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 오브 머니-10화 (10/315)

# 10

010. 무조건 따른다 (3)

속으면 뒈진다.

휘이익!

저 양손에 시선을 빼앗기는 바람에 사타구니로 날아드는 오른쪽 무릎을 놓치면 정말 죽을 수 있었다.

터덕!

곽대출의 양손을 밀쳐낸 천중명은,

퍼억!

똑같이 오른쪽 무릎을 들어서는 곽대출의 허벅지 안쪽을 세차게 찍었다.

곽대출은 원래 독종이었다.

“끄응!”

신음을 토해내면서도 놈은 다시 상체를 던지다시피 앞으로 내밀었다.

콰악!

꽂히듯 날아드는 그의 오른쪽 팔꿈치를 역시나 왼쪽 팔꿈치로 맞받았다.

입을 열 틈은 없었다.

말을 하고 싶은데 곽대출은 그 짧은 틈을 전혀 주지 않았다.

콰작! 콱! 터덕!

웅크린 손, 팔꿈치, 명치를 파고드는 뾰족한 주먹을 삽시간에 밀어내고 난 직후였다.

“개새끼야! 그만 좀 하라고!”

욕을 버럭 뱉어낸 천중명은 뒤로 물러나 욱신거리는 팔을 털어댔다.

“너, 뭐야!”

“내가 성창욱이라고, 이 새끼야!”

원래 이렇게까지 욕 잘 안 한다.

그러나 상대가 곽대출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은혜고 원한이고 반드시 이자를 쳐서…!”

멈칫!

천중명의 말에 달려들던 곽대출이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왜? 내가 방심한 사이에 눈알이라도 팔 거 같아서 물러나냐?”

“아까 하던 말, 그거 계속해 봐.”

“아버지가 그래서 대출이라고 이름 지었다며! 은혜고 원한이고 반드시 대출처럼 이자를 붙여서 돌려주라고.”

이를 꾹 깨문 곽대출이 천중명의 위아래를 빠르게 살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던 무조건 따르겠다며!”

“씨발! 그건 팔다리가 잘렸거나 목숨이 달랑달랑할 때 그렇다는 거지! 생판 처음 보는 놈이 와서 창욱이라고 하는 걸 어떻게 믿어?”

하긴, 몸뚱이가 바뀐 것을 덜컥 받아들이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일이 그렇게 됐다. 성형수술 했다고 생각해라.”

“이게 누굴 바보로 아나?”

“손가락과 다리 부러졌을 때 난 너 악착같이 챙겼다.”

갑갑해서 미칠 것 같은 눈을 한 곽대출이 입을 꾹 다문 채 천중명을 노려보고 있었다.

**

바위의 틈에서 아래로 쓸려 내려가는 곽대출의 등을 성창욱이 꽉 움켜쥐었다.

‘끄으….’

곽대출은 독종 중의 독종이라 누구에게 의지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성창욱이 절벽 아래로 미끄러지는 그를 끌어올리는 것은 곽대출의 오른손 엄지와 검지가 완전히 부러진 데다, 오른쪽 발목까지 뒤틀렸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신음을 토해내지는 않았다.

신음을 토해내느니 깔끔하게 섬뜩한 절벽 아래로 떨어져 뒈지는 것을 택할 독종이 곽대출이었다.

슥!

왼손으로 곽대출의 뒷덜미를 잡아 올린 성창욱이 숨을 조용하게 내뱉고는 절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지금의 자존심 팍 부러지는 상황도, 말도 안 될 만큼 성창욱이 강한 게 문제지, 절대 곽대출이 약해서는 아닌 거다.

해군첩보부대(UDU) 훈련은 그 어느 특수부대와 비교해도 강도에서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곽대출을 끌어올린 성창욱 역시 손가락과 손등, 팔목 군데군데에 피가 배어 나와 있었다.

곽대출을 힐끔 본 성창욱이 엄지와 검지와 중지를 펴서 보여주었다.

3분쯤 쉴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알았다. 알았다고!

성창욱의 옆에서 절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곽대출은 꺾인 엄지손가락을 왼손으로 붙들었다.

그리고는 이를 악문 뒤에,

짜그락!

단숨에 잡아서 똑바로 폈다.

달려드는 끔찍한 고통을 곽대출은 볼 몇 번 꿈틀대는 것으로 참아냈다.

짜그락!

검지도 폈다.

그래놓고도 곽대출은 다시 오른발을 구부려 두 손으로 붙들었다.

‘후! 후!’

드드득!

‘끄으-!’

온몸을 뱀처럼 비틀며 고통을 이겨내는 곽대출의 눈과 얼굴이 단숨에 시뻘겋게 변했다.

그런데도 그는 신음을 삼키고 삼켰다.

잠시 숨을 고른 곽대출은,

쭈우욱!

허벅지에 꽂아두었던 쫄대와 잘라낸 군화 끈을 이용해 손가락과 발목에 묶었다.

2분이 휙 지나갔다.

그러니까…?

생각이 멈춘 사람처럼 곽대출은 왼손의 엄지와 검지, 그리고 중지를 폈다가는 다시 엄지와 검지를 접었다.

이러면 중지 하나 남으니까?

남은 시간을 계산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엿이나 처먹으라는 양놈들 욕이 눈앞에 있었다.

아무튼, 성창욱이 정해준 휴식시간이 1분 남았다.

그런 곽대출의 꼴을 힐끔 본 성창욱이 피식 웃었다.

대학생이라고 들었다.

강단이며, 깡이며, 하여간 모든 게 잘난 놈이라니!

기분 나빠야 할 저 웃음이 든든한 걸 보면 곽대출의 상태가 맛이 가긴 간 게 분명했다.

잘생겼지, 체격 죽이지, 저런 인간이 뭐, 미쳤다고 4년제 대학의 마지막 1년을 남겨놓고 이런 곳에 들어왔을까?

물론 특수부대에 환상을 가진 남자들이야 제법 있다.

그러나 곽대출이 보기에 성창욱은 그렇고 그런 남자들과 부류가 달랐다. 어쩐지 그냥 고난을 헤쳐 나가기 위해 태어난 인간처럼 보인다는 설명이 오히려 적당했다.

아득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던 성창욱이 피와 흙이 엉겨있는 검지로 위를 가리켰다.

올라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손가락만 부러지지 않았어도, 발목 하나쯤 뒤틀린 건 어떻게든 해볼 텐데.

인상을 찌푸리며 곽대출은 왼발에 의지한 채 몸을 일으켰다.

지금은 북한으로 침투하는 일이 없어서 UDU의 훈련 목적은 적국의 침투라고 구라를 친다.

그런데 말이다.

훈련의 주 배경이 북한이고, AK 소총을 사용하며 담배랑 라이터, 그 외에 소모품을 전부 북한제로 준다.

바위틈에 손을 세워 끼워 넣은 성창욱이 누군가 발바닥을 받쳐준 것처럼 소리 없이 위로 올라갔다.

징그러운 인간!

그걸 보면서 또 곽대출은 이를 악물었다.

누구나 손가락보다 손바닥 볼이 두껍다.

성창욱은 그 손바닥의 볼을 적당한 바위틈에 끼워 넣고는 턱걸이하듯 당겨서 위로 올라간다.

그러고도 권총이나 대검을 뽑을 수 있게 남은 왼손은 함부로 끼워 넣지도 않았다.

스윽.

어떻게 소리조차 나지 않는 건지.

꽈악!

자존심이 팍 상했지만, 곽대출은 오른손을 바위틈에 넣고서 대롱대롱 매달린 성창욱의 왼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소리 나지 않게 위로 올라갔다.

추적조는 모두 12명이었다.

나흘간 그들에게 붙들리지 않은 채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훈련의 끝이었는데 이 바위산이 그 마지막 과정이었다.

UDU 짬밥이 최소 3년 이상이라는 추적조가 성창욱과 곽대출을 나흘째 못 잡았다.

처음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성창욱과 곽대출을 잡기 위해 나선 12명은 독사를 물어 죽일 정도로 독이 잔뜩 올라 있었다.

첫날 실패의 대가로 추적조 12명은 손목을 뒤로 묶은 상태에서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저녁을 먹어야 했다.

식사가 끝났는데도 11시까지 곽대출과 성창욱, 그리고 동기들이 있는 내무반에 매달아 놓았다.

이틀째는 숲을 통과하는 훈련이었다.

그날 실패한 추적조 12명은 구식 화장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서 밥을 먹었다.

푸세식 화장실이다.

오물에 찌들만큼 찌든 나무 발판에 식판을 놓아주었고, 코와 입을 처박고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는 밤 11시까지는 오물이 떨어지는 공간에 머리를 박아 두었다.

셋째 날 새벽에 보았던 12명의 눈에 담긴 살기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때도 성창욱은 픽 웃었다.

마치 12명을 비웃는 것처럼 보여서 곽대출조차 마른 침을 꿀꺽 삼킬 정도였다.

도대체 이런 괴물이 어디에서 불쑥 나왔고, 또 왜 그 많은 특수부대를 놔두고 UDU에 와서 곽대출을 초라하게 만드는 건지.

사흘째 훈련은 매복이었다.

그날 성창욱과 곽대출을 찾아내지 못한 12명은 돌이 가득한 해변에 나무 기둥을 박아놓고 아래쪽에 거꾸로 묶였다.

물론 인간적으로 식판은 놓아주었다.

그러나 파도가 몰려오면 등까지 잠기는 수준에서 돌밭에 내려놓은 식판이 그대로 있을 리 있겠나.

파도 한번에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밤에 막사 주변으로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가 밤새 들렸다.

힘들거나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나온 절규가 아니라 굴욕을 참기 어려워서, 사흘이나 놓쳤다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나온 피 섞인 울부짖음이었다.

죽여 버릴 거다!

갈가리 찢어서 바위에 널어놓을 거라고!

그 울부짖음이 곽대출에게는 미쳐버린 괴물이 지르는 절규처럼 들렸다.

바위 위로 곽대출을 먼저 올린 성창욱이 누군가 발을 받쳐준 사람처럼 올라왔다.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넌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왔냐?

궁금함을 꿀꺽 삼킨 곽대출은 당장 올라가야 하는 절벽을 바라보았다.

이 코스를 결정한 것도 성창욱이었다.

그리고 독종 중의 독종인 곽대출이 손가락이 부러지고, 발목이 뒤틀릴 정도로 힘겹게 넘고 있는데, 성창욱은 인상만 찌푸린 게 전부였다.

위를 살피는 성창욱을 보며 곽대출은 처음으로 12명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이런 놈은 못 이긴다.

죽여 버리거나 반대로 성창욱의 손에 죽을 게 아니라면 고개 숙일 수밖에 없다.

오늘까지 못 잡으면 12명은…?

곽대출이 고개를 털며 잡생각을 떨쳐 낼 때였다.

홱.

성창욱이 빠르게 시선을 가져왔다.

염병! 뭔 사람 눈이?

지금 빛나는 성창욱의 눈빛은 곽대출의 뒤통수까지 파고들 정도로 매서웠다.

‘뭐야? 왜 그래?’

곽대출의 눈빛을 향해 성창욱이 엄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 바위 절벽 옆에서 12명이 다가온다고?

정말? 진짜?

성창욱이 까닥 고개를 끄덕이고는 절벽 위로 손을 넣었다.

그러고는 귀신이 움직이는 것처럼 쑥 올라갔다가 바로 내려와서는 왼손을 내밀었다.

‘씨발!’

부럽다.

곽대출처럼 우락부락한 인상도 아니면서 능력과 근성까지 타고난 놈들을 보면 정말이지 부러워 미칠 것 같다.

해가 산 너머로 기울어진 시간이었다.

곽대출은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이겨내며 성창욱의 팔을 붙들고 위로 올라갔다.

소리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나지 않는다.

이래서 UDU 대원을 부르는 은어가 ‘도깨비’인지 모른다.

가만?

그런데 이 새끼는 도대체 어떻게 선배들이 온다는 걸 알아낸 거지?

곽대출은 아예 마음을 접었다.

그나저나 이미 해가 기우는 시간에야 겨우 바위산의 꼭대기에 올라왔다.

곽대출은 저기 절벽 아래의 녹색에 숨겨진 목적지를 보며 오늘만큼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남짓이었다.

달려도 뻑뻑한 참에 발목이 뒤틀린 곽대출까지 해가 지평선에 닿기 전에 저 아래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젠장!

곽대출은 성창욱에게 미안했다.

미끄러진다 싶은 순간에 손과 오른발을 잽싸게 찔러 넣었는데 떨어지지 않은 대신 손가락 두 개와 발목을 잃은 꼴이었다.

‘미안하다.’

곽대출이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기울어진 해를 머리 뒤에 둔 성창욱이 픽 웃으며 아래와 곽대출을 번갈아 보았다.

설마?

소름이 쫙 끼친 곽대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그냥 하루만 거꾸로 매달리자고!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

피식.

‘넌 미친 거야! 알아? 넌 미친 거라고!’

꽈악!

고개를 흔드는 곽대출의 멱살을 성창욱이 힘껏 잡았다.

터억!

곽대출이 멱살을 잡은 성창욱의 손목을 쳐내며 처음으로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휘이익!

성창욱이 절벽을 향해 몸을 던졌고,

‘이런! 씨바-알!’

곽대출은 그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절벽 아래쪽이 빠르게 달려들고 있었다.

콰작! 콰자작! 콰작! 콰자자작!

처음에 몇 번 처박힐 때까지는 기억한다.

세상이 거칠게 빙글빙글 돌았고, 목덜미, 등, 엉덩이가 찢기거나 깨지는 고통이 달려들어 생각을 잘라먹었다.

터억! 부우-웅!

바위의 턱에 걸린 모양이었다.

한순간 곽대출의 몸이 붕 떠올랐고, 아래로 쑥 펼쳐진 염병할 절벽이 그대로 보였다.

저걸 이대로 떨어지면 뒈진다!

‘니미! 뒈진다고! 이…!’

터억!

그 순간이었다.

여태 멱살을 잡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성창욱이 홱 곽대출을 당겼다.

뻐억!

그리고 그 직후에 곽대출은 등을 돌에 찍혔다.

콰작! 콰작! 콰자자자작!

숨이…. 숨이 안 쉬어…!

털써-억!

바닥에 던져진 개구리처럼 제대로 널브러진 곽대출은 붉게 물든 하늘과 바위산의 봉우리를 본 듯싶었다.

‘이 개새끼! 일어나면 너는 진짜…!’

곽대출이 기억하는 건 거기까지였다.

**

그리고 오늘 밤, 느닷없이 마지막 훈련을 마친 뒤에 곽대출이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기억하는 놈이 나타나서 대출을 갚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미칠 일은 따로 있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부러진 건 둘 외에 아무도 모른다.

굴러 떨어져서 그렇게 된 줄 알기 때문이었다.

“커피라도 한잔 주지? 아직도 거지 같이 물 많이 붓냐?”

부잣집 아들 같은 얼굴을 한 놈이 그 사실을 들추며 커피를 요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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