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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36화 (136/325)

# 136

각자도생

한 대리와 최 대리의 신경전은 꽤 오래 이어졌다.

물론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선 두 쪽 모두에게 응원을 보내며, 그렇게 두 사람 모두 직장 생활, 대인 관계에 갈리고 또 갈리길 바라기만 하면 되는 거였고.

내 개인적으로는 아주 이상적인 맨파워가 형성되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 한쪽에게만 힘이 집중되는 건 그다지 바람직한 팀 맨파워가 아니니까.

부서의 덩치가 커질 수록 그 덩치의 힘은 적당하게 분산이 되어주어야만 한다.

거의 레전드 급에 가까웠던 박 이사가 부장이었을 시절, 그가 주로 했던 방법처럼 영업부 전체를 사자후 한 방으로 모두 휘어잡을 수 있을 만큼의 카리스마가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장 부장에게는 나란 사람, 즉 공 차장이라는 존재가 곁에 있는데, 내겐 장 부장이 가지고 있는 공 차장과 같은 존재가 없는 상태였다.

양 팀장과 안 팀장은 나와 함께 가는 전우의 개념이지 내가 내 스타일에 맞게 조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영업 기획부 차장으로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기 시작하자, 장 부장이 가지고 있는 공 차장과 같은 존재가 내게도 꼭 한두 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최 대리, 나 좀 봅시다.

한 대리와 최 대리의 신경전이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골을 만들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끊어주고, 또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이 맥없이 끊어지기 전에 적당히 다시 붙여주는 작업을 계속 해야만 했다.

"최 대리 나 좀 봅시다."

내가 두 사람에게 뭔가 문제점을 지적해 줄 때엔 모두가 다 보는 앞이 아니라 두 사람을 각각 따로 불러 이야기를 했다.

주로 17층을 이용했다.

두 사람 모두 담배를 피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담배 한 개피를 최 대리에게 건네는 동안 최 대리는 내게 불을 붙여줄 라이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 담배를 한 대씩 입에 물었다.

"최 대리, 다 좋은데..."

"네, 차장님."

"업무 확인할 때 말이에요."

"네."

"중국 법인에선 이걸 이렇게 했고, 또 이런 건 이런식으로 처리했다...하는 식으로 부하 직원들한테 말을 많이 하는 거 같아요?"

"..."

"여긴 중국 법인이 아니잖아."

"죄송합니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헷갈리면 안돼. 따지고 보면 중국 법인의 업무 시스템 자체도 이곳 본사에서 넘어간 거야. 그게 이제 중국 법인으로 넘어가서 현지 실정에 맞게끔 변형이 된 거라고 봐야하지 않겠어요?"

"...네."

"똑똑한 사람이니까 더이상 이야기는 안 할게요. 근데 딱 이거 하나만."

"네, 말씀하십시오."

"오리지날 시스템을 먼저 파악해야 돼. 그걸 먼저 파악해놓고, 어째서 그 시스템이 중국 법인으로 넘어가서 그렇게 변형이 되었는지를 따져보면 전체 그림을 한 결 수월하게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리고 또 며칠 뒤엔 한 대리를 따로 부른다.

"한 대리, 우리 담배 한 대 피고 합시다."

"네."

전자담배를 피우는 한 대리.

하지만 나와 담배를 피울 때엔 꼭 내가 건네는 연초를 받아서 불을 붙였다.

"한 대리를 보면 사람이 너무 방어적이야."

"...네?"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요. 그냥 내 눈에 보이는대로 말해주는 거니까."

"네."

"최 대리가 무슨 말만 하면 한 대리는 거부반응부터 보이는 거 같아?"

"아닙니다."

"에이...아니긴 뭐가 아니야. 때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눈이 더 정확할 때도 있는 법이라고. 최 대리가 중국 법인 관련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주 그냥 두드러기를 일으키듯이 표정부터 달라져."

"..."

"조금만 더 똑똑하게 반응해요. 한 대리는 뭐 중국 법인 주재원 근무 안 갈거야? 계속 본사에만 있을 거냐고. 아니잖아. 언젠가는 신청해서 갈 거잖아. 그때 한 대리가 한 대리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애초에 주재원 근무를 보고 홍성에 입사를 했다고. 내가 만약

한 대리였음 이걸 기회라고 생각하지, 지금 한 대리가 하는 것처럼 아예 귀를 막지는 않을 거 같아."

"...!"

"얼마나 좋은 기회야? 그냥 들어줘요. 들어주는데 돈 드는 거 아니잖아. 그리고 언젠간 한 대리가 중국 법인에 가서 해야할 일들이잖아. 미리미리 숙지해둔다 생각하고 들으면 그렇게까지 못 들어줄 정도로 최 대리가 중국 법인을 물고 빠는 것도 아닌 거 같더

만, 왜 그렇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해?"

"죄송합니다."

"으으음...그런 말 들으려고 따로 부른 게 아니라 조금만 스마트하게 일을 하자는 말을 해주려고 부른 거예요. 홍성은 구멍가게가 아니에요."

"...?"

"기회가 많다는 말이야. 왜 더 늘어나지도 않을 팀장자리 하나 놓고 의미없는 기싸움에 힘을 빼나? 한 대리, 최 대리 두 사람 다 내가 책임지고 내년까지 팀장 달아줄 거예요."

"...!"

"최 대리야 어차피 주재원 근무도 다녀왔고, 또 입사일 기준으로 내년 쯤 팀장 다는 게 맞는 거고, 한 대리도...내년엔 주재원 한 번 가야하지 않겠어? 주재원 보낼 때 어디 그냥 보낼 수 있나? 타이틀 하나 올려서 보내야 그나마 모양이 안 이상하지."

그 순간 한 대리의 얼굴엔 미처 다 숨기지 못한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웃기는...내가 지금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까 대충 알고는 있으라고."

"그런데 차장님."

"응?"

"안그래도 없는 맨파워인데, 왜 계속 직원들을 외부로 돌리려고 하시는 겁니까? 예전부터 궁금했습니다."

"결국은 다 우리 사람이잖아요. 결국은 다 우리 영업 기획부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고."

한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말하는 외부라고 해봤자 중국 법인이랑 프랑스 파견근무 밖에 더 있어? 해외 근무 하다가 돌아와서 영업 마케팅부로 빠지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거 아니냐고. 결국은 다 우리 영업 기획부의 인재가 되어서 돌아올 사람들인데, 안 보낼 이유가 없지. 조금

이라도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보고 돌아오면 그게 다 우리의 재산 아니겠어? 그리고 또 우리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나가 있으면 그만큼 업무 동조가 수월할 거고. 결국은 커뮤니케이션 문제잖아요. 영업 기획부의 실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나가

있어줘야 그만큼 본사에 남아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수월해져.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다시 본사로 복귀하면? 그건 뭐 두 말하면 입아프지. 안 그래?"

"...네."

"그게 내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경쟁은 하되, 그게 미련하게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지게는 하지마. 뭘 위해서 그래? 그냥 이거 하나만 명심하면 돼."

"뭘..."

"중국 법인 주재원 근무나 프랑스 파견근무 모두...그게 홍성 생활의 목적이 되어선 안되는 거예요. 거긴 말 그대로 파견이야. 잠시 거쳐가는 곳이라고. 난 그때 중국 주재원 근무가 한 대리가 홍성에 입사한 목적이란 소리를 듣고 속으로 살짝 의아했어. 끽해봤

자 4년인데, 그것만 보고 홍성에 입사를 했다? 내 상식에선 이해가 안되더라고."

"아...그게 이제 무슨 말이었냐면..."

"각자도생. 다들 각자의 생각과 방식이 있겠죠? 주재원 근무가 한 번으로 정해져있는 건 아니니까. 또 갈 수도 있는 거지. 그리고 거기서 인정을 받으면 아예 눌러앉을 수도 있는 거고. 근데 난 한 대리 정도 가능성 있는 친구는 가지가 아닌 뿌리가 있는 몸통에

서 제대로 컸으면 하는 바람인 거고."

"네,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요. 그럼 먼저 내려가요. 난 담배 한 대 더 피우고 내려갈게."

펼쳐지는 빌딩숲.

노을이 오늘따라 지나치게 붉은 거 같았다.

이렇게 곧 여름이 시작되겠지.

추운 여름.

패션업계만큼 계절이 거꾸로 움직이는 업계가 있을까.

겨울이면 단가 높은 패딩이나 가죽 제품이 많이 판매가 되기에 따뜻할 수 밖에 없고, 여름이면 죽어라 프로모션, 이벤트를 때려도 매장 현장 직원들과 CA업무만 늘어나지 딱히 손에 떨어지는 재미는 없다.

그럼에도 우린 이 여름을 잘 나야한다.

마치 프로야구 선수들이 목숨걸고 하는 시즌 후, 동계 훈련처럼 우린 이 여름 시즌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보내느냐로 한 해 실적이 판가름 나니까.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난 이번 여름 시즌에 꼭 대형 사고를 한 번 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들 맨파워가 없다고 걱정을 했지만, 난 안 팀장의 말처럼 현재 영업 기획부 팀장 맨파워는 역대급 맨파워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인원이 많다고 꼭 일이 잘 돌아가는 건 아니니까.

이건 말론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의 현상인데, 이상하게 인원이 살짝 부족할 때 집중력은 상승한다.

각자의 업무 밀도가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꼭 보면 초능력을 만들어내는 누군가가 등장을 해주는 거 같다.

"그럼 전체 회식 준비는 그렇게 하는 걸로 합시다. 가는 사람들 위주보다는 새로 들어온 사람들 위주로 회식 분위기를 이끌어갑시다. 어차피 가는 사람들도 언젠간 다시 돌아올 거 아니겠어요?"

"네, 그럼 부장님도 참석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일단 말씀은 드려볼게요."

그렇게 양 팀장과 안 팀장을 불러놓고 팀장 미팅을 이어가고 있었다.

"회식 부분은 그렇게 정리하는 걸로 하고, 다른 내용 있으십니까?"

"쁘띠토널 쪽에서 그쪽이 측정한 마진 베이스를 보내왔습니다."

양 팀장이 서류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넸다.

"쁘띠토널이라면 윤기준 부장님 말씀이신가요?"

"네, 그런데 조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차장님께 보고부터 하고 연결을 해볼 생각입니다."

"뭐가 이해가 안된단 말씀이세요?"

"마진 베이스 한 번 확인해보시죠."

"에이, 이렇게 본다고 아나, 어디. 실물도 없고, 제품 이미지도 하나 없는 상태에서 숫자만 보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냥 이야기 해요."

문제를 삼아도 되는 부분인지, 헷갈려하는 양 팀장.

"저희한테 주는 마진 베이스가 만토바나 링겐으로 주는 마진 베이스랑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리입니까? 하는 말이 정말 목끝까지 차올랐다.

난 다시 천천히 마진 베이스를 확인했고, 그걸로는 분간이 잘 안가서 쁘띠토널이 만토바와 링겐에게 넘겨주는 마진 베이스와 비교를 해가며 다시 확인을 해봤다.

양 팀장의 말처럼 같은 베이스 라인이었다.

"혹시 차장님은 따로 들으신 이야기가 있나 해서요."

"있었음 이야기를 했죠. 뭐야, 이거? 미팅 끝나는대로 연결해서 확인 해보세요. 실수가 났겠지."

"그렇겠죠?"

"당연하죠. 설마 우리한테 주는 마진을 일부러 이렇게 측정하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실수가 아니었다고 한다.

프랑스 현지 한국 직원을 이끌게 된 윤기준 부장.

영업 지원부장으로 있다가 포지션 변동없이 그대로 부장을 달고 다른 파견 직원들보다 먼저 프랑스로 넘어가 세팅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영업부 관련해선 어지간한 영업부 팀원들보다 내부 사정을 더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또 우리 영업부에 상당히 호의적인 인물이기도 하고.

장 부장보다 3년 입사 선배다.

"실수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이없는 웃음을 얼굴에 걸어놓고 양 팀장이 내 자리로 찾아왔다.

이건 진짜 어이가 없는 거다.

정확하게 말해서 홍성 브랜드를 홍성 영업부가 파는 건데, 그 마진이 밴더들에게 주는 마진이랑 같다는 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 아닌가.

"별개라고 합니다."

"뭐가요? 뭐가 별개란 말입니까?"

"위로부터 그렇게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홍성 산하이긴 하지만, 쁘띠토널은 독립적으로 운영을 해나갈 방침이라고."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아니, 씨바 그러면 별개니까 우린 쁘띠토널을 안 받아도 되는 겁니까?"

"..."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아닌 말로 회사가 매입한 브랜드니까 우리가 책임지고 물량을 빼주겠다고 이렇게 뺑이를 치고 있는 거지, 독립이고 지랄이고 그렇게 나오면 우리가 뭐 미쳤다고 물량을 받아줍니까? 다른 잘 나가는 브랜드 받아서 팔면 장땡이지."

"어떻게 할까요?"

"잠깐만 있어보세요. 이건 내 선에서 해결될 일이 아닌 거 같네. 아직 발주 안 넣었죠?"

"네."

"넣지말고 기다리세요. 좆같이 나오면 발주 안하면 그만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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