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76화 (476/500)

제1 장

생(生)라면 먹을래? (1)

사카모토와 고로의 두뇌는 맹렬히 회 전했다.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두르진 않았다. 일본 사람 특유의 신중함이라 고 해야 하나. 수많은 상념이 뇌리를 스 치고 지나간다. 간혹 상상이 지나쳐서 망상이나 날조되기도 한다.

‘젠장, 도대체 무슨 꿍꿍이냐?’

‘어째서 저놈이 여기에 있어?’

급박하게 변하는 정세로 원래의 일정 보다 서두르기는 했어도 준비는 완벽했 다. 네즈미가의 반격은 막아 낼 전력을 갖추었다. 12지신가라고 하여 같다고 보면 오산이다. 네즈미가의 주력은 금 력에 있었다. 무력은 높게 평가하지 않 았다.

그렇다 해도 작금의 현실은 이해하기 힘들다.

가문의 중추를 비워 놓고 주인이 사

라져 버린다면 전쟁은 패배나 다름이 없다. 일본의 역사를 봐도 수장이 도망 가는 경우는 혼하지 않았다. 자기 살겠 다고 궁과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조선 의 선조나 인조가 아니고서야.

‘함정이 분명하다.’

‘어디에 숨겨 논 것이냐?’

함정이 아니고선 납득이 안 된다. 미 친놈도, 이토록 무모한 행동은 기피한 다. 홀로 두 가문의 주 전력을 감당하려 고 하다니, 용신가의 가주도 하지 않을 미친 짓이다. 그러나 저 자신만만한 표 정은 불안을 부추긴다.

“누가 쪽빠리 아니랄까 봐, 의심은 많 아 가지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군.”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마시지, 대갈 빡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니까.”

“조센징 주제에 입만 살았구나.”

“쪽빠리 주제에 입도 죽었냐.”

하는 말마다 싸가지가 없었다. 유치함 의 극치임에도 사카모토와 고로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저놈이 대체 뭘 믿고 저리 호기를 부리는지 의구심이 증폭되 었다.

미친놈처럼 보여도 저놈은 흑금단주

다. 금강문의 주력인 흑금단을 통솔하 며, 금강문주를 대통령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허술함만으로 혹금 단주를 평가해선 안 되었다. 그렇다 해 도 도가 지나치다.

“수작 부려 봤자 소용없다. 네놈과의 말싸움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

“하긴 내가 봐도 말이 많았어. 별것도 아닌 잡것들이 놀아 주면 꼭 주제를 모 르고 기어오르거든. 자, 와 봐.”

이쯤 되면 성인군자도 화가 나서 초 서유기 모드가 될 거다. 특히 쪽바리들 이 잘하는 7단 빨주노초파남보 변신은 예삿일도 아니겠지. 색깔을 섞어 가며 병맛 변신도 아주 잘한다고 들었다.

빠득!

사카모토와 고로의 눈빛에 살기가 감 돌았다.

오늘과 같은 모욕은 평생에 처음이었 다. 그것도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조센 징 따위가 12지신가의 가주를 모독하고 있었다.

“홍검대는 놈을 사로잡아라.”

“존명.”

사카모토와 고로는 흑금단주를 죽이 는 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반드시 사로 잡아야 한다. 죽여 달라고 애걸복걸하 는 모습을 봐야 분이 풀린다. 지금 당장 혀를 깨물고 죽지 않은 선택을 후회하 게 될 것이다.

휘잉!

명을 받은 홍검대 10명이 발검을 하 듯 튀어나갔다. 총알보다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날렵한 움직임, 본신의 실력 이 상당하다는 걸 보여 주었다.

사카모토는 부대원의 신속함에 고개 를 끄덕였다. 이만하면 어디다 내놔도 꿀리지 않을 것이다.

“멍청한 놈, 어디다 휘두르는?…?”

홍원대원 10명이 포위진형을 이루기 전, 흑금단주가 주먹을 내질렀다. 허공 을 향한 주먹질, 뻘짓이라고 평가해야 마땅한 궤적이다. 방향은커녕 타이밍이 맞지도 않았기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한데.

푸삭!

주먹질 한 번에 10명이 순삭되었다. 휘이잉!

홍검대원이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 린다. 핏방울조차 남기지 못한 채 거짓 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눈앞에서 펼쳐 진 돌연한 광경에 다들 넋을 잃었다. 현 실이 망상과학영화보다 더 비현실적으 로 다가왔다.

까딱!

정우의 전매특허, 검지 연속 후리기가 발동했다.

“다음.”

엑스트라에게 시간을 할애할 만큼 정 우는 한가하지 않았다. 본인이 나서도 될까 말까 한데, 건방지게 조무래기를 보낸 대가를 치러 주었다.

상식적으로 보면 당연한 이치다. 침입 을 알고 있는데도 혼자 있으면, 회심의 수가 있을 거란 판단을 해야지. 병신도 자기 생명이 위급한 상황은 안다고 했 다. 자신만만해할 때부터 심각하게 고 민했어야 한다. 초반에 광탈한 홍검대 의 죽음은 저놈들의 탓이다. 하지만 어 쩌랴, 대가리를 잘못 만나면 아랫것들 이 고생하기 마련이다.

“네놈, 무슨짓을 한 것이냐?”

“잘도 나불거리는구먼. 그래서 그 주 둥이로 먹어서 응원하자고 한 거냐.”

빨갱이 못지않게 말 안 통한다, 쪽바 리는.

정우는 두 놈을 향해 걸었다. 본격적

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시시 껄렁한 대화를 원한다면 답은 뻔하다.

앉아서 당하고 싶다면 그리해 줄 수 있다.

이렇게.

꽈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진다.

허공으로 퍼져 나간 먼지가 아름다운 버섯구름을 만들었다. 버섯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겐 안성맞춤의 현장. 파장이 번지며, 사방을 거칠게 흔들어 놓는다. 후폭풍에 휘말리면 답이 나오지 않는 규모다.

먼지가 걷히면서 드러난 광경.

휑하다.

도란도란, 옹기종기.

대열을 맞춰 대기하던 수요들.

홍검대와 청검대는 청실홍실을 표현 하지 못하는 반쪽짜리가 되었다. 움푹 파인 대지, 그 안에 있어야 했던 청검대 의 절반이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살 조각 하나 줍지 못하는 참상을 대변했 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경악.

두 눈이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럼 뭐하나.

잔혹한 현실은 외면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실로 믿어지지 않는 처참한 광 경의 연속이었다. 누가 있어 가문의 주 력을 저토록 간단히 소멸시킬 수 있단 말인가.

“멍하니 있으면 답나오냐.”

그들이 놀라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정 우는 궤적을 만들어 놓았다. 딱 치기 좋 은 위치에 무방비로 서 있었다. 사실 막 아서도 상관은 하지 않았다. 인간은 살 기 위해 노력할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현실은 존재하지 않았다. 비루하고 초 라한 인생의 나날이 지속되다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M 막。}!”

사카모토와 고로가 흑금단주를 찾았 으나, 외침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았다. 주먹은 나아갔고, 완성된 권형을 이루 었다.

휘이이잉!

촘촘히 낱알처럼 모여든 빛의 알갱이 들이 정우의 의지를 머금고 목적을 완 수한다. 자비나 아량은 섞이지 않는다. 그저 목적을 위한 순수한 수단에 불과 했다.

꽈아아앙!

천지를 개벽시키는 굉음을 동반한 격 렬한 파장이 공간을 소멸한다.

이누가의 지혈단 절반이 홍검대와 다 르지 않은 최후를 맞았다. 동료의 허무 한 죽음, 이를 인식할 때까지 시간의 틈 이 생겼다.

그래서일까, 평소와는 대응이 달랐다.

그들은 전투를 위해 길러진 가문 최 강의 무사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 리지 않는다. 가주의 명이 떨어지면 망 설임 없이 기름을 안고 불구덩이로 돌 진했다. 그러나 조금 전과 같은 현실은 그들에게도 낯설었다. 전투라 할 수도 없다. 무사다운 죽음도 아니다. 그저 일 방적인 학살, 장난으로 개미를 짓밟을 때처럼 무의미하다.

“있……을 수 없어!”

“인……정 못해!”

죽음에 초연하다 해도 이건 개죽음에 불과했다. 무사가 되기 위해 거쳐 왔던 고련의 시간이 헛되이 소멸하고 있었 다.

“쯧쯧쯧, 항상 병신들이 꼴값을 한다

니까.”

정우는 명색이 무사라고 자칭하는 놈 들의 행동거지에 혀를 찼다.

초연한 죽음, 영광스러운 죽음, 명예 로운 죽음만을 원했나?

죽음 앞에 그딴 게 무슨 소용이라고. 죽음은 죽음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 다. 죽어 버린 동료가 그런다고 다시 살 아 돌아오지도 않는다. 저들이 지금 해 야 할 일은 살기 위해 발악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최대한 시간이라도 끌 어야 했다. 결심을 굳힌 이상, 죽음을 인정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을 테니 까.

-현천삼도 극살(極殺), 천살멸혼(天殺 滅魂).

-사라져라, 잡혼이여!

어느새 정우의 손에 잡혀 있는 전생 이 의지를 머금었다. 목적을 위한 수단. 현천삼도의 마지막 초식이 발현되었다.

혼을 멸하는 극살의 살도. 9단의 전력 이 검형을 이루어 일대를 장악한다. 그 러자 공간이 정지된다. 시간마저 흐르 지 않고 정우의 권능에 지배되었다.

시공간을 오그라들게 하는 혹염…아 니 현천삼도다.

사카모토와 고로의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하얗게 질려 갔다. 속성과 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거 늘 항거불능이다. 다가서려고 해도 전력을 무참히 튕겨 내 버린다. 실상 의지를 일으킬 여지마 저 주지 않는다.

=三 =디

육신이 저절로 떨려 왔다. 영혼마저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 들었다. 인간 이 붐어내는 영역하고는 거리가 멀었 다.

“?안 돼!”

“……죽는다!”

사카모토와 고로는 핏발을 세우며 저 항했다. 그러나 결과는 변하지 않을 거 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후아아0 앙!

절망이 담긴 바람이 불었다.

사카모토와 고로는 망연히 현실을 바 라보아야 했다. 그들이 데리고 온 주력 부대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살아남 은 자들은 고작 100명에 불과했다. 그 마저도 영역의 밖, 의도하지 않은 공간 에 있었기에 살아남았을 분이다.

空 번쯤 써 보고 싶었거든.”

일보전광을 제외하고 흉포무한과 천

살멸혼은 쓰지를 않았다. 다들 일보전 광에 맥없이 죽어 버리는 바람에 사용 할 여지를 주지 않은 것이다. 기껏 삼초 식을 만들어 놨더니, 일초식만 못한 현 실이 되었다. 무릇 초식은 실전에서 자 주 사용을 해 주어야 한다. 물론 반박할 수도 있다. 절기를 자주 펼치면 약점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나 정도 되면 의미 없지.’

정우의 경지에 이르면 초식을 본다고 해서 따라할 수도 없으며, 약점을 찾아 도 막아 내기 어렵다. 약점이 있을 거란 기대를 해선 안 된다. 고만고만한 놈들 이 약점을 찾겠다고, 두뇌를 혹사해 봤 자답 안 나온다.

현실적으로 정우에게 대다수는 고만 고만했다.

무인을 가르는 기본적인 등급인 삼류, 이류, 일류, 절정, 초절정, 화경, 현경까 지는 다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생사경 부터 조금은 고민해 줄 정도다. 그래 봤 자 작정하면 1초식을 넘지 않겠지만.

“자, 계속해 보실까?”

마무리는 확실하게, 화룡점정은 필수. 과정이 아름다워 봤자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쓰레기일 따름이다.

정우의 의지가 공간을 투영한다.

덜덜덜!

사카모토와 고로는 전의를 상실했는 지 물러서고 말았다.

처음에는 경악, 이후에는 분노, 그 다 음에는 공포가 자리했다. 도저히 어찌 하지 못할 괴물의 영역이었다. 속성이 고 무력이고 소용없는 짓이 되었다. 인 간의 범주로는 저 괴물을 상대하지 못 한다.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허물 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조센징 따위가 어떻게?”

“이토록 말도 안 되는 무력을!”

한국 따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굴 복시킬 수 있다고 여겼다. 미국이 핵을 쓰지만 않았어도 본국의 속국으로 영원 히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비천한 족속 들이 근래에 주제를 모르고 설친다고 여겼다. 그러나 저 괴물은 자신들이 알 고 있었던 비루한 조센징이 아니었던 것이다.

“네놈은 대체 뭐냔 말이다!”

“같잖게 언제까지 짖어 댈 거야.”

본색을 드러낸 정우는 식상한 멘트에 말을 섞는 대신 칼로 답해 주었다.

남아 있는 100명의 혼을 절단 내고

흔적을 지웠다. 삶에 대한 인간의 본능 이 발?휘되었지만, 그들은 정우의 살의 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저 정우가 원하 는 대로 되어 버렸다.

“먼저 가는게 속편할 거다.”

살아서 괴로운 삶을 살기보다는, 과감 히 지워 주었으니 감사의 인사를 올려 야 했다.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한테 잘 말해야 할 거다. 물론 염라대왕이라도 맘에 안 들면 가만둘 생각 전혀 없다.

씨익!

남아 있는 자는 사카모토와 고로분이 다.

자신들을 향해 웃는 괴물은 악마를 방불케 했다. 천에 달하는 인간을 죽였 다곤 볼 수 없는, 권태로움이 영육을 소 름 돋게 만들었다. 저자는 자신들을 인 간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둘 남았네.”

다가온다.

사카모토와 고로는 굳어 있었다. 대적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설령 전력으로 도망친다 한들, 괴물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결말이 기다린다. 저항은 꿈도 못 꾼다. 해 봤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 이다.

그들은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잠깐!”

사카모토와 고로는 납득하지 못했다. 이토록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알려지지 않았을까? 금강문의 일개 단주가 이렇게나 강하다면 금강문 주는 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하물며 저 자는 인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흉포했다.

“……살려 주시오!”

“……항복하겠소!”

두려움에 육신이 굳어 있지만 삶에 대한 의지가 피력되었다. 무사라는 자 부심은 던져 버렸다. 살고 싶다는 욕망 이 죽음을 짓눌렀다. 그러나 개미를 죽 이듯 살육을 휘둘렀던 괴물이 과연 살 려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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