는 윤 본부장이 훨씬 더 강하고.

쁘띠토널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유지되고 있던 맨파워까지 함께 홍성이 다 업었고, CEO 역시 연임을 시키고 있는 중이다.

프랑스 출장이 잡히면서 윤 본부장에게 전화를 한 통 넣었는데, 쁘띠토널 CEO와 함께 점심 한 번 정도는 같이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이리저리 사정을 둘러대며 금요일 점심으로 잡았었다.

하지만 도착하고 다음 날 인사차 법인에 얼굴을 비추겠다고 약속을 했었고.

“일은 일이니까. 아무리 본사에서 내가 데리고 있었어도 지금은 윤 본부장님 도와서 일하고 있잖아요. 허락은 받아야죠?”

“네.”

“대신 우린 오늘 나크리스 쪽 사람들 만나러 가는 겁니다. 혹시 모르니까 윤 본부장님 앞에서는 모리엘츠의 모 자도 꺼내지 마요.”

“네엡!”

그렇게 쁘띠토널 본사에 들러서 윤 본부장과 함께 그의 사무실에서 다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아침에만 벌써 석 잔째다.

오늘 하루 과연 몇 잔이나 더 마시게 될지 벌써부터 겁이 났다.

시차 적응도 제대로 못 한 상태에서 계속 커피만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지혜?”

“네, 저 아직 나크리스 본사가 어딘지도 모릅니다. 하하하.”

“필요하면 뭐… 그렇게 해.”

“지혜 일 잘하죠?”

“지금 마음 같아서는 한 1년 정도 더 데리고 있고 싶다.”

은근한 부탁이었다.

“본인만 원하면 시켜야죠.”

하지만 난 자신이 있었고.

“본인은 뭐라고 합니까?”

“아직 그런 거까지 물어볼 수 있나, 어디.”

“나중에 시간 나면 조용히 따로 불러서 한번 물어보세요. 똑똑한 친굽니다. 알아서 어떻게 하는 게 본인에게 좋을지 현명하게 판단할 거예요.”

내 말에 윤 본부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난 개인적으로 ‘내 새끼’라는 표현을 별로 안 좋아한다.

내가 어디 배 아파 내 배 속에 품었던 것도 아니고, 잠시 데리고 있으면서 일 조금 가르쳐줬을 뿐인데 내 새끼라는 표현을 쓰는 건 너무 오버스럽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이지혜만큼은 내 새끼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윤 본부장이 이렇게 은근한 압박까지 가해가며 이지혜를 탐내고 있다는 사실이 날 상당히 기분 좋게 만들고 있었다.

윤 본부장과는 내일을 기약한 뒤 이지혜와 함께 쁘띠토널 본사를 나와 모리엘츠 부티크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이지혜의 모습.

상당히 낯설었는데, 또 그래서 상당히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본사 영업부 사무실에서 계약직으로 있을 때 혼자 온갖 바닥 일을 다 쳐내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일 틈조차 없었던 그녀의 모습이 잠시 오버랩되는 기분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과연 그럴까.

그 자리까지 갈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어떻게든 그 자리까지 갈 수 있는 건 아닐까?

애초에 이지혜에게는 이런 모습이 어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홍성 본사 영업부에선 이런 모습이 될 때까지 참고 견뎠던 애벌레였을 뿐이었고.

“어떻게 오셨습니까? 예약은 하셨습니까?”

모리엘츠 부티크 입구에서였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둘이 원단부터가 다른 고급 정장 차림으로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딱 봐도 출입 웨이팅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들이었다.

속으로 난 안 팀장을 떠올렸다.

뭐?

웨이팅 없이 그냥 들어갔다고?

그럼 그렇지.

다른 브랜드도 아니고 천하의 모리엘츠에 웨이팅이 없을 수가 있나.

아직 오전이었지만, 그리고 밖에서 대충 봐도 부티크 안엔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나와 이지혜는 부티크 입구에서부터 막혔다.

“홍성 인터내셔널에서 왔습니다.”

내가 영어로 대답했다.

하지만 남자 두 명은 홍성 인터내셔널을 처음 들어보는 듯 서로 눈빛으로 교환한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스터 총게와 미팅이 잡혀있습니다.”

그리고 난 안 팀장이 받아왔던 그곳 마케팅 디렉터의 명함을 내밀었다.

그 명함을 확인한 후에야 한 명이 미소를 지으며 부티크 문을 열어주었고, 다른 한 명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 나와 이지혜를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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