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 Pin&Skewer (2)
한편. 에라타의 맞은편에 앉은 강태서는 표정을 관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현하빈이잖아.’
당연히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에라타가 내민 사진.
흐릿하고 어두운 배경이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저 얼굴은 그의 동창, 현하빈이 틀림없었다.
그것을 확인한 태서는 내색하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몰라. 모른다고 했잖아.”
“그래? 대충 본 거 아냐?”
강태서의 어깨에 앉아 있던 까만 괴물이 끼어들었다.
-게엥, 게엥!(또 저 여자다! 저 여잔 왜 안 끼는 데가 없냐?)
“네 동그란 친구는 안다는데?”
‘왜 하필 이 타이밍에.’
강태서는 눈 하나 까닥하지 않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얘는 간헐적으로 발작을 일으켜. 아마 네가 가까이 다가와 그걸 보여주니 놀랐나 보지.”
-겡?(인간? 입을 꽤 잘 턴?)
‘잔말 말고 들어가 있어.’
태서는 꾹 동그란 괴물을 집어넣었다. 대체 이번엔 언제 나온 건지.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것에 슬슬 귀찮아지려고 했다.
도움도 안 되는데 그냥 없애버릴까.
꾹 미간을 누른 그가 다시 에라타에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용건 끝났으면 나가.”
“왜 이래. 같은 처지끼리 잘해보자는데?”
“같은 처지 아니니까 꺼져.”
“흐응. 나한테 그런 식으로 굴면 관리자님도 좋아하지 않을 텐데. 잘 생각하는 게 좋아.”
협박하듯 그를 향해 몸을 숙이는 에라타.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진득한 피비린내가 훅 끼쳐왔다. 에라타는 섬뜩하게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재수 없는 태서 캉. 대체 난 왜 관리자님이 널 예뻐하는지 모르겠어. 매번 허탕만 치고 나뿐만 아닌 다른 사도들에게도 비협조적인데.”
“네가 할 소린 아니지. ‘마이너 패치’는 피데스에게 망했다며.”
“다시 일어설 거야. 너야말로 26층이랑 50층에서 내내 손가락만 빨았잖아? 네가 한 게 뭐가 있어?”
“…….”
“게다가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지도 않잖아. 매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니까? 설마 우리 뒤통수치려고 계획하는 거 아닌지 몰라?”
“헛소리할 거면 나가.”
“여유 없긴. 농담도 못 해?”
새초롬하게 눈웃음을 친 에라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태서는 흘깃 그녀를 돌아보았다.
에라타.
비록 피데스에게 한 차례 괴멸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세계 최대 범죄조직 ‘마이너 패치’의 수장.
악당이라 다들 추켜세우지는 않지만, 명실상부 월드 랭킹 3위.
게다가 ‘에라타’라는 건 어디까지나 닉네임이다. 그녀의 본명은 아무도 몰랐다. 그녀들의 수하는 물론, 강태서조차도.
아는 거라고는 어딘가의 빈민가 출신이었다는 정보, 꽤 가차 없는 냉혹하고 잔인한 성정을 가졌다는 사실뿐.
뚜벅, 뚜벅.
창가로 다가간 에라타가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을 보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나, 오는 길에 네 광고판을 봤어. 태서 강, 여전히 인기 많더라. 너희 고국에서는 국민 영웅으로 불린다지? 하, 영웅이래. 하하.”
짧게 끊어치는 높은 톤의 조소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정말 같잖다는 듯, 에라타가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비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인사하듯 우아하게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이렇게 손을 더럽힐 동안에…… 혼자 깨끗한 척 온갖 존경을 다 받고. 찬사를 받고. 그동안 영웅 놀이하니까 재미있었어?”
“…….”
“위선자.”
짧게 한 단어를 속삭인 에라타가 눈웃음을 지었다.
“언젠가 네 정체를 알게 될 다른 인간들의 반응이 나는 벌써부터 너무 궁금해.”
그녀가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조곤조곤 서늘한 목소리가 방 안에 내려앉았다.
“네가 강한 이유는, 인류를 배신하고 관리자의 편에 섰기 때문이라는 걸. 겉으로는 착한 척하지만 어차피 나랑 똑같은 목적의 쓰레기라는 걸.”
혼자만 알고 있기 너무 아까운데.
에라타가 상태창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그녀의 상태창에는 붉은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당신은 시스템 관리자가 선택한 두 번째 사도입니다.
-관리자의 히든 미션을 수행하십시오.
-보상: 관리자 모드 사용권, 치트 플레이. 이외는 미션에 따라 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