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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57화 (57/176)

57화 : 13구역 (5)

퀘스트.

흔히 게임 속에서 스토리를 진행하는 이벤트 요소로 많이 쓰인다.

일반적으로는 NPC가 플레이어에게 퀘스트를 주고, 플레이어는 그 퀘스트를 달성해서 보상을 받게 된다.

그런데 어째서…….

[System - 퀘스트 - 던전 안에 있는 ‘검은 새의 비명’이라는 책을 찾으십시오. 보상-검은 새의 깃털]

현실에서 내가 퀘스트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 초월 능력 자체가 스스로를 게임 캐릭터화하는 능력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능력에 불과했다.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데, 방금 이 벽에 새겨진 룬 문자에 손이 닿자마자 퀘스트가 생겼다.

아마 연관이 없진 않겠지.

“그러니까 저 ‘검은 새의 비명’이라는 책을 찾으면 ‘검은 새의 깃털’이란 걸 얻을 수 있다는 거네.”

“그렇긴 한데…….”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떤 형태로 퀘스트 보상이 지급되는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검은 새’라는 건 뭔데?

[System -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퀘스트의 달성 조건은 검은 새의 비명이라는 책을 찾는 거라는 걸 알겠다.

그런데 보상에 있는 검은 새의 깃털이 뭘 말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다.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은걸.

먼저 나는 최대한 빨리 게이트를 공략하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퀘스트 같은 걸 하고 있을 여유가 있을까.

솔직히 이런 고민을 하면서도 검은 새의 깃털이라는 아이템에 대한 호기심이 마구 솟아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퀘스트를 받아 본 적이 없었던 거로 봐선 다시 퀘스트를 받으려면 한참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기회를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고민되면 일단 받아 보는 건 어때? 못 찾으면 불이익이 생기는 건 아니지?”

“적혀 있지 않으니까 없을걸.”

“그럼 받은 다음에 찾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말고라는 느낌으로 가자는 거지.”

발렌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퀘스트 실패로 인한 리스크가 없다면 받아서 나쁠 건 없다.

일단 받은 다음에 나는 지금까지처럼 게이트를 공략하면 되는 거고, 그러다가 운이 좋아서 퀘스트를 달성하면 대박인 셈이다.

“좋아! 그럼 일단 퀘스트를 받자!”

[System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퀘스트 텝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시스템 창과 함께 구석에 Q라고 적힌 작은 아이콘 하나가 새로 생겼다.

처음엔 몇 개 없던 시스템 아이콘이 점점 늘어나서 지저분한 바탕 화면 같은 느낌으로 변해 가고 있다.

“퀘스트는 퀘스트고, 이제 본격적으로 공략을 시작해 보자고.”

지금까지 게이트에서 만난 몬스터는 ‘케이브 웜’, ‘에이션트 골렘’ 두 종류다.

출현하는 몬스터로 봐서 그린 라벨에서 블루 라벨 사이의 몬스터가 주로 나오는 모양이다.

처음 게이트에 갇혔을 때와 비교하면 훨씬 강해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블루 라벨 몬스터를 혼자 쓰러뜨리진 못한다.

그린 라벨 몬스터는 어떤 몬스터냐에 따라서 다르다.

어쨌든 이 게이트가 내 수준보다 높은 단계라는 건 확실했다.

“형씨, 여긴 아까……!”

“다시 돌아온 건가?!”

다시 조각상의 모습으로 변해 있던 에이션트 골렘이 내가 다가오자마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 싸웠던 에이션트 골렘과 같은 녀석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일단 나는 바닥에 숫자 ‘1’을 새겨놓았다.

아직 라이프 파워 효과가 남아 있어서 이번엔 정신을 바짝 차렸다.

바로 놈들을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지만, 라이프 파워를 사용한 상태에서 얼마나 싸울 수 있는지 계산할 수 있도록 표본이 필요하다.

“조심해! 이 녀석들 공격 패턴이 이상해.”

부웅-!

내 상체만 한 주먹이 날 노리고 날카롭게 날아왔다.

마치 복싱 선수의 주먹처럼 빠르고 예리했으며,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은 진짜 돌주먹이었다.

에이션트 골렘은 아직 헌터 협회에서 정보를 수집 중인 몬스터였다.

말은 하지 못 하지만 지능이 있어서 이성적인 전투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카앙-!

날아오는 주먹을 에렌 셀로 막았지만, 힘이 어찌나 센지 몸이 한참이나 뒤로 밀려났다.

“미치겠구만!”

아까 싸웠을 때와는 전혀 다른 전투 방식이었다.

아깐 정면으로 공격해 오는 것보다는 의도적으로 내 허점을 만들어서 치명적인 공격을 해 왔다.

그에 반해, 지금은 오로지 힘으로 나를 누르고 있었다.

이 자식들이 만약 이성이 존재하는 몬스터라면 분명 나를 가지고 놀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 와도 나는 받아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냥 죽어줄 순 없지!

콰직!

[7886/8225]

대미지는 제대로 들어갔는데 뭔가 이상하다.

“……!”

에렌 셀을 힘껏 쑤셔 넣었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검이 에이션트 골렘의 관절 쪽으로 부드럽게 들어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엄청난 위화감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이 자식…! 설마!”

설마, 일부러 관절에 내 검을 넣을 수 있도록 빈틈을 내어 준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에이션트 골렘이 몸을 비틀었다.

에이션트 골렘이 접고 있던 팔을 쭉 펴자, 검은 그대로 관절에 끼고 말았다.

검을 꽉 쥐고 있었는데 앞에 에이션트 골렘의 주먹이 보여서 본능적으로 검을 놓아 버렸다.

“형씨!”

“괜찮아. 바닥에 굴렀을 뿐이야.”

한 녀석이 내 에렌 셀을 관절에 꽂아서 빼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그사이 다른 놈이 바로 공격해 오며 어떻게든 검에서 손을 떼게 했다.

한 마리라면 이런 건 불가능할 텐데, 두 녀석의 호흡이 이렇게 성가실 줄이야.

파앙-!

앞에 있던 에이션트 골렘이 양 손바닥을 부딪쳐서 손뼉을 쳤고, 그와 동시에 내 아래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젠장, 마법까지 쓰는 거냐!

에이션트 골렘의 마법에 반응하듯 바닥의 돌들이 자석에 이끌리듯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검이 없어서 날아오는 돌들을 받아칠 수 없었고, 그사이 몸이 점점 돌들에게 말려지고 있었다.

“움직일 수가… 없어!”

그때 위에서 에이션트 골렘 한 마리가 양손으로 깍지를 끼는 게 보였다.

부웅-!

“……!”

콰앙!

묵직한 양손 주먹이 나를 내리찍었고, 오직 그 한 방으로 내 숨통이 끊어졌다.

[Game Over

System : 체력이 0이 되었습니다.]

***

‘12’.

벽에 숫자를 세기고 한숨을 내뱉었다.

이곳에 들어온 지 5시간째.

벌써 20번이나 죽었다.

에이션트 골렘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했고,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부활하면 항상 벽에 숫자를 세기면서 어떻게든 이 동굴의 지형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있다.

죽을 때마다 새로운 구역에서 부활하는 게 아니라, 무작위로 위치가 정해져서 전에 왔던 곳도 제법 중복이 많았다.

지금은 벽에 보이는 숫자가 없었기에 새로 ‘12’라는 표시를 해 두었다.

“괜찮아? 형씨?”

“아직 3시간 남았잖아.”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3시간은 절대 긴 시간이 아니었다.

내가 싸우고 있는 에이션트 골렘은 보스가 아닌, 필드에 출현하는 일반 몬스터였다.

그런 놈들과 싸우는데도 이렇게 오래 걸렸는데 보스 몬스터는 이기는 게 가능한지도 의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어떤 구역에서 부활하더라도 외길을 따라 이동하면 에이션트 골렘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게이트는 여러 개의 길이 가운데 한곳으로 모이는 듯한 형태다.

“이 정도면 괜찮지. 미로 같은 게이트에 갇혀서 싸우지도 못하고 백날 천날 방황하고 다니는 것보다 낫잖아.”

“그건 그렇지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부활해서 눈을 뜨면 바로 횃불을 따라 달려간다.

벌써 소모한 라이프가 많은 탓에 겨우 올려둔 700대에서 600대로 개수가 줄었다.

차윤지가 했던 말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키고 싶은 건 직접 지키라고…….

“자! 다시 죽으러 가 보자고!”

달칵.

앞으로 발을 내디디면서 밟은 타일이 아래로 꺼졌다.

“어?”

파앗!

“으아아아악!”

방금까지 서 있던 바닥이 아래로 활짝 열렸고 미끄럼틀 같은 이상한 통로를 타고 엄청난 속도로 미끄러졌다.

혼이 나갈 것 같은 상황은 1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허억… 허억… 뭐야! 무슨 일이야?!”

“함정인 것 같은데? 바닥 타일을 밟으면 함정이 작동해서 침입자를 아래로 떨어뜨리는 형태지.”

하지만 그와 다르게 내가 떨어진 방은 아주 평범해 보였다.

은은한 갈색 벽지와 깔끔한 느낌의 나무로 만든 가구들.

게이트 어딘가에 있는 방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갈한 곳이었다.

“여긴 대체 뭐지?”

“누가 이곳에서 살았던 것 같은데?”

식기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가구들이 다 있는 걸로 봐선 발렌 말대로 누군가 살았을 가능성이 컸다.

조심스럽게 방안을 걷던 나는, 책장 앞에 걸음이 멈췄다.

“아! 책!”

아까 받았던 퀘스트가 떠올랐고, 위에서부터 검은 새라는 글자를 찾아서 훑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커다란 책장엔 수많은 책이 꽂혀 있었지만, 다 역사와 관련된 책들이었다.

책장을 다 찾아봐도 ‘검은 새의 비명’이라는 책은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나는, 다시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어쨌거나 여기서 나가는 게 급선무였다.

“형씨! 저기 구석에!”

“……!”

발렌의 말에 고개를 휙 돌리자, 방구석에 누군가의 유골이 보였다.

벽에 기대앉은 채 죽었는지 그 모습 그대로 유골이 남아 있었다.

잠깐, 설마 저건!

유골이 품에 안고 있는 새까만 책은 다름 아닌 퀘스트에서 찾으라고 했던 책이었다.

[검은 책의 비명

검은 새가 울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이 이 책에 적혀 있다.]

초월 능력 덕분에 책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이건 정보라기보단 책의 머리말 같은 느낌인걸.

[System : 퀘스트 조건을 달성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퀘스트 아이템이 보상으로 바뀝니다!]

눈앞에 보이는 시스템 창과 함께 들고 있던 책이 빛을 뿜어냈다.

놀라서 책을 그대로 떨어뜨리고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바로 빛이 수그러들며, 그곳에 있는 건 가죽 갑옷이었다.

새까만 가죽 갑옷은 어쩐지 으스스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검은 새의 깃털

검은 새의 가죽으로 만든 매우 질긴 갑옷.

웬만한 무기로는 뚫리지 않으며 충격 흡수에 용이하다.

착용 시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민첩+10 내구도 50/50]

민첩을 10이나 올려 준다는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

지금까지 어떤 장비에서도 능력치를 올려 주는 건 없었기에 놀랄 수밖에.

능력치는 1레벨에 2씩 올려 주니, 이 장비는 무려 5레벨의 효과를 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굳이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바로 가죽 갑옷을 장착했고, 설명에 쓰여 있는 것처럼 놀라울 정도로 가벼웠다.

“어때?! 몸에 맞아?”

“딱 맞아. 그런데 이건 진짜 가볍네. 갑옷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워.”

외형은 그렇게 가벼운 느낌은 아니었다.

몸 전체를 두꺼운 가죽으로 덮은 느낌이라 제법 무게가 느껴졌는데, 착용하고 나니 착용하기 전보다 몸이 가벼워졌다.

민첩이 상승한 효과인가.

설원 지형에서는 빙결의 갑옷이 유용했지만, 다른 곳에서 사용하기엔 너무 커서 불편했다.

이런 갑옷이라면 앞으로 쓸 만하겠는걸?

신이 나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System : ‘검은 새의 저주’에 걸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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