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혈육이 갑자기 선물을 주면 일단 의심을 해보도록 하자.
“근데 진짜 말 안 해줄 거야?”
몇 급 헌터인지.
어디 소속으로 일하는지.
달그락.
늦은 저녁을 먹으며 하빈이 흘깃 거실에 앉아 있는 시우에게 물었다. 아까보다는 훨씬 진정된 어조였다.
“음, 말하는 순간 너한테 준 돈 도로 뱉어야 할 수도…….”
“생각해 보니 그렇게까지 궁금한 건 아닌 것 같아!”
“……그렇지?”
계획대로.
현시우가 남몰래 꿍꿍이가 있는 웃음을 짓는 동안, 하빈은 부들거리는 호기심을 꾹 눌러 담을 수밖에 없었다.
돈을 떠나서, 저렇게까지 말할 수 없다는데 어떻게 계속 물어볼 수 있겠어. 다 이유가 있겠지.
“그래도 범죄랑은 관련 없는 거지? 깨끗하게 살아온 거…….”
“아, 진짜 깨끗한 돈 맞다니까 그러네. 그렇게 날 못 믿…….”
“응. 못 믿음. 사실 지금도 매우 수상함.”
하빈이 단칼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굴렸다.
안전한 일이긴 한지, 이렇게 많이 줘도 부담은 없는지.
진짜 걱정도 되고. 마음 같아서는 더 추궁하고 싶었다. 사실 속으로 짐작 가는 바는 있었지만.
‘혹시…… 국정원 같은 건가.’
가족한테도 비밀을 지켜야 했던 국가기관 종류들. 게이트 사건 이후에도 그런 곳 하나쯤은 있겠지. 진짜로 그런 종류라면 캐묻는 게 곤란하긴 할 터다.
‘때가 되면 스스로 말하겠지. 그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자.’
조금만. 진짜 조금만.
이건 절대 돈 때문에 마음 약해진 게 아니다. 절대로!
그렇게 마저 식사하려는데, 현시우가 하빈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어조였다.
“그리고 네가 갖다 달라고 했던 거, 힘들게 구해왔어. 네 방에 뒀으니까 나중에 봐봐.”
“야, 내 허락도 없이 내 방에 들어와…… 아, 아니지.”
습관처럼 틱틱대려던 하빈은 감정을 추스르고 차분히 물었다.
“내가 구해달라고 한 거?”
“그래.”
하빈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 게 있었나?’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5년 전일 테니, 잊어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조금 이상했다.
애초에 하빈은 현시우에게 뭔가 부탁을 하는 성격이 아니다.
하빈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말 그런 게 있었다고?”
“그래. 기억할 거라 기대도 안 했다. 그냥 네 생일 선물로 치자. 많이 이르지만 네 올해 생일 선물. 힘들게 구해왔으니까 갖다 팔지 말고.”
현시우가 그렇게 말하며 스윽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빈이 고개를 들었다.
“잠깐, 어디 가?”
“나도 일하러 가야지. 너 기다리느라 시간 너무 많이 지체했어.”
“헌터 일?”
“그래. 그럼, 언젠가 또 올게.”
‘뭐, 언젠가라고?’
묘한 불길함을 감지한 하빈이 그를 불러세웠다.
“야, 다시 오긴 하는 거지? 야, 현시우! 잠깐…….”
“나중에 카톡함!”
“야!”
휘릭.
시우는 제대로 된 대답 대신 ‘카톡한다니까!’ 같은 소리나 외마디 비명처럼 외치곤 달아나듯 나가버렸다.
일반인의 민첩성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스피드.
순식간에 현시우를 놓친 하빈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거, 분명 뭔가 엄청 찔리는 게 있나 본데.’
분명 하빈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봐도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이 일을 헌터넷에 올려본다 가정해 봐도…….
제목: 갑자기 오빠가 갑부가 되어 나타났음
본문: 용돈으로 100억 주고 감. 딱 봐도 고위 헌터, 힘숨찐임.
└ 응 우리집도 강남 더힐 펜트하우스
└ 폰오빠 ㅎㅇ
└ 라는 내용의 웹소설 추천 좀
└ ㅋㅋㅋㅋ주작을 하려면 성의라도 있던가ㅋㅋㅋㅋㅋ이게 뭐임
“에휴…….”
답이 없다.
‘그만큼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지.’
하지만 이미 본인한테 답을 듣는 건 물 건너갔고, 뭔가 더 추측할 만한 게…….
‘아.’
하빈은 그 순간, 현시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네가 갖다 달라고 했던 거 힘들게 구해왔어. 방에 뒀으니 나중에 봐봐.’
현시우는 선물을 남기고 갔다.
다른 것들도 다 걸렸지만, 어쩐지 그때의 분위기가 유독 이상했다. 눈치를 살피며 주뼛거리던 그 태도.
특히 시우가 ‘힘들게 구해왔다’는 말을 할 때 진심을 담아 살짝 인상을 찌푸리던 게 잊히지 않았다.
‘대체 뭐길래 구하기가 힘들어?’
끼익-
하빈은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두 시간 동안 청소했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던 듯,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이 보였다.
그 위에 놓인 낡은 목재 상자도.
‘이건가?’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상자.
위에 달린 긴 뚜껑은 빛나는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다. 때가 탄 목재는 낡아서 귀퉁이가 어느 정도 떨어져 나갔고.
묘하게 위압적인 느낌이 들었다.
“……왠지 열면 큰일 날 것 같은데.”
뭔진 모르겠지만, 건드리면 강하게 X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진짜로!
“으으음…….”
하빈은 인상을 찌푸리며 경계 어린 태도로 팔짱을 꼈다. 척 봐도 이건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역시 아이템인가?’
헌터를 위한 고가 장비, 아이템.
현시우가 고위 헌터로 강력하게 의심되는 지금, 이건 아이템일 확률이 높았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위에 알림창이라도 떴을 텐데.
특히 온 방 안을 무겁게 짓누르는, 이 정도 위압감을 주는 아이템이면 분명 굉장한 알림창이 떴을 거다.
하빈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이면…….’
그래. 하필이면.
얄궂게도 그녀는 알림창을 볼 수 없는 사람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아니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스템 창’을 볼 수 없는 하자품. 최소한의 레벨조차 없는 완전한 무능력자.
그래서 그녀는 이번에도.
미친 듯이 범람하는 불길한 알림창을 보지 못했다.
<경고!> 접근 금지. 모든 ‘플레이어’에게 사용이 금지된 아이템입니다.
<경고!> 레벨 9,999,999,999…… 미만의 플레이어가 열람 시 ‘신벌-즉사’ 적용.
<경고!> 열람하지 않는 것을 권장합니다. 사용이 금지된 아이템입니다.
누군가가 들으면 기겁해서 당장 뒷걸음질 쳤을 무시무시한 알림들. 새빨갛게 시야를 물들일 경고창들.
하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는 하빈은…….
‘뭐,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부탁까지 했다고 하니까. 설마 위험한 걸 줬겠어?’
스윽.
‘살짝 뭔지만 보자.’
틈으로 보면 괜찮겠지?
쇠사슬을 슥슥 벗겨내고, 그 틈새를 아주 살짝만…….
달칵.
그렇게 수상한 상자를 열어버렸다.
그리고…….
<경고!> 접근 자격…… #[email protected]% 심각한 오류 발생…….
ERROR!
ERROR!
[플ㄹㄹ!렐1ㄹ이어가 아닙디다! 금지된 참가%&자!…]
[레/벨 확인 불가!]
[제+한적용ㅇ에 실패! ERR#$#!]
[봉#Dᅟᅵᆫ이 해제됩니다!!! 열람 승인-]
@(!*)(%)(@&%)(%#&%)(#%&)
환한 빛과 함께 상자가 활짝 열렸다.
[오류-193#]
[……최소한의 소통 필요. 지금부터 오류…… ‘현하빈’에게 ‘시스템 창’을 특수 제공합니다.]
기괴할 정도로 크게 일렁이는 투명한 창.
[경고! 지금의 상황은 시스템의 허용범위가 아닙니다.]
[금지된 성좌-찬탈검 아헤자르]에 접근했습니다.
금지된 성좌를 획득하시겠습니까?
[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