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 1층 수복 작전 (5)
그녀는 날카로운 살기를 숨김없이 드러내며 말했다.
“최윤수 씨는 더 이상 저희 길드원이 아닙니다.”
“…! 으아악! 살려 줘! 살려 달라고!”
그가 발버둥을 치는 사이 멀리서 다른 사람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최현 씨! 괜찮으세요?!”
“송인혁 씨?!”
“하아… 쿨럭쿨럭! 이민하 씨가 걱정된다고 따라가겠다고 하셔서 제가 대신 왔어요. 다른 분들이라면 이민하 씨가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송인혁은 오자마자 상황을 파악하고 사슬로 앞에 있는 최윤수를 묶었다.
덕분에 그의 위에서 내려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최현 씨는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저희는 길드원 한 명과 마스터의 팔까지 잃었거든요. 이대로 물러나면 손해가 너무 커서 말이죠. 최현 씨의 능력은 반드시 가져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녀가 큼지막한 날개를 퍼덕이며 위로 날아올랐다.
내가 앞으로 뛰어가는 것과 동시에 송인혁의 사슬이 그녀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차라락!
파앙!
“……!”
기다렸다는 듯이 날개로 폭풍을 일으켜 사슬을 튕겨 냈다.
거센 바람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고 이미 그녀는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게 올라가 있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빠르게 하늘을 가르며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에 한숨을 토해 냈다.
뒤를 돌아보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최윤수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
“상황이 이렇게 돼서 죄송합니다. 솔직히 저도 놈들이 던전 안에서 접촉해 올 거라곤 예상 못 했네요.”
백진철은 고개를 숙여 내게 사과했다.
“저희가 경황이 없는 틈을 노려서 공격해 온 것 같군요.”
“그럼 이제 놈들에 대해 제대로 말해 주시죠.”
게이트 공략을 마치고 돌아온 베이스캠프에서 백진철을 만났다.
최윤수의 신병을 넘기고 그에게 레인에 관한 정보를 듣기로 했다.
협회장인 백진철이 지내는 막사는 다른 막사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 앞에 의자로 걸어가며 말했다.
“앉으시죠.”
레인의 정보를 먼저 말해 달라고 얘기했는데 듣지 못했었기에 이미 나는 기분이 언짢은 상태였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정보를 줬었다면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나중에 저희 팀원들에게도 사과하세요. 다들 원치 않게 위험한 일을 겪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는 종이컵에 인스턴트커피를 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레인이라는 길드에 관해서는 제가 부임하기 전, 반년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반년 전? 반년 전이라면…….”
분명 아포칼립스가 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자, 앙그라마이뉴가 본격적으로 일을 꾸미기 시작했을 때다.
“부끄러운 변명이라고 생각하지만, 협회에서 그들을 쫓을 만한 여력이 없었던 건 사실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굳이 그의 말에 딴지 걸지 않았다.
아포칼립스 이후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협회는 그걸 막는 데 필사적이었으니까.
“그때 당시에 레인의 세력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능력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도 떠도는 헛소문이라 생각했죠.”
그는 익숙한 인스턴트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들은 충분히 위협적인 세력이 되었다고 판단했고 본격적으로 추적하기 시작했죠. 협회의 인원을 파견하여 레인 내부로 숨어드는 데 성공했고, 그는 빠르게 신뢰를 얻어 간부 직책까지 닿았습니다.”
“…그래서 얻은 정보가 뭐죠?”
“레인에 관한 소문들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했죠.”
백진철의 말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능력을 뺏고 주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요?”
“네. 그들은 그걸 ‘수술’이라고 부르더군요. 아까 레인의 계급에 관해서 들으셨다고 했죠?”
“체스 말 같은 그건가요?”
“맞습니다. 먼저 ‘킹’과 ‘퀸’이 길드를 이끄는 수뇌부입니다. 잠입해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퀸이라고 불리는 자에게 수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직 어떤 형식으로 능력의 이동이 가능한지는 모른다.
그게 초월 능력일지도 모르고, 혹은, 초월 능력의 원리 자체를 알아내서 그걸 이용한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 밑으로 ‘비숍’, ‘룩’이 간부입니다. 이들은 상당히 강한 초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주요한 임무에 투입됩니다. 실력자들이라고 볼 수 있죠. 마지막으로 ‘폰’과 ‘나이트’가 실제로 움직이는 병사들입니다. 나이트는 폰의 감시자로 함께 따라다니죠.”
감시자라면 아까 그 새 날개를 달고 있던 여자인가.
확실히 움직임은 빨랐지만, 그렇게 전투 능력이 뛰어나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처음에 저를 찾아온 건 길드 마스터인 ‘킹’이었어요. 어째서 스스로 위험한 일을 자청한 걸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백진철은 커피를 마시려다가 이미 종이컵이 비어 있는 걸 확인하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최현 씨의 능력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거겠죠. 킹은 상당히 의심이 많은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자신의 부하들이 제 능력을 가로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건가요?”
백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퀸과 다른 간부가 손을 잡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테니까요. 처음부터 자신이 최현 씨를 잡아서 능력을 뺏으려고 했다는 가능성이 크죠.”
킹은 처음 나를 만났을 때 고객이 내 능력을 원한다고 했다.
즉, 놈은 내 능력을 뺏어서 누군가에게 팔려는 듯이 말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내 능력을 가져가려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건가.
“최현 씨의 초월 능력은 다른 초월 능력보다 성장 가능성이 큽니다. 아시겠지만, 여러 가지 복합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죽어도 살아날 수 있다는 건 무서울 정도로 탐나는 능력이니까요.”
“그럼 인위적으로 능력을 만든다는 건 뭔가요?”
백진철은 내 질문에 작게 한숨을 쉬며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선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들이 초월 능력을 만드는 능력을 가진 건 확실합니다. 지금 저희가 쫓고 있는 앙그라마이뉴의 길드 마스터인 유한성의 초월 능력도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나는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때 당시 잠입한 저희 직원이 얻은 정보니까 확실합니다. 문제는 능력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굉장히 낮다는 것입니다.”
“그건 아직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맞아요. 초월 능력을 만들어서 주입해도 대부분은 실패하고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다고 하더군요. 성공률은 5%도 되지 않았어요. 그 이후로는 레인 내부의 잠입했던 게 들통나서 정보가 없지만, 아마 그때보단 좀 더 연구가 진행됐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초월 능력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면 헌터계의 구조는 완전히 변할 것이다.
수많은 헌터가 몬스터와의 전투로 목숨을 잃고 있지만, 초월 능력을 갖고 있다면 그런 희생이 줄어들고 던전 공략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아마 최현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게 흘러가진 않을 겁니다.”
백진철은 마치 내 머릿속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이 말했다.
“초월 능력에 등급이 매겨지고 좀 더 좋은 능력을 얻기 위해 더러운 손들이 움직이겠죠.”
“…확실히 그렇겠군요.”
“이번 일에 관해서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질책하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저희가 먼저 움직였어야 했는데 위험한 상황에 빠뜨려 죄송합니다. 최현 씨만 원한다면 이번 작전에서 빠지시는 것도…….”
“아뇨.”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던전에서 나간다고 해도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죠. 오히려 놈들이 저를 노리고 다가오기 쉬울 겁니다. 여긴 보는 눈도 많고 쉽게 움직이긴 힘들 테니까요.”
“그건 그렇군요.”
“그리고 투명화 능력이 아니라면 놈들에게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습니다. 저보다는 다른 팀원들이 걱정이네요.”
“헌터들의 신원 조회와 경비를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다시금 내게 고개를 숙여 왔다.
“최윤수는 안전한 곳으로 옮겼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신을 차리면 좀 더 정보를 얻어 낼 생각입니다.”
“부탁드립니다.”
백진철과 짧게 인사를 마치고 막사에서 빠져나왔다.
이런 타이밍에 레인이 끼어든 건 짜증 나지만, 앙그라마이뉴와 연결점이 있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막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채하나와 이민하가 내게 다가왔다.
“얘기는 잘하고 오셨나요?”
“네. 일단 협회에서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하니까 지켜봐야죠.”
“협회는 믿을 게 못 돼. 우리 몸은 우리가 지켜야지.”
이민하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꾹 누르며 말했다.
나도 동감이다.
협회가 나서서 해결해 줄 거라는 희망은 버리는 쪽이 좋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주위를 경계하는 수밖에.
“두 분은 먼저 들어가서 쉬세요. 내일도 바쁘게 움직여야 하니까.”
“잠깐만.”
걸음을 돌리려던 차에 이민하가 날 붙잡았다.
그녀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보고 괜히 움찔해서 긴장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아까처럼 가는 걸 허락해 주지 않을 거야.”
“네? 아까라면…….”
최윤수를 쫓아갔을 때를 말하는 건가.
“한패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어. 심지어 우리는 놈들 능력이나 숫자도 몰랐고. 그런 상황에서 혼자 쫓아가는 건 너무 위험해.”
이민하는 평소와 다르게 침착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다음부턴 같이 가거나, 같이 가지 않는 거야.”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내 브레이커로써 팀장을 맡았다.
이민하의 이질적인 모습에 내가 너무 멋대로 행동했다는 게 크게 와닿았다.
“맞아요! 앞으로 저는 최현 씨가 어디로 가든 따라갈 테니까 그런 줄 아세요!”
“그건 좀…….”
채하나의 말에 이민하도 고개를 저었다.
“가끔 보면 위험해 보인다니까. 조심해, 최현.”
“네?! 왜요! 내가 어때서!”
방방 뛰는 채하나를 보고 나와 이민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던전 공략이 빠르게 진행된 덕분에 입구에서 가까운 곳은 몬스터가 더 이상 출현하지 않았다.
베이스캠프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해서 주변을 살핀 뒤 발렌을 소환했다.
“끄아아! 오랜만이구만!”
“혹시라도 걸리면 안 되니까…….”
“알겠다니까. 내 후각은 항상 작동 중이거든!”
발렌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코를 가리켰다.
만약에라도 발렌의 정체를 들키면 상당히 곤란해지기 때문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발렌은 나오자마자 기지개를 켜며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언제 다시 발렌과 함께 싸울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 발렌의 감각을 되찾기 위한 훈련을 하기로 했다.
“몸이 굳었다고 투정 부려도 봐주지 않을 테니까!”
“오, 형씨 많이 건방져졌는데?”
발렌은 다시 뭉친 근육을 풀 기회였고, 내겐 월하백화식의 자세를 바로잡을 기회였다.
“자, 그럼 간다!”
“덤벼!”
훈련용으로 가져온 목도를 꽉 움켜쥐고 씨익 웃으며 발렌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