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001. 프롤로그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평택 공장으로 가자.”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뒷좌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천중명의 눈빛이 이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하여간 우리나라는 휘발유를 리터당 한 2만 원쯤 하고 디젤이랑 가스비도 거기에 맞춰서 올려야 돼. 그래야 없는 놈들이 분수에 맞게 버스나 전철을 타지. 그것도 감사하면서.”
천중명의 저런 개소리,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 상관없었다.
그런데 룸미러로 언뜻 본 그의 섬뜩한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이놈 저놈 다 차를 끌고 다니니까 정작 중요한 일을 할 사람이 길에 시간을 뺏겨요. 이 귀한 시간을.”
창밖을 향해 멍멍대던 천중명이 또 룸미러를 향해 눈알을 굴렸다.
성창욱이 못 본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직원쯤은 사람 취급 않는 터라 더 그런 걸 거고, 그런 눈빛을 눈치챘다고 해도 어쩔 거냐는 식의 고약한 심성 탓도 있을 거다.
“갓뎀잇, 트래픽 잼!”
미국에서 놈팡이로 3년 유학원 다닌 주제에 되지도 않는 영어는 또 늘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래서인지 천중명은 늘 성창욱의 학력에 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을 좀 봐. 돈 있는 사람은 라스베이거스에서 호화롭게 살고, 없는 새끼들은 슬럼가에서 사는 거. 자본주의가 원래 그런 거지. 그래야 하는데 세상이 이상하게 뒤집혀서 위아래가 없어졌어. 지금 우리나라는.”
그러면서 천중명은 또다시 핸들을 잡은 성창욱의 뒤통수에 이해하기 어려운 섬뜩한 눈빛을 던졌다.
염병할 돈.
성창욱은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에 다녔다.
그런데 역시 돈이 문제였다.
학비야 생활 장학금으로 어찌어찌 해결했다.
그러나 생활비와 병원비 때문에 아르바이트에 더 매달려야 했고, 결국은 군대를 6년 다녀오고서야 졸업할 수 있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아주는 해군 특작부대다.
2년의 의무복무에 연장신청을 해서 4년을 더 복무했고, 그 덕분에 어머니 병원비를 해결했으며 빚 없이 대학을 마쳤다.
성적이 뛰어나지 못해서, 스펙을 쌓아둔 것이 없어서, 가족관계 지랄이라서 대기업을 노리기는 어려웠다.
“너 같은 눈썰미와 배포라면 차라리 다르게 출발해라. 배워. 인맥도 만들고. 어설프게 중견기업 들어가는 것보다 백번 나은 결정이다.”
졸업을 앞둔 성창욱을 부른 교수는 재계 서열 5위의 지경그룹 3세 천중명의 비서 자리를 추천해 주었다.
“특수부사관으로 6년? 군대가 맞았나 봐? 하여간 취향들 희한해.”
교수의 조언에 따라 면접을 보았고, 그 다음 날부터 개인비서 역할을 맡았다.
“내가 소개한 자리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1년은 채워다오. 그래야 후배들을 보낼 수 있어. 그건 약속할 수 있지?”
고행하는 심정으로 1년을 견디는 동안, 성창욱은 개인비서라기보다는 그냥 개처럼 일했다.
“너는 뭐 그렇게 뻣뻣해? 어? 적어도 돈을 주는 주인을 모실 때면 간이고 쓸개고 빼놓는 기본은 좀 지켜! 알았어? 이 모자란 새끼야!”
하는 짓 더럽기로 그 바닥에서조차 유명한 천중명 덕분에 오만가지 추잡한 꼴도 빼놓지 않고 보았다.
1년이 지났다. 그 지옥 같은 1년이.
이천의 냉동창고에 다녀온 다음이었다.
“그만두겠습니다.”
“오냐, 오냐 해줬더니 이 새끼도 손을 무네?”
성창욱이 그만두겠다고 할 때 천중명이 숨도 안 쉰 채 보여준 반응이었다.
“알았고. 딱 일주일만 있어. 다른 사람 구할 때까지. 왜 그것도 안 돼?”
“알겠습니다.”
추천해 준 교수의 얼굴을 봐서 1년을 견뎠는데 고작 일주일 정도야 못 견딜 것도 없었다.
“그런데 왜 그만두겠다는 거냐? 누가 더 준대? 어? 너같이 뻣뻣한 놈을?”
군에서 복무할 때보다 지난 1년이 더 힘겨웠단 말을 뭐 하러 하겠나.
그곳의 고통스러운 세월이 없었다면 이 개 같은 비서직 벌써 때려치웠을 테고, 그전에 주먹을 날렸을 거란 말도 꾹 삼켰다.
그런 일이 있고 천중명은 이틀 만에 성창욱을 불렀다.
그리고는 대뜸 평택의 화장품 공장으로 가자고 요구했고, 지금은 공장 앞에 있었다.
커브를 돌아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경비가 뛰어나왔다.
“저 새끼는 매번 하는 일 없이 돈만 가져가요. 사람이 사는 게 어려우면 더 열심히, 더 많은 노력을 해야지. 너도 이 새끼야. 지금처럼 그렇게 고개 숙일 줄 모르면 늙어서 딱 저렇게 되는 거야.”
천중명이 공장의 경비를 보며 거친 말을 뱉었다.
찰칵.
그리고는 문을 열어주는 경비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로 생산시설을 향해 걸었다.
오늘은 진짜 이상한 날이었다.
분명 월요일이다.
그런데도 공장은 한가했다.
성창욱은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바쁘게 움직여야 할 지게차가 구석에 늘어져 있었고, 지친 기색으로 오가야 할 직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야, 이 새끼야! 그만둔다고 문도 안 여냐?”
드르륵.
심지어 지경그룹의 후계자 셋 중 막내인 천중명이 본인 손으로 생산 공장의 문을 열고 있었다.
“빨리 안 와?”
성창욱은 우선 천중명을 따라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축구경기장의 절반 크기의 공장에도 직원은 없었다.
“가서 불 좀 켜.”
천중명은 태연했다.
마치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던 듯 말이다.
우선 공장 안에 불을 켜고 판단한다.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 다섯 개의 커다란 전기 스위치를 향해 걷는 동안, 당장 눈에 띄는 수상한 점은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감이 이상하게 안 좋을 때가 있잖나.
어딘가 이상해서 성창욱은 공장 입구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빼꼼히 열린 공장문 틈으로 뛰어든 햇볕이 천중명을 거슬러 성창욱의 앞으로 겨우 닿아 있었다.
“뭐해? 불 안 켜고?”
햇살을 등져 시커멓게 보이는 천중명의 머리쯤에서 섬뜩한 눈빛이 번득였다.
저런 눈빛을 본 적 있었다.
사람을 죽이겠다고 다짐한 인간들이 보이는 눈빛 말이다.
“불을 켜라고.”
천중명의 거듭된 명령에도 성창욱은 움직이지 않았다.
뭘 믿고 저러지?
단둘이었다.
숫자만이 아니었다.
천중명이 부리는 깡패 새끼들 열댓 놈쯤 나타나 봐야 성창욱을 어쩌지는 못한다.
지난 1년을 얌전히 참아줬더니 사람이 그냥 바보나 멍청이로 보이는 건가?
“불 켜라는데 지랄도 참.”
주변을 빠르게 살핀 성창욱은 조용하게 숨을 골랐다.
그만둔 직원 중 좋게 끝난 이가 없다는 소문은 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해코지한다는 말을 들었고, 그럴 때면 깡패들을 동원한다는 귀띔도 받았다.
그때였다.
좁은 문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막으며 덩치들이 공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불 좀 켜라는 게 그렇게 무서워?”
사람마다 인내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이 있고, 그 상황이 다 다를 텐데 성창욱의 경우는 위협을 당할 때 그랬다.
특작부대의 특수부사관으로 생활하며 그 성향이 더 강해진 것도 있을 거다.
오냐.
해코지를 하겠다면 꼭 그만큼 돌려주마.
피식 웃은 성창욱은 스위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잡았다.
찌이이이이-.
그런데 그 순간에 온몸의 신경을 생으로 태우는 듯한 충격과 고통이 삽시간에 성창욱을 덮쳤다.
“끄으….”
스위치에 달라붙은 것처럼 손이 떨어지질 않았다.
찌이잉! 찌이이이이잉!
눈썹과 솜털이 타는 듯한 노린내가 코를 파고들었으며, 눈앞에서 불꽃이 탁탁 튀었다가 사라지곤 했다.
“개새끼가…. 어디서 잔머리를 굴려? 어?”
“끄으으으!”
성창욱은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저 새끼, 저거! 야, 뭐해? 얼른 치워! 저 새끼 특수부대 출신이라니까!”
“전기에 지져지는 거라 몸이 비틀리는 겁니다. 불 위에 올려진 오징어처럼요.”
“끄아아…!”
“어후, 무서워! 어후, 개새끼가 진짜 무섭게 지랄이네.”
다 들렸다.
온몸을 태우는 그 번쩍거리는 고통 속에서도 천중명과 깡패 새끼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고스란히 귀에 박혔다.
“끄으으….”
공평하길 바란 적 없다.
그저 노력한 만큼 살겠다고 애썼을 뿐이다.
아버지 없는 게, 병원에 있는 어머니 때문에 중소기업의 급여로 살아갈 수 없는 게 이렇게 죽어야 할 죄는 아니잖아.
“끄아아….”
특작부대에서의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느린 그림처럼 성창욱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까지 살아보려고 노력했다고!
없는 집에 태어났더라도 노력한 만큼 여유 가지고 살아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끄으으….”
너희가 그렇게 벌레 취급하는 가난한 어머니 웃는 거 보고 싶어서 그 끔찍했던 군대도 6년을 견뎠고, 지난 1년을 개처럼 살았던 거라고!
“끄아아아아아아!”
어머니를 떠올린 성창욱은 죽을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손을 떼어냈다.
타닥! 타닥! 타다다다닥!
손을 떼어낸 성창욱의 주위에서 불똥이 탁탁 튀었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려 성창욱은 악착같이 버텼다.
“저, 저, 저 새끼! 보라고! 저런다니까! 저럴 것 같았다니까!”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상태에서도 성창욱은 고함을 지르는 천중명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얼른 대가리를 부숴!”
천중명의 고함에 덩치 하나가 기다란 쇠파이프를 들고 다가왔다.
“에이, 노린내! 그냥 뒈지지, 까맣게 타서 뭐하겠다고 그렇게 버티냐?”
욕을 뱉어낸 덩치가 곡괭이질을 하듯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휘익!
성창욱은 날아드는 쇠파이프를 겨드랑이에 잡으려 시커멓게 타버린 왼팔을 들었다.
그러나 이미 타버린 왼팔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퍼억! 콰작! 찌지지직! 찌익!
“끄아아아아!”
대신 성창욱의 팔을 때리고 지나간 쇠파이프가 스위치를 때린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쇠파이프를 휘둘렀던 덩치가 미친 듯이 몸을 떨어대는 것이 그랬다.
오냐, 이렇게 된 거, 지옥이든, 저승이든 함께 가자!
그런 덩치의 옆에서 성창욱은 기울어지는 몸을 억지로 세웠다.
“죽여! 죽이라니까! 죽이라고!”
우르르.
천중명의 주변에 있던 놈들이 모조리 달려들었다.
휘익! 퍼억!
성창욱은 머리를 맞았다.
휘이익! 퍼억! 휘익! 퍼억!
이번엔 어깨와 배를 맞았다.
그냥 죽을 것 같지?
해군 특작부대 특수부사관이?
휘익! 퍼억!
또다시 쇠파이프가 배를 파고들었을 때였다.
이걸 기다렸었다!
휘익! 꽈악!
성창욱은 허리를 숙여 쇠파이프를 안았고, 이어서 전기에 감전돼 아직도 부들거리는 덩치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찌이이이이이-.
“끄아아아-!”
비명은 쇠파이프를 갈긴 덩치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찌지지지직!
또다시 몸을 태우는 끔찍한 고통을 이겨가며 성창욱은 옆에 있던 다른 놈의 목을 당겼다.
“끄아-!”
목을 잡힌 놈이 먼저 비명을 질러댔고,
“끄윽!”
놈을 떼어내려던 다른 놈마저 전기에 감전돼 몸을 비비 꼬았다.
와락!
성창욱은 그놈들 틈으로 몸을 던졌다.
털썩!
그리고는 그렇게 던진 몸으로 물러서는 천중명의 발목을 끌어안았다.
“으아! 놔! 놔! 놓으라고!”
휘익! 퍽! 휘이익! 퍼억! 휘익! 퍼억!
쇠파이프가 어디를 때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떨어져 내렸다.
몸뚱이가 타서 그런지 통증도 모르겠고, 머리를 맞았는데도 당장 피는 쏟아지지 않았다.
이 개새끼야, 최소한 지옥에는 같이 가야지.
거기는 적어도 돈이 있고 없는 거에 따라 차별은 없을 거 아냐?
거기에서 다시 붙자. 응?
내가 아예 찢어서 죽여줄게!
“우어어! 우어!”
악에 받친 고함을 질렀는데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왔다.
목 안이 타서 그런 모양이었다.
“으아아! 구해줘! 얼른!”
성창욱은 비명을 지르는 천중명의 발목을 악귀처럼 당겼다.
푹! 푸욱!
‘끄으….’
허벅지와 허리 뒤에 칼이 박혀도 끌어당겼다.
같이 죽는 거야, 이 개새끼야!
“우어어! 우어!”
푸욱! 푸욱!
옆구리로 또다시 칼이 박히는 순간에,
꽈악.
성창욱은 전기에 감전돼 부들거리는 깡패 놈의 몸뚱이를 발로 힘껏 감았다.
지직! 찌이이이잉!
“끄아아아아아아아-!”
천중명의 비명이 귀를 파고들 때였다.
성창욱의 눈앞이 까맣게 물들었다.
털썩.
마침내 성창욱의 고개가 차가운 공장 바닥에 떨어졌다.
몸이 떨려서 그런지 흐릿한 세상이 잘게 흔들리며 병원에 있는 모친의 모습이 보였다.
환각이라도 마지막 순간에 모친을 보아서 좋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정말 악착같이 살았을 뿐인데?
다 타버렸는지 눈물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거기까지였다.
성창욱의 고개가 바닥에 널브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