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 몬스터 슬레이어 (4)
“아버지가 화도를 만드셨다고요?!”
“네. 살아 계실 때 자신이 만든 것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안형석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는지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확실히 화도에 관한 건 스승님에게 들은 게 많지 않다.
스승님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검이라는 것밖에 아는 게 없다.
“잠시 보여 주실 수 있나요?”
스르릉.
내게서 화도를 건네받은 그는 검을 뽑더니 만족스럽게 검날을 훑어봤다.
“화도는 사실 그렇게 특별한 검은 아닙니다.”
“그런가요? 검에 대해선 무지해서.”
내 말에 안형석은 어느 때보다 즐거운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만들 때 쓰인 재료가 특별하다거나, 일반적인 검과 다른 공정을 거치지도 않았죠. 화도는 오직 ‘월하백화식’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구조로 만들어졌을 뿐입니다.”
“…그럼 처음부터 월하백화식에 대해 알고 계셨던 겁니까?”
“아무런 근거도 없이 투자하는 도박사는 아니거든요.”
화도를 검집에 집어넣은 그는 다시 내게 돌려주었다.
“1시간 후에 다시 나가시는 겁니까?”
“네. 그래야 이곳에서 부활할 수 있거든요.”
지정 부활의 쿨타임은 1시간.
다른 곳에서 부활하는 건 내게 라이프를 날리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에 지정 부활을 쓸 수 있을 때만 전투를 반복하고 있다.
“최현 씨가 장비를 소모하는 속도를 따라가려면 저도 서둘러야겠군요.”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기다리면 되니…….”
“본인은 그렇게 무리하시면서요? 노력하는 사람이 앞장서서 달려가면 뒤따라가는 사람은 즐거운 법이네요.”
까앙!
그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망치를 손에 쥐었다.
1시간이라는 시간은 내게 달콤한 휴식이면서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이상, 시간에 쫓기고 있는 건 우리 쪽이다.
지금은 교주가 정신을 잃은 상태라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만약 다시 교주가 몬스터들을 컨트롤하기 시작하면 힘들어진다.
그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몬스터를 처리하고 싶다.
“최현 씨!”
“……?”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다가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는 안형석을 보고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를 믿고 도와준 그를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려야지.
건물 위로 올라오자, 바깥에 잔뜩 깔린 몬스터들이 보였다.
방금 마음을 다잡았지만, 막상 보니까 착잡하군.
“미안해, 형씨. 내가 같이 싸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발렌은 이미 같이 싸워 주고 있거든.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안형석이 만들어 준 검을 꺼내 들고 건물 아래로 폴짝 뛰어내렸다.
건물에서 조금 떨어지자 나를 발견한 몬스터들이 접근해 왔다.
“쿠에엑…….”
“끼익!”
맨 처음 게이트에 갇혀서 데스나이트와 싸웠던 때가 떠오른다.
지금의 나는 그때완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반드시 여기 있는 몬스터를 모조리 죽이고 더 강해진다.
***
“…….”
바닥에 누워 꿈틀거리는 나를 보고 한 남자가 다가왔다.
“괘… 괜찮으세요?”
산채로 몬스터에게 뜯어 먹히는 감각에서 벗어난 후에야 그에게 눈을 돌릴 수 있었다.
“후우… 괜찮지 않지만… 어쩔 수 없죠.”
“아, 저는 황윤식이라고 해요.”
그가 건넨 손을 잡고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실제로 살아나는 걸 보니 신기하네요. 초월 능력이라는 건 엄청나군요.”
“이 공간도 초월 능력으로 만들어진 거니까요. 좋은 곳에 쓰면 유용한 능력일 텐데…….”
황윤식은 이곳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 비해 나이가 어렸다.
나보다 어린 사람은 황윤식뿐인 듯했다.
“그렇게 만능인 능력도 아니라고 해요. 길드원들 사이에서 들은 얘기인데, 큰 공간을 만들려면 그만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만들 수 있는 공간의 총 부피도 정해져 있다고 하고요. 어디까지나 소문이지만요.”
이미 이곳에 갇혀 버린 이상, 유한성의 능력에 대한 정보는 큰 의미가 없었다.
지금처럼 몬스터가 공간에 가득 차 있는 게 아니라면,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되니 공격적으로 쓰는 건 무리가 있다.
“몬스터 사냥은 잘 돼가시나요?”
“이제 끝이 보여요.”
“정말요?!”
황윤식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 많은 몬스터를 혼자서…. 최현 씨는 대체 뭐 하는 분인가요?”
“사실 생각보다 고전해서 더 오래 걸렸네요.”
처음에 몬스터들끼리 싸우고 잡아먹은 덕분에 내가 상대한 건 150마리 정도였다.
그리고 대략 100마리 정도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 74번이나 죽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50시간 정도를 썼다.
본래 1시간에 1번만 나가서 싸우기로 규칙을 정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
어쩔 수 없이 지정 부활을 쓰기 전에 즉시 부활을 써서 한 번 더 싸우기로 했다.
“…대단하시네요. 솔직히 이 정도로 해내실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감사합니다.”
그에게 빙긋 미소를 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내 안형석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내 눈이 틀리는 거 봤어?”
어째 의기양양한 표정의 안형석이 씨익 웃으며 황윤식을 바라봤다.
“난 이미 이분이 엄청난 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
“…거짓말.”
“거짓말 아니거든!”
내가 월하백화식의 계승자라는 걸 알았으니 반은 맞는 말이다.
“갑옷은 완성됐나요?”
“곧 완성됩니다. 이거, 제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네요.”
이미 안형석이 만들어 준 장비를 3개나 망가뜨렸다.
그가 만든 방어구는 훌륭했지만, 혼자서 빠르게 만들었기에 내구도가 높지 않았다.
“역시 저도 돕는 게…….”
“그건 안 돼.”
황윤식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자 안형석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유한성은 자신이 만든 공간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군. 만약 네가 직접적으로 돕는다면 협박당했다는 말로도 살기 힘들 거야.”
황윤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분함 때문인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유한성의 능력을 알고 계시네요?”
“저도 완벽하게 알진 못합니다. 원래 길드 간부였거든요. 보급팀 팀장이었죠. 간부들은 어느 정도 유한성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 얘기하는 건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었어요.”
내부를 훔쳐보는 것만으로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몬스터들이 세뇌에서 풀려난 지금은 유한성도 여기 들어오는 건 무리겠지.
주교만 깨어나면 다시 자신들의 수하가 될 몬스터와 싸우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능력에 대한 다른 정보는 없나요?”
“확실한 정보만 말하자면, 만들 수 있는 공간에 제한이 있다는 것과 방금 말한 내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네요. 그 외엔 소문처럼 떠도는 이야기라…….”
벌써 이곳에 갇힌 지 이틀이 넘었다.
그녀가 제대로 치료를 받았다면 슬슬 정신을 차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방금처럼 잠깐 대화를 나누는 것 외엔 다른 사람들과 최대한 어울리지 않고 있다.
안형석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한패가 아니라는 걸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평소에도 안형석과 둘이 시간을 보냈다.
물론 지금 같은 식사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이런 것밖에 없어서 죄송하네요.”
“아뇨. 전 괜찮습니다.”
이곳에서 먹는 식사는 대부분 인스턴트식품이었다.
간편 죽이나 밥, 라면, 통조림만 쌓여 있었고, 이들이 어떤 취급을 받으며 반년이나 갇혀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나는 죽은 뒤에 부활하면 허기와 기력이 회복되기에 따로 밥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혼자서 식사를 챙겨 먹는 안형석을 보고 그와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라면 엄청 잘 끓이시네요.”
“허허, 칭찬인가요?”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면을 자신의 그릇에 담아 갔다.
“혀… 형씨…….”
꿀꺽.
발렌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애써 무시해야만 했다.
배가 안 고파도 뜨끈한 음식이 속을 채워 주는 건 기분이 썩 좋은 일이었다.
배를 채우고 나서 박스로 만든 테이블을 치우며 안형석에게 물었다.
“안형석 씨는 여기서 나가시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글쎄요. 아직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제 대장간을 차리고 싶네요.”
쑥스럽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니 나까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중에 제 무기도 꼭 만들어 주세요.”
“물론이죠. 그럼 저는 다시 작업하러 가 보겠습니다.”
내게 꾸벅 인사를 한 안형석이 작업장으로 향했다.
나도 다음 전투를 위해 정비를 해야겠군.
[최현 Lv.56
체력: 5650/5650 마나: 560/560 기력: 30/30
힘: 129 민첩: 88 지능: 65
(사용 가능 포인트: 20)
라이프 : 1681개]
그래도 여기서 몬스터를 사냥한 덕분에 3레벨이 올랐다.
물론 즉시 부활과 지정 부활을 쓰느라 라이프 소모도 제법 컸다.
이젠 블루 라벨 중에서도 상위 몬스터를 사냥해야만 라이프 흡수가 발동되기에 회복한 라이프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일단 능력치 포인트를 모두 힘을 찍는 데 쓰기로 했다.
한동안 민첩과 힘을 분배해서 올렸지만, 민첩은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장비는 괜찮아?”
“일단은.”
이미 에렌 셀과 화도는 내구도가 한계였다.
여기 있는 재료로 무기를 수리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임시방편으로 수리하면 전체 내구도가 깎이기에 조금 불편하더라도 다른 무기를 쓰기로 했다.
“그럼 슬슬 다시 일하러 가 볼까.”
지정 부활의 쿨타임이 거의 다 돈 걸 보고 밖으로 나섰다.
건물 위로 올라오자마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에 오싹한 감각이 느껴졌다.
“뭐야, 왜 이렇게 조용해?”
평소엔 몬스터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바람에 시끄러운 곳인데 정적만이 흘렀다.
“멈춰 있어.”
발렌의 말처럼 몬스터들은 그 자리에 굳어 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여자가 깨어난 모양인데.”
“정답이다.”
몬스터들 사이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온 건 나를 여기로 보낸 유한성이었다.
여전히 잔뜩 화가 난듯한 유한성이 특유의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아주 멀쩡해졌지. 잘도 여기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군.”
“여기로 보낸 건 당신이잖아?”
“설마 대장간을 이용해서 숨을 줄이야…. 교주에게 들은 내용과는 다르군. 무작위 장소에서 부활하는 거 아니었나?”
유한성이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건 알 거 없고. 몬스터들이 날뛸 땐 무서워서 숨어 계시다가 이제야 등장하셨네?”
“닥쳐! 몬스터를 다시 컨트롤할 수 있으니 이젠 건물에 숨어도 찾아서 죽여주마.”
따악!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멈춰 있던 몬스터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처음 왔을 때 비하면 반밖에 되지 않는 숫자였지만, 여전히 적지 않았다.
평소처럼 본능대로 날뛰는 것보다 지금처럼 질서 있게 정렬해 있는 모습이 더욱 오싹했다.
“자, 이번에도 다시 살아나서 싸워 봐라!”
쿠구구구!
유한성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몬스터들이 우르르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