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283화 (283/500)

제 4장 무화(武花) ⑵

‘이 집이구나.’

진영화는 어수룩하지 않았다. 소영이 진실을 말하지 않자 문파로 돌아간 후, 다 음 날부터 몰래 감시를 했다. 소영이 눈치 를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미행을 한 후, 매번 같은 장소를 찾는다는 걸 알아냈다.

‘안타깝지만하는 수없지.’

공력은 정순해지고, 육체의 틀이 잡혀 갔다. 짧은 시간 조카의 성장은 눈부셨다. 그러나 이모로서 마냥 기뻐하지는 못했다. 조카의 무공은 용형권을 벗어나 신룡무에 근접해 있었다. 신룡무의 정수를 완벽하 게 익히지 않았다면 미세한 차이를 알아 보지 못할 정도다.

차라리 스스로 무공을 깨우쳐 새로운 경지에 도달해 나갔다면 인정을 해 줄 순 있다. 하지만 조카에게 무공을 가르친 사 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다. 재능을 알 아보지 못할 만큼, 보는 눈이 없지는 않다.

조카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는 있으 나, 대종사에 비견되지는 않았다. 하물며 무공의 원류를 찾아내려면 연륜이 뒷받침 이 되어야 한다. 이는 누군가의 가르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녀조차도 소영의 나 이 때에는 어림도 없었다.

‘서운하기도 하고.’

이모가 보통 사람도 아니고, 일문의 장 로다.

훌륭하고 위대한 사부가 바로 옆에 있 음에도 자신에게 묻지 않고 외인에게 사 사를 받다니, 달갑지가 않았다 더욱이 가 르침을 청하기 위해서는 체득한 무공을 밝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문파의 진 신무공이 아니라 하더라도, 외인에게 구결 을 알려주는 건 금기다 자칫 문파에서 전 말을 안다면 자신의 조카라 할지라도 문 책올 피하기 어렵다.

온화한 문주지만 이럴 때는 굉장히 깐 깐했다. 그러니 피가 섞인 조카라도 진신 무공을 가르치진 않았겠지.

‘뭔놈의 집이 무문보다더 커.’

진영화는 소영이 집으로 돌아가는 걸 확인하고 난 후, 늦은 밤까지 목표지점에 서 기다렸다 사전에 집 주인에 대한 간략 한 조사를 마쳤다 조사도 하지 않고 무턱 대고 쳐들어갈 만큼 분별없이 살아오진 않았다

그렇다 해도, 집의 규모는 상상을 불허 했다. 시골도 이만한 규모라면 어지간한 자금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하물며 도심에 성에 비견되는 집올 지어 놓았다.

‘하이퍼 팩토리라고 했지.’

집의 주인이 하이퍼 팩토리의 사장이 다

우리나라의 10대 재벌에 속하지는 않 아도, 현재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 었다. 곧, 재계 서열 안에 들만큼 규모가 커질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대한그룹과 협력관계라고 하니, 그럴 만도하지.’

재계 서열 3위 안에 드는 굴지의 대기 업, 대한그룹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 었다. 딱히 이상하진 않았다. 이 집의 아 들과 대한그룹의 금지옥엽이 공식적으로 사귀고 있었다. 재계도 무문과 크게 다르 진 않았다. 협력을 위해 정략결혼을 종종 하곤 했다. 이제 막 커가고 있는 회사와 미 리부터 손을 잡은 건 의외긴 하지만

‘큰 집일수록 단도리가 편하긴 하지.’

진영화는 높게 쳐진 담벼락을 보며 피

식거렸다.

자기들 딴에는 성벽을 쌓아 외부와 차 단을 시켰다고 안심하겠지만, 실상은 외부 와의 고립이었다. 절대경에 올라선 무인이 나 속성 유니크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 지 않는다. 오히려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 올 외부에서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웅 팟!

공력이 하단으로 퍼져 용천혈에 몰렸다 가발출되었다 그녀의 신형이 담벼락을 가뿐하게 넘어 선다 단숨에 내부에 들어왔다 사방에 감 시 카메라가 설치되었지만,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담을 넘기 전부터 공력을 운 용해 흐름을 비틀어 놓았다. 설령 정면으 로 찍혀도 그녀의 실체를 파악할 수는 없 다

‘잘도지어 놨네.’

밖에서 보면 담벼락 밖에 보이지 않지 만, 내부의 전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전 망을 과시했다. 돈으로 처바르지 않고서 는 완성하기 어려운 조경과 구도, 규모였 다. 저택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변의 조경 못지않게 집도 넓고 화려했다.

‘예상대로 4명이 있군.’

기감을 열어 건물을 투영 인기척을 찾 아냈다. 안에서 숨 쉬고 있는 인간의 박동 수가 전해졌다. 절대고수의 탐지 레이더인 기감을 일반인이 벗어나기란 요원하다. 설 령 유니크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스르륵!

그녀의 운신이 놀랍도록 가볍다. 잔디 보호, 정원을 밟지 않고 날듯이 뻗어나간 다. 유려하면서도 빠르고, 신묘하다. 보신 하나만으로 그녀의 경지를 짐작하게 해준 다

“아니?”

진영화는 이 한 번의 도약으로 건물까 지 당도하려고 했다. 한데 거리가 좁혀지 지 않았다. 다람쥐 쳇바퀴를 돌 듯. 주변 을보니 제자리를 유지했다

“이런!”

진영화는 아차 했다. 설마 자신이 간파 하지 못할 만큼 은밀한 진법이 펼쳐져 있 을 줄이야. 방심하고 있었음올 인정했다. 장벽과 곳곳의 감시카메라만 속이면 그만 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다 당황하진 않았다. 시간을좀 더 번 것에 불과했다.

“진법으론 날 막을 순 없을 거다”

그녀도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 다. 진법이나 결계로 무력을 막을 수 있다 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로 인한 파 장이지만, 진법이 펼쳐진 이상 숨긴다고 될 일도 아니다. 최대한 빠르게 진법을 벗 어나는 게 급선무다.

우우웅!

장심에 공력올 모아, 신룡천장(神龍天掌) 올 발출했다.

낱알처럼 퍼진 순백의 공력이 몰려들어 가공할 파괴력으로 현신한다 주변의 공기 가 일순 응축되었다가 폭발하기에 파괴력 은 더더욱 가중된다 이를 한 호흡으로 발 출해 내는 그녀의 경지가놀라웠다. 가볍 게 내지르는 둣 보여도, 결코 가볍지 않았 다 꽈아아아앙!

투박한 파열음이 공간을 거칠게 뒤혼 들어 놓았다. 이어서 그녀의 신형이 총알 처럼 뻗어나간다. 붕괴된 결계를 뚫고 나 가려고 했다.

-스페이스 익스플로젼.

진영화의 정면이 폭발하며 육체를 밀어 냈다 재빨리 호신강기를 형성해 막아내었 지만, 충격이 있었다.

“어?”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홀드, 6중첩.

-기가 그래비티.

연계된 반격에 진영화는 숨이 턱 막히 는 무게감을 체감해야 했다. 거대한 쇳덩 어리가 사방에서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압력이었다. 물러서는 것까지 계산되어 육 신올잡아채고, 짓눌렀다.

설상가상으로, 연계된 마법은 리허설에 가까웠다

본 마법은 지금부터다

-아공간오픈.

-스피드 가속.

-플레임 버스터.

숨을 돌리기도 전 펼쳐진 마법의 연계 였다. 속도가 거의 기가 인터넷 급이었다.

진영화의 육신을 묶고 펼쳐낸 마법은 기상 천외하기까지 했다. 왜냐고? 저 마법의 연 계를 통해 9레벨의 메테오에 비견되는 마 법을 창출해 낸 것이다 마법사의 냉철한 목소리가 공간올 울린 다

“죽어라 도둑년.”

아공간에 저장된 직경 20미터의 철 덩 어리를 짧은 거리에서 가속시킨 후, 화염 마법으로 덮었다. 3개의 마법이 연계되자 메테오마법을 시전한 효과를 거두었다 푸아아아아앙!

귀를 찢어발기는 수준을 넘어서는 가

공할 폭발음이 공간을 흔들어 놓는다. 영 혼마저 굉음에 산산이 부서질 듯 괴열한 파장을 완성했다.

“나브지 않군.”

공간을 부셔낸 후. 들린 사내의 목소리 는 흡족함을 담고 있었다.

“도둑에겐과했을지 몰라도.”

사실 과하다는 표현조차도 부족하다. 어떤 미친놈이 도둑 하나 잡겠다고 8레벨 의 결계와 메테오에 비견되는 마법을 펼치 겠는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범위는 초 월했다. 또한 하나도 아니고 5개의 마법을 단번에 펼쳐냈다 제아무리 대마법사의 반 열에 올라섰다 해도 5개의 마법을 연달아 텀 없이 펼치기란 수월치 않은 영역이다.

‘마법결계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 으니, 편하군’

정우는 마법결계의 효용성을 점검하면 서 흡족했다. 8레벨의 마법임에도 9레벨 의 마법 시전이 가능해졌다. 물론 한정된 공간에 미리 결계를 쳐 놓아야 한다는 단 점이 있다 그러나 방금의 계산으로 흐름은 익숙 해졌다. 또한 현천공을 활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구사가 가능하다

‘신룡문의 무화답군.’

정우는 도둑년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올 거란 계산을 해 놓았다. 봄에 씨앗을 뿌려, 가을에 수확하는 농부의 심 정으로 무화를 시험하고 있는 중이다. 물 론, 당장 아는 체를 해선 곤란하다. 실력도 어느 정도는 숨겨야 하기에 죽었다고 단정 했었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 기도록”

정우는 아무렇지 않게 개소리를 지껄였 다 딱히 논리를 따지지 않았다 실제로 도 둑이었다면 차라리 신고해줬으면 하는 바 람일 것이다. 화장(火葬)이 소원이 아닌 이 상, 시체도 남기지 않고 소멸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아니,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가식적인 놀람이지만, 표정은 크게 상 관이 없었다. 어차피 내부에 있는 무화가 표정올 보지는 못 한다. 마법결계는 안에 선 안 보이고, 밖에서는 보이는 구조였다. 물론, 단순히 안과 밖에 부조화만 만들어 내진 않았다.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고. 진실과 허를 섞어 혼란을 가증시키 도록 했다.

부들부들!

마법에 당한 진영화는 화가 치밀어 몸

을 떨어야 했다 살다 보니 별의 별꼴을 다 당하고 있었다. 신룡문의 장로가 놈의 말 한마디에 도둑년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침착할 때다. 분노는 잦아들었다

‘위험했어!’

육체에 남겨진 상흔이 그 증거다. 그녀 로서는 무공을 익힌 이후로 오늘과 같은 낭패는 처음이었다. 어지간한 공격이라면 신룡진결에 의해 발생되는 호신강기에 가 로막히게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호신강기 마저 깨질 뻔했다. 마지막 순간 공력을 집 중시키고, 탈각의 묘리를 발하지 않았다 면 쇳덩어리에 뭉개졌을 것이다.

‘이런 무식한놈!’

그래도 그렇지, 담벼락 좀 넘었다고 여 인에게 저토록 무식한 쇳덩어리를 날리다 니, 제정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도둑 이라고 해도 그렇다. 저걸 맞고 버틸 수 있 는 경우는 무인이나, 유니크 중에서도 얼 마 되지 않는다. 자신 정도 되니까, 큰 상 처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도둑년이 보통이 아니잖아”

가로막은 결계를 통과해 들려온 사내의 목소리에 진영화는 참았던 화를 토해냈 다. 도둑년 소리도 한 번이지, 맛 들렸는지 계속 지껄이고 있었다.

“이 망할 놈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 고!”

“호오, 신분이 보통이 아닌가 보지? 그 런 고귀한 분께서 어째서 남의 집 담벼락 을 넘어왔올꼬. 더더욱 의심스럽군. 하긴 근래에 들어 아버지의 회사가 빠르게 성 장하긴 했지. 회사 기밀올 탐하는 스파이 일수도 있겠어.”

정우는 개연성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말만 지껄여 주었다. 상대가 들어 처먹던 말든, 의미를 두진 않았다. 그저 시간을 버는 용도일 분이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 었을 때, 도착한 자신이 등장하면 그만이 었다. 전혀다른신분으로

홈칫!

하마터면 신분을 토설하려 했었던 진영 화다

성질이 급해서 사고부터 치는 성향이 라, 되도록 나서지 말라는 문주의 압력이 거셌다. 그럼에도 나대다가 종종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공식적인 행사에는 참석 하지 못했었다.

-네가 금강문주야 왜 그렇게 설치고 다 니는 거냐! 조용히 좀 살자!

진영화는 문주의 막말을 수긍할 수 없 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자신을 금강문주와 비교한단 말인가. 그런 몰상 식한 사람과 자신처럼 지적인 교양인을 같 은 급으로 두는 건 숙녀에 대한 지독한 모 욕이었다.

“그따위 격장지계에 넘어갈 것 같으냐!”

“넘어가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 엎어 지나 매치나 도둑년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테니까. 막말로 고귀한 년은 남의 집 담벼락을 넘어도 된단 법이 있나: 진영화는 오장육부가 부글부글 끓었다. 반말도 거슬리건만, 이놈이 아까부터 계 속 년년(쌍) 거리고 있었다. 좀처럼 들어보 지 못해 신선하기는커녕 화를 억누르기 어 렵다.

더더욱 짜증 나는 현실은 저놈의 나이 가 자신의 반 토막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린놈의 새끼가 혓바닥을 반으로 잘라 놓았나 하는 말마다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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