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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는 오늘도 은퇴를 꿈꾼다(68) (68/268)

068. I can't die, I'm all-in! (1)

킬스크린 섬의 야시장.

그곳은 헌터들에게 꽤나 알아주는 명소였다.

“킬스크린에서 구한 희귀 재료 팝니다! 다른 던전도 아니고 킬스크린에서 구한 제품만 취급하는, 믿을 수 있는 프리미엄 고퀄리티!”

“직거래입니다! 도매가보다도 더 싸게 구할 수 있어요!”

“앗, 포션 신발보다 싸다!”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 50% 특별 세일 들어갑니다! 인벤토리 정리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급매처분!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기회!”

“아이템 삽니다. 팔고 싶은 중고물품 비싸게 쳐드립니다!”

거대한 상권지구 사이로 끝도 없이 이어진 천막과 가게의 행렬.

캠핑장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노란 전구가 그 사이사이에 매달려 있었다.

누군가는 번듯한 가게를 차려 장사하고, 또 누구는 천막을 쳤고, 심지어는 건물도 천막도 없이 그냥 길판에 나앉아 돗자리 위에 물건을 올려두고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모여서 열심히 물건을 팔고 흥정을 한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전 세계의 헌터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헌터들끼리의 거래를 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지. 통역 아이템 덕에 국적불문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해진 것도 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하빈의 곁으로, 따라온 채지석이 덧붙였다. 킬스크린 섬은 전 세계에서 포탈을 타고 손쉽게 모일 수 있다는 최고의 장점이 있었다. 그 이점을 헌터들은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 방문하는 헌터라면 꼭 한 번씩은 들른다고 해. 아예 여기 눌러앉아 가게만 운영하면서 먹고사는 헌터들도 꽤 있어.”

[호오, 저번에 방문했던 백화점인가 하는 곳과는 또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군! 나는 이런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좋느니라. 예전에 살던 곳도 생각나고, 특히 금은화가 오가는 짤랑거리는 소리가…….]

“여기 카드결제 되나요?”

아헤자르의 말에, 하빈이 심각한 목소리로 옆에 있는 상인에게 질문했다. 꼬치를 팔던 상인이 재깍 대답했다.

“요즘은 다 카드결제 하시죠. 비자? 마스터카드? 다 됩니다. 계좌이체도 오케이!”

“오 현대문물 최고다.”

[…….]

“여기서 파는 것들은 아무리 자잘한 아이템이라도 하나에 최소 백만 원인데 어떻게 다 현금으로 받아요? 안 되죠.”

상인이 그 타이밍에 꼬치를 뒤집었다. 꼬챙이에 끼워진 고기와 파가 불에 그을리며 치이익 소리를 냈다. 그가 마저 입을 열었다.

“물론 이런 군것질거리들은 시중 가격과 비슷해서, 음식 살 땐 현금으로 계산하기도 해요. 하나 드셔보시겠어요?”

“오오! 텤마머니!”

하빈이 기다렸다는 듯 카드를 내밀었다. 그녀가 잔뜩 기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여기도 가이드북 맛집이던데! 특히 양고기 꼬치가 그렇게 맛있다던.”

“맞아요, 헌터분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이거 먹으러 많이들 오십니다.”

꼬치를 굽던 상인이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킬스크린 야시장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기도 했다.

그냥 아이템만 파는 곳이었다면 헌터들끼리의 명소로 그쳤겠지만, 야시장의 판매 품목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국적 상관없이 모이는 곳.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과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를 비롯해 세계 각 지역 수많은 출신의 사람들이 각자의 문화를 가지고 이곳에 왔다.

셀 수 없는 국적만큼 다양한 음식과 음료들, 관광 기념품들까지.

‘하루 만에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면 킬스크린 섬에 가라!’라는, 저명한 여행 인플루언서의 발언으로도 굉장히 유명한 곳이었다.

“그냥 각국의 요리만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문화가 다양하게 섞여서 기가 막힌 퓨전 요리들도 많이 나왔거든. 예를 들어…… 스리라차 크림 치킨이라던가, 바질페스토 순대튀김은 꼭 먹어봐야 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하빈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성큼성큼 채지석을 이끌었다.

[성좌 ‘가장 가까운 빛’이 변장을 하길 잘했다며 끼어듭니다!]

채지석은 야시장에 들르기 전 일부러 머리색을 바꾸는 아이템을 썼다. 눈도 선글라스로 가리고, 마스크까지 꼼꼼히 쓴 채였다.

여느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들이 하는 것처럼.

그도 그럴 게.

“채씨, 이렇게 먼 외국에서도 다들 알아볼 줄이야.”

하빈이 한숨을 쉬었다. 아까 노을 보러 갔을 때는 지석이 원래 모습을 했는데, 그러자 걸음걸음마다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몰려든 것이다.

“오! 혹시 솔라리스의 부길드 마스터 아니신가요!”

“채지석 님이죠! 저 진짜 오랜 팬입니다!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안녕하세요, 저는 JSC 소속 기자입니다. 마침 채지세 길드마스터가 50층 원정대에 함께했다고 들었는데요, 부길드장인 채지석 씨는 킬스크린 50층에 대해 아는 게 없으십니까?”

“저희 7살 난 아들이 채지석 씨 팬인데 싸인 한 번만 부탁드려요!”

“사진 한 장만요!”

그야말로 무수한 관심과 요청이 빗발쳤다.

“어째 한국보다 더한 것 같아?”

“한국에선 연수원 내부랑 우리 쪽 시설에서만 만나서 그랬을걸.”

생각해 보니 하빈은 이제껏 채남매와 함께 길거리나 공공장소를 나간 적이 없었다. 만나봤자 연수원 내부, 솔라리스 건물, 백화점 명품관.

이동할 때도 자가용을 이용했으니…….

채지석이 이어 설명했다.

“게다가 이 섬은 업무적으로 킬스크린 관련해서 허가받은 사람이 주로 오니까. 헌터계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그래.”

헌터들과 기자는 물론, 이곳의 일반인조차도 대부분이 헌터 관련 업무 종사자들.

그들에게 있어서 채지석은 도저히 지나칠래야 지나칠 수 없는 셀럽이었던 것이다.

채지세와 함께 한국의 빛, 솔라리스를 대표하는 사람이니까.

‘뭐, 거기까지는 대충 넘어갈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단 거다.

“그런데 옆에 계신 여자분은……?”

“무슨 관계시죠?”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뒤이어 하빈에게로 쏠리는 시선!

“에, 엥? 전 모르는 사람이에요!”

당시 흠칫한 하빈은 게걸음으로 채지석에게서 쇽쇽 떨어졌더랬다.

이러다 같이 있는 기사라도 나거나 귀찮은 인터뷰라도 들어오면 무척 곤란해지니까!

하빈은 그래서 야시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채지석에게 당부한 것이다.

‘혹시 야시장 따라오려면 절대 정체 들키지 않게 채씨가 변장을 하든 뭐든 하자! 아니면 따로 다니던가.’

하빈은 강경한 태도로 채지석에게 주장했고, 덕분에 그는 변장을 하게 되었다.

선글라스를 만지작거린 채지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불편하진 않아. 익숙하거든. 평소에도 밖에 나갈 땐 종종 이래. 저번에 염단 돈가스 웨이팅 할 때도 이러고 줄 섰으니까.”

“엥, 그거 채씨가 직접 줄 선 거였어?”

“줄 서 있는 동안 대기용 텐트 안에서 업무를 봤지…….”

어딘가 아련한 목소리.

어느새 그들은 야시장 명물인 불고기 치즈 핫도그를 사서 먹고 있었다.

냠냠.

조용히 듣는 그녀를 향해 채지석이 말을 이었다.

“아마 누나랑 나가도 비슷할걸? 그나저나 너 나중에 누나랑 어떻게 다니려고 그러냐? 둘이 놀러 다닐 거라며.”

채지세는 게이트 사태 전부터 셀럽이었던 인물. 사람들의 인지도는 채지석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으음. 그 부분을 생각 못 했네.”

“그래도 꽁꽁 가리거나 아이템 쓰면 생각보다 잘 못 알아봐. 우리가 쓰는 나름의 방법도 있고.”

“나름의 방법?”

“음, 예를 들어 백화점 휴무일을 이용해 백화점을 하루 통으로 빌린다거나, 영화관 같은 건 솔라리스 건물 내부에 있는 걸 쓰기도 하고…….”

“오…….”

역시 재벌 헌터의 클라스는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다.

“그게 돼? 백화점 휴무일이잖아.”

“원래 백화점 휴무일엔 그쪽에서도 일부러 VIP고객들 상대로만 예약 받고 종종 열기도 해. 그 기회를 이용하는 거지.”

“음, 그럼 딸기 뷔페 갈 때도 변장해야겠네.”

하빈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마침 야시장 한구석의 번쩍번쩍 빛나는 간판이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당신의 운을 시험해 보세요!’

하빈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녀가 신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채씨, 이제 저기 가자!”

“어? 저긴…….”

휙휙 돌아가는 돌림판과 뽑기 기계들, 한쪽에는 카드를 쥐고 게임하는 사람들까지.

언뜻 보아서는 게임장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니 달랐다.

칩과 돈을 거는 모습. 카드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한 사람들의 표정.

“여긴 도박장 아니야?!”

[노름?! 노름이냐!?]

동시에 나온 채지석과 아헤자르의 당황스러운 반응. 아헤자르가 급히 덧붙였다.

[노름은 안 된다! 노름하다가 가문의 재산을 다 털어먹다 못해 본인까지 노예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사는 이들을 여럿 보았느니라!]

“현하빈, 다시 생각해. 이런 데 들어갔다가 손모가지 날아가는 건 일도 아니라고 들었어.”

[빙다리 핫바지가 될 수도 있다!]

“둘 다 대체 어디서 뭘 들은 거야?”

하빈이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둘 다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나도 도박은 안 할 거거든? 애초에 불법이기도 하고.”

그녀가 도박장 앞에 놓인 가판대를 가리켰다.

“하지만 복권은 사보려고.”

“복권?”

[복궈어언?]

말을 마친 하빈이 가판대에 있는 점원에게 카드를 내밀며 해맑게 말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

“이걸 왜? 그것도 왜 이렇게 많이?”

“인생은 모 아니면 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헤자르가 하빈에게 들리게 속삭였다.

[애초에 너는 돈이 많지 않느냐! 왜 굳이 복권을 사는 것이냐?]

이미 통장에 90억이 넘게 쌓여있는 현하빈의 잔고(feat.현시우). 아헤자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당첨금은 10억밖에 안 되는데? 그 외의 당첨 상품도 그냥 별 볼 일 없는 아이템들일 뿐이고.]

‘잘잘아, 10억‘밖에’ 라니? 10억이란 액수 뒤엔 절대 ‘밖에’라는 단어가 들어갈 수 없단다.’

하빈은 대답하면서 흘깃 상품을 둘러보았다. 여러 종류가 있었다. 현금 10억을 포함해 여러 값비싼 아이템들과 자잘한 잡템까지.

하빈은 잡템으로 분류된 물건 중에서 ‘별의 조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물건에 시선을 조금 더 주었다. 옆에 적힌 설명은 이랬다.

-효과 없음, 재료로서의 사용가치 없음. 그러나 광채는 꽤 탁월한 편이라 보석류로는 상등품.

“와, 저거 진짜 예쁘게 생겼네. 마음에 들어. 꼭 깨진 사탕 조각처럼 생겼잖아?”

그 외의 물품들까지 다 확인한 하빈이 점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어쨌든 계산해 주세요.”

채지석이 끼어들었다.

“이거, 한 사람당 살 수 있는 개수 같은 거 제한 없습니까? 이렇게 많이 사도 돼요?”

“저희는 그런 제한 없습니다.”

‘……역시 킬스크린 섬이라는 건가.’

킬스크린 섬은, SPES에 의해 어느 정도 통제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영토였다.

그래서 실질적인 살인, 절도와 같은 치안에는 엄격했지만. 때로 이런 도박이나 복권 판매 등, 디테일한 법령에는 허술한 구석이 있었다.

“혹시 헌터신가요?”

마침 계산을 마친 점원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빈을 훑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희 복권은 투시나 감정 능력을 가진 헌터님들 때문에 좀 특별한 방식을 사용합니다.”

“어떤 방식이죠?”

“복권에 여기 있는 숫자 중 마음에 드는 걸 네 개 써 주시면, 이후에 저희가 랜덤으로 공을 네 개 뽑는데, 공에 적힌 숫자를 다 맞히시면 1등, 3개는 2등, 2개는 3등. 이런 식입니다.”

“그냥 로또잖아……?”

특별한 방법이래서 기대했는데, 익히 아는 로또와 방법이 너무 비슷했다.

“긁는 복권은 간파당하기가 너무 쉬워서요. 찾다 찾다 발견한 방법입니다. 대신 저희는 즉석에서 해드린다는 점이 다르죠!”

“흐음…….”

“1등이 되면 여기 있는 모든 상품 중 원하는 거 아무거나 가져가실 수 있고요, 2등은 이 줄 아래 상품으로만, 3등은 그 아랫줄, 4등은 맨 아랫줄 상품만 됩니다.”

“네. 시작해요, 그럼!”

하빈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당첨될 수 있다는 듯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그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숫자를 적었다.

그리고, 스킬 창을 띄웠다.

<비활성 해제>

현재 비활성된 스탯 중 하나의 제약을 풉니다. (1일 2회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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