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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78화 (78/325)

# 78

회사는 그렇게 감정적이지 않다는 걸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몸을 돌리길래, 난 그 길로 박기태가 자기 자리로 돌아간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곧바로 밀려있는 업무를 보기 시작했고.

그런데 모니터를 한참동안 보고 있는데 기분이 살짝 이상했다.

마치 누군가가 날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할까.

아니나 다를까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까 파티션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박기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

내가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뭔가 결심을 한 듯 다시 내가 앉은 책상 쪽으로 걸어오는 박기태.

그는 내 앞에 서서도 한참동안 머뭇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뭔데 그래요?”

“저기 차장님.”

“말해요.”

“오늘 저 소주 한 잔만 사주시면 안됩니까?”

딱 봐도 그 짧은 시간 동안 파티션 앞에서 상당히 많은 용기를 낸 게 티가 났다.

“이런 기분이셨겠구나...”

“네?”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럼 이렇게 하죠. 일 때문에 맨날 마시는 술. 술은 그냥 반주로 하는 걸로 하고 저녁이나 같이 먹읍시다.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되잖아, 나도 그렇고 기태 씨도 그렇고. 괜찮죠?”

“...네, 감사합니다.”

예전에, 한 몇 년 전에 장 부장이 부하직원들 다 보는 앞에서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진짜 해도해도 너무한다.”

당시 장 부장은 차장 승진을 거의 코 앞에 둔 팀장이었고, 난 이제 갓 대리를 단 상태였다.

팀 내에서는 바로 윗 상사, 부하직원 관계였지만, 부서 전체로만 놓고 보면 나와 장 부장 사이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꽤 오래 전 일인데도 당시의 상황이나 내가 했던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진짜 할 수 없는, 해선 안되는 실수를 만들어냈고, 거기에 더 최악은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그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다가 꼬리를 밟힌 상황이었다.

유로 환율이 미친듯이 들쑥날쑥하던 시기.

하루에도 30원 이상씩 차이가 나던 시절이었다.

다른 게 위기가 아니라 우리같은 수입 위주의 상사 회사 같은 경우는 이런 순간이 위기다.

발주를 넣을 당시엔 1 유로가 1330원씩 하던 게 막상 인보이스 처리를 처리할 때가 되면 1400원을 육박하기도 하던 때였으니까.

이렇게 환율이 불안정한 시기가 오면 특정 기간동안 서로 협의 하에 거래 브랜드 업체측과 고정 환율 거래라는 걸 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도 있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인보이스를 늦게 보내거나, 혹은 인보이스 처리를 늦게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내가 말도 안되는 실수를 하는 거지.

갓 대리를 달고 정신없이 이것저것 업무를 떠안다보니 일시 고정 환율로 측정한다는 걸 깜빡하고 인보이스를 확인했던 거다.

진짜 아리까리한 업무들을 계속 주문받다 보니까 숨 쉬는 것보다 쉬운 업무에서 실수가 나와버린 거다.

당시 팀장이었던 장 부장 역시 눈으로 인보이스가 처리됐다는 걸 확인만 하지, 일일이 계산기를 가져와서 확인을 해볼 정신은 없었던 거고.

그런데 박 부장이 그 인보이스를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확인하는 순간 속으로 ‘조때따...’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던 거다.

“고정 환율 적용한 거 맞지?”

“...네.”

실수를 했다는 걸 알면서도 박 부장이 너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버린 상황.

그날 난 다른 업무를 핑계대고 혼자 사무실에 남아 야근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걸리는 거지.

박 부장의 눈썰미가 어디 보통 눈썰미인가.

속으로 제발 모르고 그냥 넘어가라, 모르고 그냥 넘어가라...하며 기도를 올렸지만, 숫자 몇 개가 크게 차이 나는 걸 박 부장은 단숨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마치 자기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내가 한 실수와 거짓말의 실체를 혼자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화가 많이 났었다, 당시 박 부장은.

진짜 귀 주변이 뻘겋게 달아올라서, 쌍욕만 안했다 뿐이지 자기 화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났었다.

내가 실수를 한 거에 대한 화가 아니라, 내가 살짝살짝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화가 아니라 미련하게 일을 하는 나의 업무 스타일에 화가 났던 거였다.

그냥 실수를 인정하고 욕 한 번 얻어먹고, 그렇게 업무 시간에 처리해도 되는 부분이었는데, 그 실수를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또 그 거짓말을 무마하기 위해 퇴근 후 사무실에 남아 미련하게 끙끙댔을 내 모습에 화가 났던 거였다.

“하아...진짜 해도해도 너무한다.”

진짜 피곤해서 말도 하기 싫다는 투로, 과연 내가 너란 인간을 끌고가야 하는 것이냐는 듯한 투로 힘없이 그런 혼잣말을 하는 장 부장.

쌍욕보다, 샤우팅보다 그런 실망스런 표정을 내게 보여주는 게 더 내겐 상처였던 거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팀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당시 신입이었던 장향은이 보는 앞에서 그런 반응을 보인 것에 난 회사 생활 정말 하기 힘들다, 못해먹겠단 생각을 했던 거 같고.

그날 난 업무 반나절 내내 고민을 했다.

그리고 거의 처음으로 술 한 잔만 사주시면 안되겠냐고, 내가 먼저 물어봤던 거 같다.

물론 당시 내 입장과는 무척 다르지만, 박기태 역시 당시의 나와 비슷한 무게감을 안고 소주 한 잔 사달라는 말을 꺼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거절을 못했다.

“어후...왜 이렇게 비싼데로 오십니까? 괜히 술 한 잔 사달라고 한 사람 부담스럽게.”

새벽집으로 갔다.

만만한 게 새벽집이니까.

“내가 먹고싶어서요. 왜? 소고기 별로?”

“아뇨, 비싸니까 그렇죠.”

박기태는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눈으로 스캔하며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맨날 술 사달라고 하는 안 팀장님이었음 이런데 데리고 오지도 않아.”

“크크크...”

“난 한 번씩 주기적으로 소고기를 먹어줘야 돼요. 근데 또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 운이 나쁘다고 해야할지, 결혼할 상대는 내가 소고기 먹으러 가자고 하면 정색부터 해. 그 돈이면 뭐 할 수 있고, 뭐를 살 수 있고...아이고, 잔소리가, 잔소리가...”

“그렇게 은근히 돌려서 사모님 되실 분 자랑하시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사모님이라니, 징그럽다. 그냥 형수님이라고 불러요, 마땅한 호칭 생각나는 거 없음. 나랑 기태 씨 나이차이가 나면 얼마나 난다고, 내가 뭐라고 사모님이라고 불러?”

“양 팀장님이나 안 팀장님은 뭐라고 부르시는데요?”

“글쎄...그냥 만나고 계시는 분? 이렇게 불렀던 거 같네.”

“형수님이랑은 어떻게 결혼준비는 잘 되고 계십니까?”

“에휴...그것만 생각하면 미안하지. 자기도 밖에 나가서 일을 하는 사람인데, 맨날 나만 바쁜척 거의 혼자 다 준비하게 만들고 있어요.”

“차장님이야 뭐 워낙에 바쁘시니까요.”

“그래도 진짜 회사가 살렸어. 차장 승진이라는 핑계가 있으니까 봐주는 거지, 이런 승진도 없이 혼자 맨날 피곤하다고 앓는 소리 해버리면 얼마나 짜증이 나겠어. 안 그래요?”

“그렇죠.”

“요즘은 진짜 할 수만 있음 내 몸을 둘로 쪼개고 싶어. 진짜 정신없다.”

그렇게 우린 먼저 도착한 간단한 밑반찬과 함께 소맥을 말기 시작했다.

고기를 구워주겠다고 이모님 한 분이 오셨는데, 자주 보는 이모님이었다.

농담을 꽤 구수하게 하시는 분인데, 나랑은 워낙 자주 보다보니 가끔씩 먼저 소맥 한 잔을 달라고 장난을 치기도 하시는 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기 맥주컵을 하나 가지고 와서 자기 소맥도 한 잔 말아달라고 해서 박기태를 시켜 한 잔 근사하게 말아드리라고 했다.

“근데 이 분은 오늘 처음 보네?”

“예전에 같이 한 번 왔어요.”

“아뇨. 처음입니다.”

박기태가 고개를 저으며 나랑 이 곳에 온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진짜? 나랑 여기 오늘 처음 와봐요?”

“네.”

“오...그건 또 몰랐네? 왜?”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전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까요?”

“아니, 나랑 벌써 10개월 넘게 같이 하고 있잖아요. 영업 5팀 시절부터. 그런데 여길 나랑 오늘 처음 와봤다고?”

“...네.”

양 팀장이야 몇 번 같이 와서 술이 떡이 될 때까지 마셨던 기억이 있고, 장향은 역시 내가 팀장을 달기 전부터 쭉 같은 팀이었으니 몇 번은 같이 와봤을 거다.

팀 회식 때라도.

여긴 장 부장과도 특별한 날이 있으면 가끔씩 오는 집이니까.

이지혜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남녀 사이가 되다보니, 그리고 한 때 회사에 나돌았던 말도 안되는 루머 때문에 괜한 오해를 사기 싫어서 단 둘이 식사를 하는 자리는 내가 일부러 피했고.

그런데 박기태를 내가 한 번도 이 집에 안 데리고 왔다는 건 조금 의외였다.

“보세요. 여기서 딱 티가 나는 겁니다.”

“뭐가요?”

“차장님이 절 별로 안 좋아하신다는 게.”

장난이 절반이었지만, 나머지 절반에 섞인 진심이 너무 진했다.

“내가 왜 기태 씨를 별로 안 좋아해? 나 기태 씨 완전 안 좋아해.”

“...”

“농담. 뭐야? 사춘기 소녀야? 왜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요?”

“저는...사실...차장님이 절 안좋게 보고 계시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뭔 소리야?”

“5팀에 있을 때부터 그랬죠. 양 팀장님이야 팀에서 차장님이 업무적으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사람이 좋든 싫든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였고, 또 이지혜는 이상하게 챙겨주셨죠. 근데 전...”

“...?”

“물론 저도 제가 한 짓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래서 원망이 아니라 후회를 하는 마음에 드리는 말입니다.”

“이럴 때 보면 기태 씨 사람 참 이상하다. 뭘 그렇게 혼자 생각하고 결론을 내버려요? 내가 왜 기태 씨를 안 좋아하나?”

나도 살짝 당황을 했던 모양이다.

소맥을 말 거라고 준비한 맥주컵에다가 소주를 맥주처럼 채우고 있는 나.

난 아차 싶어서 얼른 다른 맥주컵에 소주를 덜어놓고 그 속으로 맥주를 부었다.

“물론 나 팀장 초기때 기태 씨랑 양 팀장이 나한테 했던 거, 나한테 보여줬던 그 유치한 행동들 생각하면 지금도 한 대 쥐어박고 싶어. 진짜 얄미웠거든. 솔직히 지금도 이해가 잘 안돼. 도대체 뭘 위해서 그랬던 건지. 그런데 난 이렇게 생각해요.”

술잔을 들어 가볍게 건배를 한 뒤 그걸 반쯤 잘라마셔놓고 말을 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동안 내가 하는 어떤 행동들도 내가 아닌 타인의 기준에선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 많을 거라고.”

“...”

“그리고 타인이 하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또 거기에 함몰되기 보다는 그냥 내가 쉽게 견딜 수 있는 방향으로 해석하고 최대한 빨리 잊어버리는 게 직장 생활을 장수하는 유일한 지름길이라는 걸 알겠더라고.”

“혹시 저 빨리 나가라고 대리 승진을 시켜주시는 겁니까?”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내가 미쳤어? 아까 회사에서 다 설명해줬잖아요. 이제 달만 하니까, 달 때 된 거 같으니까 그렇게 진행을 해보자는 거라고.”

박기태는 생각이 많은 표정으로 고기 한 점을 입 속으로 넣었다.

“이모님, 이거 불 빼주셔도 될 거 같아요. 이 위로 선지국만 올려주고 가보셔도 될 거 같아요.”

“여기 오는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알아요?”

이모님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나와 박기태에게 말했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일을 했을 건데, 여기 와서까지 술 마시면서 회사 이야기를 한다는 거야. 그래서 한 번은 내가 물어봤어. 회사에선 도대체 뭐하냐고. 뭐라는지 알아요?”

“글쎄, 그건 별로 안 궁금한데 혹시 그 질문을 받은 사람들이 이런 말은 안하던가요? 우린 이렇게 회사 마치고 회사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그것도 말 되네. 맛있게 먹어요.”

이모님이 가신 후 본격적으로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기태 씨 언젠간 나갈 사람이라는 거 잘 아는데, 그렇다고 시켜야 되는 승진을 미룰 수는 없는 거 아냐. 내가 내 입으로 그랬잖아요. 대리까지는 달아라고. 그렇게 이직을 해야 경력 인정받고 나이스한 이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셨죠.”

“근데 그 말을 지키는 게 무서워서 승진을 시켜야 할 사람을 시키지마? 그건 말이 안되지. 그럼 내가 내뱉은 말 때문에 기태 씨 후배들까지 승진을 못 시키는 거잖아요.”

“하지만...”

“시기상 이 대리 빠지고 나면 기태 씨가 대리 자리 올라가는 게 맞는 거잖아. 어차피 향은 씨야 벌써 대리 명함 받았고.”

“...”

“물론 해외 영업부에도 기태 씨 입사 선배 한 명 있는 거 알아. 근데 그건 별개의 문제지. 그 친구한테 기획 1팀으로 가서 이 대리가 하고 있는 업무 인수인계 받으라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냐, 인간적으로. 그건 내 입장에서 진짜 맨파워 손해잖아요. 인수인계까지 업무를 이중, 삼중으로 봐야하는 거니까.”

“...네.”

“그리고 나 길게 안 봐요.”

“뭘...”

“앞으로 1년은 더 남은 일이잖아, 기태 씨 이직. 아냐? 대리 달고 곧바로 나갈 건 아니잖아요, 인간적으로. 난 기태 씨가 그렇게 얌통머리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 안해요. 최소한 대리 달고 반 년 정도는 더 해주다가 업무 인수인계 완벽하게 해놓고 이직을 하더라도 할 거라고 믿고 있어. 그리고 이직하는 회사에서도 이전 회사 타이틀을 인정 받으려면 최소 1년은 해줘야 돼. 그 사람들이 어디 바보야? 승진하고 곧바로 이직을 하려는 사람을 좋게 보게. 안 그래. 세상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단 말이야. 그리고 이직이라는 게 어디 하겠다고 바로 되나? 마땅한 회사도 알아봐야 할 거 아니냐고. 그것도 은근히 시간 많이 걸려요.”

“...”

“그럼 최소한 지금으로부터 1년 뒤에나 벌어질 일인데, 그걸 왜 내가 벌써부터 걱정을 하나? 그거 아니라도 나 지금 걱정할 거 태산이야. 나중에 기태 씨가 홍성에서 팀장을 달든, 아님 다른 회사에서 팀장을 달든, 팀장을 달아보면 알겠지만 1년 뒤에 벌어질 일까지 미리 다 계산할 수 없어요. 벌써 나부터도 그래. 누가 알아? 내가 내년에도 홍성에 계속 다닐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에요.”

절반 쯤 남은 소맥을 마저 비워낸 후 말했다.

“급한 불부터 꺼야지, 내 입장에선. 난 기태 씨가 이런 생각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했네. 자, 기획 1팀은 현재 돈을 벌고 있는 팀이에요. 그죠?”

“네.”

“기획 2팀은 돈을 벌 준비를 하고 있는 팀이고. 맞아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해외 영업부는 회사의 미래를 보고 투자를 하고 있는 팀이에요. 그럼 내 입장에서 현재 어디에 집중을 해야될 거 같아요.”

“...”

“뭘 또 고민을 해. 당연히 현재 돈을 벌고 있는 팀에 집중을 해야지. 내가 회사의 미래까지 걱정해야 하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난 그냥 주어진 환경 안에서 열심히 돈만 벌어다주면 되는 사람이야. 현재 기태 씨가 있는 기획 2팀 Kidshub가 대박이 나면 좋겠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는데 성과가 미비하면 어쩔 거야? 아무도 모르는 거야, 사업이라는 건. 일단 어떻게든 돈을 벌고 있는 팀에 가능하면 최고의 맨파워를 집중시켜서 돈을 쓸어담으면서 다른 팀의 사업도 함께 도모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니에요?”

“...네.”

“난 기태 씨를 나름 에이스라고 생각해서 이 대리가 빠지고 나갈 자리로 보내려는 거지, 거기에 다른 의미는 전혀 없어요. 나중에 대리 달고 나가기 전에 기태 씨 정도 업무 쳐낼 수 있는 사람 하나만 키워놓고 나가. 그게 회사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의리 아닐까?”

“저...그냥 없었던 일로 해주시면 안됩니까?”

“뭘?”

“그때 제 사표.”

“없었던 일로 했잖아. 그때 만토바에서 기태 씨가 직접 찢었잖아.”

“아뇨, 그때 제가 했던 말...”

“...?”

“저 그냥...차장님 밑에서 계속 홍성맨으로 남고 싶습니다.”

“아,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그동안 타겟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타겟?”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대학 졸업하고 전공 관련된 회사를 찾아 입사를 하고보니 홍성이었습니다.”

“흐음...”

“그런데 어느순간 제가 왜 여기서 일을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

“그냥 남들하는대로 대학 다니고, 학점 채워서 입사는 했는데, 제가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이 과연 내가 원했던 일인가란 의심을 참 많이 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목표없는 직장 생활을 했던 거 같습니다.”

“그게 어디 뭐 기태 씨만의 문제겠어요?”

“그런데 타겟이 생겼습니다.”

“나중에 자기 사업하는 게 기태 씨 목표 아니었어?”

“아뇨, 그 역시 도저히 제가 뭘 하고싶어하는지 몰라서 억지로 만들어낸 목표였던 거 같아요.”

“흐음...”

“차장님처럼 한 번 직장 생활을 해보고 싶습니다.”

“나?”

“네.”

“헐...”

“처음 양 팀장님 건너띄고 먼저 팀장 타이틀을 잡으셨을 땐 이리저리 줄 잘 서고, 윗사람들 비위나 잘 맞춰서 팀장을 달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장님이 장 부장님 직속 라인인 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크크크...암만 술을 마셨어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기 있어?”

“근데 곧 알겠더라고요. 회사는 그렇게 감정적이지 않다는 걸. 그리고 1년도 안돼서 차장 타이틀까지 거머쥐시는 거 보고 분명 뭔가가 있을 거라고 확신을 하기 시작했던 거 같습니다.”

“소고기 사준다고 비행기 태우는 거 아냐? 너무 띄워주지 마요. 어지러워.”

“저...그냥 계속 다녀도 됩니다.”

“그래주면 나야 고맙다니까?”

“...”

“내가 말했잖아. 나까지만 아는 일이라고. 위에선 몰라.”

뭔가를 결심한 듯 입을 단단하게 다문 박기태.

내 앞에 놓인 빈잔을 자기 앞으로 가져가 자신의 잔과 나란히 세워놓고 소맥을 말기 시작했다.

“차장님.”

“네.”

“차장님은 도대체 왜 그렇게 홍성에 충성을 하시는 겁니까?”

“내가? 그래 보여요?”

“당연하죠. 뭔가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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