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67화 (67/315)

# 67

067. 어떻게 된 거야? (3)

40대 후반 한 명, 50대 초반 두 명, 이렇게 메이드 복장의 여직원 세 명이 천중명이 있는 2층의 거실로 올라왔다.

“찾으셨습니까?”

“예. 궁금한 게 있어서요.”

앉으라고 권하지 않았다.

좀 더 부담을 느끼라는 의미였다.

“세 분은 3개월 단위로 현금을 받으셨어요. 그렇죠?”

돌릴 것 없이 푹 찌른 천중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명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총수님이 쓰러지신 일에 관계된 돈입니까?”

침묵하는 세 사람을 천중명은 날카롭게 돌아보았다.

“대답 못 하는 건 그렇다는 뜻입니까? 총수님이 드시던 차에 약을 넣었다, 이런 거?”

그래도 답이 없어서 천중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 분은 내려가는 대로 짐을 싸서 이 집에서 나가세요. 퇴직금과 기타 정산해야 하는 부분은 법인을 통해 해결하겠습니다.”

3개월에 5백만 원씩이면 월 150이 조금 넘는 돈이다.

제법 큰 자식들이 있는 사람들이 왜 그 돈에 팔려서 이러고 서 있는 건지, 천중명은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나 본데, 남은 인생 내내 후회하게 될 겁니다. 그것만 알고 이제 그만 내려가세요.”

냉정하고 차가운 천중명의 지시가 떨어진 직후였다.

“둘째 회장님이 주신 돈입니다. 총수님의 일과와 찾아오는 분, 혹은 특별한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오른쪽에 섰던 50대 초반의 여직원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약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차를 준비할 때….”

입을 떼자 겁이 났고, 그 바람에 눈물이 솟구친 모양이었다.

여직원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전날, 강승애 이사장에게서 전화가 있었습니다. 혹시 주방에 윤 실장이 들어오면 모른 척하라고…. 잘못했습니다, 총수님!”

천중명을 총수라고 부른 여직원이 느닷없이 양손을 앞으로 내민 채로 빌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옆에 있던 두 명의 여자들도 비슷한 모양새로 손을 빌어댔다.

쉰 살 위아래의 직원들이 다섯 살배기 아이처럼 빌어대는 모습은 정말이지 천중명이 원하던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약은 윤 실장이 썼다는 겁니까?”

“저희는…, 원래 총수님 음식에는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모른 척…. 아니 못 본척했을 뿐입니다.”

“총수님의 일과를 보고하는 대가로 돈을 받은 거고요?”

“예. 단지 보고만 하면 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더는 이곳에서 일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죄송합니다.”

대강 윤곽은 알았다.

너무 쉬워서 재미없지만 말이다.

“내려가서 짐 싸세요. 그리고 가기 전에 지금 했던 말을 자술서 형태로 써놓으시고. 마음이 바뀌어서 모르는 일이라고 우기고 싶으면 그래도 됩니다. 나도 어쩐지 그게 편할 것 같으니까.”

매달려볼 생각인 모양이었다.

눈물 달린 얼굴을 슬쩍 들었던 여자 한 명이 천중명의 눈을 보고는 화들짝 고개를 숙였다.

“내려가세요.”

“예, 총수님.”

그렇게 세 명의 여직원이 눈물을 매단 채로 계단을 내려간 다음이었다.

천중명은 휴대전화기를 꺼내 곽대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이 넓으니까 별짓을 다 한다.

- 예, 회장님.

“김순례 씨와 함께 올라와.”

- 알겠습니다, 회장님.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거실 밖으로 펼쳐진 마당에 시선을 주었다.

김순례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방금 내려간 세 명을 대신할 직원을 추천하고, 이후에도 혹여 의심스러운 직원이 보이면 곽대출에게 바로 연락하도록 말해 둘 참이었다.

천중명은 들고 있던 휴대전화기를 이용해 지경건설의 주식을 살펴보았다.

상한가를 표시하는 붉은색 화살표와 그 옆으로 21만 몇천 원의 주가가 역시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픽 웃은 천중명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곽대출이 앞서고, 김순례가 뒤서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

천호득이 방지병원에 도착했을 때 윤만석은 5층의 1인용 병실에 있었다.

드르륵.

지경병원의 특실과 달리 방지병원의 문은 소리를 내며 열렸다.

휠체어를 탄 천호득, 그 옆에 유진교, 마지막으로 휠체어를 밀어주는 장만섭이 병실로 들어선 직후였다.

힘겹게 고개를 돌렸던 윤만석이 몸을 일으키려는 모양으로 왼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가만있어! 그 꼴로 인사를 할 거야, 차를 내올 거야.”

침대 옆으로 간 천호득은 매서운 눈초리와 정떨어지는 특유의 말투로 윤만석을 말렸다.

병실에는 윤만석이 데리고 있던 직원 둘이 더 있었다.

“여기 유 전무만 빼고 다들 자리 좀 비켜주지.”

지시와 다를 바 없는 천호득의 요청이었다.

소리 내지 않으려는 몸짓으로 장만섭과 윤만석의 직원 둘이 병실을 나섰다.

“어떻게 된 거냐?”

얼굴의 왼쪽 절반에 투구처럼 붕대를 감은 윤만석은 입을 열지 않았다.

“뭐가 못마땅해서 강승애 그년에게 몸을 의탁해? 돈이 필요했다면 내게 말해도 됐을 것 아니냐? 뭐야? 도대체 왜 그 망할 년에게 가서 이런 꼴이 돼!”

하나 남은 시선을 발 쪽으로 향한 채 윤만석은 여전히 대꾸가 없었다.

“너 혹시 미국에 갔었을 때 일을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어?”

떨구고 있던 윤만석의 한쪽 눈이 꿈틀했다.

“멍청한 놈.”

천호득이 특유의 독한 음성으로 욕을 뱉어낸 직후였다.

윤만석은 휘몰아치는 감정을 이겨내려는 듯 자꾸만 얼굴을 꿈틀거렸다.

“틀려먹은 자식 놈에게 매달리지 말라는 게 잘못된 말이냐? 그래! 내가 나이도 많은 네게 거칠게 욕을 하긴 했다. 내가 화났을 때 말투가 거칠다는 거 몰랐어?”

“알고 있습니다.”

윤만석이 지고 싶지 않다는 듯

“안다는 놈이 이런 꼴을 보여? 떠났으면 잘난 모습을 보여야지, 고작 선택한 게 강승애 그년과 둘째야? 그것들이 어떤 인간인 줄 알면서?”

“총수님을 뵐 때마다 죽은 자식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다가 첫째 아드님을 버리시는 걸 보자….”

말을 하던 윤만석이 통증을 견디기 위해서라는 듯 몸을 비틀며 인상을 찌푸렸다.

“에이, 못난 놈.”

“세상 사람들이 다 총수님처럼 자식에게 냉정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제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나이 먹어서 더는 거친 욕설을 듣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힘겨운 와중에도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 윤만석의 말이었다.

“그래도 30년 가까운 세월이다. 나는 네가 알 거라고 생각했다. 화가 나면 미친놈처럼 욕을 퍼붓기는 했지만, 그 뒤에 있는 내 진심을 너는 알 거라고 생각했어.”

시선을 떨군 윤만석은 또다시 대꾸가 없었다.

“그래. 너나 나나 지금 이 꼴은 성공만 바라고 살아온 데 대한 벌이겠다.”

대꾸가 없는 윤만석을 보며 천호득은 지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너를 가족으로 대했는데, 너는 나를 끝까지 주인으로 여겼던 모양이구나. 그래. 알았다.”

말을 건넨 천호득이 시선을 돌려 유진교를 보았다.

돌아가자는 의미였다.

유진교가 침울한 표정으로 휠체어의 방향을 틀 때였다.

“그날 몰래 들어와서 약을 썼는데 내가 아직 이렇게 살아있는 것 때문이냐? 그래서 그 꼴이 됐어?”

이건 뭔 소리지?

유진교가 침대 위의 윤만석을 바라본 직후였다.

“네놈이 들어온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홍차를 마시고 난 뒤에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었지. 깨어나고서 생각했었다. 약을 적게 넣었던 게지. 나를 차마 죽일 수는 없어서.”

어금니를 씹어대듯 천호득은 볼을 씰룩였고, 윤만석은 울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그래. 너는 눈과 손목, 발목을 잃었고, 나는 큰놈을 잃은 데다, 몸을 이렇게 망쳤다. 우리 지난 일은 이거로 털어내자. 서운한 게 있었다면….”

말을 멈춘 천호득이 잠시 숨을 골랐다.

“가세. 본부장.”

울음보다 서럽게 들린 천호득의 지시가 떨어진 순간이었다.

윤만석은 얼굴을 한껏 찌푸린 채 쏟아지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고 있었다.

**

김순례에게 평창동의 주방을 당부한 천중명은 잠시 2층 거실에 더 있었다.

“실장님. 내일 본부장을 통해 따로 지시하겠지만, 그룹 차원에서 지경건설의 주식 매수를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증권가와 언론에 전달할 수 있습니까?”

- 전혀 문제없습니다, 회장님. 결정하시면 바로 홍보실에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최만호 기획실장은 망설임 없이 바로 답을 주었다.

“그렇다면 내일부터 매수를 자제하라는 경고를 강한 어조로 전달하세요. 특정 세력의 주식 매입에 따라가다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주시고.”

-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장님. 다른 지시 내용은 없으십니까?

“그룹 차원에서 주식을 매입하는 일은요? 그룹 유보금을 이용하고 싶은데?”

- 기획실에서 관리하던 업무입니다만, 지금은 그룹발전본부가 신설되어서 유진교 본부장이 처리할 영역입니다. 물론 회장님께서 직접 지시하셔도 됩니다.

“그럼 본부장을 통해 지시하도록 하죠. 부탁한 내용만 분명하게 처리해 주세요.”

- 예, 회장님.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해가 떨어져서 옅은 어둠이 안개비처럼 퍼지는 시간이었다.

전화 좀 하는 걸 뭐 고민할 게 있다고.

천중명은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허선영의 목소리였다.

위로도 되고, 기운도 나고, 무엇보다 듣고 싶었다.

“나야. 평창동인데 아무래도 저녁을 먹고 들어갈 것 같아.”

- 네.

“오늘 문자 보내준 거 고마워.”

- 축하해요.

부끄러워하기는.

천중명은 지분 좋게 웃으며 거실 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까 빌라에 갔었어. 급한 일 때문에 올라가지 못했는데 그게 좀 억울해.”

- 정말이요?

“문자 마지막에 보내준 하트, 그거 진짜 좋았어.”

툭 터진 허선영의 웃음이 힘들고 길었던 하루를 위로해주는 느낌이었다.

- 오늘 몇 시쯤 들어와요?

“글쎄. 그건 아직 잘 모르겠네.”

- 저녁 꼭 드세요.

“고마워. 선영 씨도 꼭 챙겨 먹어.”

말을 건네는 천중명의 눈에 천호득의 차가 들어왔다.

“아버지 오셨나 봐. 내가 나중에 또 전화할게.”

- 네.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계단을 향해 아래로 내려갔다.

정문을 지키는 직원들이 통보를 해주는 모양이었다.

천중명이 내려갔을 때는 이미 여직원 두 명이 손을 마주 잡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곽대출과 이은명이 현관으로 나온 직후였다.

문이 열리고 장만섭이 휠체어를 양손으로 들다시피 해서 천호득을 거실에 놓아주었다.

“다녀오셨어요? 윤 실장은요?”

“그럭저럭 살아났어.”

나갈 때와 다르게 천호득은 좀 더 지친 얼굴이었다.

“저녁은 어떻게 됐어?”

“준비하고 있어요.”

이은명의 답을 들은 천호득이 시선을 돌렸다.

“밥 먹고 갈 수 있어?”

확실히 병원에 입원한 뒤로 천호득은 기가 부러졌다.

독기를 피우기는 하는데 끝이 무뎌졌고, 지금처럼 함께 밥 먹고 싶은 심정을 제대로 감추지 못했다.

“오셨으니까 먹고 가죠.”

“그래, 그럼. 나 물수건 하나 줘.”

물수건에 손을 닦은 천호득과 천중명, 유진교가 서재로 향했고, 이은명과 곽대출, 장만섭은 주방으로 움직였다.

서재에 자리한 다음이었다.

“본부장님. 내일부터 그룹의 유보금을 이용해 지경건설 주식을 공매도 했으면 싶은데 가능할까요?”

“공매도 말씀이십니까?”

유진교는 말할 것 없고, 천호득도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주식을 사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공매도들 쳐서 어쩌려고?”

“주가가 필요 이상으로 오르는 것도 막아야 하고, 마지막에 꼭지를 쥔 사람들의 피해를 감안하면 공매도가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천중명이 답을 한 다음이었다.

“그룹 증권사를 이용하면 가능하기는 합니다. 유보금을 증거금으로 활용하면 다른 증권사를 통해서도 꽤 많은 물량의 공매도가 가능할 겁니다. 그렇지만 회장님.”

유진교가 묵직한 얼굴로 천중명의 시선을 당겼다.

“공매도는 막 표현해서 외상으로 주식을 파는 일입니다. 공매도를 한 가격보다 주가가 상승할 경우 그 상승 폭만큼을 그룹이 물어내야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대신 외상으로 팔아버린 가격보다 정산할 때 가격이 더 내려가 있으면 이익을 보는 거죠?”

“그렇긴 합니다.”

“그렇다면 내일부터 공매도 주문을 넣으세요. 최소한 지금보다 주가가 오르지 않도록 해주시고, 가능하다면 10퍼센트쯤 떨어진 가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진교가 천호득을 바라보았다.

이래도 되겠냐는 의미처럼 보였다.

“경영권을 놓고 강승애와 둘째, 우리가 다투는 것은 주식을 모르는 사람들도 아는 일이다. 이번 기회에 돈 좀 먹어보겠다고 개미들까지 달려드는 판국인데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

현관을 들어설 때의 지친 기색을 이겨낸 호기심이 천호득의 얼굴에 피어나 있었다.

“하루 제한폭이 30퍼센트야. 시가총액이 5조를 넘었으니 자칫하면 건설 빼앗기는 것으로 모자라 1조 이상의 손실을 안고 끝날 수도 있어.”

“반대로 따지면 강승애와 둘째 형이 그 손해를 볼 수도 있지요.”

“흥! 그렇게 되면 그 둘도 살아있기 힘들 게다.”

“지옥문을 여는 건데 그 정도는 해야지 않겠어요?”

천호득의 눈이 매섭게 반짝이는가 싶더니 그의 입술 끝에 기다란 웃음이 걸렸다.

“밥 먹자. 갑자기 배가 고프다. 흐헤헤헤.”

기분이 완전히 바뀐 듯 천박하게 들리는 웃음이 노인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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