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 유리야 한 마리 -->
혹시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유리야를 보쌈이라도 해가는 게 아닌지.
택시에 타자마자 바로 핸드폰으로 모바일 방송을 켰다.
"인질을 잡고 있다. 인질을 살리고 싶으면 지금 당장 내 방에 별풍선 천 개를……."
-미친 새끼ㅋㅋㅋㅋ
-하다하다 납치까지……
-그래봤자 아무도 안 쏘죠?
역시나 아무도 쏘지 않았다.
내 방송에서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다.
하지만 유리야는 내심 충격을 받았나 보다.
"니가 쏠래? 난 그래도 괜찮은데."
"저 말 안 할 거에요. 선배랑 말하기 싫어요!"
입이 대빨 나와서 부들부들 떨어댄다.
일단 유리야는 자체적으로 침묵했다.
고민이 많던 상황에서 다행인 일이다.
'나도 오해가 생기는 대상은 엄선하고 싶어.'
스캔들이 나더라도 클라스 있는 분들과 나고 싶다.
아, 아닙니다 저 따위가 어떻게 XX님과…….
그런데 악성팬들이 오해하고, 해명하라고 막 하고~.
제가 XX님과 만나 뵙고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그분은 나에 대한 악소문을 듣고 오해를 하고 있었어.
직접 만나 보니까 소문과는 다른 사람인 걸 알게 되는 거지.
안녕하세요. 사랑을 위해 사는 남자 레전설입니다.
그렇게 오해에서 시작된 새로운 인연.
꽃봉오리가 점점 커져서 결혼이라는 클라이맥스를…….
"2만 5천 700원입니다. 계산 뭘로 해요?"
"……"
껄렁껄렁한 기사 아저씨 때문에 상상의 나래가 깨져버렸다.
그러고 보면 결혼은 너무 서두른 감이 있다.
인연, 그리고 역경.
점점 가까워지다가 진짜 스캔들이 터지고 서로 어떻게 할 건지 의논하면서 결국은 다 밝히자, 그래 우리도 세간의 시선에 얽매…….
"여기 어디에요! 저 진짜 납치되는 거 아니죠…? 저, 저…… 선배한테 별로 짜증 안 냈는데요."
그래, 현실은 유리야다.
잔뜩 쫄은 햄스터가 구슬프게 지저귄다.
내가 너에게 보쌈을 사줄 일도, 할 일도 없으니 걱정 뚝 붙들어 매도 된다.
"따라오기나 하세요 유리야 어린이."
"씨이……, 저 어린이 아니에요!
맞아 어린이는 아니다.
어린이보다 더 어린이 같을 뿐이지.
차라리 어린이면 장래의 가능성이라도 있을 텐데.
'초등학교 시절 디지몬 다마고치에서 완전체로 콩알몬 나왔을 때의 절망감이 생각나는구나.'
친구들이랑 디지몬 배틀 떠서 승률이 높아야 좋은 걸로 진화한다.
먹이 같은 것도 잘 줘야 되고 키우는 과정이 워낙 어렵다.
그렇게 키웠는데 완전체 진화로 콩알몬 나오면 힘이 쭉 빠진다.
종이 쪼그맣게 잘라 가지고 바로 리셋시킨다.
또 키워도 콩알몬 나오면 그때부터는 애정이 생긴다.
나중에 병 들어서 죽는 것까지 함께 한 나의 첫 반려몬이다.
두 번째 반려몬은 바로 이 유리야다.
"누구 집이에요? 저 이런 곳 와본 적 없어요."
"너도 아는 사람이야."
"누구요?"
"산타 할아버지."
"진짜요?! 계셨던 거에요?"
계시겠니?
아무리 유리야라도 그 나이에 산타 할아버지를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심 마음속 한 구석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있긴 있었나 보다.
"산타 할아버지는 저 멀리 핀란드에 계셔."
"아니에요! 저 진짜 안 믿어요!"
"진짠데? 핀란드에 산타 마을 있어."
"흥! 저 그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거든요오~?"
특유의 때려주고 싶은 표정으로 우쭐해 한다.
그런 질문을 받는 것 자체가 애 같은 건데.
그리고 핀란드 산타 마을은 진짜로 있다.
'애초에 산타클로스는 상징적인 존재야.'
가난한 아이들에게 곡물을 나눠주던 성 니콜라우스의 선행에서 비롯됐다.
누가 나눠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크리스마스의 선물 자체가 산타클로스라고 보면 된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산타클로스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너의 산타클로스가 되기 싫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핵펀치 꿀밤 뿐이다.
"히잉……."
다시 입이 살아난 유리야를 다물게 만든다.
아무튼 이 집은 유리야도 아는 사람의 집이다.
딩동! 초인장을 누르자 참고 있던 긴장감이 밀려든다.
"유리야 벌떡 일어나서 내 앞에 서."
"싫어요……. 저 뭔가 희생 당한 것 같아요."
후후, 입으로는 싫다고 말하는 주제에 몸은 솔직한 걸?
내 말을 따르도록 조교를 시킨 유리야다.
잊고 있는 설정이지만 하루에 세 번 내 말을 무조건 따르게 하는 Lv.10 특전도 받았었다.
'그리고 보니 그걸 쓸 일이 없네.'
어차피 인간 상성이기 때문에 거부권은 없다.
유리야를 방패 마냥 앞에 세운다.
천연 100% 무해한 리야의 얼굴을 보면 경계심이 다소 사그라들 거라고 생각한다.
"Hi……?"
혹시 문을 안 열어주는 건 아니겠지.
걱정했지만 그런 일까지는 없었다.
현관문이 열리며 낯익은 얼굴이 들어온다.
* * *
하비와 연락을 주고 받지 않은 건 아니다.
아, 바쁜 일이 있어서 미국 갔구나…….
그럴 수도 있지 정리되면 말 좀 해줘^^
연락을 안 하길래 내가 먼저 물어봤다.
너무 경황이 없어서 까먹었다며 미안해 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세상 일을 어찌 다 신경 쓰면서 살겠는가?
얼마나 급했으면 미국까지 갔겠어.
이런 건 이해를 해주는 게 옳다.
그 이후로도 연락을 쭉 주고 받았다.
요즘 뭐하고 지내?
나는 하비 생각하고 있어^^
대화가 전체적으로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잠깐 연락이 끊겼을 때도 있긴 했지만…….'
밀당이라고 생각한다.
나 레전설,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이다.
답장이 늦더라도 코리안 타임으로 기다려준다.
인내심을 가지고 소통을 한 결과.
경기에서 있었던 다소의 말실수는 만회했다.
하비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서 유쾌함을 찾아갔다.
"오늘 하비, 유리야, 그리고 제가~ 합방을 하기로 했어요! 시청자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개어색해ㅋㅋㅋㅋㅋㅋ
-본인이 제일 어색한데?ㅋㅋㅋ
-레전설 이 새끼 일부러 이러나
일부러 이러겠냐!
어느 정도 풀렸다고 생각했던 관계.
현실에서 만나자마자 급어색해졌다.
하비의 얼굴을 2주 만에 보는 셈이다.
그래도 그건 어떻게든 풀 자신이 있었다.
그러려고 유리야를 납치해온 것이기도 하다.
'마스코트 캐릭터로도 풀 수 없는 공기라니…….'
뭔가 떨떠름한 눈치다.
유쾌하게 나가기 힘들 정도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묻고, 혹시…… 방송할 수 있냐고 물어보고 합방을 켰다.
아마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걸 거다.
친구 사이에도 종종 그럴 때가 있다.
같이 놀고, 얘기하고, 술 먹다 보면 풀린다.
더군다나 고향에 다녀오지 않았는가?
한국 사람 만나기 서먹하게 느껴질 만도 하다.
게임을 한두 판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와~~ 하비 오랜만에 하는데 잘하네. 혹시 미국에서도 연습했던 거야?"
"uh……, Sorry. So 바빴다. 연습 못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이렇게 잘하면 금방 감 찾고도 남겠다~"
-애쓴다 애써
-어색하죠? 어색함이 사그라들지 않죠?
-진짜 마음에 한이 된 것 같은데……
-화 안 내는 애들이 한 번 화내면 무서움
시청자들이 무서운 소리를 해댄다.
그러다 말이 씨가 되면 어떡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럴 때일수록 스마일, 웃어야 한다.
그런데 중간중간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잘못 들었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썽훈…?"
"어, 하비. 왜? 하고 싶은 말 있어?"
하비가 나에게 할 말이 있는 눈치다.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한 듯하다.
분위기가 엄숙한 건 기분 탓이겠지.
"um……, 할 말 있다. 들어줬으면 한다."
"그래? 그럼 유리야 게임 시키고 우리끼리 토크할까 Talk."
"No, No. Only 썽훈."
나와 단 둘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라고?
나 레전설,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이다.
고지식한 사고 방식에 갇히고 말았다.
'또 한 명의 여자를 울려버리고 말았나?'
유리야와 같이 온 게 실수였던 모양이다.
하비가 질투하고 있었나 보다.
둘이서만 분위기를 잡고 싶다고.
자신도 마음을 표현할 시간을 주라고.
갑자기 방송에서 고백이라도 하면 어떡하지.
고백까지는 받아줄 수 있지만 결혼은 힘들다.
나도 나 자신의 인생을 아직 즐길 때다.
살짝 설레도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청자도 안돼?"
"Some…… serious."
"그, 그래? 그 정도로 심각한 일이야?"
-끝 났 다
-이렇게 돌려 말해도 모르죠?
-레전설 진짜 눈치 없다;;
-그냥 지금이라도 빨리 바닥 핥아라
아니, 바닥을 왜 핥아!
발가락이라면 핥을 용의가 있다.
성적 페티쉬 그런 게 아니라 우러나는 사과다.
물론 하비 성격에 그런 일까지 시키진 않을 것이다.
"급한 일이야? 그러면 지금 바로 방송 끄고 대화할까?"
-아니, 방송을 끄고 한다고?
-이런 건 생중계 해야 꿀잼이지ㅡㅡ
-방송 끄는 건 방송감 너무 없는데;;
파프리카 시청자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BJ 좆되는 거다.
남 안되는 꼬라지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어느 정도 눈치는 깠다.
'고백 같은 분위기는 아니야.'
혼수 준비하자는 분위기도 아니고.
진짜 진지한 이야기가 있나 보다.
물론 시청자들이 그토록 원하는 나 좆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 거면 애초에 방송을 키기 전에 말을 했겠지.'
나한테 무언가 미안해 하는 눈치다.
생각하는 최악은 그거다.
준결승전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
또 미국에 갈 일이 생긴 거라면 말 꺼내기 힘들 만도 하다.
대체 어떠한 사정인지 본인의 입으로 들어봐야 알 듯하다.
방종을 한 이후 말하기로 했으니 궁금증은 잠시 접어둔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유리야몬 키우는데 박차를 가한다.
'레벨업도 쉬운 일이 아니고 할 일이 정말 태산이네.'
대부분의 RPG게임이 그러하지만 초반에는 레벨업이 빠르다.
그러다 후반 갈수록, 전직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급느려진다.
현재 유리야의 상태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Lv.15부터는 단순히 갈구는 것만으로는 잘 안되더라?
SKY T1 K를 이겼을 때 Lv.16이 되었다.
치킨과 파를 먹여 Lv.17을 만들었다.
그토록 안 오르던 레벨.
"내가 하비 생각하면서 사온 케이크야."
"Really? So cute!"
"그치? 한입 먹여주고 싶다면 실례일까?"
"He He. No Problem."
당연하게도 유리야 한 마리 달랑 데리고 올 리가 없다.
분위기 타파를 위해 물질적인 준비도 해왔다.
오는 길에 케이크 가게가 눈에 띄더라?
고르는 건 전적으로 유리야에게 맡겼다.
얘만큼 먹을 거 좋아하는 애가 주위에 없다.
방금 하비가 고른 건 리야가 자신의 몫으로 고른 케이크.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하비에게 먹여준다.
『유리야 Lv.18』
부들부들, 부들부들!
하비와 노닥거리던 와중 유리야의 레벨이 올랐다.
케이크를 뺏어 먹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 참된 교육이 빛을 발한 건지.
무럭무럭 성장해가는 리야를 보면 나도 임용 시험을 봐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텐데.
"앙~."
"um~~! Yummy! 한쿡 케이크 좋다. 미쿸 케이크 Too Sweet."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다음에는 진짜 한국식 케이크도 먹어볼래?"
미국을 갔다와서 그런지 영어 사용이 잦아졌다.
한국어 사용이 익숙해지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But 그 정도의 이해심 있는 남자다.
'피부도 좀 타서 왔고 많은 일이 있었나 보네.'
어제 방송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피부톤이 달라졌다.
이래서 사람은 직접 만나봐야 알 수 있는 법이다.
하비에 대해 다시 한 번 알아갈 시간이다.
"하비, 미국에서 혹시 힘든 일 있었어?"
"So So? But 즐거웠다. 재밌었다. 좋은 일 있었다."
"그래? 그렇게 즐거웠으면 나도 언제 하비의 나라를 가봐야겠다."
-이 새끼 자연스럽게 달달각 잡네……
-이게 역전이 가능한 게임이었다고?
-하비야 마음 독하게 먹어 쓰뤠기! Amazing 쓰뤠기!
원래 서먹함도, 서운함도 이야기하다 보면 풀린다.
그 정도의 소통 능력, 그리고 매력이 있는 남자다.
동시에 유리야의 트레이닝도 잊지 않고 있다.
흐뭇할 정도로 무럭무럭 자라난다.
『유리야 Lv.19』
다소의 부작용이 있기는 하다.
부들부들, 부들부들!
어찌 된 영문인지 얘가 갈수록 진동이 패시브다.
'그런 진동 자꾸 하면 남들이 오해할 수도 있는데…….'
순진무구한 유리야는 모를 만한 도구가 있다.
아무튼 포켓몬들의 레벨업에는 문제가 없다.
상상치도 못한 곳에서 곪은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소설 초기에 말씀드렸다시피 주인공은 딱히 연애를 하는 게 아니에요
피치 못하게 주위에 여자가 꼬였을 뿐입니다
주인공이 그 여자를 생각하고 서로 밀당하고 그러는 게 연애잖아요?
썸 한 번 타는 걸 연애라고 보는 건 비약이 있죠
히로인 때문에 고생도 하고 말다툼하고 그런 파트도 있는데 주된 내용은 결국 게임이에요
유리야랑 토닥대는 이유도 게임 때문이고
달래랑 엮인 것도 전부 이유는 게임이에요
연애 요소가 있을 수는 있지만 결국 주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