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몸 좀 사리자
마진 부분은 영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성과급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예민할 수 밖에 없다.
회사는 절대 토탈 매출 어마운트를 가지고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나눠주지 않는다.
우린 총 매출의 일정 부분, 혹은 물건 하나 팔 때마다 얼마씩의 인센티브를 챙겨가는 매장 직원들이 아니지 않나.
아무리 각 매장에서 매출이 많이 올라와도 영업 순이익이 프로젝트 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면 일은 일대로 하고 성과급은 쥐똥만큼만 받아갈 수 없는 게 우리 본사 영업 직원들의 숙명이다.
성과급이 생명인 영업직이 아닌가.
경기가 안좋아서 성과급을 뽑을 수 없게 될 때를 대비해서라도 우린 경기가 그나마 괜찮을 때 최대한의 성과급을 챙겨놔야 하는 사람들이다.
성과급이 안나온다고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게 매 년, 매 시즌 들쑥날쑥한 수입을 가져갈 수 밖에 없는 우리 영업직 사람들을 상대로 이런 일방적인 마진 베이스를 던져놓고, 회사 자체 브랜드이니 알아서 팔아오라고 하면 누가 쁘띠토널을 받겠다고 할까.
일단 난 양 팀장을 볼 면목이 없었다.
나크리스를 영업 마케팅부로 넘기고 안 팀장의 기획 2팀으로부터 Kidshub를 넘겨받으라고 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그래서 우선 양 팀장 앞에서 약간의 오버를 하며 흥분한 모습을 보여준 뒤 곧바로 장 부장을 찾아갔다.
"그게 말이 돼?"
장 부장의 반응 역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보다 더 진심으로 흥분을 하며 날 쏘아봤다.
마치 내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인 것처럼, 이 모든 잘못의 책임을 나에게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지.
장 부장 역시 당황하고 어이가 없어서 그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걸.
"다행입니다."
"뭐가?"
장 부장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지금 저 혼자 오버하는 게 아닌 거 같아서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부장님한테 이 건으로 보고를 하러 올라오면서도 제가 지금 필요 이상으로 오버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더라고요. 어차피 회사 브랜드이고, 또 회사가 그렇게 결정을 한 사안에 대해 일개 차장이 불만을 표출하는 게 과연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가 불렀어? 어디서 이미지 관리해? 지금 이게 정상이야?"
"당연히 아니죠. 그래서 부장님을 찾아온 거 아닙니까."
장 부장은 귀 주변이 홍시처럼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을 했다.
"근데, 잠깐만..."
장 부장은 내가 가져온 마진 베이스를 다시 한 번 천천히 살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런 걸 보냈지?"
"뭐가...요?"
"아니, 자기들 말대로 쁘띠토널을 독립적으로 운영을 하겠다면 우리한테 이런 걸 보낼 이유가 없는 거 아니야."
난 그때까지도 감을 못잡고 있었다.
"마진 베이스 말이야, 이 사람아."
"그게 왜..."
"하아, 답답하네. 어느 브랜드가 자기네 마진 베이스를 이렇게 다 오픈하나."
아마 난 장 부장이 그 말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쁘띠토널이 우리 홍성의 브랜드라는 점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래서 우리 쪽으로 일방적인 마진을 던진 윤 부장에 대한 화가 덜 가라앉은 상태였던 모양이다.
장 부장이 그렇게까지 말을 해주는데도 이상한 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그렇게 하라고 지시가 내려왔음 그냥 우리쪽으로 얼마의 마진을 원하니까 그에 맞게 물건을 발주하라고 통보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그야, 그렇...!"
"실수가 난 거 같은데, 이거?"
그랬다.
어떻게 보면 쁘띠토널의 대외비일 수 있도 있는 내용이 양 팀장에게 메일로 전달이 됐던 것이다.
우리 홍성의 마진 베이스 뿐 아니라 만토바, 링겐의 마진 베이스까지 함께 들어있는 한 장의 서류.
난 양 팀장에게 그걸 받아보면서도 쁘띠토널이 홍성의 브랜드다보니 이렇게 정보를 공유하나보다...하는 정도로만 생각을 했지, 그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부분은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만약 쁘띠토널이 정말로 홍성 본사와는 별개로 독립적인 운영을 하겠다 마음을 먹었으면 이런 마진 베이스는 숨겨야 정상이다.
왜 저 회사에겐 이정도의 마진까지 조율을 해주면서 우리에겐 이정도 마진밖에 안 맞춰주느냐 식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마진 베이스는 노출을 하면 안되는 부분이었다.
나도 참 어리석은 게 그걸 이제야 눈치챘고, 장 부장은 그런 내게 일단 자기가 박 이사를 직접 찾아가서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볼테니 일단 돌아가 있으라고 지시했다.
-어 난데, 양 팀장하고 같이 이사님실로 잠깐만 올라와봐.
30분 정도 시간이 흘렀나?
장 부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무척 차분한 음성으로 양 팀장을 데리고 박 이사 사무실로 잠깐만 올라와 보라고 했다.
11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여차하면 거기에서 바로 점심을 먹으러 나갈 생각에 나와 양 팀장은 지갑에 차키까지 챙겨서 박 이사 사무실로 올라갔다.
"일단 앉아."
박 이사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소파에 먼저 앉아 있던 장 부장이 나와 양 팀장에게 소파 자리를 권하며 앉으라고 했고, 우린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가는 것만 쳐다보며 박 이사의 통화 내용을 들었다.
"정신없지? 그럴 거야. 혼자 다 하는 게 어디 말처럼 쉽나. 거기 지금 몇 시야? 새벽 3시? 어후...잠도 못자고...일단 알았어.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한숨자고 다시 통화하자고. 그래, 그래...우리 애들이 어디 그렇게 경우가 없는 애들이야? 놀라서 그랬지 뭐. 그
래. 어쩌다보니 일이 꼬인 거야. 아냐, 아냐...윤 부장이 무슨 철인도 아니고 무슨 수로 혼자 넘어가서 직원들 살 아파트 구하고 대사관 쫓아다니면서 다 하겠어? 이해하니까 너무 마음 쓰지마. 그래. 알았어.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고."
상대방과의 통화를 끝내기가 무섭게 박 이사는 입술만 달싹거리며 "씨발..." 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참동안 우리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은채 창 밖을 쳐다보다가 이내 표정을 바꿔 어색한 미소로 우릴 대했다.
자리에 앉으며 박 이사가 말했다.
"상황이 조금 우습게 되어버렸네."
"..."
나와 양 팀장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고, 이미 박 이사로부터 뭔가 이야기를 전해들었던지, 장 부장은 어쩔 수 없이 현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유럽애들 일하는 거 보면 진짜...걔네들은 정말 생각이라는 게 없는 애들인가봐. 의심이라는 걸 안해."
"..."
"양 팀장 네가 받았다고 하는 그 마진 베이스 말이야. 그쪽 오피스 보는 애가 실수로 잘못 보냈다. 커뮤니케이션 상에 뭔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야. 윤 부장은 일단 마진 베이스를 만들어놓기만 하라고 지시를 했는데, 그걸 그쪽 오피스 보는 애가 잘해보겠다고
의욕이 앞서서 메일 발송까지 해버린 모양이더라고. 우리쪽 뿐만 아니라 만토바, 링겐까지 다 보냈다고 하네. 뭐 밴더들이야 우리 홍성 본사랑 같은 마진으로 물건을 받으니 컴플레인을 걸 건덕지가 없지."
"그런 실수가 나온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받는 마진이랑 밴더들이 가져가는 마진이 같다는 게 문제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박 이사는 고개만 끄덕이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장 부장이 내게 은근한 눈치를 줬다.
"일단 식사부터 하러 가시죠, 이사님."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이제 11신데?"
장 부장의 말에 박 이사는 굳이 손목에 채워진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고, 그런 박 이사에게 장 부장은 이럴 때 이사 파워를 사용해보란 뉘앙스로 장난을 걸었다.
"요즘은 퇴근하고 술 한잔 하자고 하면 꼰대소리 듣습니다. 소주 한 잔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까? 그래, 나가자. 나가서 술이든 밥이든 뭐라도 하면서 이야기 하자."
박 이사가 자주가는 생태탕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직 점심 시간 전이라 가게는 우리 말고는 손님이 없었다.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고, 아직 앉은뱅이 식탁들은 다 비어있었지만, 자리가 길어질 것을 미리 예고라도 하듯 장 부장은 가장 구석진 자리로 박 이사를 안내했다.
어쩐 일인지 박 이사는 탕 네 그릇과 생태 수육 한 접시를 추가로 시켰고, 술도 일반 소주가 아닌 화요를 갖다 달라고 했다.
난 장 부장과 나란히 앉았고, 박 이사 옆으로는 양 팀장이 자리를 잡았다.
“자네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에 이사딱지 달고 앉아 있으면서...이번엔 참...내가 커버를 못 쳤다.”
장 부장이 술병을 땄고, 그 술병을 내가 건네받아 박 이사와 장 부장의 술잔을 채웠다.
그리고 양 팀장이 그 술병을 다시 건네받아 내 잔을 채웠고, 양 팀장의 잔은 박 이사가 직접 채워줬다.
“칠 수가 없더라. 내가 부장만 됐어도 목소리 한 번 내보겠던데, 꼴랑 1년차 이사가 그 자리에서 이건 아니라고 영업부 편에만 서는 게 모양이 참 안좋더라고.”
“...”
“양 팀장.”
“네, 이사님.”
“그냥 그대로 가자. 힘 뺀다고 달라질 내용이 아냐.”
“...”
“원래 수출 제품은 마진을 더 빼줘야 하는 게 정상이 맞아. 쁘띠토널 입장에서도 마진 베이스를 산정할 때 같은 유럽권에 있는 만토바나 링겐한테 주는 마진보다 수입받는 업체한테 주는 마진을 더 낮춰잡아주는 게 일반적인 거거든.”
우리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럽 애네들은 수출을 하면 7.9퍼센트의 세금을 돌려받잖아. 그래서 보통 유럽권에 있는 업체한테 물건을 줄 때보다 수입하는 업체한테 주는 마진이 최소 5퍼센트 이상은 낮아. 그래야 수입하는 업체도 낮춰진 마진으로 세금을 커버칠 거 아니겠냐고.”
“그렇죠.”
“그래서 처음에 내가 그 부분을 말하면서 최소 홍성 마진은 만토바에 들어가는 마진보다 10퍼센트는 낮게 잡아줘야 할 거라고 운을 띄웠거든. 내가 그정도까지만 운을 띄워 놓으면 나머지 마진 협상은 여기 공 차장, 마진 협상 전문가가 있으니 알아서 더 받아
낼 거라고 예상을 했고. 그런데 이게 씨알도 안 먹히는 거야.”
“...”
“회사가 작정하고 밀어보겠다고 하는 브랜드가 되다보니, 홍성을 기준점으로 잡아야 한다는 게 전무님의 생각이셔. 브랜드 띄우는 거야 사실 만토바가 받아주고 또 링겐이 어느정도 커버를 쳐준다는 전제하에 Kidshub만 중국에서 문제없이 성공하면 알아서 뜰
거 아니겠어? 그렇게만 되면 꼭 만토바나 링겐처럼 1차 밴드가 아니더라도 중소매 하는 애들이 직접 컨텍을 해올거란 생각이지. 그럴 때 업자들을 상대로 조금이라도 쉽게 마진을 보호하기 위해선 홍성이 기준이 되어주어야 한단 말이지.”
“봐라, 홍성한테도 이 마진에 넘긴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더 내려주겠냐. 받으려면 받고, 아니면 받지마라...하는 식의 고급 전략을 쓰겠다는 생각이지.”
박 이사의 말을 받아 장 부장이 보충 설명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와 양 팀장은 그 보충 설명이 있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물론 내 새끼들 밥그릇에 지장이 가는 부분이라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보긴 했는데...소심했어.”
“...!”
“인정해. 미안하다. 이사라는 타이틀 자체가...내 새끼들 챙기라고 있는 타이틀이 아니라, 회사편에 서라고 있는 타이틀이잖아.”
할 말은 진짜 너무 많은데, 억울하고 손해보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드는데, 천하의 박 이사가 이렇게까지 나와버리니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알아. 특히 공 차장 입장에선 진짜 열받을 수 밖에. 상무보 모시고 직접 링겐까지 찾아가서 쁘띠토널 밀어넣고 또 결국은 만토바가 쁘띠토널을 받는 시늉을 해주겠단 사인을 받아낸 것도 다 공 차장 작품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그런데 은태야.”
우와...진짜 너무하네.
거기서 이름을 불러버리네.
“네.”
“우리 첫 째 결혼할 때까지만 몸 좀 사리자.”
“...!”
“우리같은 월급쟁이들이 보고 달리는 게 결국은 그런 거 밖에 더 있겠어? 내가 진짜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너희들을 앞에 앉혀놓고 이런 말 한다는 것 자체가 쪽팔리고 또 쥐구멍이라도 있음 숨어들어가고 싶은데...어쩌겠어.”
순간 난 박 이사 옆에 앉은 양 팀장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냥 넘어가자는 듯한 신호를 보내는 양 팀장.
해당 프로젝트의 당사자가 그냥 넘어가자고 하는데, 어쩌겠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사님. 전후 사정을 알았다면 이렇게까지 난처하게 만들어드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게 또 내 실수야. 내가 바로 이야기를 해줬어야 했는데, 어떻게 기회를 만들어서 너희들한테 이야기를 해주는 게 최선일지 고민하느라 시간만 보냈네. 진짜 술 한 잔 없이 이런 민망한 부탁하는 게 내 입장에선 쉽지가 않더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사님은 저희한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제가 누구 덕에 벌써 차장을 달고 있는 건데요. 그리고 어느 부장이 이사 진급하면서 자기 부서 맨파워를 이렇게 완성해놓고 나갑니까? 다들 이사님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마음 쓰지 마십시오.”
“네, 이사님. 제가 알아서 팀원들 이해시켜가며 진행하겠습니다.”
양 팀장이 그렇게 말하며 술잔을 채워주자, 박 이사는 지금껏 우리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었던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비워버렸다.
“대신 내가...우리 영업 기획부일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지고 커버쳐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와 양 팀장은 장 부장이 박 이사의 잔에 다시 술을 채우는 동안 각자의 술잔을 들어 박 이사의 술잔을 마중나갔다.
그렇게 테이블 위에서 술 잔 네개가 합쳐졌고, 우린 단숨에 그 독한 화요를 입 속으로 털어넣었다.
“그런데 이사님.”
내가 물었다.
“응.”
“그 부분은 그렇다치더라도...이월 상품 말입니다.”
“무슨 이월상품?”
“쁘띠토널 이월상품이요. 재고 상당히 많지 않습니까?”
“많지. 그거 때문에 윤 부장 지금 머리 꽤나 아플 거야. 안 그래도 아까 윤 부장이 그러더라. 지금 잠도 못자가며 일하고 있는데, 이제 막 잠이 들려고 하니까 양 팀장이 전화가 와서 자기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고.”
“그거라도 좋은 마진으로 털어날라고 해주실 수 없습니까? 정상 물건이야 저희가 조금 손해 본다손 치더라도, 이월 제품은 마진 협상에 들어가도 큰 문제가 없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공 차장 이 자식 이거 진짜 누가 물건 아니랄까봐.”
“여주 아울렛하고 동부산 아울렛에 이미 Kidshub 들어갔지 않습니까. 거기서라도 재미를 볼 수 있도록, 이월 제품 마진이라도 신경 좀 써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