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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2화 (2/522)

# 2

리그너스 대륙전기 002화

“호! 이것 좀 부탁해!”

“네.”

“호 씨! 이거 체크 좀 해주시고 부장님 결제 좀 받아주세요. 부탁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호, 이거 하나 마셔.”

“잘 마시겠습니다! 대리님!”

직장인의 하루는 굉장히 바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을 준비하고 회사에 도착하면 숨 쉴 틈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일거리가 주어진다. 특히나 호와 같이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벌써 6시네. 하지만 오늘도 야근이겠지.’

오전 업무가 끝나고 점심이 지나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왔지만 호는 일찌감치 퇴근할 생각을 접었다. 자신과 같이 갓 인턴에서 벗어난 신입 사원에게 정시 퇴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정시에 퇴근을 하면서 많은 연봉까지 받고 즐기듯 회사를 다니는 이들은 극히 일부의 제한된 사람들뿐이었다. 요즘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저녁이 있는 삶이란 그들에게나 통용될 이야기였다.

하지만 기사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의 평균을 내었을 때, 대한민국 국민들의 행복도는 굉장히 높다고 했다.

하지만 호는 대체 저 통계가 어떤 사실을 근거로 하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실제로 자신이 검색해 보면 늘 대한민국은 안 좋은 통계는 상위권, 좋은 통계는 하위권을 차지했었다.

자신은 중견기업에 입사했지만,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에게 들어봐도 맨날 앓는 이야기들뿐이다.

뉴스, 인터넷에 떠도는 대기업에 입사하면 행복하다는 이야기? 입사해 보지도 못한, 혹은 단순히 꿈을 꾸는 사람들의 상상에 불과했다. 막상 대기업에 다니는 녀석들은…….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놈은 한 명도 없었지.’

실제로 그들은 매번 일에 치이며 한숨만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호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나은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하는 야근에 대해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 것도 그 이유였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직장이 있는 것에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어?”

그렇게 시작된 야근 중에 갑작스레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르자 호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만약 이 세계가 가상현실이었으면, 혹은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통일한 황제 호처럼 현실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이라는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호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봤자 가상현실과 꿈, 현실은 다른 세계였다. 자신은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에 살고 있었다.

결국 호가 회사에서 퇴근해 집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0시 20분.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아침에 있었던 일들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씻고 짤막한 휴식의 시간을 즐기고 나면 다시 내일의 일과를 시작해야만 했다.

이렇게 일하면서 호가 한 달에 받는 월급은 190만 원 남짓. 그래도 나름 이름 있는 중견 기업에 입사했기에 손에 쥘 수 있는 돈이었다.

여기에 세금 등을 떼고 월세와 한 달 생활비를 빼고 나면 저축을 할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았다.

과연 이렇게 돈을 모아 언제 집을 사고 결혼을 하고 연애를 할까? 단순히 집값만 해도 호의 직장이 있는 서울은 평균 몇 억이나 되는데 말이다.

“푸하! 몇 포 세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퇴근 후 즐기는 달콤한 맥주와 함께 호는 최근 뉴스에서 심각하게 다루던 내용들을 떠올렸다.

몇 년 전부터 떠들던 삼포 세대, 오포 세대. 그리고 이제는 9포, 11포 세대까지. 경제가 어려워지고 갈수록 청년들이 살기 힘든 시대가 되어버린 현실을 비판하는 말들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런 현실이 나아져야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좋은 쪽으로는 변하는 게 없었다.

그렇게 마냥 희망만 가지기에는 앞에 보이는 벽들이 너무 단단했기에 많은 청년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문제를 회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노력과 근성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은 만화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호도 마찬가지였다. 월급을 높이기 위해 이직을 한다거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인생을 오로지 공부와 공부에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호가 찾은 탈출구는 가상현실이라는 또 다른 현실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가상현실 개발 기술만큼은 세계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뛰어난 나라였다.

♪~♬~♬♪~♩

그렇게 상념에 빠져 홀로 맥주를 마시던 도중 핸드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여자 친구인 혜연의 전화였다.

“어, 혜연아.”

[오빠, 퇴근했어?]

“응. 좀 전에 막 집에 왔어. 너는?”

[부럽다. 난 오늘 야간 근무.]

호의 여자 친구인 혜연은 23살의 꽃다운 여인이었다. 호와는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로 성격도 좋은데다가 귀엽기까지 해 이 세상에서 부모님을 제외하고 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현재 대한민국의 여경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야간에 근무라니, 힘들겠네.”

[괜찮아. 이제는 익숙해졌어. 대한민국 경찰이라면 야간 근무쯤은 눈 감고도 해야지.]

핸드폰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스물셋이라는 어떻게 보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혜연은 씩씩했고 생각도 깊었다.

거기에 예쁜 외모로 인해 대학을 다닐 때에도 뭇 남성의 인기를 한 몸에 받기도 했었다. 호 역시 그런 남성 중 하나였다.

‘인생은 한 방이지.’

하지만 마냥 혜연을 바라보기만 하던 다른 남학생들과는 달리 호는 과감한 결단력을 발휘해 그녀에게 고백을 했고, 잠시 머뭇거리던 혜연은 며칠 뒤 호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그로 인해 친구들에게 쐈던 술값이 지금도 생각날 정도였다.

아쉽게도 혜연과의 통화는 길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밤새도록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근무 중이기 때문이었다.

-아차, 오빠. 우리 내일 데이트하는 거 맞지?

“내일? 아!”

빠르게 달력을 살펴보니 오늘이 목요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내일은 금요일, 내일만 버티면 이틀은 자유였다. 그리고 불금부터 시작하는 주말은 직장인들이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물론이지. 그러면 내일 퇴근하고 연락할게.”

-오케이. 오늘 푹 쉬고! 게임 늦게까지 하지 말고 일찍 자.

“걱정 마세요. 수상한 남자 조심하고.”

-웃기셔. 나는 그런 수상한 남자를 조사해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혜연과의 통화를 끝낸 호는 잠시간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컴퓨터를 부팅시키기 시작했다.

잠시 후, 호의 눈에 하나의 커다란 아이콘이 들어왔다.

칼과 날개가 섞인 그림의 아이콘.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아이콘이었다.

‘내가 이걸 얼마만큼 했더라?’

문득 든 궁금한 생각에 자신의 플레이 타임을 확인한 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현실 세계와 가상현실의 시간 배율을 따져봐도 직장인치고는 굉장히 많은 시간을 이 게임에 투자했던 것이다.

하기야 그렇기에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엔딩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에디터를 쓰지 않았다면 플레이 시간은 더욱더 늘어났을 터였다.

‘게다가 진정한 괴수들에 비하면 나는 풋내기에 불과하지.’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즐기는 플레이어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네임드들은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게임에 투자했을 게 분명했다.

개중에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등장하는 사소한 이벤트들까지 완벽하게 꿰뚫는 공략 제작자들도 있었다.

“그 사람에게는 리그너스 대륙전기가 곧 현실이고 현실이 리그너스 대륙전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씁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사람을 동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안타깝다는 생각이 잠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뭐, 이런 생각이 그 사람에게 실례가 되기는 하겠지만,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는지 그 사람이 알리는 없을 테고.

“아니지.”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 천장을 바라보던 호는 곧 생각을 바꿨다. 어떻게 보면 그 게이머는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라는 가상현실 속에서 현실 세계에서 이룰 수 없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류를 구원하는 영웅이 될 수도 있고, 현실에서는 보기도 힘든 수많은 미녀와 애틋한 로맨스를 찍을 수도 있었다.

그뿐인가? 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가 될 수도 있었고, 만인이 존경하는 위대한 왕, 혹은 역사가 욕하는 폭군이 될 수도 있었다.

가상현실게임은 현실 세계에서는 이룰 수 없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세계였다.

똑. 똑. 똑.

책상 위를 두드리는 손가락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크게 퍼져 나갔다.

‘한 번 더 플레이해 볼까?’

리그너스 대륙전기. 이미 엔딩은 본 게임이었다. 하지만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모든 것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에디터를 써서 진 엔딩까지 직선 루트로 도달하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할 게임도 없었다.

“대항해시대는 망했고…….”

혜연이와 같이 플레이하려고 했던 온라인 게임은 직장인이 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좋아. 이번에는 제대로 플레이해 보자.”

새로운 목표에 호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번에는 에디터를 쓰지 않고 플레이를 해보고 싶었다. 어차피 한 번 걸어본 길이지 않은가?

하지만 난이도에 못 이겨 실패를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 이런 방법도 있었구나. 오호?”

워낙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답게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공략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게임을 쉽게 즐길 수 있게 해주는 팁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풍요로운 정보의 바다 속에서 괜찮은 정보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Korea사의 노예 중 하나인 호에게는 믿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관우는 내 여자’라는 독특한 아이디를 사용하는 유저였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관해 사이트에 올린 공략을 묶어서 편집만 해도 책 몇 권이 나올 정도로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대해 자세한, 그리고 완벽한 공략만을 올리는 네임드였다.

“대륙전기를 즐기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바이블이나 다름없는 글들이지.”

모니터로 ‘관우는 내 여자’가 작성한 글을 읽으면서 호는 노트북에 그 내용들을 다운받기 시작했다.

이 노트북을 가상현실로 연동시키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손쉽게 공략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게임답게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공략은 굉장히 많았고,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들도 상당했다.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테트리스의 블록들처럼 차곡차곡 공략본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며 호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 지식들은 자신이 리그너스 대륙에서 활동하는 데 있어 강장제와 같은 역할을 해줄 터였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그렇게 공략본을 완성하고 자연스레 시간을 확인한 호는 아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보들을 찾아 다운을 받고 또 가상현실로 연동을 시키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당장 잠이 든다 하더라도 눈을 붙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네다섯 시간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게임은 내일 해야겠네.”

기껏 열심히 공략까지 준비를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게임이 재미있고 즐겁다 하더라도 출근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운 호는 가상현실캡슐이 놓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일 회사를 마치고 혜연이와 즐거운 데이트를 보내고 나면 다시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완벽에 가까운 공략본까지 있었다. 분명 재미있고 신나는 모험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보다는 피로를 회복하는 게 먼저였다. 게임보다도 출근과 사랑하는 여자 친구인 혜연을 만나는 게 호에게는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잠시 후, 곤히 코를 고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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