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내 목숨 9999 (1)
“끄아아아악!”
온몸이 뒤틀리는 듯한 격통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아…. 하아…….”
덜덜 떨리는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날카로운 칼이 가슴을 꿰뚫는 경험은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고, 아릿하게 남아 있는 통증은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확인하니, 슬슬 주변이 어두워지는 게 보였다.
어느새 날이 쌀쌀해졌다는 사실에 인상을 찌푸리며 옷을 여몄다.
하지만 차가운 밤공기는 내게 안식을 가져다줬다.
밤이 되면 그 괴물 자식들이 나를 죽이러 오지 않으니까.
시야에 보이는 작은 사람 모양의 아이콘을 손가락으로 누르자, 반투명한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최현 Lv.1
체력: 150/150 마나: 10/10 기력: 30/30
힘: 10 민첩: 10 지능: 10
(사용 가능 포인트: 0)
라이프 : 9841개]
159번.
10일이라는 시간 동안 죽음과 부활을 반복한 횟수다.
하루에 대략 15번씩 묵직한 검이 내 몸을 꿰뚫어 버렸고, 그때마다 나는 다시 눈을 뜨지 않길 바랐다.
“우욱…. 우우욱…….”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가 죽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질 때마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왜 내게 이런 지옥 같은 일이 일어난 건지 원망하는 것도 이젠 지쳐 버렸다.
게임 캐릭터처럼 죽어도 부활을 하는 몸을 가지게 됐지만, 정신은 이대로 망가져 버릴 것 같았으니까.
“진짜 신기한 인간이군. 분명 죽은 걸 봤는데 계속 살아나다니…….”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리자, 허접한 갑옷을 입고 있는 오크가 보였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오크는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나를 훑어보고 있었다.
오크가 인간의 말을 한다는 소리는 지금껏 들어 본 적 없기에 놀라는 게 정상이었지만,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지금은 날아가던 새가 영어로 랩을 한다고 해도 별 감흥이 없을 것 같았다.
“…….”
놈에게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에 15번 죽는다고 가정하면 666일 동안 이 짓을 반복해야만 내 남은 목숨이 모두 사라진다.
“보통 내가 인간의 언어를 하면 놀라 자빠지던데…. 완전히 미쳐 버린 건가? 쯧쯧…. 죽어도 되살아나는 능력이 있는데 이런 곳에 갇혀 버리다니…….”
혀를 차는 오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인상을 구겼다.
“나도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제발 부탁이니까 꺼져.”
해가 뜨자마자 데스나이트는 날 죽이려고 찾아올 거다.
적어도 그때까진 혼자서 편하게 쉬고 싶었다.
하필이면 인간의 언어를 쓰는 돌연변이 오크가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것조차 누군가 나를 괴롭히려고 만든 일처럼 느껴졌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 혹시 내가 이곳에서 나가는 길을 알려 줄지도 모르잖아.”
오크의 말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초록색의 단단해 보이는 피부에 붉은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개소리하지 마. 출구를 몰라서 나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고.”
게이트는 일반적으로 중간에 밖으로 나가는 게 가능하지만, 이 망할 게이트는 출구 자체가 막혀 있었다.
출구가 막혀 있는 게이트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10일 동안 끝없이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처음 이곳에 갇혔을 때부터 나는 살기 위해,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까.
덕분에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이 저주 같은 능력은 목숨을 잃는 시점부터 정확히 10분 뒤에 나를 무작위 지점에서 부활시킨다.
데스나이트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치다 보니 주변 지형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것이다.
“음…. 하긴…. 아무리 인간이라지만 더럽게 약하긴 하더라.”
그는 안쓰럽다는 듯이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속으로 울컥했으나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기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는 헌터 중에서도 바닥이나 다름없는 E급 헌터였고 데스나이트는 무려 ‘블루라벨’에 해당하는 상위 몬스터였으니까.
가장 큰 문제는 데스나이트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딜 가나 귀신같이 나를 찾아서 죽이는 데스나이트 놈들 때문에 이 게이트 어디에도 안전한 장소는 없었다.
더 이상 오크에게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누웠다.
어차피 내가 부활하는 걸 알고 있다면 저 오크도 굳이 날 죽일 이유는 없다.
“나라면 마지막까지 발버둥이라도 쳐 보겠다. 어차피 계속 부활한다면 언젠가 한 번은 이기지 않겠어? 크하하핫!”
오크는 말을 마치며 자기도 어이가 없는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멀어져 갔다.
내가? 약해 빠져서 동료들한테도 배신당하는 내가 블루라벨의 몬스터를 쓰러뜨린다고?
차라리 로또에 당첨되면서 벼락에 맞는 쪽이 확률이 높을 것이다.
나는 그저 이 지옥 같은 구렁텅이에서 라이프를 모두 잃을 때까지 죽음을 반복할 뿐이니까.
내일 꾸벅꾸벅 졸면서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애써 눈을 감았다.
***
아직 차가운 새벽 공기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면 망할 공무원 데스나이트들이 출근을 하기 시작한다.
무슨 수를 써서 내 위치를 알아내는 건지 모르겠지만, 게이트 안에 있는 모든 데스나이트가 날 죽이기 위해 다가온다.
몸 어딘가에 GPS라도 붙여 놓은 건지…….
“후우…. 발버둥이라…….”
이 게이트에 갇히고 나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데스나이트에게서 도망쳤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놈들과 싸우겠다고 덤볐던 적은 없었다.
애초에 내가 데스나이트를 이길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시야에 보이는 가방 모양의 아이콘을 눌렀다.
네모난 칸이 4칸씩 4줄, 총 16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유일하게 첫 번째 칸에 검이 그려져 있었고, 손가락으로 검 아이콘을 인벤토리에서 내 손으로 당기자, 손에 검이 튀어나왔다.
[보급형 마력 검
협회에서 제작한 헌터들을 위한 보급용 검이다.
기본에 충실하고 가성비가 뛰어나다.
공격력+2 내구도 30/30]
물건 하나하나 이런 설명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괴상한 ‘초월 능력’의 일부였다.
아무리 봐도 진짜 게임 같네.
마치 게임 속 캐릭터가 된 것처럼 능력치나 인벤토리, 아이템의 옵션까지 생긴 건 여전히 낯설게만 느껴졌다.
뭐, 아무리 게임이라고 해도 목숨을 만 개나 주진 않지만.
스르릉.
검을 뽑은 뒤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하아…….”
계란으로 바위 치기도 이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어제 그 돌연변이 오크 자식 때문에 헛바람이 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대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는 걸 기다리기만 한다면 정신이 무너져서 미쳐버릴 것만 같다.
내게 필요한 건 정말로 데스나이트를 죽이겠다는 투지보단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철컥…. 철컥…….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갑옷의 이음새가 맞닿는 소리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부활하면서 몸은 완전히 다시 태어났지만, 머리는 이 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꽉 움켜쥐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꿀꺽.
여기에 와서 알게 된 게 있다면,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 끔찍한 건 없다는 것이었다.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모습을 드러낸 데스나이트는 덩치가 족히 3m는 되어 보였다.
원래대로라면 보이지 않아야 하는 체력바가 놈의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새까만 갑옷을 두르고 있는 놈을 보자마자 몸이 진동하듯 떨리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흑색의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는 그는 오싹한 살기를 뿜어내며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건 한 놈이지만, 다른 방향에서도 분명 내 쪽으로 오고 있겠지.
“하아…. 하아…….”
머릿속에 각인된 것처럼 강렬하게 남아 있는 죽음의 공포는 서서히 나를 옥죄어 왔다.
검을 꽉 움켜쥐며 언제든 휘두를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터엉!
데스나이트가 단숨에 바닥을 박차고 내게로 돌진해 왔고, 눈을 깜빡인 순간 이미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 속도는 나 같은 허접한 헌터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런…. 씨발!”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오른쪽으로 날렸고, 데스나이트의 검은 허공을 갈랐다.
이건 순전히 운이 좋았다.
움직임을 보고 반응한 게 아니라 왼쪽과 오른쪽 중에서 아무거나 선택했을 뿐이었으니까.
어찌 됐든 처음으로 놈의 무방비한 상태를 마주한 나는 있는 힘껏 검을 내리쳤다.
카앙-!
놈의 플레이트 아머를 검으로 후려치는 순간, 손이 저릿한 감각과 함께 데스나이트 체력바가 미세하게 줄어들며 [-1]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젠장! 겨우 1이라고……?!
데스나이트는 움찔거리지도 않고 몸을 내 쪽으로 틀었다.
투구 안에 놈의 붉은 눈동자가 번쩍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1이라는 자비 없는 숫자에 뚫어져라 체력바를 노려봤다.
[7188/7189]
“……!”
체력 수치까지 볼 수 있는 건가?!
찰나의 순간 동안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데스나이트의 검이 내 복부를 꿰뚫은 뒤였다.
붉은색 피가 분수처럼 찢어진 배에서 뿜어져 나왔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컥…….”
내가 공격했을 때 봤던 데스나이트의 체력바와는 달리, 내 체력바는 단숨에 붉은색이 사라져버렸다.
희미해져 가는 시야에 반투명한 창이 들어왔다.
[Game Over
System : 체력이 0이 되었습니다.]
***
“쿨럭…. 쿨럭…….”
발작에 가깝게 몸을 들썩이며 상체를 일으켰다.
이 거지 같은 감각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여유롭게 다음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놈들이 다시 날 찾아오기 전에 빨리 머리를 굴려야 한다.
데스나이트의 공격을 운 좋게 피하고 공격에 성공한 것까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7189라는 체력에서 겨우 1밖에 깎이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내가 아까 공격을 먹였던 데스나이트가 어떤 놈인지 알아볼 수 없다는 점.
애초에 다 똑같이 생겨서 어떤 놈이 어떤 놈인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아오…. 진짜! 밥 먹는데…. 다른 데 가서 죽어!”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리자, 어제 봤던 오크가 한 손에 잘 익은 고깃덩이를 들고 있었다.
죽고 나서 부활하면 배고픔도 원래대로 돌아가는지 이곳에 갇히고 배고픔을 느낀 적이 없었다.
“밥맛 떨어지게…….”
잔뜩 짜증 난 표정의 오크는 다른 손에 들고 있던 과일을 꽉 움켜쥐어서 고기 위에 즙을 짜내고 있었다.
파란색의 과즙이 고깃덩이에 흘러내리는 걸 보며 오크가 입맛을 다셨다.
잠깐……!
“그거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오크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알았어. 내가 간다, 내가 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멀어지는 오크에게서 눈을 돌려 그가 들고 있던 열매를 찾기 시작했다.
놈의 갑옷에 어떻게든 표시만 만들 수 있다면 앞으로 내가 공격했던 놈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을 거다.
하나하나 체력을 확인하는 것보단 이쪽이 효율적이니까.
주변을 뒤져서 열매가 있는 곳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퍼렁 열매
이름처럼 파란색의 열매.
부드러우면서도 상큼한 맛의 열매로 고기와 함께 먹으면 최고의 맛을 선사한다.
기력+5 회복]
퍼렁 열매를 얻자마자, 내가 죽었던 곳이 어딘지 떠올리고 그곳을 향해 서둘러 이동했다.
주변 지형을 완벽하게 외워 둔 덕분에 내가 죽은 곳, 그리고 내가 부활한 곳이 어딘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놈은 여느 때처럼 부활한 내게 오고 있을 테니, 나도 그쪽을 향해 간다면 아까 만났던 놈과 다시 만날 확률이 높았다.
이번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몇 번 더 시도하면 놈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7189라는 터무니없는 체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죽을 때마다 공격이 먹힌다고 해도, 무려 7188번 더 공격해야 한다.
하다못해 2씩만 깎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철컥…. 철컥…….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와 함께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어차피 내게 선택권은 없다.
다가오는 데스나이트의 체력바를 계속 노려보자, 아까처럼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7188/7189]
운이 좋았다.
바로 아까 그놈과 만나다니…….
데스나이트를 보자마자 놈을 향해 힘껏 퍼렁 열매를 던졌다.
쌔엥-!
“…좋아.”
놈은 아무렇지 않게 내가 던진 열매를 검으로 베어버렸고, 열매의 과즙이 갑옷을 물들였다.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놈은 곧장 내게 달려들었다.
아깐 두려움에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처음에 달려들 때 움직임이 커서 어디로 공격해 올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정직하게 처음 자세 그대로 공격이 들어왔고 피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파악!
덕분에 아까보다 안정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고, 이번엔 정확히 놈의 머리통에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목이 약간 움직이는 거 외엔 투구에 흠집밖에 나지 않았다.
젠장…. 이 정도 차이인가.
[-3]
자신의 나약함에 이를 갈고 있을 때, 아까보다 무려 3배나 높은 대미지가 놈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뭐……?!”
빠악!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놈의 주먹이 내 배를 후려쳤고, 입에서 새빨간 피를 토해 냈다.
이내 정신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 멀어져 갔다.
[Game Over
System : 체력이 0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