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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1/53)

Prologue

릴리.

내 삶의 빛, 내 존재의 이유, 누구보다 순결하고 깨끗한 완벽한 존재, 나의 구원자.

하얀 백합의 꽃말이 순결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그 애를 릴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에 릴리란 이름이 더럽혀질까 봐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불러 본 적은 없지만 때때로 그 애를 향한 마음이 너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면 나도 모르게 그 애를 예쁜 이름 대신 릴리라고 부르고 있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그 애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때 하나 타지 않은 하얀색의 모든 것은 그 애, 서하림과 아주 완벽하게 잘 어울렸다. 온갖 예쁘고 좋은 것 또한 역시.

서하림은 불행하고 우울하던 나를 찾아와 문을 열고 빛을 내렸다. 힘들고 지친 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날 위로했으며,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친 채 도톰한 붉은 입술이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참혹했던 현실이 눈 녹듯 사라졌다. 때론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아찔한 기분도 들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절망으로부터 날 구해주는 서하림을 두고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얇고 가느다란 새까만 머리카락, 곧게 뻗은 콧대와 흰 백합을 닮은 하얀 피부,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와 촉촉한 입술로 웃어주는 서하림을 보고 싶어서.

끝이 분홍색인 손가락, 깨끗한 손톱, 까맣고 하얀색이 대비되는 차분한 뒷목도, 크고 동그란 귀, 길쭉한 다리와 얇은 허벅지,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목젖, 정갈한 발가락까지 그 어느 곳 하나 예쁘지 않은 곳이 없고 내 취향인 서하림을…… 좋아하니까.

천사 같기만 한 릴리는 또한 내 죄의 말로이기도 했다. 나는 서하림이 가진 고고함, 순결 같은 것들을 찬양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깨끗함을 내 더러운 욕망으로 깨부수고 싶기 때문이었다.

밤이면 내 꿈으로 찾아온 새하얀 서하림을 나는 희롱하고 찢어발겼으며 더럽혔다. 잠에서 깰 때마다 어떻게 서하림을 상대로 이런 꿈을 꿀 수 있는지 극심한 자기혐오에 괴로웠지만 날이 갈수록 서하림을 향해 발정하는 것을 멈추기 힘들었다.

그 애와 달리 나는 음침하고 더러웠으며 찌들었고 추악했다. 나는 내 이런 음습한 마음을 최대한 속으로만 억누르며 나의 릴리를, 그 애의 순결과 깨끗한 웃음을 지켜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해왔으며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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