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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1화 (1/325)

# 1

현재는 이렇게 일하고 있는 중이다

13억.

큰 돈이다.

하지만 난 지금 이 돈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그리고 담담하게 바라보려고 노력중이다.

물론 뻔한 월급 받아가는 직장인의 입장에서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진 거나 다름없는 이 13억을 이성적으로, 담담하게 바라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이걸로 뭘하지? 아파트를 한 채 사야하나? 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건물은 있을까? 살 수만 있다면 지방에 있는 상가 건물 하나 사놓고 월세를 받는 인생도 근사할 거 같은데...은행에 꽂아놓고 이자를 받을까? 그건 아냐, 요즘 은행 이자율을 기대한다는 건 그냥 돈을 썩히겠다는 거야...하는 생각들이 계속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럴 때일 수록 침착해지려고 애를 썼다.

거품처럼 들어온 돈이라 그런지, 내가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으면 거품처럼 사라져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고 할까?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했다.

심지어 가족들한테도.

이 돈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시간이 내겐 필요했고, 또 필요에 따라서는 그냥 끝까지 비밀을 지킬 수도 있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 월요일이 찾아왔다.

로또 1등도 출근해야죠

정말 오랜만에 가장 먼저 사무실에 출근을 했다.

보통은 정해진 출근시간 보다 10분 정도만 빨리 출근을 하는 편이다.

그렇게 출근을 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사무실 전체 직원들 중 일곱, 여덟 번째로 출근을 하게 된다.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을 하는 생활을 3년 정도 꾸준히 했더니 회사에서 알아서 대리를 달아주더라.

그리고 큰 성과를 낸 것도 거의 없는데 입사 6년 차에 팀장의 타이틀을 달게 됐다.

대리 진급은 평범했지만 팀장 진급이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정상적인 승진 코스와 비교해 2,3정도 빨랐다.

야망이 있어서 열심히 했다.

하지만 열심히 했다는 이유보다는 운이 좋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한창 대리로 근무를 하고 있을 당시 회사가 본격적으로 확장을 시도했고, 그 확장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몇몇 선배 팀장들이 이직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모든 회사가 다 그렇겠지만, 회사가 확장을 하다보면 여기저기에서 부서간 잡음이 나올 수 밖에 없고, 그 확장의 성패 앞에는 꼭 지루한 과도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회사의 과도기 상황은 사람에 따라, 또는 직책에 따라 버티기 힘들 정도로 숨이 막히기도 한다.

그 불안한 과도기의 분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공교롭게도 팀장급 인원들이 제법 이탈을 했다.

하지만 회사는 단 몇 년 만에 성공적인 확장을 이뤄냈다.

그리고 난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2, 3년 정도 빨리 팀장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벌어진다.

"에휴..."

일단 모니터 전원부터 켜놓고 화면이 뜨기도 전에 휴게실로 향했다.

커피를 한 잔 내려서 다시 사무실로 나왔을 때다.

"어? 팀장님 벌써 출근하셨어요?"

"어쩌다보니 좀 일찍 왔어요. 지혜 씨도 상당히 일찍왔네요?"

"아직은 보여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직장 동료로서.

하지만 이지혜는 나와 단 둘 밖에 없는 이 사무실 공기가 무척이나 힘들게 느껴질 거다.

일종의 이런 느낌이다.

난 지난 주말 네가 뭘 했는지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이지혜는 공 팀장이라면 틀림없이 눈치를 까고 있을 거야...뭐 대충 이런 느낌.

아니나 다를까 내가 자리로 돌아와 모니터 앞으로 앉자 정적이 흐른다.

하지만 난 이지혜를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지난주 작성을 끝마친 보고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시작했다.

비문과 오탈자 확인을 위해 평소보다 일찍 출근을 했다.

평소대로 출근을 해서 업무 시간에 해도 될 일이지만, 오늘은 로또 당첨금 수령을 위해 오전 시간을 비워야만 했다.

업무에 차질이 없게끔 하기 위해선 일단 오늘 안으로 올려야하는 보고서부터 마무리를 해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안녕하십니까."

2년차 박기태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킨채 손만 살짝 들어 인사를 받아주었다.

"팀장님, 일찍 출근하셨네요?"

"네, 어쩌다보니."

난 박기태에게 시선을 줄 마음이 없었다.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 내겐 보고서가 더 급할 뿐이다.

"흐음..."

다행히 손을 봐야 할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이대로 제출을 하면 될 거 같았다.

사내 메신저로 박 부장에게 보고서 원본을 보낸 다음 출력 버튼을 눌러 공용 복합기로 프린트를 했다.

뜬금없이 벌써부터 공용 복합기가 돌아가자, 아직 업무를 시작하지도 않은 다른 직원들이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직 정해진 출근 시간까지는 5분 정도가 더 남아있었다.

양 대리를 제외하고는 팀원들 모두 출근을 해 있는 상태.

난 박기태와 이지혜가 내 눈치를 살피건 말건 공용 복합기 앞으로 가서 프린트 된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확인 한 뒤 순서대로 플라스틱 파일에 끼웠다.

그리고 양 대리가 출근을 하기만을 기다렸다.

"오셨습니까, 대리님."

"오셨습니까."

9시 정각.

진작에 도착을 했다가 일부러 9시 정각에 딱 맞춰 사무실에 들어오는 사람처럼 양 대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9시가 땡하는 순간 사무실에 입장했다.

그의 출근과 동시에 사무실 안으로는 말로 설명하기 애매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양 대리는 박기태와 이지혜에게 보낸 환한 눈인사와는 달리 날 향해서는 그저 무미건조한 얼굴로 고개만 한 번 까딱거린 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안 보고 살고 싶다.

나보다 1년 빨리 회사에 입사를 한 사람이다.

그런데 팀장 승진을 내가 먼저 하게 됐다.

회사가 확장을 하면서 기본틀 안에 있어야 할 핵심 부서를 제외하고는 전 부서가 재편됐다.

그러면서 내가 팀장으로 승진을 하게 됐고, 나와는 한 번도 일을 같이 해본 적 없었던 양 대리가 우리 부서로 그것도 내 부하직원으로 들어오게 된 거다.

부담스럽지.

입사 선배를 부하 직원으로 데리고 팀을 이끌어가라는데 안 부담스러울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하지만 여기서 알게 된 직장 생활의 함정.

내게 이 회사를 다니겠다, 그만두겠다 하는 식의 선택권은 있을지 몰라도 내가 사장이 아닌 다음에야 직접 같이 일할 상사와 동료, 부하직원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거다.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리더쉽을 증명해야하는 위치에 올랐는데, 생각도 못했던 변수가 등장해 애를 먹기 시작했다.

박기태는 원래부터 양 대리가 데리고 있던 직원이었다.

이지혜는 신입이고.

그러다 보니 부서 분위기가 팀장인 내가 아니라 양 대리의 기분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보다 팀장을 가장 옆에서 확실하게 서포팅 해줘야 할 대리가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고, 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뛰어다녀야 할 2년차 박기태가 나와 양 대리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는 상황이니 신입인 이지혜 하나만 데리고 어떻게 팀을 제대로 꾸려나갈 수 있겠나.

직장상사 스트레스?

훗...

나도 사이코 패스 상사 밑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려가며 힘든 사원 생활을 해봤고, 또 아직까지 꼰대에 내로남불 차장 비위 맞춰가며 일하고 있지만, 직장상사 스트레스는 부하직원 스트레스에 비하면 스트레스도 아니다.

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지같은 상사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지 않나?

그리고 꼭 같은 부서가 아니더라도 함께 그 직장 상사 험담을 해줄 전우도 한두 명 씩은 있을 거고.

그런데 이 부하직원 스트레스는 어디가서 하소연 할 때가 없다.

하소연을 하는 순간 자존감이 박살난다.

상사한테 털릴 때 무너지는 자존감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이 난다.

난 자존심이 상해서 하소연 할 상대가 있다 하더라도 못할 거 같다.

무례한 부하직원 때문에 직장 생활 못하겠어요! 라고 말하는 것 만큼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돼요...하는 확실한 고백이 어디에 있겠나?

팀을 이끄는 팀장이 팀원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을 할 자신이 난 없다.

직책이 높은데 왜 제대로 확 휘어잡지 못하고 그러고 있느냐고?

답답하다고?

훗...직접 한 번 해봐라.

직장 생활이라는 게, 특히 그 안에서 생겨나는 여러 인간 관계라는 게 내가 마음 먹는대로, 생각처럼 다 되는 게 아니다.

최연소 팀장을 달고 있다, 현재 내가.

내가 바보겠나?

모자란 사람이겠나?

바보고 모자란데 회사가 팀장 타이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회사는 절대 열심히만 한다고 승진을 시켜주지 않는다.

그리고 양 대리는 사람을 아주 교묘하게 물먹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양 대리님,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좀 하자고요."

"..."

"네?"

"...네."

거의 모든 게 이런식이다.

콕 찝어서 어떤 모습이 상당히 무례하고 또 불손하다라고 말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의 모든 행동에는 나에 대한 적대감, 혹은 질투, 시기가 스며있다.

그리고 내겐 그에 대한 생살여탈권도 없을 뿐더러, 있다고 해도 쉽게 쓸 수가 없는 입장이다.

마음에 안드는 부하직원, 잘 맞지 않는 부하직원, 능력이 부족한 부하직원까지 다 이끌고 성과를 만들어 내야하는 게 팀장의 역할인데, 그걸 못해서 징징댄다면 내 입으로 난 팀을 이끌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떠벌리고 다니는 거 밖에 더 되겠나.

아무튼 지금 내 상황이 그렇다.

9시 정각에 출근을 해서 곧바로 휴게실로 들어가는 양 대리.

또다시 뭔가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하지만 참는다.

아직은 참는다.

양 대리는 10분 정도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난 기다렸다는 듯 미팅을 하자고 했다.

박기태와 이지혜가 미팅을 하기 위해 내 책상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양 대리는 자기 책상 앞에 서서 모니터를 확인하며 커피를 마셨다.

"양 대리님."

"갑니다, 가요."

정말 저 말투...할 수만 있다면 입을 잡아째버리고 싶다.

간다는 대답을 한 뒤 또 몇 초 정도 더 자기 할 일을 하다가 커피를 들고 내 책상 쪽으로 슬리퍼를 끌며 걸어오는 양 대리였다.

"우선 간단하게 지난주 금요일에 부장님으로부터 내려온 지시 사항 몇 가지만 전달하겠습니다."

박기태와 이지혜가 다이어리에 지시사항을 메모하는 동안에도 양 대리는 커피만 마실 뿐이었다.

예전에 왜 내가 말하는 지시사항을 메모하지 않느냐고 한마디 했더니 나중에 박기태에게 받으면 된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다, 양 대리는.

아주 지능적으로 날 물먹이는데 타고 난 놈이 분명하다.

물론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언성을 높혀가며 서로 다툰적도 몇 번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에게 남는 건 부하직원을 상대로 이기지도 못할 감정 싸움을 했다는 자책 뿐이었다.

양 대리 때문에 탈모까지 시작될 판이다.

지시사항을 전달한 다음, 난 오전에 반차를 쓸 계획이니 각자 알아서 업무를 진행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난 로또 당첨금 수령을 하기 위해 농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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