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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88) (88/268)

088. 현하빈과 마법사의 돌 (6)

“자, 다들 잘 들어라. 일단 나눠 준 안내문을 숙지하고, 이 학교에는 기숙사와 본관, 별관, 강당, 대련실, 수련실이 있으며…….”

한창 오리엔테이션이 진행 중인 F반.

‘……A반에 가겠지?’

홀로 F반에 돌아온 여서윤은 F반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며 생각했다.

‘명찰에 적힌 이름이 하빈이었나.’

뒤늦게 그녀에게 마구 재잘거렸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잘 모르면서 당연히 F반일 거라 생각하고 달라붙었는데. 기분이 나빴을지도 몰라.’

무려 A급 헌터 출신 특례입학생.

멀어도 한참 먼 느낌이 난다.

‘A반……. A반이랑 F반은 복도 끝과 끝, 완전 반대편에 있으니까 앞으로는 보기 힘들겠지?’

앞으로 보기 힘든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서윤은 그 A급 헌터라던 학생이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난 자퇴각을 재고 있거든.’

‘말하고 다니면 죽는다.’

‘네발로 기어라.’

“…….”

엄마, 나 무서워…….

‘호, 혹시 찍힌 건 아니겠지?’

F반인 줄 알고 달라붙을 때 조금 귀찮아하던 표정이었는데.

물론 복도에서는 서윤의 편을 좀 들어준 느낌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태도가 정말로 서윤의 편을 들어준 건지, 아닌지가 참 헷갈리는 태도여서 더 아리송했다.

‘이대로 괜찮을까…….’

안 그래도 서윤은 학교에 오기 전부터 주변 친구들한테 여러 조언을 들었었다.

‘F급으로 헌터학교에 간다고?’

‘조심해야 해!’

‘원래 고등학생 되면 공부에 신경 쓰느라 괴롭힘이나 일진 짓은 줄어들거든. 근데 헌터학교는 좀 달라. 거긴 공부 안 해도 되고 능력만으로 들어가다 보니 가끔 무서운 애들도 섞여.’

‘울림국제고는 그래도 어느 정도 거른다고 들었으니 괜찮을지도?’

각성자는 웬만하면 받아주는 울림국제고였지만 생기부에서 인성 문제로 1차로 한 번 거른다고 들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해. 헌터학교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니까?’

‘공부로 줄 세우는 다른 학교랑 다르게 각성 능력으로 줄 세우잖아. 애들을 그런 환경에 넣어 놓으면 별수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이 생긴다고.’

휴우.

‘방금 그걸 겪어본 것 같은데.’

서윤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참을 만했다. 보이지 않는 서열이 생기는 건 어느 학교나 가든 비슷하니까. 공부든 외모든 인맥이든. 어딜 가도 학생들 사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은 존재하는 법이다.

‘그럼 이제 어쩌지?’

서윤은 뒤늦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껏 하빈의 곁에 붙어 있다 보니 다른 친구들을 미처 못 사귀었다. 방금 전까지 하빈이 앉아 있던 옆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드르륵!

“뭐야?”

갑자기 열린 앞문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교탁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던 선생님의 고개가 그쪽으로 휙 돌아갔다.

“무슨 일로…….”

“실례합니다.”

‘어?’

서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들어오는 선생님은 아까 복도에서 하빈을 데려갔던 그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짧은 침묵 뒤에 말을 이었다.

“여기 누락되었던 학생을 찾아서 데려왔는데요.”

“누락이요?”

F반 담임선생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누락이라면…… 아! 그 학생? 그렇지만 그 학생은…….”

무언가 떠올린 듯 F반 선생님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그럴 학생이 있었지’에서 ‘근데 그 학생이 여긴 왜?’ 하는 얼굴로.

“네 그 학생입니다. 여기 오겠다고 해서요.”

“네?”

“안녕하세요!”

F반 선생님이 당황하는 사이 다른 인물이 빼꼼 앞문으로 몸을 내밀었다. 누가 봐도 교복을 갖춰 입은 학생의 차림.

‘어, 어어?’

그녀를 본 서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들어온 학생은…….

“안녕?”

현하빈이었다.

‘A급 헌터 출신 특례입학생이라면서…… 왜 F반에?’

서윤이 입을 틀어막았다.

‘말도 안 돼. 대체 왜?’

그녀의 머릿속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추측이 흘러가고 있었다.

‘호, 혹시 나 때문에?’

나와의 의리를 지켜주기 위해서?!

서윤이 감동받은 표정을 감추며 고개를 숙였다.

원래 사람이란 말이 안 되는 상황을 마주하면 스스로 여러 이유를 붙이게 되는 법이었다. 그것도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말이다.

* * *

‘흠흠, 대련 안 하는 F반 개꿀!’

하빈은 뒷자리 구석에 앉아서 신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꽤 괜찮은데?’

애초에 A반은 함정이 있다.

전교생의 주목을 받는 특별 클래스에다, 거기 있는 학생들은 모두 헌터로 기대받는 유망주들. 갑자기 굴러들어온 하빈에 대해 호의적일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 데 들어가서 온갖 귀찮은 견제를 당하는 그런 전개 노노야. 잘잘이 너 웹소 봤으니 아카데미물도 읽어 봤겠지?’

원래 주인공들은 그런 엄청난 반에 들어가서 엄청난 인물들과 엮이는 게 국룰.

‘그 과정에서 아주 곤란하고 귀찮아진단 말씀!’

웹소 전문 아헤자르가 반박했다.

[아, 아니다! 내가 읽은 아카데미물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본 건 F반에 들어간 주인공이 주변의 핍박을 견디면서 다른 학생들과 의리를 다지며 성장한다고!]

“엥?”

[주인공은 시작부터 F반에 들어가는 게 클리셰다!]

‘뭐? 아니야. 내가 읽은 건 주인공이 최약체인데 미래를 알고 편법을 써서 A반에 들어가는 거였어. 그리고 성장해서 쓸어버리지.’

근데 생각해 보니 주인공이 사기캐이기만 하면 어떤 반에 들어가든 말은 되었다.

[크흠, 하긴 생각해 보니 요즘은 안 나온 클리셰가 없는 듯하다.]

‘버려버려. 이게 소설도 아닌데 그딴 클리셰 먹힐 리가 없다구.’

대충 손을 휘휘 젓는 하빈. 마침 선생님은 한 학기 시간표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시간표는 정해진 학점 내에서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자율이라니?’

최곤데?

처음의 하빈은 ‘아, 수업 듣기 싫으니 땡땡이를 칠 방법이나 찾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들어올 때부터 창문의 크기와 높이 등등을 재고 있었는데.

‘여차하면 뛰어내려 도망칠 생각이었…….’

[학교 창문으로 뛰어내린다니! 그런 경박한 행동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잘잘이가 뛰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사뿐히 착지할 테니 잘잘이는 구경이나 해!’

[으으! 그런 문제가 아니다! 제발 자중해라!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선생님이 창문으로 뛰어내리지 말라고는 안 하셨어.’

[그건 상식적으로 당연히 안 되니까 굳이 말 안 한 거지!]

‘흐음, 어쨌든 생각해 보니 굳이 창문으로 탈출할 필요는 없겠네. 이것 봐, 잘잘!’

하빈이 방금 받은 안내문을 펼쳐놓으며 말했다.

‘여기 시간표는 자기 맘대로 짤 수 있대. 가본 적은 없지만 완전 대학교 온 것 같잖아? 후후. 라떼는 이런 거 없었는데 요즘 고등학교들은 이런가?’

아니면 헌터학교라 그런가?

하빈이 신기하단 표정으로 수업 목록을 살펴보았다. 마법학교라는 말에 걸맞게 이곳에는 마법계열 각성자를 위한 강의가 많았다.

-약초학 (3학점)

-마법 생물 탐구 (2학점)

-포션 제작의 기초 (2학점)

-정령과의 교감 (2학점)

-마나 수련 (1학점)

-마법과 주술의 기초 (3학점)

-던전의 실제와 대련 (3학점)(*F반 수강 불가)

[호오……!]

아헤자르가 흥미롭다는 듯 감탄을 흘렸다. 입학 때부터 마법학교에 대한 환상이 넘쳤던 그다웠다.

[이거! 이걸 듣자! 마법 생물 탐구! 마법과 주술의 기초! 정령과의 교감 과목도 아주 흥미롭다! 나도 정령 보고 싶다!]

“에엥. 난 다른 거 들으려고 했는데.”

[애초에 네가 듣고 싶은 과목이 있었느냐?]

‘당연하지!’

하빈은 자신이 고른 과목들을 펜으로 탁탁 체크했다. 모두 아헤자르가 보던 것과 정 반대 페이지에 있는 과목들이었다.

-영화 감상 (2학점)

-뮤지컬의 감상과 이해 (2학점)

-요리 (2학점)

-드라마와 대중매체 (2학점)

-웹소설과 웹툰의 이해 (2학점)

[……이, 이게 뭐냐?!]

‘뭐긴 뭐야? 이게 바로 학창 생활의 꽃, 교양이지!’

[웹소설과 웹툰의 이해……는 그렇다 치지만, 다른 것들은 도대체 뭐냔 말이다!]

그랬다.

수강 가능 과목 중에는 교양 과목들도 상당수 포진해 있었던 것이다.

야구, 축구, 수영, 그림 그리기, 노래는 물론 연애학개론, 심리학의 이해 같은 과목도 있었다.

‘이 중에서도 영화 감상이나 드라마와 대중매체 과목은 대놓고 영화랑 드라마만 보는 과목이더라고!’

중간, 기말과제로 감상문을 제출하는 게 있지만 어차피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하빈에겐 무의미한 제약!

‘요리 과목은 직접 만들어서 바로 먹을 수가 있더라니까? 수업계획서에 적힌 메뉴들이 엄청 화려해. 첫날부터 샤브샤브를 해 먹더라!’

이런 수업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어디 보자, 그리고 최소로 들어야 하는 학점이…… 10학점이네. 그럼 이거 딱 들으면 다 채우겠다.’

그렇게, 영화, 드라마, 웹툰, 요리, 뮤지컬로만 꽉꽉 채운 시간표가 완성되고 말았다.

‘나머지 시간엔 나가 놀아야지.’

[마법 수업은 안 듣느냐?! 아, 아니! 그럼 2학기는?]

왜인지 초조해진 아헤자르가 다급히 외쳤다.

‘그건 나중에 가서 생각하지, 뭐.’

신난 표정으로 펜을 빙글 한 바퀴 돌리는 현하빈. 그걸 보던 아헤자르가 한껏 우울해진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이게 뭐냐. 나는 마법학교를 기대했는데……!]

‘생긴 건 나름 마법학교 같잖아?’

하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교실과 복도는 신축 학교답게 깔끔하고 예쁜 첨단 시설의 느낌을 주는 한편, 사람들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마법학교’처럼 고풍스럽고 앤티크한 소재를 상당수 채용했다.

예를 들어 창가로 비치는 은은한 햇살 아래에 원목 바닥과 정교한 원목 천장재가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었다. 형광등 조명 대신 감각적인 주백색 등이 교실을 밝히고 있었고, 창가에는 드림캐쳐 모양의 장식물이 걸려 있었다.

[아이템 - 하급 행운의 부적]

설치된 건물 안에 있는 사용자들에게 마나 감응력을 소폭 상승시켜줍니다. 편안하고 안정된 기분을 느끼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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