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 S급 헌터 최현 (1)
카앙! 캉!
건물 앞을 막아서서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였다.
몬스터들은 어떻게서든 건물 위에 있는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건물을 점령당한다고 해도 어떻게든 부활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나를 도와줬던 안형석의 신변이 위험해지겠지.
“형씨! 벌써 라이프가 5개나 날아갔다고!”
“알고 있어!”
일단은 ‘이모탈’을 써서 게임 오버 되지 않고 최대한 버티는 중이었다.
아무렇게나 덤볐던 아까와 달리, 지금은 체계적으로 공격해 왔다.
내가 빈틈을 보일 때마다 원거리에서 독침이 날아왔고, 공격하려고 하면 다른 몬스터가 끼어들어 자세를 무너뜨렸다.
교주라는 여자는 여기 없는 대도 몬스터를 조종하고 있다.
유한성의 능력으로 볼 수 있는 건가?
“계속 상처가 치료되고 재생하는 능력인가. 바퀴벌레 같은 놈이군.”
이모탈을 쓴 상태로 체력이 0이 되면 라이프가 1개를 소모하며 부활한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이모탈도 겨우 3분밖에 남지 않았다.
콰앙!
“……!”
그때 멀리 떨어진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이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그녀 특유의 붉은색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차… 차윤지 씨?!”
그리고 더 놀란 건 차윤지가 등에 채하나를 업고 있었다.
그녀는 단숨에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하며 내가 있는 곳까지 달려왔다.
“뭐… 뭐야! 왜 빨간 망토가…….”
당황한 유한성이 몬스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다른 몬스터들도 조금 거리를 벌렸다.
“최현 씨! 무사하셨군요. 으어엉……!”
차윤지 등에서 내려온 채하나가 바로 내게 안겨 왔다.
“왜 채하나 씨랑 차윤지 씨가 여기 있는 거예요?”
내게서 떨어져 눈물을 닦아 낸 채하나가 훌쩍거리며 말했다.
“앙그라마이뉴 길드 아지트에 이곳으로 들어오는 문을 찾았어요.”
“……!”
확실히 이 공간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공간이다.
그렇다면 처음에 만들었을 문은 숨기기 가장 좋은 곳이었겠지.
채하나 옆에서 차윤지가 평소처럼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괜찮아?”
“아… 네. 괜찮아요.”
“그럼 계속 싸워.”
“…….”
이런 가차 없는 모습이 장점이긴 하지.
한숨을 작게 내쉬며 검을 꽉 움켜쥐었다.
“그런데 왜 두 분만 오신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오고 있어요. 저희는 선발대인 거죠.”
불청객들의 등장에 한유성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럼 다른 놈들이 오기 전에 죽여주마!”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몬스터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정신 바짝 차려. 내 등은 네게 맡길 테니까.”
“…! 네!”
차윤지의 말에 기합을 넣고 검을 꽉 움켜쥐었다.
대형은 나와 차윤지 가운데에 채하나가 자리를 잡았다.
어차피 몬스터들이 우리를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상황이니 우리가 굳이 크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이 자리에서 채하나를 지키며 앞에 있는 몬스터만 베면 되는 거다.
라이프 파워와 더블 라이프 파워를 빠르게 사용하며 가장 앞에 보이는 스켈레톤의 공격을 받아 냈다.
카앙-!
그리고 바로 다시 스켈레톤을 베려는 순간, 몸에 빛이 감돌았다.
[System : 공격력 버프가 적용됩니다. 공격력이 31% 상승합니다. -00:08-]
8초?!
검이 스켈레톤을 훑고 지나가고 바로 버프가 사라졌다.
당황해서 채하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만 믿으세요!”
“그렇구나.”
같은 버프는 한 번에 여러 명에게 걸어 줄 수 없다.
즉, 나한테 공격력 버프를 걸어 주면 차윤지에게 공격력 버프를 걸 수 없다는 거다.
그렇기에 그녀는 일부러 짧은 시간만 버프를 유지한 거다.
상황에 맞춰서 버프를 돌려 가면서 쓴다는 건가.
역시 채하나는 버프에 관해선 천재가 틀림없다.
“실수하면 여기 있는 사람 다 죽을지도 몰라.”
“그런 무서운 말 하지 마시라고요!”
차윤지는 내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
차윤지와 등을 맞대고 싸워 보니 그녀의 강함이 더욱 피부에 와닿았다.
무서울 정도의 강함.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마치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 같았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전투를 추구했다.
“후우… 후우…….”
“괜찮아요?!”
식은땀에 비틀거리는 채하나는 이미 한계를 넘은 상태였다.
버프 능력은 버프 효과와 시간에 비례해서 정신력을 소모한다.
짧게 잘라서 쓰긴 했지만, 그녀는 쉬지 않고 우리에게 상황에 맞는 버프를 걸어 줬다.
오히려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하지.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직은 버틸 만해요.”
모든 감각을 집중해서 전투를 이어 가느라 나도 상당히 지쳐있는데, 차윤지는 여전히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버프가 없었을 땐 혼자서 한두 마리를 잡고 죽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더블 라이프 파워까지 쓰고 뒤에서 두 사람이 받쳐 주니 상황이 전혀 달랐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여유롭게 받아치고 있는 차윤지는 날 보고 ‘겨우 그 정도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내가… 내가 어떻게 모은 몬스터인데……!”
장비까지 착용하고 있는 데다가 숫자도 많아서 쓰러뜨리는 게 쉽진 않았지만, 꾸준히 숫자를 줄이는 건 가능했다.
그래도 미리 몬스터의 수를 줄여 놔서 망정이지, 200마리가 넘는 몬스터가 있었다면 우리 셋이라도 버티지 못했을 거다.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던 유한성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언젠가 죽여 버리겠다!”
자신이 서 있는 옆쪽에 손바닥을 펼치자 문이 새로 만들어졌다.
“…! 거기 서!”
다급히 그를 쫓아서 가려고 했지만, 몬스터들이 길을 막아서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제법 많은 수를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바글거렸다.
끼익- 쿵!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유한성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도망친 건가요?!”
“아마 던전 5층으로 나간 것 같아요. 우리가 따라오지 못하게…….”
유일하게 밖으로 나가는 문은 차윤지와 채하나가 들어온 입구였다.
그쪽으로 나가면 앙그라마이뉴 길드가 나오니 유한성을 쫓으려면 다시 던전을 올라가야 한다.
“이쪽으로 들어와!”
문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헌터들이 우르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지원군……!”
채하나가 그들을 보고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헌터들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우리 쪽으로 오며 몬스터들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몬스터와 헌터들이 얽히며 전장은 난장판이 되었다.
“세 사람은 이제 뒤로 물러나.”
“신아람 씨!”
연신 활시위를 당기며 내 앞으로 다가온 신아람이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넌 항상 이상한 사건을 몰고 다니네. 재료 구해 오라고 했더니 왜 2위 길드랑 싸우고 있는 거야?”
“저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요.”
“아무튼, 얘기는 나중에 해. 일단 너희는 빠져나가도록. 여긴 우리가 정리할 테니까.”
헌터의 숫자가 상당히 많았고, 내가 아는 이름 있는 헌터도 몇몇 보였다.
“아, 그럼 둘 먼저 가세요! 저기 안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올게요!”
“저도 갈래요!”
나한테 딱 달라붙는 채하나를 보고 차윤지는 휙 돌아섰다.
“그럼 먼저 갈게.”
마음 같아선 다리까지 후들거리는 채하나를 같이 보내고 싶었지만, 여기서 그녀와 입씨름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아, 차윤지 씨도 도와주세요! 혼자서 올라가기 힘들어서…….”
“…….”
차윤지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나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죄송합니다.”
“어째서 사과하는 거야?”
“그냥 사과해야만 할 것 같아서요.”
차윤지는 손을 깍지 껴서 내가 올라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 줬다.
타앗!
그녀의 도움을 받아 단숨에 건물 위로 올라왔다.
“두 분은 잠시 거기서 기다리세요! 금방 다른 분들을 데리고 나올 테니까!”
사다리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자 여전히 작업 중인 안형석이 보였다.
그는 내가 부활하는 게 아닌, 밖에서 입구를 통해 들어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엔 안 죽고 돌아오신 건가요? 아니면 다른 곳에서 부활하신 건가?”
“밖에 다른 헌터들이 구하러 왔어요. 어서 여기서 나가죠.”
“……!”
“이제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겁니다.”
나와 안형석의 대화를 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저… 정말입니까?”
“서두르세요! 헌터들이 몬스터와 교전을 벌이고 있어요. 그 틈에 밖으로 나가는 겁니다.”
사람들은 상기된 얼굴로 다급히 짐을 챙겨 사다리 쪽으로 향했다.
“정말 괜찮은 건가요?”
안형석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그는 울먹거리며 내게 안겨 왔고, 나는 가만히 그의 등을 두드려 줬다.
모든 사람이 다 밖으로 나가고 나서 사다리를 꺼내 건물에서 내려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헌터와 몬스터들이 엉켜서 싸우는 모습에 다들 당황한 표정이었다.
“여긴 저분들에게 맡기죠.”
더 싸우고 싶어도 이미 기력도, 체력도 한계였다.
전투 중인 신아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를 했다.
밖으로 나오자 인위적인 공간에선 맛보지 못한 시원한 바람이 나를 반겼다.
“여긴…….”
“앙그라마이뉴 길드의 아지트 10층이야.”
커다란 사무실로 보이는 공간은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창문은 모조리 깨져 있고, 가구는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까만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사무실의 이곳저곳을 뒤지는 중이었다.
“나오셨군요.”
그들 중에서 깔끔하게 콧수염을 기른 키 큰 중년의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를 한 뒤 어째 기운 없는 눈으로 나를 훑어봤다.
“반갑습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만나 뵙는 건 처음이군요. 일단 그 전에…. 이분들은 아래로 모시고 가.”
중년 남자의 말에 뒤에 있던 검은 양복의 남자가 후다닥 달려왔다.
그는 안에 갇혀서 강제로 노역을 하던 사람들에게 뭔가 말하더니 그들을 인도했다.
안형석은 불안하면서도 나를 걱정하는 눈을 하곤 그를 따라갔다.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새로 헌터 협회장으로 부임하게 된 ‘백진철’입니다. 반갑습니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덤덤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아, 최현입니다.”
원래 협회장이었던 윤서훈보다 나이가 있어 보였다.
“최현 씨는 이번 사건에 가장 깊게 관여된 인물이시기에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알겠습니다. 협조하도록 하죠.”
놈들이 던전 내부로 도망친 이상,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시 몬스터들을 세뇌해서 세력을 기르기 전에 이 사건을 끝내려면 내가 아는 정보를 전달하는 수밖에.
“그리고 전 협회장님과 모종의 거래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백진철의 말에 나는 흠칫 놀랐다.
아르티아 공략에 대한 걸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율이의 약을 받았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제가 대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네?”
“헌터라면 당연히 자신의 업적에 대해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죠. 바로 그렇게 진행되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뒤에 있는 채하나와 차윤지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하는 듯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럼 율이 약은…….”
“저희의 잘못이니 약속대로 계속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최현 씨의 공을 인정하여 특별 승급을 진행하겠습니다.”
“특별 승급이요?”
“네. 최현 씨는 앞으로 S급 헌터가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